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대회 부결되면 어떻게 할거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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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9월 01일 11: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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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레디앙>에 글을 쓰는 것이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특별한 사안이 아니면 앞으로도 한동안은 글을 쓰지 않으려 했는데, 오는 일요일의 진보신당 당 대회가 글을 쓰게 만들었네요.

    마음이 착잡합니다. 이 착잡함은 비단 저만의 것은 아니겠지요. 진보신당의 많은 당원과 활동가들이 그런 마음으로 최근 며칠을 보내고 있을 것이며, 또 당 대회 이후 당분간 그런 마음일 것입니다. 다들 당 대회 이후의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당 대회 이후 벌어질 일들

    당 대회 결과에 상관없이 현재의 진보신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겁니다. 진보대통합이 가결되면 말할 것도 없겠지만, 부결되어도 이른바 독자파를 중심으로 사회당 등과 통합하여 녹색사회당 등의 새로운 정당이 되겠지요. 그리고 우리는 또 알고 있는 게 있습니다.

    통합이 가결되면, 강경 독자파로 분류되는 당 활동가들과 당원들은 통합정당에 합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그런 다음에는 사회당에 입당하든지 녹색당 흐름에 합류하든지 사노위에 입회하든지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통합이 부결되면, 통합파로 분류되는 당 활동가들과 당원들은 탈당을 해서 통합정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고, 그러면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중간 흐름이 민주노동당 분당 때처럼 이꼴저꼴 보기 싫다며 탈당해서 통합정당에도 합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현재는 독자파로 분류되지만 민주당을 포함한 통합을 주장하는 흐름과 국민참여당을 염두에 둔 흐름도 탈당 가능성이 높겠지요. 이런 상황을 앞에 두고, 많은 고민이 들고 착잡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씁니다.

    본론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먼저 진보신당의 독자 흐름 동지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리는 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저는 분당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공개적으로 이 글을 통해 진보신당이 진보대통합에 합류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늘어놓습니다. 그 이유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동지들을 혼란스럽게 한 점에 대해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

    등대정당? 세력도 사람도 없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첫째, 한국의 진보정치운동에 적색(노동)과 녹색(생태)을 핵심기치로 걸고 대중과 호흡할 정당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혁명을 꿈꿨다가 고작 노조운동과 정치운동에 전전긍긍하는 처지로 전락해버린 제가 그나마 운동가로서 연명할 수 있는 마음의 보루이기도 합니다.

    저는 진보신당이 그 역할을 하기를 바랐습니다. 한데 진보신당은 그 꿈을 제대로 펼쳐보기도 전에 통합이라는 소용돌이에 휩쓸렸습니다.(저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걸 인정합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분당하면서 참으로 몰상식한 이명박 정부를 만났고 그에 맞서 크게 뭉치라는 압박이 거세게 몰아쳤다는 것, 진보신당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것 등이 이유일 것입니다.

    어쨌든, 진보신당은 외통수에 걸려 있습니다. 당 대회에서 부결되면 상황은 암담합니다. 대중과 여론과 정세로부터 멀어져 잊혀진 정당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동안 당을 지지하고 성원했던 당 바깥의 많은 사람들도 돌아설 겁니다. 더구나 통합 흐름의 당원들이 떠나버리고 독자파 흐름만 남은 당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몇몇 독자파 동지들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등대정당의 길일 겁니다.

    물론 등대정당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껏 사회당이나 녹색당을 하지 않고, 과거에는 민주노동당을 했고, 현재에는 진보신당을 하고 있는 핵심 근거가 무엇입니까. 세상을 바꾸는 것은 깃발만 든다고 되는 게 아니고,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자리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근거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외람된 말이지만, 저는 독자파 일부가 말하는 등대정당을 비관적으로 봅니다. 등대정당을 한다고 했을 때, 그 당사자가 전월세를 줄여가면서 신념 관철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과거 10년의 사회당 동지들이라면 믿겠지만, 진보신당에는 그럴 세력도 사람도 없습니다.

    녹색사회당 꿈을 살리기 위해

    독자파의 상당수 동지들도 제 의견에 수긍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들을 했습니다. 그래도 민주노동당과는 싫다, 내년 총선까지는 국고보조금이 나오니까 버텨보고 안 되면 그 때가서 판단하겠다, 하다가 안 되면 다른 운동을 하겠다, 하다가 안 되면 지역에서 조용히 단체 활동이나 하겠다, 라고 말이지요. 그런 태도들은 스스로들이 밝힌 논리를 모두 부정하는 것이라고 저는 보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녹색사회당의 꿈은 고사되는 것이겠지요.

    녹색사회당의 꿈이 고사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정세와 상황에서 그것은 진보대통합에 합류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통합하는 정당에서 비록 소수가 될지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은 전술적 후퇴가 필요하다고 판단합니다.

    둘째, 독자파 동지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대부분이 문제는 패권주의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또한 다수의 독자파 동지들이 생각하듯, 저도 민주노동당 관련자들의 과거에 대한 몇 마디 사과 발언과 제도로써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패권주의의 문제는 노선과 구도의 문제가 바탕을 깔고 있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 점과 관련해서 다행인 건, 과거 민주노동당을 규정했던 구도에 금이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통합을 하더라도 도로 민주노동당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입니다. 제가 몇 년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고, 또 그렇게 노력했던 지점이기도 합니다.

    민주노동당도 진보신당도 변하고 있는 중

    분당 전의 민주노동당은 이른바 NL진영과 PD진영의 대립구도였습니다. 거기에다 NL진영은 노동운동 국민파와 손을 잡고, PD진영은 노동운동 중앙파와 손을 잡은 구도였습니다.

    그 구도가 깨지고 있고, 이미 일정하게 깨졌습니다. 어떤 진보정치를 만들어가야 하는가를 놓고 지금의 진보신당이 하나가 아니고, 심지어는 독자파도 하나가 아니듯, 민주노동당 자주파도 하나가 아닙니다. 또한 국민파와 자주파의 동맹은 깨졌습니다. 노동운동에서는 국민파든 중앙파든 과거처럼 하나가 아닙니다.

    저는 진보통합 이후에는 새로운 구도의 판짜기가 이루어질 것이라 봅니다. 오늘 이 시각까지 자주파로 불렸든, 평등파로 불렸든, 아니면 중앙파로 불렸든, 국민파로 불렸든 관계없이, 운동논리에 중점을 둔 흐름과 정치논리에 중점을 둔 흐름이 크게 경쟁을 하고, 그 틈바구니에서 민족논리에 중점을 둔 일부 자주파 흐름이 형성될 것이라고 봅니다.

    실제, 한참 전부터 그런 흐름의 맹아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평등파 일각과 자주파 일각이 향후 진보정치의 방향을 놓고 공동의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노동운동에서는 중앙파와 국민파가 민주노총에 대한 공동의 문제의식과 논의를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요 몇 년 전부터 민주노총이나 진보정치를 둘러싸고 중앙파와 국민파로 불렸던 일각에서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지 않습니까.

    통합은 분당 실패 인정하는 것 아니다

    셋째, 이런 말을 합니다. 지금 다시 통합을 하게 되면 분당의 실패를 인정하는 게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진보대통합을 이루어야만 분당의 정당성을 역사에 기록하는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분당 이후, 민주노동당은 북한에 대한 비판 발언도 내놓았습니다. 진정성 여부를 떠나, 과거의 패권주의에 대해서는 성찰 발언들이 있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하면서 1인1표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바로 이것은 지난 시기 민주노동당 분당의 두 요인이었던 북한문제와 패권주의를 민주노동당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진보신당이 이런 상황에서 통합을 하지 않고 그냥 가겠다고 하면, 진보신당은 분열주의세력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그 때부터는 진보정치가 단결하지 못하는 이유를 진보신당이 모두 뒤집어써야 할 겁니다. 그러면 분당에 대한 역사의 평가도 달라지겠지요.

    넷째, 국민참여당 문제입니다. 민주노동당 당권파가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당권파 가운데도 동의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이 문제는 진보신당 독자파 내에도 민주노동당과 통합하느니 차라리 국민참여당과 통합하자는 의견이 있듯이 복잡한 문제입니다.

    한데 그들이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민주노총의 문제입니다. 많은 노동현장 동지들은 지난 노무현 정부가 비정규직을 확산하고 한미FTA를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와 농민 동료들이 죽었다는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유시민 대표의 역할과 발언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조용한 것 같아도 휘발성이 높은 사안입니다.

    국민참여당과 같이 하기 어려워

    만약 국민참여당 통합한 다음에도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을 유지하려 시도한다면,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아수라장이 될 겁니다. 지난 2005년 노사정위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단상점거 같은 최악의 사태가 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민주노총이 그걸 회피하려면, 그것은 배타적 지지 방침을 채택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민주노동당 당권파나 민주노총이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혹자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통합한 뒤에 추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쉽지 않은 추측입니다. 저는 이렇게 예상하고 있습니다. 진보통합정당에서 누군가 국민참여당의 통합을 무리해서 추진하려 한다면, 아마 그것을 결정하는 당 대회는 난리가 날 겁니다. 과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처럼 단상점거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을 겁니다. 아무리 강심장을 가졌다 하더라도 총선을 앞두고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세력이 있을까요.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만약 당 대회에서 부결되고, 통합 흐름이 탈당을 하면,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할까. 이런저런 고민을 했습니다. 그 결론입니다. 저는 경남의 금속 동지들, 특히 거제의 제 오랜 동지들이 있는 곳에 함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가 뭐라던, 그들이 남아 있으면 저도 남아 있을 것이고, 그들이 탈당하면 저도 탈당할 겁니다. 그들이 탈당한 다음에 지역 무소속으로 남는다면 저도 그렇게 할 겁니다.

    부결되면 어떻게 할거냐구요?

    그것은 제가 개인적으로 고맙고도 미안한 거제 김종태 동지에게 빚을 갚아야 되는 바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서대문 지하주점에서 김종태 동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최창식 동지와 진보신당 중앙당의 공태윤 동지 등도 함께였습니다. “누가 내게 왜 탈당했냐고 묻더라. 그래서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사실 민주노동당 분당을 반대했지만, 20년 동지가 분당을 하자고 해서 나왔다. 평생 운동하면서 한 번은 동지를 믿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끝으로 저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진보신당의 최대한 많은 당원이 역량의 큰 손실 없이 함께 가기를 희망합니다. 당 대의원들이 전술적 후퇴를 선택해서, 진보대통합이 가결되기를 희망합니다.

    더 나아가 개인적으로 저는 지난 수년간 함께 동고동락하며 진보정치운동을 도모했던 독자파 동지들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저는 사실, 통합이냐 독자냐 하는 차이를 제외하면, 녹색사회당을 지향한다는 점, 정치논리보다는 운동논리를 중시한다는 점 등에서, 독자파 동지들과 상당한 지점의 맥을 같이 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9월 4일의 당 대회에서 어떤 결론이 나든, 그래서 그 후의 행보가 각자 어떻게 되던, 지금까지처럼 실천현장에서 굳건한 연대의 손을 맞잡을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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