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노동운동, 악몽과 복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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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31일 08: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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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노동운동을 공부와 실천의 대상으로 삼고 지낸 지난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일본의 노동운동은 내내 머리 한 쪽을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돌덩이와 같았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어떻게 일본의 노동운동이 걸었던 궤적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반면교사의 대상, 일본의 노동운동

    한국의 노사관계가 어떻게 ‘일본적 노사관계’로 재편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한국의 노동조합이 일본의 노동조합과 달리 기업별노조주의, 노사협조주의, 경제주의, 관료주의에 빠지지 않고 노동자 대중의 이익을 올곧게 대표할 수 있는 자주적, 민주적, 계급적 노조로 발전해갈 수 있을까?

    한국의 노동운동이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 재생의 희망을 모색하던 1980년대, 그리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비로소 노동운동의 대중적 성장의 계기를 찾아 ‘전노협’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그 시기에, 일본의 노동운동은 ‘총평’의 해산과 ‘연합(렝고)’으로의 통일로 상징되는 ‘보수적 재편’을 완성했다.

    ‘총평’의 계급정치의 통로였던 일본사회당의 조락 역시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 충격의 여파는 일본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 나아가 세계 노동운동 전체에까지 미쳤다.

    노동운동에 있어서 일본은 ‘악몽’이었지만, 한국의 총자본에게 있어 그것은 ‘복음’이었다. 그들은 일본적 노사관계, 일본적 생산방식을 열렬하게 칭송하면서 산업현장에서는 ‘신경영전략’의 이름으로, 노동통제에는 ‘노경총 합의’의 실험으로, 법과 제도의 개편은 ‘신노사관계’의 이름으로 집요하게 일본의 경험을 이 땅에 복제하려 했다.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천신만고의 노력으로 이를 뿌리쳤다. ‘전노협’을 지켜 내고, ‘한국노총’의 틀을 벗어나 ‘민주노총’을 세우고, 1996~97년 정치 총파업을 전개하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민주노동당’을 통해 독자적 계급정치의 통로를 개척했다. 산별노조의 건설도 궤도에 오르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일본의 ‘악몽’을 벗어나고 있는 듯했다.

    “한국으로부터 배우려 합니다”

    "한국으로부터 배우려 합니다." 일본의 노동운동가, 노동연구자들이 한국을 찾을 때마다 해온 말이다. 한국의 운동가와 연구자들이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그곳에서 들을 수 있었던 말이다. 실제로 그들은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에서 일본 노동운동이 새로운 힘과 희망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한국의 투쟁 현장과 각종 대중 집회에 일본의 노동운동가들이 연대의 깃발을 들고 계속 참여해온 사실을 모두가 알 것이다. 이번 희망버스 투쟁에도 일본에서 ‘나카마 유니온’ 등 여러 조직의 활동가들이 동참했었다.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내가 만나고 교류해온 일본의 노동연구자들은 일본의 노동운동이 실패한 노동운동, 패배한 노동운동, 희망을 잃은 노동운동이라고 고통스럽게 고백했었다.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었다.

    기노시타 선생도 “노동운동에 있어 한국은 일본보다 이미 선진국입니다”라고 주저없이 말했다. 나는 마지막 성공의 순간에 이르기까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노동운동은 끊임없이 실패와 좌절을 반복할 뿐인 운동이며,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경험을 공유하고 이후 운동의 발전을 위한 교훈을 얻어 내는 것이라 말했지만, 그들의 체념과 좌절은 깊어만 보였다.

    일본 노동운동, 그 위대한 패배의 역사

    내가 일본 노동운동의 속살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본 것은 2007년, 일본 ‘오하라 사회문제연구소’에 체재하던 기간의 일이었다. 오하라 연구소의 거대한 지하 수장고에 산더미처럼 쌓인 일본 노동운동 100년의 자료들이 나를 압도했다.

    지금도 계속 부쳐져오는, 그래서 미처 분류되지 않은 상태로 배열되어 있는 일본의 노(老)활동가들의 개인자료 상자들도 나를 놀라게 했다. 이것이 패배한 노동운동의 기록이라면, 아, 그것은 얼마나 위대한 패배였던가.

    한국의 노동운동에게 일본이 전할 것이 없고, 한국은 일본에서 배워서는 안 되며, 일본이 이제 한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그들의 겸양은 단순한 겸양은 아니었다. 보수적이고 더 보수화되는 사회, 반동적 정치권력, 압도적으로 노동을 지배하고 있는 자본, 재생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노화되고 피폐화된 노동사회의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절치부심’, 일본 노동운동의 재생을 끈질기게 도모하고 있음을 나는 느꼈다.

    『일본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전』을 읽으며

    이 책을 번역하는 일은 내게는 번역이라기보다는 읽고 또 읽는 긴 독해의 과정이었다. 이 책을 소개한 김원중 선생과 저자인 기노시타 선생과의 대화도 있었지만, 번역의 과정은 마치 한국의 노동운동과 일본의 노동운동이 몇날 며칠을 마주 앉아 서로의 고민을 주고받으며 두 나라 노동운동의 미래를 점쳐보는 긴 대화의 과정과도 같았다.

    다친 상처를 들쑤시듯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한편 참으로 즐거운 반추의 시간이었다. 번역된 초고를 같이 읽고 토론한 금속노조의 한 활동가는 주위 동료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글을 이렇게 썼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일본의 노동운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저 자만하고 있었음을 참으로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이 속에는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깊은 고민과 실천의 경험들이 담겨 있습니다.

    노동조합이 대체 무엇인가, 기업별노조가 왜 문제이고 산별노조는 어떻게 건설되어야 하나, 노동조합은 당과 어떤 관계에 있어야 하나, 비정규직 운동은 어떤 틀에서 진행되어야 하나, 노동운동은 지역과 시민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물론 여기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어떤 틀에서 고민해야 하는지, 일본의 노동운동 어떻게 고민하면서 이 문제에 대면하고 있는지를 보면서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존 조직 밖에서 완전히 새로운 유니온 운동 전개

    이 책의 원제목은 “격차사회에 도전하는 유니온운동”이고, 부제가 “21세기 일본 노동운동원론”이다.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이라는 말 자체가 대중적 경멸과 비난의 의미를 지니게 된 사회, 기노시타 선생은 이를 “노동운동이라 하면, 이제 일본에서는 더티(dirty)하다는 느낌이므로, 유니온 운동이라 썼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유니온’이 원제이고 ‘노동’이 부제가 된 이유다. 청년, 비정규직, 프리터, 여성 등 주류 노동조합으로부터 유배된 노동자들이 기존의 조직 밖에서 완전히 새로운 노동운동, 유니온운동을 전개하자는 것, 그럼으로써 대기업· 정규직·기업별노조에 매몰된 기존 조직도 비로소 혁신의 충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입론은 차라리 비장하다.

       
      ▲저자인 기노시타 대표. 

    “한국은 산별노조 운동이 성과를 내고 있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하는 운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부러움 혹은 격려가 칭찬이 아닌 경고의 말로 들리는 것이 나만의 일일까.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된다”고 했던가. 무릇 나중된 자로 머물지 않으려면 먼저 되었던 자들의 모든 경험으로부터, 그들의 성공과 성취뿐아니라 그들의 좌절과 실패의 경험으로부터도 필요한 모든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배울 일이다. 일본의 활동가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이 책은, 1944년에 태어나 격동의 일본 운동사를 온몸으로 경험하며 평생을 ‘비정규 교수’로서 노동운동 연구에 바치고, 이제 제조업 비정규 노조인 ‘가텐계 연대’의 공동대표로 일하는 노연구자의 참으로 특별한 노동운동 ‘희망가’이다. 일독을 권한다.

    * 이 책은 시판하지 않습니다. 구매를 원하시는 분은 ‘노동의 지평'(070-8220-3130)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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