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낙구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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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29일 07: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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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빛났던 민주노총 대변인이었던 사람. 17대 국회에서 심상정의원의 정책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틈틈이’ 연구를 해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 『부동산 계급사회』라는 방대하고 기념비적 저작을 집필한 사람. 실사구시 한 사람, 손낙구.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부산 국제상사 앞에 그가 나타났었다. 구사대가 노동자들에게 쇠로 된 신발 골(금형)을 던지는 등 다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밤 늦은 모임 중에 별 준비도 없이 사람들이 몰려 갔었다.

    우왕좌왕하는 노동자들 앞에 선 그는 차분하게 현재의 상황을 묘사했고, 조직된 노동자들만이 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걸 단호하게 역설했다. 평소에 준비한 사람만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걸 인상적으로 보여주었었다.

    그는 부산노동자협의회 건설에 함께 했고, 이후 김진숙, 정의헌 등과 함께 부노련을 결성해 이른바 ‘선진 노동자 조직운동’에 자신의 젊음을 다 바쳤다. 부산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당시 그는 내내 수배자였다. 공개 석상에 나설 수 없었던 그는 가장 엄혹한 조건에서도 치열하게 노동운동을 밀고 나갔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얼마 전에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정책 보좌관으로 ‘취직’했다. 그도 결혼했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노동단체의 프로젝트를 맡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가려 했을 것이다. 자신의 재능을 진보진영에서 펼쳐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한한 희생을 부양하는 가족에게까지 요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혹자는 그의 취직을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누가 가족을 부양하려는 가장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진보운동에서 끝까지 버티려면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 이런 주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과거 일본의 극좌파 후쿠모토의 낡아빠진 논리 중에 그런 주장도 섞여 있다. 손낙구의 ‘선택’을 보며 오히려 이 최고의 활동가를 부양하지 못하는 진보진영의 ‘도덕주의’적 태도가 후쿠모토에게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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