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상급식 투표 D-2 , ‘정치쇼’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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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22일 09: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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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1일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면서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네 번이나 눈물을 훔쳤다.

    그는 “오늘의 제 결정이 이 나라에 ‘지속 가능한 복지’와 ‘참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데 한 알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해도 더 이상 후회는 없다”고 울먹였다.

    그러나 회견 뒤 나온 방청소감(?)은 악평 투성이었다. 당장 민주당에서는 “정치쇼”라고 비난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에서조차 “당을 위기에 빠뜨렸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한나라당의 핵심관계자는 “대변인 공식 논평에 ‘(시장 거취를 연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 것에는 홍준표 대표의 분노가 묻어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8월22일 전국단위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들이다.

    경향신문 <두 딸 등록금 가족회의 / 한 중산층 가장의 한숨>
    국민일보 <“주민투표 패배땐 시장직 사퇴” / 오, 승부수…여, 대혼란>
    동아일보 <오의 도박? 오의 도전?>
    서울신문 <국회의원 50%…“내년 총선 현역 30% 물갈이해야”>
    세계일보 <주민투표발 ‘태풍’ 정국 흔들 변수로>
    조선일보 <무상급식 주민투표 D-2…시장직 건 오세훈 / “투표율 3~7%P 오를 수 있을 것”>
    중앙일보 <앞문 닫히자 뒷문 열었다>
    한겨레 <오세훈의 ‘배수진’>
    한국일보 <투표함 못 열까 절박감 ‘벼랑끝 강수’>

    진보언론 관전평 "오 시장의 시장직 연계, 진정성이 없는 정치쇼"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지면 서울시장직을 걸겠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기자회견에 대한 관전평을 내놓은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진보언론의 반응은 직관적이었다. 오 시장의 눈물은 진정성이 없으며, 정책선거를 정치선거로 변질시켰다는 비판이었다.

       
      ▲경향신문 8월 22일자 2면

    경향신문은 2면 머리기사 <무릎 꿇고 네 번의 눈물…감성에 호소한 오 시장>에서 “오 시장은 이날 네 번 울고 한 번 무릎을 꿇는 등 자신의 입장을 최대한 감성적으로 전달하려고 애썼다”고 회견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그리고 그 아래 “오 시장이 시장직을 담보로 서울시민을 협박하고 나섰다”, “33.3%의 투표율이 불가능해지자 사퇴쇼를 한 것”이라는 야당의 비판을 전했다(<야당 “서울시민 협박…사퇴쇼”>).

    <정책 찬반이 정치투표로 변질 시장직 볼모 ‘지방자치 실종’ / 불법 선거운동 논란도> 제목의 3면 기사에서는 “자신과 다른 정치철학과 정책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선례를 남겨 민주주의와 주민참여를 원칙으로 하는 지방자치의 실종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비판했고, 4면에는 아예 <‘정치인의 눈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 “진정성에서 평가가 갈린다”고 썼다.

    만평에서는 연기자로 나설 것을 고민하는 오 시장을 풍자하는가 하면 사설 <투표거부 명분만 더 키운 ‘시장 사퇴’ 겁박>에서도 “시장직을 건다면 투표율이 5% 포인트 높아질 수 있다는 예측이 있어 유혹을 느낀다고 했던 속내가 현실화한 셈”이라고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경향신문 8월 22일자 만평 

    한겨레도 사설 <참 나쁜 시장의 저급한 관제투표>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거는 것은 그를 뽑아준 서울시민에 대한 도리가 아닐 뿐 아니라 명백한 불법선거운동”이라며 “아니나 다를까 투표 이틀 전에 그렇게 한 것은 투표율을 끌어올리려는 정략으로, 자작 인질극이나 다를 바 없다”고 오 시장의 눈물을 평가절하 했다.

    한겨레는 이어 “재정자립도가 낮은 대부분의 지방시도조차 다 아이들 무상급식을 해주고 있다”면서 “재정자립도가 100%인 서울시가 한강르네상스 등에 큰 예산을 쏟아 부으면서 굳이 아이들 밥은 못 먹이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보수언론 관전평 "복지 포퓰리즘 막기 위한 불가피한 결단

    반면, 오 시장의 기자회견을 접한 보수언론들은 복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한나라당을 혼란에 빠뜨린 것을 비난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동아일보는 사설 <급식투표 D-2, 정치생명 건 오세훈 시장>에서 “정책투표의 성격을 띤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거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면서도 “그러나 오 시장이 처한 상황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선택으로 볼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서울시의회가 사사건건 오 시장의 시정에 발목을 잡는 현실에서 주민투표에서도 진다면 ‘식물시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며 “그가 주민투표에서 이긴다면 오세훈 개인의 승리를 넘어 복지 포퓰리즘의 거대한 흐름에 제동을 거는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내년 선거 판도까지 좌우할 서울시 주민투표>에서 “주민투표에 걸린 무상급식 범위와 속도라는 정책적 선택이 서울시장이 물러나느냐 마느냐 하는 정치적 문제와 뒤섞이게 된 것이 잘된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러나 주민투표가 무산됐을 때 오 시장이 더 이상 서울시장 구실을 할 수 없게 되리라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정치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마저 반대하고 있지만 무상급식 투표율이 33.3%에 미치지 못하거나 투표에서 패해 ‘식물 시장’으로 남은 임기를 끌어가느니 차라리 시장직을 버리는 승부수를 던지는 게 현실적인 판단이었다는 분석이다. 조선일보는 오 시장의 시장직 연계로 투표율이 3~7%P 오를 것이라는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조선일보 8월 22일자 1면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은 한발 더 나아가 칼럼 <‘나쁜 정책’은 있을지언정 ‘나쁜 투표’는 없다>에서 오 시장을 비난하고 있는 한나라당 수뇌부를 실명으로 겨냥했다.

    김 고문은 “친박계와 ‘박근혜 대세론’에 기대고 있는 소장파는 도와주기는커녕 이들이 과연 같은 정당 소속인가를 의심할 정도로 오 시장을 길길이 씹었다”며 “그 ‘대표’ 격인 유승민 최고위원의 발언이나 최경환, 정두언 의원 등의 비공개 언급을 보면 그렇게 야비해 보일 수가 없다”고 했다.

    김 고문은 이어 “한나라당은 이미 패배적”이라며 “그렇기에 오 시장이 이기면 국민의 의사를 잘못 읽은 한나라당은 크게 숙정되고 지도선이 바뀌어야 한다”고 경고까지 했다.

    동아일보 "오 시장, 잃을 게 많지 않은 게임"

    “오 시장의 시장직 연계는 한나라당 친박․소장파가 바라는(?) 패배의 경우, 그 피해를 오 시장선에서 끊는 방파제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는 김 고문의 주장은 짐짓 숙연하기까지 하지만, 사실상 오 시장이 선거에 패배하더라도 “잃은 게 없다”는 건 보수언론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선일보 8월 22일자 칼럼

    동아일보는 1면 머리기사 <오의 도박? 오의 도전?>에서 “오 시장은 차기 대선에 불출마하더라도 2017년 대선까지는 총선, 재보선, 입각 등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며 “‘정치적 도박’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잃을 게 많지 않은 게임’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서울시장직을 버리더라도 향후 보수아이콘으로서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대선가도에 가속도가 붙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차기 대선 주자로서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장기포석”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당장 그만두는 것도 아니다. 오 시장 측근들에 따르면 청와대의 레임덕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와 10월 재보선의 부담을 고려해 사퇴시기는 한 달 이상 미룰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사퇴하면 10월24일 재보선에서 새 시장을 선출하지만 10월1일 이후 사퇴하면 내년 총선에서 새 시장을 뽑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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