• 계급적 좌파정당 건설 어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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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9월 09일 03: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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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9월 4일에 진보신당의 3차임시대의원대회는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안을 부결시켰습니다. 부결은 됐지만, 찬성표가 54%에 달한 것으로 봐서는, 이 문제로 당은 거의 정확하게 반반으로 갈라져 있는 모양입니다.

    통합정당의 소수파

    사실, 단기적인 정치공학적(?) 차원, 즉 임박하는 각종 선거에의 대응이라는 차원에서 통합이 유의미할 수도 있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에 통합에 잠재적인 잇점 못지 않게 각종의 우려스러운 부분도 수반되지 않을까, 라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계급적으로 각성된 진보신당의 열성 당원들이 민노당 당원들의 각종 ‘민주대연합론’적 허상, 착각들의 실체를 열띤 토론에서 밝혀주고 민노당을 ‘왼쪽’으로 견인하게 되는 것이 기대되는 게 잇점이라면, 다소 구시대적인 ‘민족적’ 감수성과 부르주아 주류 정치와 구별이 잘 가지 않는 ‘민주대연합’, ‘야권 단결’ 담론 속에 안주된 민노당 안에서 진보신당 출신의 계급론자들이 그저 하나의 마이노리티로 전락돼 주요사항 결정에 영향을 주지 못할 위험도 엄연히 존재했습니다.

    또한, 민노당의 당원 다수가 노동자나 학생, 주변부적 인테리 등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그 당원들을 좌파의 계급적 입장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통합을 추진해볼 필요가 있다는 논리에 상당한 진실성이 담겨져 있었지만, 민노당 지도부가 끝내 국민참여당 등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야합에 대한 꿈을 단연히 버리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계급적 본질에 의거한, 유(有)원칙한 통합을 추진하기가 객관적으로 매우 어려워집니다.

    좌우간, 당이 내린 결정은 결정인만큼 아마도 당분간 어려운 독자생존의 길로 가면서, 민노당 등과 경우에 따라서 선거 연합 내지 선거 협력 등을 하게 될 셈입니다. 그 독자생존의 길에서 다시 한 번 통합 논의가 일어나 민노당과 궁극적으로 합치게 될 것인지 아닐지라는 부분과 무관하게, 한국적인 조건하에서 계급적 좌파 정당의 건설 과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들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볼까 합니다.

    대체로 원리원칙으로 따지면 계급적 좌파 정당에 가장 위험한 것은 일면으로 과도한 의회주의 등 (옛날 식으로 표현하자면) 우편향적 기회주의고, 또 일면으로는 소아병적 극좌주의, 즉 자폐적 ‘지하서클’ 분위기입니다.

    한국 좌파정당 우경화 기회도 없어

    공부서클 등등이 불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당연히 필요합니다! 특히 대학에서요) 대중 정당과 ‘셔클’은 좀 달라야 한다는 말씀이죠. 이는 원칙론적 이야기지만, 현금의 국내 정세로 봐서는 저는 솔직하게 후자의 가능성, 즉 대중적이어야 했을 정당이 잘못하면 ‘운동권 시대 후계자들의 동아리’로 전락될 가능성을 성심껏 경계하고 싶습니다.

    이 부분을 특히 경계하는 이유는, 한국적인 환경에서 좌파 계급정당이 지금으로서 아직 대중화되기가 어렵고, 대중화되지 못하는 이상 과도한 의회주의 등 우파적 기회주의로 빠질 기회마저도 잘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좌파 정당의 대중화가 왜 어려운가요? 이 부분을 이해하자면 한국형 자본주의의 현재적 특징들을 조금 봐야 합니다.

    외부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이란 그저 하나의 커다란 착취형 수출공장으로 보입니다. 자산으로 봐서는 국내총생산의 약 75%를 차지하는 삼성, 현대 등 수출 본위의 10대 재벌들이 그들의 괴뢰에 가까운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마음대로 이(악)용하고 비정규직과 외주, 하도급 업체들의 노동자들의 피땀을 악질적으로 짜가면서 세계 무역 구도에다가 늘 융통성있게 자신들을 끼어맞출 수 있다는 것은 한국 자본주의의 생존과 성장의 비결입니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그들이 일면으로는 IT 파도를 잘 탄 측면이 있는 것이고, 또 일면으로는 ‘중국 부흥’이란 거대한 세계사적인 흐름에 나름대로 편승을 잘한 부분은 있습니다. 지금 한국 성장률에의 대(對)중국무역의 기여도는 약 52%, 즉 성장률의 절반 정도는 주로 중간재 위주의 중국으로의 수출 증가의 덕분입니다.

    물론 ‘휴대폰’과 ‘중국’으로 통하는 한국 자본주의의 생존 전략은 그 한계가 분명합니다. IT 부문에서 중국 업체로부터 추월당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고, 수출 주도의 중국의 급성장도 전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차후는 대외적 악재로 좌초될 확률은 매우 높아도 아직까지 주(株) 국은 국가부채비율 35% 등 ‘건전한 거시경제 수치’를 자랑합니다(참고로, 미국의 국가부채비율은 94% 정도입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 착취공장

    물론 알 사람은 다 아는 바와 같이 한국이라는 착취공장의 ‘순항’의 대가는 고용불안에 떨면서 상대적 저임금을 받고 2교대와 같은 살인적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해야 하는 다수 노동자들의 상상 이상의 고통입니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성공’으로 보일는지 모르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이라는 착취공장은 그저 무간지옥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살인적 착취의 효과로 아직도 한국의 무역흑자 폭이 넓고, 성장률이 구미권의 평균보다 2~3배 높고, 국가부채비율이 구미권 평균보다 3배 낮게 나오는 등 "성장이 양호하다"는 현상이 당분간 지속되는 이상, 이 착취 공장의 지배인들에게 ‘밑엣 것’들에게 약간의 양보를 할 여유가 그래도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수사(修辭) 수준이긴 하지만 박근혜 공주님마저도 ‘복지 증진 계획’을 이야기하고, 정두언 등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이 보편적 복지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현상을, 바로 이와 같은 시각에서 고찰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복지국가’까지 들먹이는 일부 ‘노빠’들도, 한나라당의 소장파 의원들도 진정한 의미의 ‘보편적 복지’를 실행할 의지도 저력도 없습니다.

    정말 유럽식 보편적 복지가 되면 이 착취공장의 이윤률이 떨어지기에 절대 못하는 것이죠. 하지만, 보편적 복지까지는 못 가더라도 저들이 예컨대 대학생 등록금 지원에 투입되는 금액 액수를 늘린다든가,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에게 지급되는 금액을 늘린다든가, 출산격려금을 늘린다든가 등의 방식으로 ‘환심 사기용 복지 정책’을 어느 정도 추진할 가능성은 큽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수많은 대중들-특히 지역주의의 판도에 아직 포획돼 있는 수많은 영남, 호남인들-같으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국참당이 제시하는 각종 색깔의 ‘당근’에 정신을 팔아 그 ‘민생, 서민, 복지’ 수사의 포로가 될 확률도 커집니다. 그렇개 되면 좌파적인 계급정당으로서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은 많이 나지 않습니다.

    좌파정당 대중화가 어려운 이유

    압축하자면 아직도 수출 본위의 경제가 최종의 위기를 맞지 않고 나름대로 (끔찍한 착취를 하면서) ‘순항’하는 과정에서는 지배자들의 주류 정당들이 각종의 ‘당근’들을 제시해 다수의 노동자, 학생까지 성공적으로 포획할 가능성이 크며, 이 상황에서는 좌파정당으로서 대중화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대중으로부터 상당히 격리되기에 또 늘 자폐적 ”서클’ 형태로 귀환하고 싶은 유혹도 클 것입니다. 그래도 그 유혹을 극복하고 계속해서 대중들을 만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유일한 바른 길일 것입니다.

    특히 비정규직 투쟁에 늘 개입하고, 임금 체불과 인신지배 형태의 살인적 착취로 고생하는 ‘알바’, 청년 노동자들의 우군이 되고, 대형 마트의 시장권 침해로 부도나고 자살위기로 몰리는 영세상인들 앞으로 다가갈 줄 아는 것은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이미 계급적으로 각성된 소수가 아니고 광범위한 피해대중들이 좌파 정당으로 모여야 그 정당에게 미래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 착취공장의 승승장구는 영원하지도 않고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장기적 대공황의 불가피한 논리에 따라 주(株)한국도 분명히 멀지 않은 미래에 커다란 위기에 부딪치게 될 것이고, 그 때에 가서 대대적인 계급적 각성과 저항이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혁명적 계기’에 맞추어서 좌파정당이 이미 준비돼 있어야 그 저항이 잘 조직될 수 있을 것이고, 결국에는 한국 지배자들의 모든 피해자들에게 좋은 결실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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