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3일 '평화의 비행기'가 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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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27일 06: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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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군기지 문제로 4년 넘게 몸살을 앓고 있는 강정(江汀) 마을은 지명에도 나타나 듯 물이 풍부한 마을이다. 이 마을 동쪽에 있는 강정천과 악근천에는 사철 맑은 물이 흐르고, 마을 구석구석에 작은 샘들이 분포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 마을 주변 해안은 풍부한 식생과 뛰어난 경관을 간직하고 있다. 마을 앞에 있는 범섬 주변에는 천연기념물인 연산호의 군락지가 있고, 분홍맨드라미 등 멸종위기 생물들이 서식한다. 그런 이유들로 유네스코는 이 일대를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환경부는 이 마을을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지정하였다.

    그런데 이런 청정 환경 때문에 이 마을은 오래도록 유원지구와 상수원 보호지구로 묶여 있었다. 주민들은 재산권 행사에 상당한 제약을 받긴 했지만, 이런 제약으로 인해 마을은 제주의 옛 풍광을 오래도록 간직해왔다.

       
      ▲해군기지 반대 운동(사진=장태욱) 

    엉터리 마을 주민 임시총회

    반경 10킬로미터 이내에서 시간 차이를 두고 중문 관광단지와 서귀포 신시가지가 조성되면서 개발 광풍과 함께 돈다발이 쏟아질 때도, 강정마을은 시간이 멈춰버린 듯 조용했다. 마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전쟁의 와중에서도 전쟁이 뭔지 모르는 동막골의 경우처럼.

    주민들 대부분은 천혜의 터전 위에서 백합, 토마토, 딸기, 귤, 한라봉 등 원예작물들을 재배하며 열심히 살았다. 농민들의 삶이 고단하기는 어디든 마찬가지이지만, 강정마을에서 재배된 백합은 일본에서도 그 품질을 인정받아 외화벌이에 기여했고, 이 마을 귤도 제주 최고의 것으로 쳐준다.

    그런데 2007년 4월이 되면서 이 조용한 마을이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해군기지 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당시 마을 회장이었던 윤모씨가 4월 25일에 1200명의 주민들 가운데 80여명을 모아놓고 임시총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해군기지 유치 서명’을 받은 후 제주도청에 ‘해군기지 유치 청원서’를 제출하면서 논란은 시작되었다.

    당시 주민 대부분은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문제가 논의되는지조차 몰랐으며, 도청 기자회견 과정에서는 80여명이 150명으로 부풀려 발표되기까지 했으니 주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었다고는 인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뒤이어 제주도청은 해군기지 부지를 여론조사로 결정하겠다고 발표하였고, 그해 5월 14일에는 김태환 제주지사가 "화순, 위미, 강정 중에 여론조사 결과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예정지로 결정되었다"고 발표했다. 강정마을에서 주민 소수가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문제를 처음으로 논의한 지 불과 한 달도 안 되어 마을이 해군기지 부지로 확정되었으니 주민들은 맑은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되어버렸다.

       
      ▲해군기지 건설 반대 집회(사진=장태욱) 

    수상한 여론조사

    당시 김태환 제주지사는 도민과 해당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고 하지만, 필자가 조사해본 바로는 강정마을 주민들 중 여론조사 전화를 받은 이들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여론조사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어 제주도의회에서 제주도청과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에게 원자료 제출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도청과 갤럽은 자료제출을 거부하였다. 여론조사의 신뢰성 문제는 지금까지도 미궁에 빠져있다.

    그리고 그해 6월 19일에 해군기지 건설 찬반에 대한 전체 주민들의 의견을 확실히 묻기 위해 주민 투표를 실시하기로 하였지만, 해군기지 유치를 희망하는 해녀들이 기표소를 부수고 투표함을 탈취하는 바람에 투표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마을 해안이 해군기지 부지로 결정되는 과정이 이렇듯 비민주적이었는데도 해군과 제주도청과 보수언론은 이후에도 “해군기지 사업 과정에서 강정마을 주민의 총의와 도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으며, “절차상의 문제가 없다”고 한목소리를 내었다.

    그해 8월, 주민들은 임시총회에서 도청에 해군기지 유치 청원서를 제출했던 윤모 마을회장을 해임하여 새로운 마을회장을 선출하였고, 해군기지 찬반 투표를 개최하여 전체 유권자의 80%가 ‘해군기지 반대’를 마을의 공식적 의견으로 확정하였다.

    하지만 난관이 줄을 이었다. 마치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깊이 몸을 빨아 당기는 늪처럼, 현실은 발버둥 치는 주민들을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주민들은 차량 순회와 도보 행진으로 제주도 전역을 돌며 해군기지 입지 선정의 부당함을 알렸다. 그리고 농성과 기자회견도 여러 차례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주민들에겐 경찰에서 보낸 출두요구서나 벌금과 같은 제도화된 폭력이 가해질 뿐이었다.

    주민들은 김태환 제주지사의 독선적인 횡포에 맞서 2009년 여름에 제주지사 주민소환운동에 나서보기도 했지만, 주민투표는 관료와 지역 토호들의 유착에 의해 형성된 검은 힘을 극복하지 못하고 11%의 투표율을 기록하며 쓸쓸하게 막을 내렸다.

       
      ▲해군기지 공사 중(사진=장태욱) 

    부실 덩어리 환경영향 평가

    하지만 그 이후에도 해군기지 추진을 중지해야 할 여러 차례의 계기가 있었다. 환경영향 평가와 주민들이 제기한 행정소송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9년 가을, 해군이 제출한 환경영향 평가서에 대해 심의가 예정된 상황에서 강정마을 해안에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된 붉은발말똥게가 서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해군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엔 붉은발말똥게가 언급조차 안 되는 등 환경영향평가서가 부실 덩어리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제주도 환경영향 평가심의위원회는 9월 26일(토) 오후 6시를 기해 환경영향 평가서 보안에 대해 심의를 하고, 날치기로 동의처리하였다. 주민들은 휴일인 토요일 저녁을 기해 ‘쿠데타 심의’로 기지 건설을 도와준 심의위원들을 규탄하며 도청 앞에서 울부짖었지만, 책임 있는 그 누구도 주민들의 절규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리고 2010년 12월 15일에 제주지방법원에서는 해군기지 건설에 있어 분수령이 될 중요한 재판이 열렸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그해 초에 제기한 ‘절대보전지역 변경(해제) 처분 효력정지 및 무효 확인 등에 관한 소송’에 대해 판결이 내려지는 재판이었다.

    강정마을 해안은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데다, 경관보존지구 1등급으로 지정된 곳이다. 김태환 지사 재임 시절인 2009년 제주도는 해군기지 예정지를 절대보전지역에서 해제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강정마을 주민들은 "이 조치가 경관보전지구 1등급 지역을 절대보전지역에서 해제할 수 없다고 명시한 특별법과 조례를 위반하였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제주지방법원은 "원고 자격이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주민들이 문제 삼았던 제주도의 행정행위 절차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사실상 판단을 회피했다. 주민들은 분노했고 곧바로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지만 항소심에서도 재판부는 비슷한 판결을 내렸다.

    다시 타오른 연대의 불꽃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2010년의 성탄절 연휴가 끝난 12월 27(월)에 해군기지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날 해군기지 예정지에서는 천주교 사제들과 개신교 목사들을 포함한 종교인들과 범대위 소속 회원 30여명이 공사 반대를 외치다 전·의경들에 의해 무더기로 체포되었다. 이들이 경찰서로 연행된 사이에 레미콘과 중장비들이 무더기로 공사현장으로 몰려 들어가는 과정을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쳐다만 봐야했다.

    강정마을에 들어설 해군기지를 주민의 힘으로 막을 도리는 더 이상 없어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강정마을 주민들의 딱한 처지가 알려져서인지, ‘생명평화 결사를 비롯한 순례단’이 2011년 3월 1일 제주를 찾았다.

    그 뒤를 이어 세계 분쟁지역을 다니며 평화봉사활동을 펼치는 ‘개척자들’과 통일운동 단체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마을에 들어왔다. 그리고 강정마을을 사랑하는 조직인 ‘강정당’이 인터넷을 통해 결성되었다. 절망에 빠졌던 마을에 활기가 되살아났다.

    이런 가운데 전 한국 영화평론가 협회장을 역임한 양윤모씨, 개척자들 소속 송강호씨, 평화운동가 최성희씨, 마을 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권일씨 등이 주도하여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이들은 해군기지 공사가 불법임을 주장하며 굴삭기 밑에 드러누웠고, 공사 업체와 해군 측에서는 이들의 행위가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며 경찰에 고발하였다. 결국 이들은 차례로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들의 투쟁이 강정마을의 상황에 전국에 알려졌고, 많은 이들이 마을을 방문했다. 5월에는 국회 야5당이 국회진상조사단을 구성하여 해군기지와 관련하여 진상조사를 벌였다.

    종북 좌파세력이라고?

    그런 와중에도 주민들은 해군, 경찰, 보수적인 언론들을 상대로 끊임없는 전쟁을 벌여야 했다. 7월 20일 조선일보는 강정마을에 ‘종북좌파세력’이 해방구를 만들었다고 주장했고, 비슷한 시기에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은 "공사를 저지하고 있는 세력들은 김정일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종북 세력이 대부분"이라며 색깔론을 제기했다.

    경찰은 지난 8월 14일에는 시위 진압장비를 앞세워 육지에서 대규모 병력을 제주도에 배치했고, 16일 새벽에는 경찰이 강정마을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여 농성중인 주민들을 강제로 끌어내려고 계획했지만, 천주교인들과 국내외 평화 운동가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시민들이 몰려들면서 위태롭던 새벽의 상황은 넘길 수 있었다.

    다시, 8월 24일에는 경찰은 사복 체포조를 투입하여 강동균 마을회장과 4명의 주민을 체포하려했고, 이 과정에서 항의하는 주민들과 7시간 동안 대치하기도 했다. 서귀포 경찰서장이 마을회장을 당일 자정 이내로 석방하겠다고 약속하여 마을회장이 경찰서로 출두했지만, 마을회장을 비롯한 세 명은 모두 구속되고 말았다. 그리고 조연호 경찰청장은 강정마을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을 문제 삼아 서귀포경찰서 송모 서장을 직위해제했다.

    이 사안을 때를 만난 보수 언론들은 ‘공권력 유린’ 운운하며 주민들과 평화 운동가들을 비난하였다. 그리고 26일에는 검찰청, 국정원, 기무사령부, 경찰청 관계자들은 공안대책협의회라는 것을 열고, "국책사업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지난 4년 4개월 동안 강정마을 주민들은 정말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삶을 살아왔다. 수도 없이 경찰서에 끌려갔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벌금도 냈고, 구속도 당했다. 국방부, 환경부, 법원, 제주도청 중 하나의 기관만이라도 바로 섰다면 치르지 않아도 될 비용을 주민들이 치른 것이다.

    사회적 지지, 관심 필요할 때

    국방부, 검찰, 경찰, 조중동이 한 통속이 되어 가해오는 공세로 500년 평화롭던 마을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내몰렸다. 그래서 마을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지지와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서 오는 9월 3일 12시에 김포에서 제주로 ‘평화의 비행기’가 뜬다는 소속은 주민들에게 가뭄 뒤의 단비와도 같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어느 병사가 마을을 지키기 위한 전투에 들어가면서 했던 "우리도 연합군이 아닙니까"라는 말이 기억에 되살아나는 대목이다.

    강정마을 주민들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 마지막 남은 유토피아 ‘동막골’을 지키기 일어섰던 영화 속 ‘연합군’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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