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방의 군사개입 전략 성공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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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29일 08: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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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비아의 카다피가 수도인 트리폴리에서 물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한번 던져봐야 할 질문은, 카다피 체제가 좀 더 ‘민주적인’ 정부로 이행하는 과정이 향후 세계에 미칠 영향이다. 연초부터 터져나온 아랍의 민주화는 9개월여를 경과하고 있는데, 리비아에서 카다피가 몰락한 것은 매우 심대한 분기점을 형성하고 있다.

    포스트 카다피 체제 이행과 세계

    예컨데, 튀니지와 이집트에 이어 리비아 역시 기존 통치자가 몰락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앞선 사례와 리비아가 현격하게 다른 점은 그러한 과정이 내전을 통해서 달성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이 과정에서 제거된 것은 이집트나 튀니지와 달리 단순히 정부 인사 몇몇이 아니라 핵심 권력 기구 전체라는 말이다.

    이집트와 튀니지는 아랍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도 핵심적인 국가기관들은 여전히 살아남았으며, 특히 이집트는 군부가 이러한 체제의 연속성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반면에 리비아에서는 카다피라는 한 인물과 그의 지지자들이 권력 기관 그 자체이다보니-사실 리비아는 헌법조차 없다-이들의 몰락은 자연스레 핵심 국가 권력 자체의 증발로 나타나 초유의 거대한 권력 공백을 낳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리비아에서 향후 펼쳐질 상황은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어렵지 않게 예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승리를 외치는 반카다피 혁명군. 

    현재 카다피 체제를 대신할 것으로 점쳐지는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는 반군들에 대한 통제력을 제대로 행사하지도 못하며, 반군들도 카다피에 반대한다는 단 하나의 목적만 가지고 느슨하게 상호 연결된, 하지만 상호 불신하는 동맹체의 성격을 띄고 있다.

    불신하는 동맹체

    이제 카다피가 사라진 이상, 무엇에 반대한다는 협소한 목적이 아니라,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관한 독자적인 의제를 둘러싸고 리비아 사회에 아로새겨진 부족간, 지역간 상호 경쟁과 갈등이 표면에 부상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더욱 더 악화시키는 것은 내전으로 파괴된 리비아의 경제상황이다. 리비아의 유일한 수입 원천인 석유 생산 복구는 최소 1년이 걸리는 작업-실제로는 10여년 이상-인데, 석유 생산이 지체된다는 것은 내전으로 피폐화된 삶을 감내해야했던 리비아 대중에게 제공해야 할 인센티브가 없다는 말이다. 이는 대중들 사이에서 새로운 리비아 ‘민주정부’에 대한 인내심을 고갈시키면서 불만과 회의를 증가시킬 것이다.

    그나마 이런 재정적 공백을 메꿀 수 있는 대안으로 해외에서 동결된 카다피의 재산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서방 정부들은 애초 공언과는 달리 카다피의 자산 동결 해제과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로의 이전에 대해 상당히 굼뜨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향후 리비아 정부를 구성할 정치세력들의 교체와 변화가 정치적 불안정성 탓에 상당한 등락을 거듭하며 진행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자칫 대량의 자금 지원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일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새로 수립되는 리비아 정부에 대한 일종의 길들이기용으로 동결 자산 문제를 취급하려는 서방 국가들의 속내도 한 몫을 할 것이다. 더군다나 카다피의 해외 자산을 죄다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에 돌려줘야 한다면, 튀니지의 벤 알리나 이집트의 무바라크의 서방 소재 해외 재산 역시 돌려줘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것이다.

    서방국가들의 계산과 노림수

    그렇다고 현재 서방 국가들이 리비아 안정을 위한 대대적인 경제 지원에 나설 형편도 안되는데, 미국이나 유럽이나 자국의 경제 위기로 제 코가 석자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해보겠다고 행여나 중국이 가진 자금의 힘을 이용하는 것은 서방으로서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 리비아의 정치 이행은 민주적인 것은 고사하고 자칫 평화적인 권력 이양조차 가능할지 극히 의심되는 상황이다.

    두 번째로 리비아가 다른 아랍 민주화 시위와 달랐던 점은 역시 서방의 군사적 개입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만약 리비아 ‘민주정부’가 정국을 안정시키는데 실패할 때 뒤따를 폭력과 불안사태는 리비아에 대한 군사작전을 지지하고 승인한 나토와 관련 국가들에게 엄청난 압력이 될 것이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미국 일각에서는 미 지상군 파병은 배제한 채 국제적 차원의 평화유지군으로 리비아의 치안을 돕자는 안도 나오고 있는데, 이 역시 애초의 리비아에 대한 공습에서와 같이 유럽과 아랍국가들에게 주된 부담을 떠넘기는 방식이다.

    그러나, 유럽 각국도 유로존의 경제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서둘러 군사비를 삭감하는 판국에 얼마만큼 실효성 있는 대규모의 지상군이 파병될지는 미지수다. (리비아의 영토 크기를 상기해보라.)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는 미, 영, 프랑스의 특공대의 ‘조언’-실제 조언으로 끝나지도 않았지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했겠지만, 국가 건설과 치안유지에 특공대는 별 쓸모가 없다.

    리비아 상황과 오바마 대통령

    미국 역시 서방의 공습을 지원하면서 보여준 리비아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킬지 미지수다. 우선, 미국 스스로가 군사비를 삭감하려고 하고 있다.

    지난 8월 초, 미국 의회와 행정부가 합의한 재정적자 감축안은 1차로 국방예산을 3500억 달러 줄이고 11월까지 초당적 특별위원회가 지출 삭감 세부 항목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자동적으로 5000억 달러의 국방비를 추가 삭감하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향후 10년간 삭감될 정부지출 2조4000억 달러 중 40% 이상이 국방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카다피의 몰락으로 인해 그동안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리비아에 대해 견지해온 ‘나서지 말고 뒤에서 지지하기’ 정책이 미국 정치계와 군부에서 새롭게 지지를 획득한 점이다. 실제로 카다피가 몰락하기 직전까지도 리비아에 대한 이런 제한적인 미국의 군사적 개입전략은 미국내 좌우 진영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특히 우파쪽에서는 좀 더 적극적인 개입이 없으면 리비아 군사작전이 실패할 것이라고 을러댔던 점에서 이 부문에 대한 정책의 주도권은 신중하고 제한적인 개입을 주장하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쪽으로 무게가 기울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고, 곧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재선 캠페인에 돌입해야 할 입장이고, 주된 이슈는 역시 경제문제가 될 것이다)

       
      ▲승리를 자축하는 반카다피 혁명군과 시민들 

    군사개입 무용론, 전면적 비난 확대 가능성

    덧붙여, 9월 유엔 총회에서의 가장 큰 이슈는 역시 팔레스타인 독립 문제다. 아랍 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이스라엘의 안보가 걸려 있는 사안이란 점에서 미국은 정책 초점을 서둘러 리비아에 비해 훨씬 더 사활적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로 이동해야 할 상황이다.

    이런 여러가지 복합적인 상황 때문에 리비아의 정국 안정을 위한 군대 파견 문제에서부터 이들 군대가 리비아 현지에서 부닥칠 각종 정치적, 군사적 장애에 대한 해결을 놓고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 주도국 간의 한층 더 격렬한 다툼과 책임 전가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서방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리비아를 둘러싼 이러한 분열과 무기력, 상황 악화 논란이 더 나아가 애초의 리비아에 대한 군사 개입 자체에 대한 회의, 무용론과 전면적인 비난으로 확대되는 경우다.

    이럴 경우, 향후 세계 곳곳에서 기존 서방의 패권에 도전하는 다양한 수준의 분쟁이나 갈등 혹은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해 서방은 더더욱 개입폭이 제한될 것이고, 이는 안그래도 재차 세계적 경제위기의 타격을 맞이해야 하는 세계자본주의체제 전체의 불안정과 정치적 유동성을 한층 더 부채질 하는 결과를 빚을 지도 모른다. (이 말을 필자가 서방의 주도권 회복을 바란다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이 점에서 우리는 리비아 사태로 인해 어떤 역사의 한 장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더 어두운 장의 처음을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몇 년 뒤에 세계가 한층 더 엉망진창이 된 것을 보고서는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모든게 다 웬수 같은 리비아에 개입했던 것 때문이야!"

    아랍 지역 넘어 세계적 차원 불안정 높일 수도

    이런 점 때문에 리비아의 상황은 리비아나 아랍 지역 전체를 넘어 뜻밖에도 세계적 차원에서도 불안정과 정치적 유동성을 극대화시키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 카다피의 몰락으로 서방이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73호에 의거해 수행한 ‘인도주의적’ 개입은 날개를 달게 되는 것일까?

    이 점에 대해서도 서방이 마냥 축배만 들 수는 없는 상황일 것 같다. 이미 지난 번 아랍 민주화 시위가 절정이었을 당시 친미 독재자가 집권하고 있던 바레인에서 리비아에 대한 군사 개입 논의가 벌어지자, 바레인 시위대는 자국에 대해서도 군사개입을 요구했다.(물론 서방은 들은 체 만 체했다)

    현재도 예멘 같은 친미국가에서 지속적으로 대중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데, 서방이 연속적으로 친미국가들을 배제한 선택적 군사 개입을 할 경우, 리비아에 대한 개입 때보다 명분과 행동반경이 더 좁아지는 효과를 빚을 수도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애초에 서방이 제시한 리비아에 대한 군사 개입의 목표가 인도주의적 위기 방지였음에도 실제로는 유엔 결의안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은 정권교체로 나타났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이 점은 서방의 군사개입이 유엔 결의안을 위배한 것이냐 아니냐 하는 법리적 논쟁을 넘어서는 문제인데, 결정적으로 향후 서방이 이번 리비아 결의안과 같은 종류의 동의를 유엔으로부터 얻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서방 군사개입 ‘소탐대실’ 될 수도

    어떤 수준의 결의안이든 인도주의적 명분을 걸고 서방이 들고나올 개입안에 대해 서방과 경쟁하는 국가들은 리비아의 전례를 떠올리며 그것이 자신과 관계 맺고 있는 국가들의 정권교체 작전으로 연결되리라고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번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군사개입은, 그들의 장기적 이익이라는 관점에서는 ‘소탐대실’이 될 수도 있다.

    이번 리비아에 대한 군사 개입안에 대해서는 러시아와 중국이 매우 주저하는 태도를 보이다 결국 기권하는 쪽으로 행동했지만, 리비아에 대한 학습효과 때문에 이들 국가들은 서방이 시리아나 이란에 대한 비슷한 결의안을 내놓거나 그 기미만 보여도 이전보다 더 완강하게 반대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이는 비단 이들 국가들만은 아닐 텐데, 국제 진보진영도 서방의 인도주의적 개입에 대해 한층 더 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게 될 수도 있다)

    이미 러시아와 중국은 유엔 인권위원회가 내놓은 시리아에서의 인권 유린에 대한 조사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시리아라는 나라에 대해 리비아보다 더 큰 전략적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데, 특히 러시아는 지중해 지역에서 서방의 영향력을 상쇄시킬 목적으로 시리아의 라타키아 항구를 군항으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군사적, 전략적 가치가 큰 국가에 대해 러시아 같은 국가가 지난 리비아에 대한 결의안에서처럼 서방의 시리아 개입안에 대해 무기력하게 기권만 하고 있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또한 이들 국가들은 시리아에 대한 서방의 개입이 자칫 자신들 국가의 내정에 개입하는 선례로 발전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덧붙여, 리비아에서 자신의 패를 잃어버린 서방의 경쟁국가들은 단지 아랍의 다른 국가들에서 그러한 손실을 만회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영역과 부문-예컨데, 무역, 환율, 세계적 경제 위기 타개책 등-에서 서방과의 경쟁을 가속화시켜 이를 만회하고자 하는 유혹을 느낄 것이다.

    리비아보다 시리아가 중요한 미국

    역설적인 것은 미국에게는 리비아보다 시리아가 훨씬 중요한 지역이라는 점인데, 시리아에 대한 개입은 중, 러의 완강한 반대가 예상된다는 점에서 이들 국가들과 더욱 강력한 충돌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시리아에 대해 서방이 발표한 각종 제제안들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압박이 지지부진하다면,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의 효과가 가져다주는 정치적 효과는 금세 사라지고 또다시 서방의 의지와 결의가 의심받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겠다. 시리아에 대한 서방의 군사적 개입이 말만큼 쉽지 않은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카다피는 그 몰락의 순간에조차 아랍세계에서 전혀 동정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시리아는 미국에게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라크와 레바논, 터키,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시리아에서 불안정은 곧바로 인근 국가들로 그 영향이 퍼지게 되어있다.

    아랍 국가들은 시리아 내에서의 이러한 사태 발전을 매우 두려워 하는 이유이다. 이 때문에 시리아 문제를 둘러싸고는 경쟁하는 인근 국가들간의 이해관계가 이상하리만치 일치하는데, 이는 수니파 아랍 국가들과 이란, 심지어 이스라엘조차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문제는 아사드가 시리아 대중들을 가혹하게 탄압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사드가 시리아의 정국을 안정시키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 때문에 주변 국가들 일부에서는 아사드가 계속 정권에 남아 있는 것이 지역 안보와 세력균형에 반드시 최선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도 있지만, 그를 대체하고자 하는 외부에서의 시도가 오히려 더 최악일 가능성도 아울러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서방 국가 내부 분열 가속화시킬 수도

    더구나 리비아의 상황 전개가 악화되면 될수록 시리아에 대한 서방의 군사적 개입은 그 속도와 강도를 높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결국, 리비아의 향후 사태 전개는 주어진 주객관적인 상황에서 볼 때 지금의 일시적인 승리 분위기와는 달리, 오히려 사태 전개 여하에 따라선 이후 세계적 차원에서 서방의 군사적 개입을 현저하게 곤란에 빠뜨리면서 서방 내부의 분열을 가속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경제 위기에 빠진 서방 각국의 국내 정치위기를 가속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리비아의 향후 전개상황은 서방과 경쟁하는 패권국들간의 긴장을 한층 더 조성하면서 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제적 차원의 문제 해결 노력을 더욱 힘들게 할 가능성도 아울러 염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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