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은 죽고 아이들은 우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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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16일 12: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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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본격적으로 4대강 공사가 시작되면서 강으로 떠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환경운동가들이 아니다.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과 미디어 활동가들이다. 저마다 내면의 부름에 따라 각처로 카메라를 들고 떠났다. 떠난 시기는 모두 다르다. 도시로 돌아온 날도 다르다. 어느 순간 영상 일꾼들이 모일 필요성을 깨달았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4대강 삽질 반대 영상 프로젝트 <江, 원래>다.

    정부의 언론 통제로 영상 기록물 제작이 어려운 현실에서 <강, 원래>는 게릴라식 생산과 소통 방식을 통해 4대강 사업의 허위와 기만을 고발하고, 때론 살육의 슬픈 풍경을 말없이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었다.

    <江, 원래>엔 4대강 공사 현장 노동자의 삶이 있고, 사라지는 생명들의 이야기가 있고, 팔당 두물머리, 영주댐 금강마을 등 고통받고 투쟁하는 마을 공동체의 이야기가 있다. 두 편의 ‘색깔 있는’ 애니메이션도 있다. 영상 작가들은 뷰파인더 속에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을 담아 왔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12편의 단편 영화가 묶인 4대강 옴니버스 영화 <江, 원래>다. 이 연재는 열 두 편의 강 이야기를 4명의 작가들과 함께 만나는 릴레이 리뷰다. 시인, 르포작가, 방송작가, 평론가 4명이 글짐을 떠맡았다.

    <강, 원래>는 ‘공동체 상영’을 통해 관객을 만나고 있다. <편집자 주>

    지난해 맨 처음 도착한 여강의 공사 현장에서 본 풍경이 악몽처럼 떠오르곤 한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모습은 그 후 보게 될 것들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었다. 그날 나도 모르게 속으로 외쳤다.

    강.이.아.니.라.공.동.묘.지.잖.아.

    파헤친 모래와 나무들이 쌓여 있는 공동묘지. 4대강 공사현장을 기록하겠다고 길을 나선 첫날, 나는 개발주의자들이 강 살리기의 이름으로, 녹색성장의 이름으로 하는 일이 강의 묘역 조성 사업이란 걸 깨달았다.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도착하는 강변마다 강은 수술대 위에 놓여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수술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강의 숨통을 끊기 위한 것이었다.

       
      ▲<땅>의 한 장면. 

    황폐하고 황량했다. 지난 달 후속 답사를 떠났을 때도 그 말 외에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러한 풍경을 보고 온 후면 한동안 머릿속이 텅 빈 듯 멍했다. 실감으로 다가오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흘러야 했다.나는 4대강을 답사한 후 르포집 『흐르는 강물처럼-우리 곁을 떠난 강,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레디앙)을 펴냈고, 4대강 공사는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전국의 강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 헤아리기 전에 ‘친수구역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지류 지천 정비 사업이 발표되었다. 이 무서운 속도의 질주는 급기야 오는 10월에 열릴 4대강 살리기 준공 기념 축제 준비 단계에 이르렀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4대강 옴니버스 영화 <강, 원래>를 다시 감상했다. <강, 원래> 프로젝트의 미디어 활동가들은 나와 달리 영상의 기록자로 4대강으로 떠났다.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몇 명의 영상 작가들이 강에 상주하고 있었고, 믿기 힘든 거대한 개발 사업의 참상과 실체를 확인하고 고발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지난해 강가에서 나는 그들을 우연히 만나기도 했다. 『땅』을 만든 강세진 감독과 만난 곳은 영주댐 건설로 수몰예정지가 된 금강마을이었다. 그는 2010년 4월부터 마을 빈집을 빌려 상주하고 있었다. 짧은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그는 1년을 작업했고, 마침내 『땅』이라는 영화를 완성했다.

    땅과 부동산

    『땅』의 주인공은 장진수(영주댐 대책위원회 총무) 씨다. 그의 고향인 금강 마을은 37가구가 쫓겨날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는 그의 어머니가 가꾼 생강밭에서 일손을 보태며 얘기를 나누었다.

    나와 동년배인 그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도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퇴근 후엔 별도의 개인 사업을 하는 사업가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서울의 집을 두고 금강마을에 내려온 것은 순전히 4대강 공사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영주댐 건설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땅을 잃는 것보다, 마을 어른들이 삶의 터전을 잃는 것을 더 안타까워했다. 금강마을의 수몰민들은 어떤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일까? 평생 농사를 일구며 살아온 일흔 여든 살의 노인들은 고향 땅에서 쫓겨나야 한다. 그리고 물 설은 도시로 이주해 자식의 눈치를 보고 허드렛일을 하며 지낼 것이다.

    영화를 본 후 안부를 물었을 때 진수 씨는 지금도 마을 어른들이 이주 후의 삶에 대한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전해주었다.

    “저보다도 어른들이 어려우시죠. 갑자기 수몰민 신세가 되는 게 이분들에게는 굉장한 정신적인 충격이었어요.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고 싶어하시죠. 어른들이 이주한 곳에서 적응하는 데 일이 년 걸리는 게 아니에요. 수년, 수십 년 걸리는 일이고, 고향 떠난 분들은 얼마 못 사시거든요.”

       
      ▲<땅>의 한 장면. 

    지난해 진수 씨를 만날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가 수자원공사를 상대로 한 고된 싸움이 있는 금강마을에서 얼마나 더 머물지 알 수 없었다. 그후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영화를 보면서 알 수 있었다.

    진수 씨네 논은 내성천 옆 영주댐 공사 부지 안에 있다. 수자원공사는 금강마을 내성천변 땅과 함께 진수씨네 논 천오백 평가량에 대한 수용 절차에 들어갔다. 영주댐 공사장 부지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진수 씨가 땅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보리 씨를 파종하는 일이었다. 그는 지난 해 11월 보리씨를 뿌렸다. 외지의 일로 일주일 동안 그가 마을을 떠나 있을 때 수자원공사는 그의 논을 모두 포클레인으로 파헤치고 씨앗을 흙으로 메워버렸다. 씨앗을 없앤 것이다. 이날 밤 술에 취한 진수 씨는 말했다.

    “이제 정말 못 참겠다. 농민? 정말 우스운 거야. 나 진짜 멍해. 이건 우리 삶이 아니야. 모든 걸 송두리째 없애고 있어. 우리 삶이 완전히 뒤바뀌고 있어. 전쟁이 나고 폭격을 맞아 잿더미가 된 것 같아. 정말 아파. 씨발, 좆 같다.”

    그는 당시의 심정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정말 황당했죠.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있구나. 제가 생각하는 상식에서 너무 벗어나는 일이니까요. 너무 일방적이고, 아무런 합리성도 없고.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비정한 모습을 많이 보고 겪었지만, 이런 경우는 없었거든요. 힘없는 시골사람들이니까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겁니까?”

    이 영화는 ‘땅’에 가하는 개발의 폭력과 그 앞에 놓인 한 인간의 고통에 주목하고 있다. 고통은 포클레인에 의해 파종한 보리 씨앗이 메워지면서 정점에 이른다.

    이 작품에서 보다시피 개발의 목적 앞에서 농민들의 땅은 언제든 강제로 빼앗을 수 있다. 금강마을뿐 아니라 4대강 전역에서 많은 농민들이 오랜 세월 일궈온 땅을 빼앗겼다. 심지어 수확을 앞둔 논을 포클레인으로 파헤친 후 빼앗은 곳도 있었다.

    강의 양안 2킬로미터를 개발할 수 있게 만든 친수구역특별법을 통해 드러나듯 4대강 사업의 목적 중 하나는 땅을, 자연을 부동산화하는 것이다. 최근 10여 년 사이에 부동산이란 말처럼 우리들에게 친숙해진 단어도 드물 것이다. 농민들에게 땅은 삶의 터전이지만 도시인들에게 땅은 부동산이다.

    농민들에게 땅이 생명의 먹거리를 키우는 ‘생명의 자궁’이라면, 개발주의자들에겐 재산 증식의 수단인 ‘부동산’일 따름이다.

    왠지 답답하고, 슬프고, 기분이 되게 안 좋고, 우울한 것

    4대강 사업이 남긴 가장 아름답고 충격적인 예술작품은 <비포 앤 에프터>-그 사진들을 ‘아름답다’고, ‘작품’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포 앤 에프터>는 4대강 공사의 실체를, 이 땅의 강 전역에서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공사 ‘이전’과 ‘이후’의 사진에 담아 보여주고 있다.

    <비포 앤 에프터>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고발이라기보다 어떤 ‘부름’을 담은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뛰어난 예술작품을 만났을 때 느낀 감동-이것을 ‘감동’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그대로였다. 그래서 나는 많은 이들이 그 부름에 답할 줄 알았다.

    옴니버스 영화 <강, 원래>의 작품 중 『강에서』(이동렬 감독)는 <비포 앤 에프터>의 구성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강은수 어린이의 목소리와 나래이션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여강의 풍경과 공사 후 황폐해진 남한강변이 한 장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겨 흐른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은수는 여주에서 여강과 함께 자란 아이다. 아빠가 출퇴근하는 길도, 은수의 등하굣길도 여강을 가로질러간다. 은수는 억새꽃이 핀 여강변의 자갈길을 걸었고, 여울소리를 들었고, 뗏목을 타고 강에서 놀며 자랐다. 은수가 본 여강은 내가 본 여강과 다르지 않다.

       
      ▲여강에서 자란 은수. 

    “모래가 아주 아주 부드러운 애들이 있어서 신발을 벗고 뛰어놀 수도 있고, 가을이면 아름다운 물억새가 있는 너무도 아름답고 감동적인 자갈길에요.”

    그러나 지난해 여강길의 물억새는 사라졌고, 버드나무도 사라졌다. 등하굣길에서 공사장이 된 이포보를 본 은수는 이렇게 말한다.

    “망가진 데를 가봤어요. 매일 보는데 너무 잔인하다고 할까? 강을 달리는 트럭과 포클레인으로 쌓인 모래를 보면 왠지 답답하고, 슬프고, 기분이 되게 안 좋아요. 우울해요.”

    ‘왠지 답답하고, 슬프고, 기분이 되게 안 좋고, 우울한 것’.
    그렇다. 이것이 아이들의 시선으로 본 4대강 사업이다. 『강에서』를 보면서 나는 한 편의 시를 떠올렸다. 내성천과 낙동강을 답사한 <곶자왈 작은학교> 오정민 어린이가 쓴 「대답」이란 제목의 시다.

    내성천에서 강을 불러본다.
    “강아, 안녕?”
    그러자 강이 ‘졸졸’ ‘쪼르르’ 대답한다.

    낙동강 중류에서 강을 불러본다.
    “강아, 안녕?”
    그런데 이번에는 대답 대신
    ‘드드드’ 공사 소리만 난다.

    강이 많이 아픈가 보다.
    “강아, 많이 아프니?”
    나는 강이 다 낫고 안 아프다고 할 때까지
    꼭 기다려 볼 것이다.

    <비포 앤 애프터>를 한 편의 시로 옮겨놓은 듯한 작품이다. 곧 공사가 완료되는 낙동강이 after이고, 머잖아 공사가 시작될 내성천이 before이다.

    오정민 어린이의 시도, 『강에서』의 영상도 어떤 ‘부름’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아이가 지은 시의 제목이 왜 ‘대답’일까? 강에 빚지고 사는 우리는 ‘대답’해야 한다. “드드드 공사소리”를 미래에까지 들려주는 것이 우리들의 ‘대답’은 아닐 것이다.

    <江, 원래> 공동체 상영 신청하세요!

    4대강 옴니버스 영화 ‘강, 원래‘를 관람하고 싶나요?
    ‘강 원래’는 4대강의 실체를 알고 싶은 어른은 물론, 학생들과 어린이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강 원래’는 공동체 상영을 통해 관객들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다음 까페(http://cafe.daum.net/free4river)의 ‘공동체 상영신청란’에 연락처와 함께 글을 남겨 주세요. 상영료는 받지 않지만, 적극적인 후원은 환영합니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209701-04-308799 이하연(강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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