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여당 문제 해결되면 만사 OK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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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24일 08: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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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승수 대표는 8월 22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민참여당 합류에 대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9월 내 통합정당 창당대회를 열자고 제안했다.(일명 국참당 패스 통합론) 조승수 대표가 이런 제안을 하게 된 것은 통합정당 창당대회가 9월 내 열릴 경우 국민참여당 참여 문제는 사실상 물 건너 가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꼼수로는 안 된다

    비단 조승수 대표만이 아니다. 노회찬, 심상정 상임고문 등을 포함하여 통합파의 상당수 인사들은 진보신당과 민노당 간 통합이 기정사실화 되었을 경우에는 국민참여당이 사실상 배제되기 때문에 괜히 국민참여당 문제에 대한 협의를 하기보다는 묻지 말고 통합하는게 실질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통합파들은 자유주의 세력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진보신당 내 독자파와 통합파의 공동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그 공동행동이 도로민노당에 귀속되기에 문제지만.

    사실 이러한 논리는 협상을 진행하는 상대를 얕은 수로 속이고자 하는 것으로서 협상 상대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속아 넘어갈 상대도 없다. 꼼수는 꼼수를 불러온다. 꼼수공방은 누가 보더라도 낯 뜨거운 짓에 불과하다.

    조승수 대표, 심상정, 노회찬 상임고문의 이러한 논리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5.31 합의문과 부속합의문2를 비롯해, 연석회의 상에서 이루어진 그 어떤 합의도 당 내에서 승인되지 않은 상황, 즉 통합을 할지 안할지에 대해 당내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대표가 ‘통합 전당대회’를 합의하자고 하는 것은 당내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둘째, 조승수 대표를 포함한 통합파들의 주장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목매달고 있는 민노당과의 통합에 목매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거야말로 뭔가 앞뒤가 바뀌고 선후가 바뀐 것이 아닌가?

    참여당 문제의 핵심은 민주연립정부 노선

    애초 국민참여당 문제가 핵심 쟁점이 아니었다. 이를 핵심 쟁점으로 만든 것은 민노당이다. 그 이유는 국민참여당 문제가 민주연립정부 노선의 핵심고리이기 때문이다. 통합파들도 잘 알다시피 핵심이 아니었던 문제를 핵심으로 만들어 독자파들을 설득하려는 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국민참여당 참여 배제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면, 민노당에게 “우리는 못하겠으니, 하고 싶으면 너희끼리 해라”고 선언하면 그만이다.

    셋째 우리가 국민참여당의 통합에 반대하는 이유는 국민참여당의 참여로 인해 통합진보정당의 정체성이 훼손되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이와 함께 국민참여당의 참여가 소위 민주연립정부 노선의 지렛대이기 때문이다. 즉 국민참여당이 진보정당이 아니라는 것과 함께 진보정당은 민주연립정부 노선과는 분리정립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쩌면 진보신당 통합파가 주장한 것처럼 창당대회 이후 국민참여당 참여 여부를 논의한다면 물리적으로 국민참여당 참여 문제는 물 건너 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주연립정부 문제는 2012년 12월까지 언제나 좀비처럼 되살아 날 것이다.

    어차피 국민참여당이 통합진보정당에 참여하든 말든, 또는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 서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대한 찬반견해를 밝히든 안밝히든 통합진보정당은 이 문제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 굳이 묻지 않고, 보지 않고, 생략한다고 해서 생략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핵심은 이것이다.

    만약 친노세력의 다수가 문재인 변호사 중심 또는 민주당 중심으로 묶이게 되고, 국민참여당 내부에서도 유시민 노선과는 다른 또다른 그림이 대두된다면 현실적으로 국민참여당 통합 문제는 오히려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보류하거나 폐기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양당 통합의 걸림돌이었던 국민참여당 문제는 소멸되고 통합은 자연스럽게 굴러갈 수 있는 것인가? 아니다. 천만의 말씀이다. 여전히 국민참여당 대신 문재인 후보론 또는 버전 2.0이 등장해 민주연립정부의 새로운 고리로 작용할 것이다. 결국 국민참여당에 대해 반대할 뿐만 아니라 국민참여당을 지렛대로 한 연립정부 노선에 반대하느냐가 핵심이다. 이 문제를 경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당의 미래를 숫자놀음에 맡기지 말라

    넷째, 당의 미래 정체성과 정치적 운명을 숫자놀음에 얽매이게 해서는 안 된다. 당내 토론회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 통합파 인사들이 밝히고 있는 국민참여당 참여 불가의 현실적 근거는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이 일단락(창당대회) 되었을 때 일명 ‘부속합의문 2’에 근거할 경우 국민참여당 통합은 물건너간다는 것이다.

    통합정당의 과도기 대의기구 구성을 1(진보신당) : 1(민노당) : 1(새로운 참여세력)로 구성하기로 했기 때문에 국민참여당의 통합정당 참여를 위해서는 2/3가 찬성을 해야 하는데 통합정당 내에서 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2년 대선 당일까지 수많은 논리와 압박, 돌출변수들은 끊임없이 생길 것이다. 즉, 통합파들의 가정은 가정일 뿐이다. 오히려 이렇게 안일하게 상황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더 큰 문제이며, 독자파를 설득할 수 없는 이유이다.

    국민참여당 합류 문제는 새로운 버전들을 통해 등장할 것이다. 버전 1.0이 안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통합파의 가정과는 달리 민주연립정부 버전 2.0 또는 3.0이 등장하고, 새로운 참여세력 내부와 진보신당 내부 분화 등이 가속화될 경우 통합파의 가정은 장담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이다.

    통합파들은 “안심해. 2/3 절대 못넘겨”라며 ‘고정된 세력균형’인 것처럼 설득하면서도, 또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해 하는 당원들에게 “정치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진정 참여당을 막고 싶으면 들어와서 막으라”고 한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운동의 미래도, 당의 미래도, 진보운동의 가능성도 사상되고 말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혁신도 비전도 없는 통합 논의

    다섯째, 국민참여당이라는 걸림돌이 해소된다 하더라도 애초 도로민노당에 대한 문제의식은 남는다. 현재 통합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어떤 노선 혁신도, 미래 비전도 없다는 점이다. 바로 우리가 비판해 마지 않았던 민주노총당, 정규직의 당, 노동자들이 돈대고 몸 대주는 정당, 노동자들을 대상화하는 정당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가능성은 없지만) 민주노총의 10만 당원모집 주장은 바로 거기로 돌아가겠다는 퇴행적 의지의 표현일 뿐이다.

    분당 전으로 돌아가 총선과 대선의 표와 의석수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오직 원내교섭단체 구성 – 운동의 위기 극복이라는 단순 구도와 장밋빛 환상만 있을 뿐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15년 동안 지속된 운동의 침체와 위기, 하강국면이 아래로부터 일어나는 투쟁도 아니고 상층부 몇몇의 타협을 통해 엄청난 성과를 낼 것처럼 말하는 것 자체가 현재의 통합이 얼마나 준비되지 않은 통합논의인지를 반증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상구 동지가 말하는 ‘민중의 집’ 건설 계획이나 생협운동 몰두 제안이 통합 논쟁 과정에서 울림이 적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물론 사람들이 공명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현재의 논쟁지형 문제 때문일 것이다. 공감하는 사람들은 주위에 많다)

    국민참여당 문제가 오랫동안 불거지면서 마치 이 문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으면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이는 착시효과에 불과하다.

    추가로 국민참여당 참여를 둘러싼 논쟁과 연결되면서도 독자적 중요성을 가지는 문제에 대해 논의를 이어나가고 싶다. 바로 노동정치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이는 앞에서 비판한 통합파들 뿐만 아니라 더 넓은 대상을 상정하고 있다.

    노동정치에 대한 문제 의식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이 그다지 정교하게 정리될 것 같지는 않지만, 통합-독자 논쟁, 국민참여당 문제 등 지금까지의 논쟁의 과정에서 가장 크게 비어있는 공백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노동정치의 공백 지점은 ‘아무도 없다’는 것과 동시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주체도 프로젝트도 없고, 다만 2000년 언술의 리바이벌만 있을 뿐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발언했으면 좋겠다.

    민주노동당의 성공은 (비록 지체되기는 했지만) 87년 노동체제에 기인했다. 그리고 이러한 성공요인은 민중당을 포함한 이전의 당운동과는 달리 노동조합운동이라는 물적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요인은 통시적으로 보자면 극복해야만 하는 유산이기도 하다. 이미 ‘체제’라는 말에도 함축되어 있다시피 ‘상대적인 안정성’은 그야말로 상대적인 것일 뿐이며, 모순을 함축하고 있기에 언젠가는 파괴되어야만 하는 운명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실에서 이러한 정규직 남성 중심의 기업별 노조체제에 기반한 민노당의 성공요인을 마치 영원불변한 원칙인 것처럼 말하고 다니는 통합론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가정하는 통합정당 당위성은 단순히 자주파와 국민파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소위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 성공에 일익을 담당했던 중앙파 역시 마찬가지로 공감하고 있다. 노동에 기반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결국 그 노동은 보편적 노동이 아니라, 소수의 조직-남성-정규직-민주노총 조합원에 귀결되고 만다.

    국민참여당은 안된다고 하면서 결국 자신의 시야를 현재가 아니라 민노당 초기 시대인식으로 고정시키고 만다. 좁아진 시야는 전망 역시 좁히고 만다. 상층 중심으로 당과 노동을 연동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겪은 바다.

    (노동운동의 위기가 당으로 전화되거나, 리더십이나 직무 이동하는 통로 말고는 특별히 관찰되는 것이 없었다. 그걸 다시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면 중앙파의 논리는 더 상세하고 미래지향적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분당 당시 중앙파는 분당에 반대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미래전략을 제시하지 못했다. 현재의 중앙파의 인식도 바로 여기에 머물러 있다고 본다)

    통합되면 노동운동 되살아나나?

    그런데 과연 통합정당이 되었을 때, 민주노조운동은 생명력이 살아날까? 현재 통합정당의 과제로 얘기하는 것은 ‘산별교섭법’ 정도 말고는 없다. 빈약하다. 그런데 과연, 산별교섭법이 만들어지면 노동운동의 위기가 극복이 될 것인가?

    프랑스 노동운동은 낮은 조직률에도 불구하고 높은 협약적용률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법적으로만 강제한다고 해서 될 문제라고 보는가? 진정으로? 또한,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위기가 뭔가 ‘아귀’만 잘 맞으면 기술적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보는 것인가? 운동의 위기를 운동이 아닌 그 어떤 것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것. 거짓 해결책이다. 없는 것보다 낫겠다는 정도를 가지고 해결책이라 볼 수는 없다.

    금속노조가 자신의 구조를 산별에 맞게 (예컨대 기업지부의 영원한 존속) 구성하지 못한 이유는 자본의 탄압 때문도, 법적 미흡함 때문도 아니다. 바로 자신의 의지가 굳건하지 못해서거나, 아니면 그렇게 변화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금속노조가 정규직 중심의 기업별 노동조합의 속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몸이 무겁다는 것이다. 두렵다는 것이다.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 과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산별교섭법’의 제정은 하나의 계기로서 작용하는 것이지 만능 열쇠가 아니라는 것이다.

    핵심은 주체적 역량이다. 그것 없이 통합진보정당과 산별교섭법만 읊어대는 것은 허구일 뿐만 아니라 직무유기에 다름 아니다. 현재 노동운동의 최대 걸림돌은 실리주의에 빠진 조합원들과, 실리주의 말고는 아무 것도 기댈 곳이 없는 노동운동의 동원전략인 것이다.

       
      ▲필자

    태풍은 결국 지나간다

    노동운동이 이러한 구조적 얽매임을 힘겹더라도 벗어나야 하는 것처럼 진보정당 운동 역시도 2004년의 원내진출이라는 ‘영광의 한 때’를 추억은 하되 온존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방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87년 노동체제에 기반한 원내진출은 한계에 다다랐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무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태풍이 지나가는 경로에 서 있다. 때론 태풍의 위력을 못느낄 수도 있고, 또는 전체적 흐름을 놓칠 수도 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시종일관 일관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태풍은 지나갈 것이라는 점이며, 우리는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모두가 두려운 시기이지만, 그렇다고 역사를 비약하거나 과제를 생략하고 지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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