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 내려와서 같이 목욕탕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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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20일 03: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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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집에 안 들어오신 지도 1년이 다 됐네요. 한진공장 열심히 다닐 때도 새벽에 들어와서 다시 새벽에 나가니까 아빠 얼굴 보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또 정리해고 싸움 때문에 더 아빠를 볼 수가 없어서 많이 속상해요.

    집에 안들어오신 지 1년

    아빠가 85호 크레인에 올라간 지도 벌써 50여일이 넘었네요. 아빠가 없는 동안 우리 집은 폐허가 됐어요.아빠가 없으니까 집 공사도 진전이 없어요. 또 밤에 잘 때는 든든하지도 않고 이번 태풍에는 정말 아빠의 존재가 절실히 필요했었어요.

    아빠가 없어서 너무 슬펐어요. 요즘 떠들썩한 희망버스 덕분에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잖아요? 우리한테는 참 고마운 관심이라서 정말 좋아요. 나도 희망버스에 참가 했었잖아요. 2차 희망버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그때 경찰과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대치했을 때, 경찰들이 최루액이랑 물대포를 쐈잖아요. 내가 거기 제일 앞에서 엄마와 누나랑 같이 있었잖아요. 처음에 물대포만 쐈을 때까지만 해도 자리를 지켰는데, 파란 최루액이 터지고 나서 왠지 무서운 마음에 엄마와 누나를 버리고 도망갔었지요. 나는 인근 빌라 주차장까지 뛰어갔지요. 도착하고 나니까 엄마랑 누나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전화를 했는데 한참 안 받아서 문자를 보내니까, 나중에 전화를 받더니 연행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엄마랑 누나가 연행된 금정경찰서로 난생 처음 가족 면회를 가게 됐죠. 막상 갔더니 고마워해주진 않고, 나보고 배신자라는 말 밖에 안하더라고요. 그냥 살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도망친 건데, 엄마랑 누나는 내가 간지도 모르고 계속 나만 찾다가 경찰한테 포위당해서 연행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나는 빛의 속도로 가족을 버리고 도망간 배신자로 전락하고 말았지요. 앞으론 배신을 하면 안 되겠구나 싶었죠. 결국은 이때도 아빠 얼굴을 못 봤어요.

    "우리 가족도 희망버스 타고 더 힘든 사람 도왔으면"

    1차 희망버스 때 갈 걸 그랬어요. 그 때 갔으면 아빠를 볼 수 있었을 텐데요. 생각해보니까 아쉽더라고요. 이렇게 못 볼 줄 알았으면 진작 많이 봐 두는 건데요. 아빠 옛날에 우리 목욕탕 다닌 거 기억나요?

    그때 가끔 했었던 목욕을 요새는 한 번도 못했잖아요. 아빠가 빨리 와야지 목욕도 자주하러 다니죠. 아빠가 없으니까 난 목욕탕을 가면 혼자 씻어야 되는 신세가 돼 버렸죠. 아빠가 집에 있었을 때는 같이 목욕 할 수 있어서 참 좋았는데요.

    아빠가 내려오면 제일 먼저 목욕부터 해야겠어요. 오랜만에 내 때도 벗기고 아빠 등도 내가 밀어주고요.
    아빠! 아빠가 승리해서 크레인에서 내려오면 우리 가족도 또 다른 희망의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우리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도우러 다녀요! 그리고 아빠 진짜 진짜 사랑해요!

    * 박슬옹군의 아버지는 한진중공업 해고자 박성호씨이다. 박성호는 현재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박영제 신동순 정홍형과 함께 85호 크레인에서 농성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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