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도 우리에게는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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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24일 09: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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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식비에 관해, 가장 큰 기억으로 남는 건 지금 생각해 보면 중3 때 담임 선생님의 발언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흘렸지만 고등학교가 싫어서 때려치고 나온 후 청소년 인권에 관한 고민을 하게 된 지금 생각하면 좀 많이 충격적인 말이었다. 학기 초에 가정환경 조사서를 걷어가면서 담임이 가볍게 말했다. “다 확인하기 귀찮은데 급식 지원 희망하는 사람 없지?”

    가정환경 조사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귀찮으니 지금 말하라는 소리였다. 당연히 아무도 손을 들지도,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다들 종례가 끝나기 무섭게 교실을 빠져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끔찍하다. 분명 그 자리에 급식비를 지원받아야 하는 학생은 존재했을 것이다. 어떤 기분이었을까.

    무상급식에 관한 주민투표로 이슈가 절정에 다다른 지금, 다시 그 기억이 떠오른다. 어디를 봐도 무상급식에 관한 이야기로 넘쳐난다. 매일매일 전단이 돌고, 일인시위를 하고, 플래카드가 늘어간다. ‘부자아이, 가난한 아이 편 가르는 나쁜투표 거부하자’는 이야기, ‘무상급식은 세금폭탄’이라는 이야기… 오세훈이 시장직을 걸자 ‘투표장에 안 가면 시장이 바뀝니다.’ 같은 현수막이 추가되고,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참여하는 건 구국운동’이라는 문구까지 등장했다. 진보와 보수의 그야말로 ‘총력전’. 총알만 없을 뿐이다. 하하하. 나는 웃었다.

    무상급식은 먹여주는 밥이 아니다

    내 입장에선 무상급식은 찬성, 찬성, 대찬성이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복지를 확대하는 것, 학생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하는 것, 생활을 위해서 개인이 투자해야 하는 것들이 점점 적어지고 사회에서 보장해 주는 것. 그런 건 모두 찬성이다.

    내가 바라는 건 완전한 (나라에서 학용품을 비롯한 모든 교육과정에 필요한 지원을 해 주는)무상교육이지만, 무상급식에 대해 찬/반만 말하라고 하면 찬성이다. 무상급식은 청소년이 부모의 자금력에서 벗어나서 누리는 사회 보장이기 때문이다.

    부잣집 아이, 가난한 집 아이는 있지만 부자인 아이와 가난한 아이는 없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의 경제적 권리나 수준은 모두 부모에게 달려 있다. 하지만 무상급식은 ‘어떤 집 아이’가 아니라 ‘학생’이면 누릴 수 있다. ‘보편적’이라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모든 복지가 그래야 하듯 무상급식은 누군가 먹여주는 밥이 아니라 학생들이 의무교육 과정에 있는 학생이기에 당연히 먹을 권리가 있는 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하자느니 말자느니 싸우는 꼬라지가 참 어이가 없어서 웃고, 정신없이 싸우는 양측 다 무상급식을 아이들에게 ‘먹여주자’, ‘말자’ 하고 있으니 씁쓸해서 웃는다.

    아무도 우리에게 묻지 않는다

    결국 밥을 먹는 건 학생들이다. 그런데 아무도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는 묻지 않는다. 어차피 투표를 할 수도, 투표를 거부할 수도 없는 학생들은 아웃 오브 안중이다. 그저 ‘우리아이들에게 밥은 공짜로 먹여야 하지 않겠나..’는 말을 할 때, ‘빈부 격차에 상처를 받을 우리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할 때, 해맑은 눈망울과 순수한 모습을 한 가엾은 이미지로 등장할 뿐이다.

    학생들이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지든지, 어떤 말을 하고 싶든지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고, 말 할 수 있다고 해도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어떤 권리도 없다. 이번 투표에서 지면 시장직을 내놓겠다며 질질 짜는 어떤 이는 찌질하고 멍청해 보이고, ‘나쁜 투표 거부하자’는 구호는 투표권도 없는 청소년들에게는 어이없을 따름이니, 헛헛하게 웃을 밖에.

    “무상급식에 보수, 진보가 어디있냐, 아이들 먹을 밥 가지고 정치하지 말고 나라에서 밥값은 대야 하는 게 당연하다.”라는 주장이 사람들한테 꽤나 ‘먹혔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웃기게도 이 발언 역시 정치적이다. 그게 당연하다. 무상급식, 말 그대로 이 ‘밥그릇 싸움’은 단순하지만 가장 명확하게 ‘정치의 영역’이다. 동냥은 정치적이지 않지만 권리를 찾는 것은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는 청소년들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정당한 자기 밥그릇 찾는 것도 자기 손으로 못하는 무력한 존재로 만든다. 어른들은 이걸로 실컷 정치를 하면서 그렇게 위한다는 학생들을 적선을 바라는 불쌍한 사람으로 만든다.

    진보가 정말 학생들을 생각해서 무상급식을 원한다면 “아이들 편가르는 나쁜 투표 거부합시다.” 가 아니라 “학생들은 찍을 권리도 없는 나쁜 투표 거부하자.”라고 했어야 한다. 학생들에게는 공짜 밥보다 공짜 밥 내놓으라고 외칠 권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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