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영 의원이 달라졌어요"
        2011년 08월 19일 03: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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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진중공업 청문회,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조남호 회장 앞에서 죽은 김주익 전 한진중공업 지회장, 곽재규 조합원의 사진을 꺼내들었다. 김주익 전 지회장의 영결식 동영상을 틀기도 했다. 정동영 의원이 물었다. “이 사람들을 아십니까?” 조남호 회장이 답했다. “모릅니다”

       
      ▲사진=미디어오늘

    청문회 활동 눈에 띈 정동영

    오후 2차 질의, 정동영 의원은 조남호 회장에게,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200일 넘게 85호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아느냐고 물었다. 정 최고위원은 “목소리라도 들어보라”며 김 지도위원과 전화를 연결했다. 여당은 발칵 뒤집혔고 고성이 오고갔다. “단순한 전화 연결이다. 여당 의원들은 김진숙씨를 왜 이렇게 두려워 하냐”며 정 의원이 맞받아쳤다.

    최근 정동영 민주당 의원의 ‘노동친화적’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크게 패배했으며, 진보진영으로부터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정치인이다. 대선 당시 “새로운 세금 도입은 없다”며 민주당 우경화에 앞장섰다. 

    정 의원의 일련의 행동에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진보진영 인사들도 최근 정 최고위원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투쟁 중인 노동현장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고 있다. 이번 한진중공업 투쟁에서도 앞장서서 문제 해결을 위해 뛰고 있다. 

    심상정 진보신당 상임고문은 지난달 22일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당 밖에서 한진중공업 농성을 전후해 여러 노동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인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 중에서 정동영 민주당 의원이 인상적이었다”며 “정말 헌신적으로 현장을 찾아가고 발언했다. 농담 삼아 진보정당 의원으로도 손색이 없겠다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그가 그렇게 행동하고 발언하는 것은 이게 옳다는 믿음 없이는 어려운 일”이라며 “단순한 제스쳐로 보기에는, 자기혁신 없이 하기 어려운 발언과 행동이 있었고, 이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의 행동은 한진 사태 해결에도 꽤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진보 인사보다 더 열심"

    정동영 의원의 변화는 2009년 전주 덕진 재보궐선거 이후부터 감지되었다. 한미FTA 등 참여정부 정책에 대한 반성문을 썼다. 민주당 의원 중 가장 진정성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있었다. 용산참사 현장도 방문해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서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2010년 10월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 이후 본격적으로 좌클릭 행보를 시작했다.

    정 의원은 당시 선거에서 ‘담대한 진보’를 언급하면서 ‘사회복지 부유세’ 신설을 주장했다. 민주당 정치인들이 복지확대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증세에 대한 이야기는 꺼려왔던데 비해 정 의원은 민주노동당의 ‘트레이드 마크’인 부유세를 차용함으로써 차별성을 보여줬다. 한-EU FTA 등 민주당의 역진 모습이 발생할 때도 정 의원은 지도부를 비판해왔다.

       
      ▲현안 있는 현장을 열심히 찾아다니는 정동영 의원.(사진=정동영 의원실) 

    그는 자신의 상임위도 ‘상원’으로 불리는 통외통위에서 환노위로 옮겼다. 환노위는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는 인기가 별로 없는 상임위다. 정 의원은 이와 함께 민주당 내 노동 현안 해결을 위한 대책기구 구성을 제안했으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대중 노동조직과도 교류의 폭을 넓히고 있다.

    정 의원의 진가는 그리고 최근 한진중공업 사태를 맞으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진보진영의 인사들은 그동안 정동영 의원에 대해 “차기 대권행보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있었지만 한진중공업에 매달리는 것이 진보진영 의원들보다 더 열심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18일 청문회에서의 정 의원의 활약은 진보진영에 인상적인 기억을 남겨줬다. 강상구 진보신당 대변인은 “정 의원이 조 회장에 대해 특별히 새로운 내용을 가지고 질의를 하지는 않았지만 김주익, 곽재규 열사의 사진을 보여주고, 김진숙 지도위원의 추도사를 보여주면서 100마디 논리보다 훨씬 강하게 조 회장의 부도덕함과 김 지도위원의 진정성을 잘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단순한 쇼 이상의 것"

    그는 이어 “정 의원이 처음 마치 진보정당 의원처럼 행동할 때, 민주당 내에서 자기 입지를 다지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몸짓이자 자기 나름의 대선 행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단순히 그렇게만 보기에는 최근 1년 사이에 보인 행보 속에서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청문회 모습을 직접 본 사람들은 정 의원이 단순한 쇼를 하는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대변인은 “(그런 모습이)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와 비교됐다”며 “성찰을 얘기하면서, 유 대표의 실제 행보는 그렇지 않는데, 정동영 의원은 성찰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라고 말했다.

    정동영 의원의 이같은 변화는 아무래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 확보와 긴밀한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선 패배 이후 당 내 입지가 매우 좁아진 정 의원은 전주덕진 선거를 계기로 재기를 노렸지만 민주당이 별도로 후보를 공천하자 민주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물론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곧 복당했지만 ‘해당행위’에 대한 논란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었다. 정 의원으로서는 정치적 재기의 발판이 필요했고 진보 의제에 대한 관심이 더해져 현재 당 내 좌파블록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기존 세력과 좌파블록의 영역 확대로 정 의원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 이어 당 대표경선 2위를 차지했다.

    대권가도에서도 최근 이슈화된 보편적 복지에 대한 의제를 선도적으로 장악함으로써 이명박 정부와 차별성을 분명히 두면서도 당 내외 좌파진영의 지지를 얻으려는 뜻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종북발언’과 당 대표 경선 이후 노동 의제에 다소 소홀해 진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도 대비되는 행보다.

       
      ▲희망의 버스 승객이 돼 부산에 도착한 정동영 의원. 

    "정동영 칭찬은 손학규 비판하는 것"

    진보신당의 한 관계자는 “한진중공업 문제를 둘러싸고 진보진영 정치인들이 정동영 의원을 칭찬하는 것은 그만큼 손학규 대표가 이 국면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비판과도 같다”고 말했다. 어쨌건 정 의원으로서는 최근의 좌클릭 행보를 바탕으로 진보진영 내 호감을 높여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최근 정동영 의원의 행보에 대해 정치적으로만 해석할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진보진영에서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지난 1년 동안의 정 의원의 행보는 진보진영의 믿음을 살 수 있을 만큼 열심이었다는 얘기다. 민주노동당의 한 관계자는 “갑작스런 변화이긴 하지만 정 의원은 이제 진보진영에서도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제1야당의 대선 후보를 지낸 인지도 높은 정치인이 진보적 의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 진보진영에도 나쁠리 없다는 의견들도 적지 않다.

    정동영 의원실의 장형철 보좌관은 “이번 청문회의 주요 구도는 정리해고의 본질적 부당성과 김진숙 위원으로 상징되는 노동문제, 한진중공업 문제의 엄중함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라며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내부적으로 고민이 있었고 정 의원도 주변 의견을 많이 듣고 김진숙 지도위원과도 수차례 통화로 의견을 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런 과정에서 이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 있었고 ‘김진숙을 위하여’라는 유튜브 영상이 한진중공업 문제를 가장 강렬한 느낌을 줄 수 있게 다루었다고 생각해 그 영상을 편집해 조 회장에게 보여주게 된 것”이라고 청문회 경위를 설명했다.

    "정의원, 노동문제 소홀 반성"

    그는 이어 정 의원의 좌클릭 행보에 대해 “의원이 ‘지금껏 정치하면서 노동, 삶의 문제에 있어 내가 부족했었다’고 생각했고, 이에 대한 자기반성 속에서 지금의 행보가 나오는 것”이라며 “어차피 가야 할 길이 복지국가의 길이고, 그 길의 핵심은 노동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환노위로 상임위도 옮겼고 집중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 보좌관은 “다른 분들이 격려를 많이 해주셔서 힘이 나지만 정 의원은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라는 생각이 있어 천착하고 있는 것으로 그 과정이 사람들이 보기에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좋은 평가가 나올 것이고, 아니면 다른 평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진영의 긍정적 평가와 함께 보수단체 회원에게 ‘머리채 잡힘’ 현상을 동반하는 정 의원의 최근 행보가 어디까지 갈 것이며, 어떤 정치적 효과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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