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되고 싶지 않거나 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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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22일 09: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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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너도 그 전화 받았니?”

요 몇 년간, 이명박 대통령의 잦은 실책과 안상수, 유인촌, 김문수, 홍준표 등의 릴레이 소신(?) 발언을 접하며 아주 자연스럽게 반MB 정서를 내면화하는 중인 송파동의 한 친구가 한 달 전 술자리에서 내게 물었다.

그, 000주간지인가? 거기서 자기네 잡지 좀 봐달라고 사정하는 전화가 왔더라. 아, 그거 나도 안다! 그거 너도 받았어? 응. 근데 무슨 보험 영업도 아니고, 그게 뭐니. 좀 불쌍하더라. 난 또 대출이나 금융 쪽 전환 줄 알고 서둘러 끊어버렸잖아. 그래? 난 그쪽하고 거의 10분이나 통화했는데, 쿡쿡.

구독을 사정하는 진보 매체

문제의 000주간지 구독 간청 통화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000주간지인데요. 000주간지는 정론지를 표방하는 독립 진보언론으로서 블라블라… 나이와 권위가 좀 있으신 듯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주절주절 흘러온다. 아, 네 000주간지 즐겨보고 있습니다. (반가운 듯)아, 정말이요? 좋은 분이신가 봐요. 글쎄, 000주간지 보는 사람이 다 좋은 사람이란 말은 좀 좋지 않은 말 같은데, 아무튼.

그럼 정기구독자세요? 아, 그건 아니고요. 가끔씩 가판대서 사서 봅니다, 아하하. (아쉬운 듯)네, 그렇군요. 저희는 사실 대기업의 광고를 받지 않기 때문에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희 000주간지를 마음으로 응원해주시는 분들은 많았지만 이제는 실제적인 도움이 필요한 시기거든요. 블라블라… 아, 네…

나는 결국 수비적인 자세가 되어 사실은 진보 쪽의 다른 주간지를 정기구독 중이라 실토한다. 그러자 저쪽에선 더욱 공격적으로 그럼 그 주간지의 구독 완료 시기가 언제냐고 물어온다. 난 왜 이런 물음에까지 답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9월말까지라고 원래 완료 기간에 대충 한 달을 더 얹어 답하고, 그러자 저쪽에선 아이고 다행이라며 그럼 9월에 다시 전화하겠단다.

글쎄 나는 지금 구독하는 주간지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데… "9월에 다시 만나요~"란 말에 역시 "아, 네…"로 얼버무리며 전화를 마쳤다. 여기까지 무려 통화시간만 9분 57초가 걸렸다.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진보 매체들의 사정이 눈물 나게 딱하다만, 진보 매체를 두 개씩이나 구독할 경제력이나 여유 시간이 내겐 없고, 무엇보다 이런 식의 텔레마케팅이 과연 효과적일지도 의문스러웠다. 친구는 소주를 털어 넣으며 조금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했다.

“내가 요즘 정치에 좀 관심이 생겨서 망정이지, 예전 같았으면 솔직히 완전 짜증났을 거야. 욕이라도 한마디 해줬을 걸.” 그러면서 모르는 사람이 들었으면 진보에 반감만 더해졌을 거라 덧붙인다. 하긴 왜 000주간지를 알면 좋은 사람일까.

나는 000주간지를 좋아하고 스스로 진보라 자청하는 사람들 중에 (내 기준으로) 나쁜 사람을 다섯 명 정도는 알고 있다. 그건 내가 청년유니온 조합원이라고 ‘청년유니온 조합원이면 다 좋은 사람, 만세-!’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와 같은 것이다.

   
  ▲그림=장보연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진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 대신 여기저기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최근에야 정치에 적당히 눈을 뜬,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욕심도 있는 내 친구는 진보가 너무 도덕적 당위와 그에 기반한 구걸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몇몇 눈물 나는 기사나 르포 글들을 예로 든다.

하긴 그런 부분은 요즘 여기저기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포함한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에게도 절반의 책임은 있다. 그동안 우리가 써낸 글들의 제목은 내가 모 매체에 쓴 "비루한 서른둘. 나도 목숨을 내놓아야 하나…"를 필두로 "고객님이 남긴 빵부스러기, 배고파서 먹습니다" "돈 없는 서른 여자, 결혼은 못하겠죠?"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책임이 절반만 있는 이유는 저 위의 눈물 나게 서글픈 문구들이 우리가 직접 뽑은 것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해당 매체의 편집부에서 임의로 붙인 제목이다. 제목이 자극적이긴 하지만 글의 내용은 모두 다 사실이고 사실을 알리는 건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대중의 정서나 욕망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 역시 필요한 일이다.

대중들은 일반적으로 불쌍한 이야기들을 싫어한다. 그에 바탕을 한 구걸이나 당위에는 외려 반감만 갖는다. 유명한 이야기지만 우석훈, 박권일의 『88만원 세대』 같은 책은 진짜로 한 달에 88만원을 벌거나 벌 사람들에게 대부분 외면당했다. 내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찾은, 어떤 『88만원 세대』에 대한 한 줄짜리 리뷰는 이런 것이었다. “충격적이다. 하지만 나는, 나는 절대로 저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이 두 번씩이나 들어간 저 리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건네는 진보매체 구독 요청이나 현실을 바르게 알고 함께 하자는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의 손짓이 비집고 들어갈 구멍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과 멀어진 진보의 슬픈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가방끈 없인 출입할 수 없는 진보

얼마 전 앞의 친구와 함께 참여했던 어떤 정치철학 세미나는 이제 막 진보에 눈을 뜨던 고졸 출신 내 친구의 의욕을 두 시간 만에 무참히 꺾어놓는 것이었다. ‘대중을 위한’ 세미나의 내용과 언어가 대학원 수준이었던 것.

문제의 대중을 위해 마련됐다는 정치철학 세미나는 대충 이런 것이었다. 먼저 선수 입장. 청코너는 들뢰즈의 아이들, 홍코너는 지젝의 아이들. 생소한 용어와 고급 논리가 불을 뿜고 춤을 춘다. 수십 합을 겨뤄도 승부가 나지 않자, 들뢰즈가 친구인 가타리와 네그리 등을 호출하고, 동구권 출신임에도 할리우드에서도 좀 놀 줄 아는 지젝은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등을 소환한다. 다시 수준 높은 용어와 날선 논리가 불을 뿜는 전장이 펼쳐지고…

그래도 쉽게 결판이 나지 않자 드디어 그들의 사부 격인 마르크스, 라캉, 프로이트에 헤겔까지 총출동… 거기 영웅이 있냐, 여기도 영웅이 있다는 삼국지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가 하면, 비현실적으로 커다란 거인 프로레슬러들이 하나씩 링으로 뛰어올라 난리법석으로 뒹굴던 WWE(미국 프로레슬링 단체)의 로얄럼블(한사람씩 링 밖으로 밀어내 혼자 남으면 이기는 프로레슬링 게임 방식)이 연상되기도 한다.

아무튼 그 과정에서 자동사의 욕망과 타동사의 욕망이 어쩌고 (분사구문 욕망이나 to 부정사 욕망은 없는지?) 뜬금없이 NL과 PD가 납시어 블라블라… 데모하다 갈라서고…(아마도 내 친구는 <무한도전>의 김태호PD를 생각했을 테고)

“제 생각엔 들뢰즈가 마르크스를 제대로 이해 못한 것 같은데…”라는 지젝 측 김형의 공격에 들뢰즈 측 이형은 “제 생각엔 김형이 들뢰즈를 제대로 이해 못한 것 같은데…”라고 응수하는 등 깨알 같은 지적(指摘/知的) 애드립이 수차례 오가고, 그렇게 두 시간 동안 20세기 100년의 역사가 대립했다, 무너졌다, 세계화되고… 세미나는 ‘이명박은 나쁘다’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는데…

글쎄 옛말에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라지만, 우리 안의 욕망이 이명박을 만들었다는 진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을 불러내고, 그렇게 어려운 용어들이 호출되어야 했는지. 도대체 대학에서 복수전공 없이 철학만 주전공한 나도 따라잡기 힘든 이야기들을, 배경 지식 없는 대중들 앞에 두고 떠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좋은 데라고 친구를 데려 간 나는 또 얼마나 민망하고 미안했겠나.

그런데 민망함과 미안함은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세미나가 다 끝난 자리에서 어떤 논객이 인자한 미소를 띠며 고졸 출신인 내 친구에게 이렇게 물은 것이었다. “저… 학번이 어떻게 되세요?”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

나는 잡지 구독요청이나 단체의 CMS광고도, 참담한 현실 알리기도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부 머리가 비상하게 똑똑한 사람들이 시민단체나 대중들에게 활동과 실천의 이론적 틀을 제공해줘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불쌍한 현실이나 당위에 의존하는 요청은 자존심의 문제나 미학적 관점을 들먹이기 전에 일단 실패할 확률이 높다. 또 이론 작업을 하시는 분들 역시 반지성주의 운운하며 한탄만 한다고 대중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전 국민이 가뜩이나 어려운 사람들인 들뢰즈나 라캉의 어려운 개념(리좀, 주이상스 등등)들을 왜 알아야 하는가. 요즘 젊은이들 이런 것도 몰라 쓰겠냐는 말이 진보에 대한 반감만 키운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고, 요즘 젊은이들이 그런 것도 모를 수밖에 없는 열악한 현실에 내몰려 있음을 먼저 고려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의 욕망이나 관심사를 조금만 헤아려줬으면 한다.

아무튼 아주 자연스럽게 진보의 늦둥이로 무럭무럭 자라던 내 친구는 괜히 ‘애먼 데(?)’ 끌려갔다가 마음에 상처만 얻었다. 내가 무서운 건 이런 식으로 진보가 계속해서 한 표씩 잃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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