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국주의 혁명을 포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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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28일 01: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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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서 ‘무상급식 주민 투표’와 같은 수준의 촌극이 연출되는 현재에, 국외에서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계속 이어져 터집니다. 자본주의의 세계적인 공황이 심화되고 미국 달러의 입장이 약화되는 가운데, 세계적인 재벌로 성장(?)하게 된 카다피가(家)는 리비아에서 권력 상실의 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리비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분명히 일면에서 ‘혁명’으로서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나중에 진행이 어떻게 되든간에, 리비아 사태의 뇌관은 특히 지역적, 부족 소속에 따른 차별 등의 여러 불평등이 부채질한 상당수 기층 민중의 누적된 불만이었습니다.

    카다피, 세계 지배자들의 주구

    그러나 혁명으로 시작됐지만, 과연 이 사태가 반군의 정부 기관인 과도국가위원회의 집권과 카다피 가문의 완전한 몰락으로 일단락된다고 해서, 리비아 민중의 상황이 크게 나아지겠습니까? 민중을 위한 사회민주주의 정도 아니더라도, 과연 형식적 민주주의라도 어느 정도 모양 잡힐 것인가요?

    저는 솔직히 회의적 입장입니다. 지금 리비아 상황을 보면 일종의 기시감(旣視感)이 들 정도로, 상황의 전개가 지난 40여 년 동안의 카다피 정권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재현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카다피 정권은 세계 지배자들의 주구(走狗)일뿐이었습니다. 리비아 해군은 아프리카 북안을 돌면서 유럽에 가려는 ‘불법 이민자’들을 단속했는가 하면, 석유 판매로 벌어들이는 정권의 돈은 런던 정치경제대학과 같은 신자유주의의 아성을 지탱하는 데에 마구 들어갔습니다.

    단, 카다피가는 유전의 완전한 사유화와 외국자본에의 완전한 매각을 반대했으니 서방 열강들이 그러한 매각을 할 것 같기도 한 과도국가위원회 측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카다피 정권은 처음부터 그랬나요? 꼭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1969년에 집권한 카다피는 원래 자칭 ‘이슬람 사회주의자’였으며 이집트의 ‘진보적 민족주의자’ 나세르 대통령의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국내에서 외국 자본의 이권을 몰수했는가 하면, 국외에서는 각종 반제 급진 단체들이 리비아로부터 지원을 받았습니다. 

    유럽의 아일랜드 공화국군부터 아시아의 필리핀 공산당의 게릴라 투쟁 부대, 태양주의 마오리족 급진운동이나 호주 원주민의 운동 등 카다피 정권 수혜자의 목록은 1970~80년대 급진 투쟁단체들의 종합 리스트에 가깝습니다.

    1986년에 리비아 정부 특무들의 소행으로 추측되었던 서독에서의 나이트클럽에 대한 공격 이후에는 미 제국이 리비아를 (국제법의 관점에서는 봤을 때에 불법적으로) 폭격까지 하는 등 카다피 정부는 거의 급진적 반제국주의 노선의 ‘대표 주자’로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카다피의 전향

    그런데 1980년대 중반 한 때에 각급 학교에서 영어 교육을 전면 폐지하고 그 대신에 러시아어 교육을 시키겠다는 계획까지 성립하는 등 ‘미제에 맞장뜨는 제3세계 지도자’의 전형에 가까웠던 카다피는, 1990년대에 접어들어 돌연히 전향을 하고 맙니다.

    소련 망국과 동구권 붕괴 이후에 가중된 제국주의의 압력 이외에도 그 전향의 이유들은 충분히 있었습니다. 카다피를 중심으로 하는 그 족벌이 제국주의 진영과 화해하고 국내에서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를 어느 정도 사유화시켜야 그들이 가졌던 행정력을 금전 자본으로 맞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국제적인 ‘큰 손’으로 거듭나기를 원했습니다.

    국제적 정의 대신에 점차 이윤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진 지도층의 친자본적 행각을 막을 만한 노동계급의 조직 등은 리비아에 없었기에 동구권 붕괴와 걸프 전쟁 등 미 제국주의의 새로운 세계패권 확립에 따라 카다피는 비교적으로 손쉽게 친미파로 전향하여 1994년경부터 제국주의와의 화해 공작에 들어갑니다.

    대량 살상무기 제조 프로그램을 완전 공개하고 폐기한 그의 2003년 결정을, 미국 협상가들은 그 뒤에 오랫동안 북조선 상대자들에게 들이밀면서 똑같이 하라고 마구 압력을 놓을 정도로, ‘새로워진’ 카다피는 서방 측이 좋아할 만한 ‘모범생’으로 거듭났습니다.

    결국 혁명가에서 국제 재벌가로의 그의 변신은 바로 그 정권의 주된 패인이 된 것이었습니다. 해외에서 초호화 부동산을 사재기한 카다피가의 ‘큰 손’ 행각은 차별 받는 리비아 동부 지역 주민들의 분노를 부추기고 반(反)카다피 투쟁의 선두에 선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의 명분을 공고화했을 뿐입니다.

    민중과 세계 자본에게 외면당해

    그러나 동시에 리비아의 유전들을 전부 사유화하여 해외 매각하려 하지 않았던 카다피에 대해서는 구미 지배자들도 끝까지 지지만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국 민중의 지지를 잃었으면서도 세계 자본과의 완전한 결탁에 실패한 카다피는, 결국 그 양쪽으로부터 외면을 당해 ‘팽’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카다피가 패망하고 있다고 해서 리비아 민중의 열망들은 과연 다 충족될 것인가요? 글쎄, 지금 상황의 전개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그렇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카다피가 전향하는 데에 20여 년 걸렸지만, 그 반대편에 서는 과도국가위원회는 이미 지금부터 국제자본의 주구 노릇을 자청하고, 민중에 대한 권위주의적 통치를 계속하려는 듯한 인상입니다.

    나토의 폭격 덕분에 비교적으로 손쉽게 카다피 군대의 저항을 꺾을 수 있었던 과도국가위원회의 ‘지도자’라고 할 마무드 지브릴이라고 하는 자는 미국에서 정치학 교수와 ‘아랍 지도자를 위한 훈련’의 전문가로 활동했으며, 몇개월 전까지만 해도 카다피 정부의 각료로서 바로 신자유주의적 사유화 정책을 열성적으로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그 누구에게 의해서도 선출되지 않은 과도국가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카다피 정부 안에서 사유화 등 친서방 정책을 주도했다가 망해가는 카다피를 떠난 자(알 이싸위 등)나 해외학계 등에서 친자본적 학술 활동을 해온 자(워싱턴주립대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학을 가르쳐온 ‘석유 장관’ 알다르쿠니 등) 등은 당장 눈에 띕니다.

    지금 이들 과도국가위원회 위원들에게 영국이나 터키측에서 카다피 정권의 경찰 조직 등을 그대로 유지시켜 이용하라고 적극 권고하고 있는데, 영국 등 나토의 주요 국가에 계속 신세를 지고 있는 저들이 이와 같은 방침을 채택하여 카다피 국가의 권위주의적 골간을 어느 정도 유지할 가능성은 농후합니다. 그래야 이들이 원하고 있는 작업, 즉 해외 자본의 무분별한 유치와 국가 자산의 해외 매각 등을 문제 없이 잘 진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군 지도부, 서방 열강과 결탁

    카다피의 전향은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졌지만, 그를 추방하고 있는 민중 운동을 전유하려는 반군 지도부의 요인들 같으면 굳이 전향할 이유도 없을 정도로 이미 국제자본, 서방 열강과 결탁돼 있는 상태입니다. 이 비극의 근본 원인은, 리비아에서 노동계급이 너무나 취약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숙련공이나 지식노동자, 전문가의 다수는 참정할 수 없는 외국인들이고, 정치 참여가 가능한 리비아인들은 대개 자영업이나 국가관료직, 전통 목축업 등에 종사합니다. 그들에게는 근대적인 계급의식이 거의 없다시피하여, 정부는 그 어떤 반동적인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펴도 이를 체계적으로 비판하고 저지할 만한 힘을 갖지 못합니다.

    석유 소득 수준에 비해 상당수 민중의 생활 수준이 높지 못하다는 사실이나 차별 등에 대한 불만은 많아도 이 불만이 계급적으로 인식화되고 조직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반제국주의적 성향의 지도자가 설령 권력을 장악한다 해도 그 지도자가 끝에 가서 그 권력을 자본화시켜 자신을 재벌로 탈바꿈시키는 것을 리비아 민중은 안타깝게도 막을 수 없는 것이죠.

    반제국주의 그 자체를 당연히 수긍해야 하고 적극 옹호해야 합니다.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이나 아프리카의 각종 사회주의적 경향의 신생 정부들을 적극 지원한 1970~80년대의 북조선 같으면, 그러한 차원에서는 분명히 ‘진보적 국가’로서의 면모를 지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 이는 북조선의 경우에도 해당되지만 – 계급적 내용이 충분치 못한 반제국주의는 결국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제국주의를 이기자면 제국주의 국가들의 민중들까지 포함해서 제국주의의 모든 피해자들과 계급적으로 연대해야 하는데, 카다피도 북조선의 지도자들도 안타깝게도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반제국주의는 국가 대 국가 대립의 성격을 띠게 됐는데, 그러한 대립에서는 비교적으로 약한 제3세계 국가는 이기기가 힘듭니다. 국가 대 국가 대립이 아닌, 국제적인 계급 대 계급의 대립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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