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력 얻는 대신 진보정치 버릴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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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25일 10: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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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2일자 동아일보에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의 인터뷰가 실렸다. 동아일보는 “손학규-문재인식 야권통합 수용 못해, 의석 몇 개 주고 진보정당 죽이겠다는 것”이라고 제목을 뽑았다. 내용이야 별 게 없지만, 동아일보는 민주당이 최근 천명한 야권통합 김 빼기로 인터뷰를 활용했다. 그렇다면 이정희 대표의 인터뷰 목적은 뭐였을까? 딱히 짚이진 않지만 인터뷰는 그 자체로 묘한 불길함을 안긴다.

    불길한 동아일보 인터뷰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지난 2007년 12월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당시 그는 ‘종북’이라는 낙인찍기와 보수언론 군불 때기로 민주노동당 분당을 채찍질했다. 물론, 조승수 대표의 인터뷰와 이정희 대표의 인터뷰는 다르다. 어쩌면 의도만큼은 두 사람이 정반대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은 쪼개기로 한 사람은 합치기로. 그러나 나는 왜 이정희 대표가 불안할까.

    동아일보 보도 다음날인 23일, 경향신문에도 이정희대표의 인터뷰가 실릴 만큼 이정희 대표는 최근 야권 내에서 주목받는 정치인 중 하나다. 주목받는다는 것은 정치적 지분을 점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는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쯤 되겠다.

    그 다리가 진보신당으로 향하기도 하지만, 최근 더 확고해진 방향은 국민참여당이다. 그는 이 다리가 놓아지면 통합의 시대가 열리고, 이로써 집권의 시대가 열린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 그 다리는 건너서는 안 될 작별의 다리로 느껴지기도 한다. 한 작가는 말했다.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이별’이라면 스스로 힘껏 갈라서는 것이 ‘작별’이라고.

    참여당과 유시민은 진보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중산층을 지지기반으로 하며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겠다고 한다. 진보자유주의란 극단적 시장(자본)주의가 아닌 자본과 노동의 자유를 대등하게 설정한 개혁적 자본주의일 것이다.

    또 중산층이 본래 그렇지만, 참여당의 지지기반 또한 계급성이 뚜렷하지 않다. 오히려 뚜렷한 계급성을 ‘진보의 진입장벽’이라며 부담으로 여긴다. 이는 노동계급의 대중성에 기반한 민주노총과 확연한 차이를 가진다.

    민주정부 10년, 우리에겐 춘삼월 아니었다

    그렇기에 민주정부라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이 민주노총에겐 꽃피는 춘삼월은 아니었다. 당시 민주노총은 귀족노조로 낙인찍혀가며 비정규직 양산을 목도해야 했다. 그런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에 긴박돼있고 최근 민주노동당과 참여당의 관계진전을 보자면, 향후 민주노총과 참여당의 역사적 관계도 변할지 모르겠다.

    그 배경에서 작동하는 논리나 감성은 현실론이자 불가피론이 아닐까 싶다. 자본의 이익을 현실로 인정했을 때, 온갖 불가피성이 나온다. 비정규직도 그런 불가피성의 산물이다. 그 불가피론이 진보정치통합 국면에서도 작동한다.

    이정희 대표는 야금야금 분위기를 조성하더니 이제 대놓고 참여당과의 통합은 불가피하다고 한다. 판을 깰 생각이 아니라면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여당과 진보양당, 그리고 민주노총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난감하다.

    있다면 오직 하나 권력의지다. 유시민과 이정희 양 대표는 반이명박정서에 힘입어 자신에 찬 권력의지를 공유한다. 참여당을 포함한 진보대통합이 달성되면 총선에서 교섭단체를 이룩하고 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집권하겠다는 것이다.

    집권이라니, 역시 꿈은 이뤄지는가. 마침내 새세상이 열리고 진보의 가치가 상식으로 등극하는가. 아… 집권이라니. 그런데, 아니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노동자에겐 뭐가 달라지는가. 복지사회? 어떻게 장담할 것인가. 시장권력, 그 막강한 현실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노동계급이 있다고? 그러나 어찌하는가. 노동계급 조직률은 고작 10%에 지나지 않고, 참여당 문제로 민주노총마저 분열된다면? 그래도 불가피하게 권력은 잡고 봐야하는가? 권력은 그렇게 오는 것인가. 너무 성급하다.

    진보를 튼튼히 쌓는 게 먼저

    우선 진보를 튼튼히 쌓고 민주노총 등 노동계급의 조직화와 대중적 역량강화를 통해, 집권은 그렇게 견실하게 오는 것 아닌가. 그것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이며 그래야 진보의 새세상이 열리는 것 아닌가. 새세상이 어디 노동과 일상의 변화 없이, 반이명박 기치의 선거정치만으로 이룩되는 것인가.

    유시민 대표가 개혁당을 통한 선거정치로 열린우리당 참여정부를 창출했듯, 권력화 재주는 유별난지 모르겠다. 그 힘은 바로 권력의지였다. 그 권력의지에 이정희 대표가 사로잡혀 있다. 참여당? 좋다. 그러나 서둘지 말자. 진부하지만 소탐대실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다. 나는 권력을 얻는 대신 노동자의 진보정치를 잃고 싶진 않다. 그 권력은 명예롭겠지만 변혁은 허약하다. 민주노총의 노선은 변혁적 노동운동이다.

    * 이 글은 금속노조 인터넷 기관지 금속노동자(www.ilabor.org)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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