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예슬 회당 출연료 3천만원…열악한 제작환경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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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18일 06: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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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불방사태를 낳은 탤런트 한예슬씨 촬영거부 사태가 17일 귀국과 함께 드라마 복귀로 일단락됐지만 그가 제기했던 열악한 제작환경에 대한 문제는 남았다. 그가 출연한 KBS 2TV <스파이명월>의 제작 실태는 어떤 상황이었으며, 무엇이 그런 열악한 환경을 낳았는지 주목된다. 또한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고질적인 제작환경의 문제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면 앞으로 ‘제2, 제3의 한예슬 사태’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과 배경, 그리고 풀어야 숙제들을 제작 현장 관계자들을 통해 살펴본다.

    우선 한예슬은 귀국과 동시에 가진 공항 기자회견에서 “상황이 얼마나 어렵고 열악한지를 국민들이 알아줬으면 했다. 저같은 희생자가 다시는 생기면 안된다고 굳게 믿는다”며 “정말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로 개선되지 않을 상황 때문에 제가 옳은 일을 했다고 믿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엄청난 두려움과 스트레스 속에서 이런 선택을 하게 됐”으며 “여기에 개입했던 모든 분들이 한 번 자신을 돌아봐주시라”고 촉구했다.

    물론 그는 이 같은 ‘엄청난’ 문제제기를 한뒤 KBS 드라마 제작진에게는 ‘기자들이 많이 몰려와 경황이 없어 한 말’이며 ‘여배우로써 생각이 짧았다’며 ‘엄청난 문제제기’를 다시 수습했다. 한 씨의 발언에 KBS 고영탁 드라마국장은 "그런 말을 할 생각이었으면 다시 돌아가라"고 야단을 쳤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씨가 제기한 문제는 비단 한씨만이 아니라 제작진과 스탭 출연진 모두가 겪는 ‘불합리’함일 수 있고, 여타 드라마 제작현장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점에서 드라마 주연배우가 왜 ‘출연거부’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예슬씨. ⓒKBS 

    KBS <스파이명월> 제작진에 따르면, 한씨가 잠적하면서 요구했던 사항은 대략 3가지였다. △주 5일 촬영 보장 △자신의 분량이 너무 많으니 드라마 대본에서 자신에게 과도한 분량이 몰리지 않도록 줄여줄 것 △밤 12시를 넘겨 촬영하지 말 것 등이었다.

    이런 문제를 낳은 것은 무엇보다 드라마 제작이 방송일자에 임박해 시작됐기 때문이다. 총 18회로 예정된 <스파이명월>에서 주인공 ‘명월’이 차지하는 배역은 절대적이다. 매회 총 70여개의 신 중 ‘명월’이 나오는 장면이 ’60개’ 신에 이를 정도라는 것. 게다가 방송일자에 쫓기며 촬영하다 보니 매일 밤샘촬영을 안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 다시말해 방송 전에 여유를 갖고 나머지 분량을 제작할 수 있도록 사전 제작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전제작 미비 왜? 제작비 증가와 직결

    그렇다면 왜 사전제작이 이뤄지지 않았나. 애초 <스파이명월>은 지난해에 극본 공모를 통해 시놉시스(드라마 개요)와 대본작업까지 마친 상태였다. KBS <스파이명월> 제작진의 한 관계자(PD)는 18일 “올해 초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된 한예슬씨가 6월에 귀국했고, 오자마자 싱가폴 촬영일정을 소화하고 나니 일부 늦어졌다.

    KBS 편성도 촉박하게 잡혀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며 “제작사 입장에서도 협찬과 PPL 등을 받아야 하는데 사전제작을 하게 되면 이런 작업이 쉽지 않아 꺼린 면도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특히 사전제작을 하게 되면 촬영일정이 늘어나고 이는 제작비 증가로 직결되는 문제도 있다는 것. 연기자 출연료는 회당 지급되지만 스탭(조명·동시녹음·장비 등)의 경우 일당 형태로 지급되기 때문에 촬영일자가 늘면 제작비도 늘어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제작사들은 어떻게든 촬영일자를 단축하고, 몰아서 찍으려 한다.

    이 PD는 “연출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편집이나 음향 효과 극대화를 위해 사전제작을 원하지만 이러려면 촬영일수가 늘어난다”며 “그러면 제작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어 제작사(이김프로덕션) 입장에선 꺼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급 주연에 목매는 시스템

    열악한 환경을 낳은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스타’급 주인공들의 출연료에 있다. KBS의 한 제작진은 <스파이명월>의 한 회당 제작비가 2억5000만 원 가량인데, 한예슬씨가 회당 3000만 원, 에릭씨가 2000만 원 정도로 두 주인공의 출연료가 제작비의 무려 20%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타에 의존하는 최근 국내 미니시리즈 드라마 제작관행 때문에 드라마를 직접 제작하는 외주 제작사들은 부담을 안고서라도 이들에게 높은 출연료를 제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송사에서 지급하는 총 제작비는 정해져 있어 부족한 재원은 결국 협찬이나 PPL(간접광고) 등을 통해 벌충해야 한다. KBS 제작진 관계자는 “제작사들은 연출자(KBS 소속 PD)에게 어느 장소에서 무엇이 나오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해 장소를 옮겨다니며 찍다보면 스케줄이 엉키는 경우도 있다”며 “가뜩이나 빡빡한 일정인데 촬영일정이 더 늘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드라마 PD들 사이에서는 제작환경을 개선하고 드라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장기적으로’ 사전제작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KBS <스파이명월> 제작진은 "촬영 일정이 너무 빡빡하게 되면 음악 효과 등 여러 편집작업에 구멍이 생기고 방송테이프도 쪼개서 보내는 일이 잦다"며 "여러 선결조건들이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 사전제작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청률 지상주의 방송사…종편 출현하면?

    그럼에도 방송사 역시 이 같은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보다는 톱스타에 의존하는 외주 제작관행에 편승하고 있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더구나 지상파 방송 3사는 동일 시간대 드라마를 편성해두고 ‘살인적인’ 시청률 경쟁에 나서고 있다.

    스타 위주의 외주제작의 덫에 걸려들기로 작정한 셈이다. 이를 두고 대하드라마 등을 연출한 적이 있는 KBS의 한 드라마 PD는 17일 “방송사 역시 이런 드라마 산업 시장논리의 먹이사슬 안에서 플레이어로 편승할 뿐 현장에서의 열악한 환경에는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고영탁 KBS 드라마국장도 이날 “방송사도 생존하기 위해 시청률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고, 앞으로 종편이 생기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 제작여건은 개선하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밤 10시에 3사가 (드라마를) 모두 동시편성하면서 광고싸움하는데 어느 방송에서 1등을 안하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특히 방송콘텐츠 제작을 선도해야 할 공영방송이 드라마 제작현장의 이런 문제점을 이미 간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개선하려 하지 않은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KBS와 같은 공영방송이 ‘약탈적이고 왜곡된 제작환경’에 편승해 시청률 경쟁에 나서고 있는 것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김아무개 KBS 드라마 PD는 “콘텐츠의 질도 중요하지만 공영방송이라면 제작여건 개선도 함께 추구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촬영스케줄을 미리 준비한다거나, 출연자와의 계약도 원칙을 정해 투명하게 해야 하며, 편성도 사전에 계획성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김프로덕션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공청회에서라도 이런 문제를 밝혔으면 하지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너무 많다”며 “탁상공론 보다는 실질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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