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무리 만들고, 부피 키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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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31일 04: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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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9월 4일 진보신당 당 대회의 결정이 진보진영은 물론 정치권 전체의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민주노총과 전농 그리고 빈민단체 등 대중 조직들도 이번 결정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진보신당 대의원들은 자신들의 선택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9.4 당 대회를 앞두고 지난 1987년 민중 대통령 후보로 출마를 하면서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물꼬를 트고, 아직까지 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진보 진영의 원로인 백기완 선생님께서 진보신당 대의원들에게 보내는 글을 <레디앙>에 보내왔다.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 * *

    해주고 싶은 두 개의 이야기

    이번 일요일에 진보신당 당 대회가 열린다고 하는데, 내가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하나는 소련이 왜 망했느냐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옛날 내 동무에 얽힌 사연인데,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는 거야.

    첫 번째는 말이야, 90년인가 91년인가 어떤 친구들이 찾아와서 "왜 소련이 망했을까요?", 그렇게 나한테 묻더라고. 어떤 놈은 울먹거리는 놈도 있고. 그래서 내 얘기는 소련의 그 이를테면 사회주의자들이 망했지 소련이 망한 게 아니다, 그렇게 말한 적이 있어. 이게 무슨 말이냐.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너도 나도 잘 살자는 것은 인류의 보편 염원이지, 소련의 염원이 아니었다 이 말이야. 근데 사회주의라는 그 염원을 체제화했던 소련이 망했다고 하는 것은 소련 사회주의자들이 부패해서 인류의 보편적 염원을 배신한 거야. 부패로. 부패 때문에.

    그러니까 인류의 보편적 염원인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자고 하는 건 소련이 망했다고 해서 망한 게 아니다 이 말이야. 소련의 사회주의자들이 부패해서 망한 거다 이 말이야. 인류의 보편적 염원을 배신한 거야. 70년 실험해 가지고서 인류의 보편적 염원이 망한 게 아니야.

       
      ▲1차 희망의 버스 때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연설하는 백기완 선생. 

    그러니까 소련이 망했다고 슬퍼하는 놈들, 소련이 망했다고 해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놈들은 또 인류의 보편적 염원을 배신할 가능성이 있는 놈들이야. 이제부터 새롭게 인류의 보편적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몸부림은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 내 그렇게 이야기 한 적이 있어.

    그래서 인류의 보편적 염원인 진보적인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몸부림은 어떤 진흙탕,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흔들릴 수가 없고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했거든. 다시 강조하지만 소련의 사회주의자들이 망한 거지, 사회주의가 망한 게 아니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 현 단계에서 사회주의를 한다는 자들은 무리를 만들고 부피를 크게 하자는 요구를 들어줘야 해. 그 요구에 남김없이 뛰어드는 것은 그 인류의 보편적 염원인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그런 뜻을 저버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뜻을 오늘 이 단계에서 더 확고히 실현하는 방법의 하나다 이 말이야. 그니까 젊은이들이여, 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좀 참고해줘.

    지금은 무리를 만들고 부피를 키울 때

    두 번째로 나하고 가장 친했던 동무가 있어. 나이도 나하고 똑같고, 얼굴도 잘생기고, 힘도 세고, 예술에 대한 이해가 탁월하고. 그런데 나하고 6.25 때 부산에 피난 가서 부두노동을 같이 했거든. 딱 짝궁이야 나하고는.

    근데 그 친구는 나하고 부두노동을 같이 하면서도 늘 공부를 하댔어. 너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냐 물었어. 자기는 그 때 중학교 5학년 다닐 나이인데 전쟁 때문에 학교를 못 다니지만 곧바로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돼, 하면서 열심히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거야.

    근데 하루는 갑자기 대학입시 준비를 안 하고 연극공부를 해야 될까 봐 그래. 알고 보니까 사랑에 눈이 떴어, 이 친구가. 근데 그 사랑을 일굴 길이 없어. 그 사랑을 일굴라고 하면, 아니 자기 꿈을 일굴라고 하면, 대학을 진학하고 고등고시를 해가지고서 판검사를 하는 게 아니고 연극을 하는 것이 그 사랑을 일구는 것이라는 깨우침을 갖게 됐나 봐.

    그러다가 3년쯤 부산 피난 생활을 접고 서울로 왔는데, 그 친구가 없어졌어. 그래서 아마 이 친구가 사랑에 빠졌나 아니면 고등고시 준비하나, 나는 그랬어. 근데 한 1년만에 나타났는데 얼굴이 초췌해서 나타났어.

    그래서 너 요새 사랑하냐, 물으니 빙그레 웃고 말아. 그럼 너 요새 고등고시 공부하냐 해도 빙그레 웃고 말아. 그러면 너 요새 연극을 공부하냐 그랬더니, 연극을 공부하지 않고 실극을 공부한다는 거야. 실극. 실극. 진짜 극, 진짜 연극이다, 이 말이야.

    그래서 그 실극이 뭐냐 물었더니 그냥 웃고 소주나 한 잔 받아 달래. 받아줬더니 먹고 가서 또 한 1년 있다 왔는데, 아 이번에는 진짜 병이 들어서 왔어. 거 어디서 너 뭘하냐 물었더니 사람 사는 데 있대. 사람 사는 데가 뭐냐, 그러니깐 저 강원도 탄광지대를 가서 노동을 한대. 아, 너 그것이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고등고시를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실극인 모양이로구나 했더니, 그렇지 실극 실기를 공부하고 있다는 거야.

    사랑과 기다림

    팔수록 캄캄한 어둠 밖에 없다는 거야. 팔수록 막장이라는 거야. 그 막장을 어떻게 뚫냐. 거기서 자기가 노동이 뭐고, 인간이 뭐고, 역사의 진보가 뭔지를 터득하고 있다는 거야. 근데 그때 내가 병원에 입원을 시켰으면 그 친구가 죽지는 않는 건데, 진폐증이 심해져서 지금까지 못 돌아와.

    내 거기서 지금까지 나이가 80이 되도록 늘 그 친구를 울면서 더듬어 보는데, 그 친구가 누구냐 이거야. 사랑의 전형이라 이거야.

    그 친구한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어. 그 여자가 노동을 하더래도 왜 탄광지대에 가서만 노동을 하느냐, 서울에 와서 노동을 할 수 없느냐고 호소를 해도 탄광지대에서 안 나오는 거야. 너가 와라 이거야. 근데 그 친구가 아니 돌아오니까 사랑하는 여자가 날 찾아와서 하는 얘기가 앞으로 20년을 기다리겠대. 자기 청춘 다할 때까지 그 친구가 반드시 돌아온다 그 말이야. 자기한테.

    근데 20년을 기다려도 아니 돌아오니까, 그 여자가 사내를 찾으러 떠나간 거야. 찾으러 가보니까 탄광지대에서 진폐증으로 병들었다는 얘기만 듣거든. 죽었다는 얘기는 있는데, 어디서 죽었는지를 몰라. 찾을 길이 없어. 일생을, 지금도 나이 80이 다 된 그 여자는 그 사내를 찾으러 다닌다는 말이 있어.

    그 여자가 나를 찾아 왔어. 그래서 내가 그랬지. 그 삶의 원칙을 정했으면 그 원칙을 지키겠다고 하는 거 난 좋게봐. 그러나 진짜 사랑을 하면 찾아가야지 왜 기다리고 있냔 말이야. 내가 술 먹다 그 얘기를 했더니, 그 여자가 울며 잘못했다고 그랬어.

    막장에 가서 같이 싸우는 게 사랑

    젊은이들, 내 얘기 들어봐. 20년을 기다리는 그 끈질긴 사랑의 정열, 사랑의 본질, 우리가 그건 높이 봐야 돼. 그러나 진짜 사랑은 찾아가서 사랑을 만드는 거야. 근데 왜 그 남자를 찾아가지 않았냐, 이 말이야. 내 얘기는 사랑은 찾아가서 만드는 거야. 마음에 안 들더라도. 매일 그렇게 20년을 기다릴만치 사랑하는 사람을 왜 기다리기만 했냐, 이 말이야. 왜 찾아가지 않았냐, 이 말이야. 왜 그 막장에 가서 같이 싸우지 않았냐, 이 말이야.

    거 뭐이 원칙을 지키겠다는 젊은이가 있으면, 내 그 두 가지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어.

    첫째는 소련이 망했지만, 인류의 보편적인 염원이 70년 실험을 통해가지고서 차질이 왔다고 해서 그 인류의 보편적 염원은 망한 것이 아니다, 이 말이야.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라. 이 말이지.

    두 번째로 사랑은 기다리는 게 아니다, 이 말이야. 절개를 지키면서 지조를 지켰던 그것만 갖고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야. 사랑은 찾아가서 사랑을 만드는 거야. 적극적으로 창조하는 거야. 그 원칙을 사랑이라는 원칙으로 지키는 게 아니겠느냐, 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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