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과 고봉의 '육성'을 듣다
    2011년 08월 21일 10:16 오전

Print Friendly

경연의 실제 모습 1 : 성종9년(1478) 10월 7일

허침 : 참판 신정(申瀞)은 비록 자질이 명민하나, 역시 물망(物望, 여론)에 맞지 않은 자입니다. 이 두 사람이 어찌 인물을 전형하는 일을 감당하겠습니까? 신은 전선(銓選, 인물의 전형과 선발)이 정밀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임금 : 참판이 물망에 맞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허침 : 여론이 모두 청렴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임금 : 이조는 중대한 곳인데, 그 사람됨이 이와 같다면 그 벼슬에 둘 수 없다. 저마다 아는 것을 말하라.
― 본문 46쪽에서

경연의 실제 모습 2 : 선조즉위년(1567) 12월 9일

기대승 : 임금은 이익을 독점하지 말고, 반드시 백성과 이익을 함께 해야 합니다. …(중략)… 임금이 정치만 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는 근본이 없는 것이고, 마음만 있고 백성에게 균등히 분배하는 정사가 없으면 혜택이 아래에 이르지 않습니다.
― 본문 230쪽에서

왕과 공부 그리고 백성

   
  ▲책 표지. 

조선시대는 세습 권력제 사회였다. 곧 아버지가 아들에게 최고 권력인 왕위를 물려주는 왕조사회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왕의 자질이 없더라도 언젠가는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으므로 공부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을까? 왕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맘껏 행사할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의 물음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조선시대 국왕은 선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나라를 대표하고 나라 전체의 품격을 비추는 거울로서 끊임없이 공부해야 했다. 당대 최고의 석학을 선생으로 삼아 그들과 함께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이를 정치에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조선에서 ‘민본(民本)’이니 ‘위민(爲民)’이니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니 하는 이념은 바로 피지배자이며 생산자인 백성의 생존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러한 유교이념에 따라 지배자라 하더라도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을 마음대로 추구할 수 없었다.

이는 왕도 마찬가지다. 왕이 사적 개인들 간에 이해관계의 첨예한 대립을 조정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사적 개인으로 전락하여 신료들과 이익을 다툴 때, 왕조의 권위는 타락하고 사회는 혼란해지고 끝내 정권이 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왕은 유교적 덕치이념을 체화하기 위해 평생 공부해야 했던 것이다.

왕이 당대 최고의 석학들과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국가 정책을 토론하는 자리, 그것이 바로 경연이다. 『경연, 왕의 공부』(김태완 지음, 역사비평사, 22000원)는 경연에서 왕이 무엇을 공부했는지, 어떤 교재로 공부했는지, 왜 공부했는지, 공부하는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본다.

조선시대 왕은 경연이라는 인문학 세미나를 통해 자신의 통치 행위를 반성하고 성찰했으며, 이를 통해 자신에게 속한 백성의 삶을 보살피라는 가르침을 체화해야 했던 것이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왕조사회에서 경연은 왕의 권력 남용과 독단을 막고 정치 현안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게끔 유도했다.

지금도 들어맞는 그때 이야기들

조강(朝講), 주강(晝講), 석강(夕講), 소대(召對), 야대(夜對) 등 한 번 공부로 그치지 않고, 하루에도 연달아서 경연을 열어 공부하고 정사를 논의했던 조선시대 국왕은 그 공부한 내용을 현실 정치에 적용하고 응용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왕의 공부였으며, 나라를 경영하는 원리였다.

이 책은 경연이 무엇인지에 대해 유래와 역사, 경연에서 쓰인 교재, 경연관의 선발 방법, 경연이 이루어지는 절차, 경연의 목표 등, 경연에 관한 궁금한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해놓았다. 그러나 단순하게 경연에 대한 설명과 이해에만 그치지 않는다. 실제 경연의 기록을 그대로 보여주고, 왕과 신하들이 어떤 논의를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마치도 한 편의 다큐멘터리 또는 르포르타주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저자는 실제 경연의 모습을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발췌했지만, 제3장 경연의 기록, 그 숭고한 작업에서는 특히 고봉 기대승과 율곡 이이가 남긴 기록을 뽑아 보여줌으로써 경연에서 이루어진 논의의 생동감을 더했다.

저자는 과거 경연 기록을 가져와 이를 그대로 보여주되, 이에 대한 풀이를 통해 당시의 정치 사회적 배경을 설명하고 나아가 오늘날의 정치에 비춰 논평한다. 조선시대 경연에서 논의하는 내용은 단지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지금 이때에도 되풀이되는 모습과 같아 깜짝 놀라게 된다.

과거를 거울삼아 현실의 정치를 반성하고 백성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며, 백성이 잘사는 나라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각오를 다져야 했던 것은 과거 조선시대에만 해당되는 것일까? 인문학 교육은 조선시대의 왕에게만 필요했던 것일까? 오늘, 다시 되물어야 한다.

                                                  * * *

저자 : 김태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고, 그곳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로 올라와 숭실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특히 퇴계와 율곡에 깊은 관심을 두었다. 공부할수록 조선 성리학의 심오한 매력에 빠져들어, 마침내 율곡 이이의 책문을 텍스트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이의 책문을 통해 조선의 지식인들이 이론과 실천의 조화를 어떻게 추구하고 풀어나가려 했는지를 보면서 감탄하고, 이를 알리고자 했던 노력이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와 『율곡문답』으로 결실을 맺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