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핵 실험장 일본, 내년에 탈핵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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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12일 11: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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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로시마는 반핵의 성지다. 1945년 8월 6일 아침 떨어진 핵폭탄의 유적으로 지금도 뼈대를 유지하고 있는 원폭돔 정도 말고는 도심부 모두가 그 이후 재건된 것이다. 핵폭탄 ‘리틀보이’가 6백미터 상공에서 폭파한 바로 그 아래 폭심지(hypocenter) 근처는 평화기념공원으로 조성되어 그날의 끔찍한 기억과 성찰을 전해준다.

    기억과 성찰

    평화기념공원 한 켠에 종이학을 이고 있는 사다코의 조상은 일본인들에게 원폭 희생자의 상징이다. 바로 그날, 4살의 나이로 피폭당한 사다코는 10년 후 후유증으로 백혈병을 얻게 되었다. 천마리의 학을 접어서 병을 이겨내는 소원을 이루고 싶어했지만 미처 다 접지 못하고 사다코는 세상을 뜨게 되었고, 동료 급우들이 나머지 마리 수를 접어서 채워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래서 공원 곳곳과 평화기념행사 단상에도 일본 각지에서 정성스레 접어온 수만 마리의 종이학 묶음이 즐비했다.

       
      ▲종이학을 이고 있는 사다코상

    그러나 반핵이 다 같은 반핵은 아니었다. 핵무기는 일본인들에게 크나큰 상처와 두려움을 남겼지만, 역설적이게도 전범의 멍에와 핵무기 희생자의 표상 아래서 ‘핵의 평화적 이용’은 경제 재건과 함께 받아들여야 할 가치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바쿠샤’라 불리는 피폭자들 다수와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원수협) 같은 단체는 핵무기 반대에 앞장서면서도 핵발전에 대해서는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비해 우리와 반핵아시아포럼을 함께 한 원수폭금지일본국민회의(원수금, 또는 평화포럼)는 세상의 온갖 핵을 다 없애야 한다는 주장으로 1965년 발족한 단체로, 핵실험과 핵무기 폐지는 물론이고 탈핵발전 사회를 지향해왔다. 원수협과 원수금 두 조직 사이에는 단지 핵발전에 대한 입장 차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상당한 긴장이 흐르고 있어서 히로시마에서의 행사도 별도로 진행했다.

       
      ▲핵발전 폐지 서명운동

    원수금은 중앙 가맹 단체 중 90%가 노동단체일 정도로 상당한 조직력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평화기념공원을 찾은 날에도 노동조합의 젊은 활동가가 땡볕 아래에서 “핵발전 폐지 1천만인 서명”을 받고 있었다. 동행한 방송통신대 백영경 선생님께서, 외국인도 가능하다는 말에 냉큼 서명에 동참한다.

    역시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는 일본 전체 여론이 크게 변화한 만큼 이제 핵무기와 핵발전은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고, 그래서 이곳 집회에서도 히로시마, 나가사키, 후쿠시마, 히바쿠샤의 종결이 함께 외쳐지고 있었다.

    사민당, 공산당 이외 핵 발전소 반대 안해

    어떤 이들은 핵발전 폐지를 묻는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었고, 어떤 이들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와 원폭 돔이 함께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힘만으로는, 그리고 1천만 명의 서명으로도 핵없는 사회가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의 ‘힘있는’ 이들의 입장과 행동을 움직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경우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핵발전의 입장을 조금씩 밝혀왔고, 지난 7월 13일에는 핵발전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낮춰 핵발전 없는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한 탓에 이번 8월 6일 기념식에서도 관련 발언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이날 히로시마 현 시장은 발언을 통해 후쿠시마의 모습과 히로시마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핵발전의 문제를 지적하기는 했지만, 에너지 정책의 재검토 필요성 정도를 이야기하는데 그쳤다. 역시 기업과 주류 정치세력의 압력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간 총리도 전력 수급 조절을 호소하고 있지만 탈핵을 향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아직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이는 일본의 정치세력 중 현재 소수화된 사민당과 공산당 정도 말고는 분명한 핵발전 반대 입장을 가진 정당이 없다는 것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미 일본의 탈핵 실험은 개시되었다. 사고가 난 후쿠시마 핵발전소, 쯔나미에 대한 취약성 지적으로 가동을 중단한 하마오카 핵발전소, 그리고 정기점검에 들어간 발전소들을 포함하여 지금 일본에서 가동되고 있는 핵발전소는 54기 중 겨우 12기에 불과한 상황이다. 폭염 속의 전력 피크 대란을 우려했지만, 그러나 8월 첫 주 일본에서는 동경에서도 또 히로시마에서도 그러한 혼란이나 마비 사태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내년에 원전 모두 멈추자"

    일본 정부가 전력사용 제한령을 통해 요청하기도 했지만 기업과 가계의 전기 절약 동참으로 7월 사용량이 예년의 90%가 못되었고, 도쿄전력 관내의 최대전력 수요로 보면 작년 여름 피크 대비로 20%가 적었다는 것이다.

    핵발전 충당분이 빠져도 에너지 소비 절감과 천연가스 발전 등으로 견딜 수 있다는 점이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여름이 지나봐야 노인, 어린이 등 취약집단에 미치는 스트레스나 에너지 효율화와 대체 수급 가능성에 대한 자세한 평가가 나오겠지만, ‘궁하면 통’하는 현상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반 히대유키 

    8월 5일, 히로시마 YMCA회관에서 열린 국제회의 “탈원자력을 향한 구상력”은 각국 참가자들의 발표로 후쿠시마 사고의 구체적 상황, 핵발전 해외수출의 문제, 독일과 미국 등에서의 탈핵 움직임 등이 공유되었다. 여기서 원자력자료정보실의 반 히데유키 선생은 더 화끈하고 흥미로운 전망을 제시했다.

    일본은 정기점검을 위해 13개월마다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도록 되어 있는데, 내년 봄에는 지금 가동되는 12기도 정기점검을 위해 멈추게 된다.

    그러면 일본의 모든 핵발전소가 가동률 제로가 되는 상황이 온다는 것이다. 봄철은 전력 소비도 낮고 상대적으로 견디기가 쉬운 계절이다.

    이때 핵발전소 없이 견딜 수 있다면 그래서, 물론 다른 보완 조치들을 더해야겠지만, 핵발전소를 그대로 정지시켜두면 곧바로 탈핵 일본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탈핵의 선두주자 독일이 2021년을 예정하고 있는데, 일본은 당장 내년에 탈핵으로 돌입할 기회라는 이야기다.

    "내년 봄 서울에서 만나자"

    과연 그렇게 될까? 하나의 시나리오로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의 반핵운동도 더 힘을 내야 할테고, 정치권과 기업에 대해서도 엄청난 압박이 가해져야 할 것이다.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과감한 시도들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혹독한 더위보다 더욱 가혹한 핵발전소 사고를 겪고 있는 일본이라면,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

       
      ▲원폭돔 앞의 평화촛불들

    8월 6일, 평화기념공원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행진과 함께, 히로시마에서의 엿새간 일정은 끝났다. 대만과 태국,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일본의 참가자들과 헤어지면서 우리는 “내년 봄 서울에서 만나자”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내년 3월 한국에서 있을 핵안보정상회의 일정에 맞추어 한국에서 반핵아시아포럼 2012를 개최하는 게 좋겠다는 것으로 현지의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다시 논의를 하겠지만, 그렇게 될 경우 한국에서는 할 일도 많고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것 같다. 반핵아시아포럼이 한국에서 개최된 2001년(서울, 부산, 울산), 2004년( 부안)도 한국의 반핵운동이 한 걸음씩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년 3월, 일본에서 시작된 탈핵의 봄바람이 한반도로 넘어오게 되기를, 그리고 그것을 손님과 함께 잘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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