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시만보' 시리즈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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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21일 12: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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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만 권짜리 시리즈를 내겠다며, ‘무모한 도전’을 하는 작은 출판사가 있다. 시리즈 이름은 ‘우리시대 젊은 만인보’(우시만보). 낯설지만 날렵한 인물 컷과 노란색 표지가 인상적인 이 시리즈는 도서출판 텍스트라는 출판사가 서 있는 자리, 그리고 나아가려는 자리를 잘 보여주는 듯하다.

    신민영(『신호등 건너기 게임』)과 한윤형(『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김민하『레닌을 사랑한 스파이』) 등을 봤을 때는 마치 필자 사관학교의 임무를 지려나 싶었고, 탈북자인 이정학(『두 번의 탈출, 하나의 꿈』), 이주노동자인 마붑 알엄(『나는 지구인이다』)까지 봤을 때는 ‘만인보’가 그리려는 그림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제법 오랜 공백기를 거친 후, 최근 아나키스트 조약골(『운동권 셀러브리티』), 좌충우돌 젊은 기획자의 꿈을 키우고 있는 김류미(『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 방송국 피디 김자현(『마트료시카, 모래섬에서 왈츠를』)의 신간까지 더해보니 그림은 조금 더 선명해졌다.

       
      ▲최근에 나온 ‘우시만보’ 시리즈 17~19권.

    말하자면, ‘우리시대 젊은 만인보’는 노선과 계보 없이 던져진 퍼즐이다. ‘우리시대 젊은 만인보’의 낯선 인물들은, 지금-이곳의 ‘나’이거나 ‘당신’이다. 그들의 이야기이면서 우리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도서출판 텍스트의 김용필 대표를 만나 ‘우리시대 젊은 만인보’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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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우리밖에 못해"

    – 아주 오랜만에 ‘우리시대 젊은 만인보’(이하 ‘우시만보’) 시리즈가 추가됐다. 혹시 시리즈가 중단된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 자본이 넉넉하지 않은 출판사이다 보니까 걸음이 더욱 더뎌졌다. 이제 19권 째가 됐다. 계획대로라면 지금 30권이 넘었어야 한다. 1만 명을 채워야 하는데…. 이번에는 아는 사람들은 제법 아는 아나키스트 조약골, 러시아에서 공부의 꿈을 접고 카메라를 잡게 된 방송국 피디 김자현, 강북 감성의 강남 소녀에서 편집자로 자기 커리어를 만들고 있는 김류미의 이야기를 담았다.

    – 1만 명을 채우겠다는 얘기를 다른 인터뷰에서도 읽은 것 같은데, 진심인 모양이다. 그런데 걱정스럽기도 하다. 형편 되는 출판사라도 선뜻 나서기 어려운 기획인 것 같은데.

    = 모르겠다. 다른 출판사 사정까지 짐작하지는 못하겠고, 우리와 방향성이 좀 달랐을 거라는 생각은 한다. 아마도 대중적으로 좀 더 어필할 수 있는 쪽으로? 정기간행물이 북매거진 <텍스트>라는 이름으로 10년 전에 출판계 언저리에 둥지를 틀었지만, 도서출판 텍스트에서 단행본을 시작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때 주변에서 이런저런 걱정의 말과 격려의 말을 들었는데, ‘우시만보’에 대해서는 “재미있겠지만, 나중에 해라”라고들 했다. 첫 걸음을 떼는 출판사에서, 문고판 시리즈물을 기획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장을 판단하고, 규모를 결정하고, 안전한 생산을 결정하는 것이 살아남기 위한 최적의 전략이라는 걸 우리도 안다. 그런데 ‘나중에 해라’는 말보다 ‘재미있겠다’는 말에 상당히 고무됐던 것 같다. 여전히 가난한 살림을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많지만, 이미 열아홉 권이나 냈으니까 얼른 1만 권을 채워야겠지? 편집부 안에서 우리끼리 하는 얘기는 있다. “이건 우리밖에 못해!” 그러니까 그냥 우리가 잘하면 된다.

    거대담론과 함께 가는 미시사

    – 미완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자서전을 쓰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일반적으로는 돌아볼 것들이 많아야 쓰는 게 자서전 아닌가?

    = 자서전의 전형적인 틀을 깨고 싶었다. 이청준의 소설 제목에도 있지만, “자서전들 쓰십시다!” 자기의 삶으로 자기의 시대를 말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나. 자서전은 미시사의 영역에 있다. 그리고 미시사에는 개인의 진실이 풍부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자칫 미시사에 함몰되면 거대담론의 맥락을 놓치기 십상이다. 거대담론은 때로 너무 큰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그 안에서 우리 삶의 중요한 맥을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거대담론이 급격히 와해되는 과정을 겪었고, 그 와중에 미시사에 대한 유혹들은 매우 폭발적이었다. 근사하게 말하자면, 거대담론과 함께 가는 미시사를 꿈꿨다. 그러니까 시대가 담긴 개인의 진실 같은 것 말이다.

    개인의 진실을 담는 방법에서 우리 사회는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출판 쪽에서만 보자면, 평전, 자서전, 에세이가 차고 넘친다. 그렇지만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이거나 가벼운 이야기들의 꾸밈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이나 현실과는 모종의 괴리 같은 게 있다는 것이다. 그저 출판물로서 소비되는 것일 뿐이지, 개인의 이야기가 소비되는 방식은 없었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개인 블로그, 미니 홈피, 트위터 같은 이른바 소셜 미디어의 엄청난 폭발을 보면 적어도 ‘만인보’라는 기획이 지금-이곳의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평전도 아니고, 가벼운 읽을거리도 아니고, 자기 얘기를 스스로 하면서 타인의 삶과 그것을 견주고 시대의 풍경과 조각을 맞추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우시만보’로 정의할 수 있다고 본다.

       
      ▲그 동안 신민영(1권), 한윤형(3권), 김종철(5권) 등도 저자로 참여했다.

    “지금 이곳은 과연 살만한가?”라는 질문에 “지금 우리는 이곳에 이렇게 살고 있다”는 대답을 ‘우시만보’가 들려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가장 실감나는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미완의 존재들, 그러니까 이뤄놓은 것보다 이루어야 할 것이 훨씬 더 많은 젊은 필자들의 이야기라야 한다.

    ‘만인보’의 필자는 20대에게 가장 활짝 열려 있고, 가능하면 마흔 이전의 필자들을 주로 만난다. 30대 후반의 필자들과 얘기를 나눌 때는 “마흔 되기 전에 씁시다” 한다.

    논객, 프로레슬러, 탈북자, 이주노동자…

    – 시리즈를 유지하는 어려움이 짐작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자본력일 테고, 끊임없이 새로운 필자들을 찾는 작업의 어려움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른 데서 아직 알아보지 못한 그런 필자들을 찾아내야 할 테니까.

    = 재정 상태가 열악하다는 건 객관적으로 사실이다. 그래서 더 좋은 마케팅을 하지 못하고, 필자들에 대한 더 나은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현실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피하는 것은 출판사의 몫이다. 사실 가장 어려운 일은 다양한 인물을 확보하는 거다. 서로 다른 1만 명을 호명해야 하니까.

    우리사회의 다양한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담고 싶은 건 우리의 욕심이기도 하지만, 그게 또 ‘우시만보’가 유효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우시만보’ 시리즈를 시작했을 때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기획이었고, 필자들 역시 누구도 걷지 않은 길로 나아가야 해서 두려움이 좀 있었다.

    그래서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필자들 중심으로 꾸려졌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그래도 제법 다양한 필자들과 접촉했고, 논객, 프로레슬러, 탈북자, 대안학교 졸업생,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이 시리즈를 처음 출발할 때 했던 또 하나의 걱정은 젊은 친구들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지 하는 것이었다. ‘우시만보’는 두꺼운 책이 아니지만, 자기의 삶을 기록하는 일은 그다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걱정과 달리 가능성은 충분히 엿보인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름대로 자기 삶을 돌보는 뚜렷한 스타일이 있고,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자기의 언어들을 구사하는 재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들 ‘우시만보’의 필자들이 꾸준하게 지금-이곳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기의 미시사와 큰 틀의 이야기를 조율하는 필자들로 성장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시장의 논리가 삶을 중단시키지는 못해

    – ‘우시만보’를 읽는 재미 중 하나는 맨 뒤에 실린 인터뷰다. ‘우시만보’ 필자들끼리 하는 인터뷰라는 점을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 ‘만인보’ 시리즈는 하나의 거대한 퍼즐판이다. ‘만인보’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요소가 있다면, 그건 책의 맨 뒤에 실린 인터뷰다. 한번 출간할 때 보통 세 권 정도를 내는데, 그 세 사람의 릴레이 인터뷰가 실려 있다. 서로의 삶에 대해서 아무런 관련이 없던 필자들이 그 인터뷰를 통해서 만난다.

       
      ▲김용필 대표. 

    누군가 소설을 쓰면 해당 작가의 인터뷰가 권말에 실리기는 하지만, 대부분 편집부에서 선정한 평론가가 그 인터뷰를 맡는다. 하지만 ‘만인’의 삶의 열려 있는 동시에 관계 맺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은 책과 책을 이어주는 고리이기도 하다. 필자들은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동시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 그렇다면 1만 명의 이야기, 열려 있는 책인 동시에 관계 맺고 있는 책, 그렇다면 ‘우시만보’는 이상으로 기획되고, 이상으로 출간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 아니다. 만 한 명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이미지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우시만보’에 대한 기대의 시선과 우려의 시선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 기대와 우려는 비슷한 맥락에 있다. 상업적인 논리를 벗어나 있어서 기대가 되고, 바로 그 상업적인 논리 때문에 걱정스러운 거다.

    출판 시장이 워낙 영세하고 열악하다 보니까. 그렇지만 시장의 논리가 삶을 중단시키지는 못한다. 꿈같은 얘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그런 꿈같은 얘기들이 삶을 구성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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