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지금 '속도' 논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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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11일 11: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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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작년 5월경으로 기억되는데, 필자가 아직 상해에 머물고 있을 때 아내와 함께 항주를 두 번째 찾은 적이 있다. 얼마 안 있으면 북경으로 이삿짐을 싸서 올라갈 터인데, 그전에 항주의 유명한 서호를 다시 한 번 구경하고 상해와 강남 일대에 대한 좋은 추억을 남겨두기 위해서였다.

    하루를 머문 후 다음날 저녁 우리는 여행으로 조금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항주 역에서 ‘동처'(動車)라고 불리는 시속 200km의 고속열차를 탔다. 당시 개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식 열차였는데, 평소 3시간 걸리던 상해까지의 거리를 단숨에 40분 거리로 단축시켜 놓았다.

    가격도 시외버스에 비해 그리 크게 비싸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부부는 깨끗한 내부 시설에 만족해하면서, 안락한 의자에 폭신히 앉아서 잠깐 이런 저런 얘기하는 사이에 상해에 도착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최근 이런 ‘동처’가 그만 사고를 냈다. 지난 7월23일 폭우가 내릴 무렵 베이징에서 복건성으로 가던 앞차를 항주에서 같은 방향으로 가던 뒤차가 받아 버린 것이다. 그로인해 지금까지 대략 39명이 사망하고 211명이 부상당하는 큰 사고가 났다. 이때부터 중국은 한동안 ‘속도’ 문제에 관한 내부 논란에 휩쓸리게 되었는데, 논쟁은 아직도 계속 진행 중에 있다.

    2.

    대체로 네티즌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불만은 그 같은 일견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느냐는 것이고, 또 사고처리 과정에서 진실보도와 희생자 구출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에 대해 철도부로 대표되는 정부 대응의 문제점으로 집약된다.

       
      ▲사고 현장. 

    이 문제를 일각에선 좀 더 상승시켜 그간 중국의 경제성장 과정 전반에 대한 반성 내지는 ‘의혹’으로까지 제기하려는 시도도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번 7ㆍ23 고속열차 사고가 나기 전에도 개통한 지 얼마 안 된 북경-상해구간 고속철도가 잦은 고장으로 인해 여러 차례 운행이 중단되거나, 또 모 지방의 다리가 허물어지는 등의 공공시설물의 안전사고가 잇달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판은 시민의 안전을 돌보지 않는 ‘성장우선주의’로까지 수위가 높아졌다. 이러한 공세는 주로 ‘웨이버’로 대변되는 중국 인터넷과 핸드폰을 통해서 제기된다.

    비판의 수위가 점점 높아져 감에 따라 이에 대한 주류 언론의 반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철도부가 그간 장기간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과정에서 누적된 부패문제, 고속철도 운행관리에 있어서의 기술적 문제와 사고 사후 처리에 있어 인명구제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점 등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철저히 개선해야 할 사항이지만, 이 때문에 최근 고속철도개발이 가져온 긍정적인 사회적 의의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사건이 ‘중국 고속성장 모델의 필연성’이니 하면서 그간의 성장 성과에 대한 전반적 문제 제기로까지 상승시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는 것이다. 이 논쟁은 제법 치열하다. 대표적인 관방사이트이면서 광범위한 이용자층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런민왕'(人民網)의 ‘관점’이라는 고정칼럼 란을 보면, 다소 주류 쪽 의견이 우세를 점하는 가운데서도 계속해서 상이한 양방 견해를 대표하는 글들이 번갈아 오르내리고 있다. 이는 현재 중국사회의 이 문제에 대한 상당한 관심 정도를 말해준다.

    3.

    어느 때 부터인지 중국문제는 곧 ‘세계적인’ 문제가 되었다. 이는 근본적으론 중국의 그간 성장한 국력과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화제가 되는 것은 어떤 좋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이다. 사실 양자는 걸맞지 않다.

    사건이 많고 문제가 그렇게도 많은 나라가 계속해서 장기간 성장하면서 국제사회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든 한국의 언론이나 다른 서구의 언론들은 문제를 이런 식으로 다루는 데 이미 상당히 익숙해 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고속철도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갖가지 글들이 한국의 언론매체에 소개되었는데, 이전과 마찬가지로 중국정부의 부정부패, 사건 축소, 공산당의 언론통제, 중국 인민의 폭발 직전의 분노……등등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바쁘다.

    이런 논조의 글들은 한국에 있는 분들만 쓰는 것이 아니라 중국 현지에 있는 특파원과 유학생 등으로 부터도 올라온다. 필자는 이들이 진실의 일부분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또한 중국 현지에서 이 사회를 비교적 장기간 관찰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필자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상당이 많이 있다.

    우선 사건 보도와 관련된 부분을 말하자면, 인터넷 사이트와 웨이버 그리고 신문매체를 통해 양방이 치열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것 자체가 한국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는 ‘언론이 통제된’ 중국사회의 일반 상식과는 다른 모습임을 의미한다.

    또 일반 대중들에게 있어선 여전히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TV에서도 이 뉴스는 사고 당일부터 시작해서 일주일 넘게 현장보도를 집중하였다. 그것도 시청률이 가장 높고 중국 TV을 공식 대변한다는 CCTV 1채널을 통해서 말이다.

    필자는 아침과 저녁 식사 시간대가 마침 이 채널의 아침뉴스와 저녁뉴스 시간대에 맞추어져 있어서 자연스럽게 전 과정을 거의 매일같이 시청한다. (이 두 뉴스 시간대는 시청률이 높은 중요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 때문에 이들이 무엇을 다루고 중국정부가 현재 어떤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대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7ㆍ23 온조우 고속열차 사고가 난 후 특히 아침시간대의 CCTV 1채널의 뉴스 시간대(오전7시~8시30분)는 매우 자세히 사건현장 보도와 정부의 사고 처리와 관련한 것들을 집중해서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매스컴에 올라온 글들은 정부가 언론이 가능한 사건보도를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말이 맞는 것인가? 필자가 목격한 것은 사고가 난 다음날 바로 중앙정부의 국무원 부총리격인 사람이 현지 사고대책 책임자로 현장에 나타났으며, 24시간 만에 상해 철도국장 등 3명이 해임되었다.

    그리고 닷새 후엔 병색이 있는 온자바오 총리가 직접 현지를 방문해서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했다. 이것은 필자가 느끼기엔 정상적인 사건처리 과정이고 나름대로 정부와 언론이 사건처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들이 한국의 언론매체에 오를 때는 정부와 철도부가 사건을 신속히 축소 마무리하기 위해서 하루 만에 중앙정부 관리자 파견과 책임자 문책을 한 것이 되고, 병색을 핑계 대던 온자바오는 여론이 높아지자 닷새 만에 할 수없이 현장에 나타난 것으로 된다. 정말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이 같은 사건처리에 있어 이보다 더 얼마나 잘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4.

    중국은 겉보기와는 달리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이다. 이 점은 이성 있는 독자라면 필자의 글의 행간을 조금만 주의 깊게 보아도 짐작이 갈 것이다. 인터넷 사이트는 종합사이트만 하더라도 수도 없이 많고 내부의 정보량은 그야말로 홍수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웨이버라는 한국의 트위터와 같은 인터넷과 휴대폰을 연결한 새로운 통신매체가 나타나서 사회 일각의 여론형성을 주도 하고 있다. 이렇듯 중국을 전체적으로 개관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필자는 TV외에 별도로 <환구시보>와 경제전문지 두 개를 상당한 시간을 투여해 가며 매일같이 구독해 보고 인터넷 동향에도 별도의 신경을 쓰지만, 그럼에도 아직 필요한 정보량의 소화에는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을 항상 깨닫게 된다.

    한국에 있는 집필자들이나 이곳 중국에 와서 기고하는 다른 한국인들도 아마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들은 필자가 너무 ‘주류 매체’에만 신경 쓰고 웨이보 등의 비주류 매체는 등한히 한다는 비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주류 매체’의 넘쳐나는 정보량도 소화하기 힘든 실정이다.

    여기서 누구의 정보가 정확한지 세세하게 따지는 것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별반 흥미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정말 중요한 일은 7ㆍ23 고속열차 사고가 갖는 진정한 의미를 잘 새기는 일이다. 현재 중국은 세계 제일의 고속철도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 사건은 그 과정에서 생긴 일이다.

    사건 후 중국 정부가 밝혔듯이 애초 2만km 고속철도 부설계획이 이 사건으로 인해 결코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며, 때문에 향후 중국이 가장 빠른 내륙운수 능력을 가진 나라로 변신하는 것을 막을 장애물은 지금 없다.

    이번 사건은 다만 이 계획을 추진하는데 있어 그동안 소홀히 했던 점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시급히 이를 보완할 것을 일깨워주었다는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시속 300km라는 ‘속도’에 걸맞는 ‘관리 능력’의 정비이다.

    300km 고속운행은 조그마한 오차일지라도 큰 사고를 부를 수 있기에, 이에 대비한 정밀하고 고도화한 사회 전반의 관리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 ‘관리 능력’은 철도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며 중국사회 전반에 대한 요구이다.

    예컨대 중국은 총 45,000개에 이르는 고속철도 부품의 국내 생산을 위한 산업체계들이 이미 상 부분 형성되어 가고 있는 중에 있는데, 이들 납품회사의 부품들 하나하나에 하자가 생기지 않도록 품질관리체계가 보강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납품회사의 입찰 단계에서부터 철저한 경쟁 입찰의 공정성이 확보되어야만 한다.

    만약 사고가 났을 경우에 대비한 응급복구 시스템의 마련과 사건보도와 보상 그리고 책임문책 시스템까지 이 모두가 ‘관리 능력’ 제고 안에 포함된다. 이리하여 전국을 뒤덮는 ‘300km 속도’에 맞는 관리체계가 갖추어졌을 때는 중국도 이미 상당히 변모한 사회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지난 2003년 ‘사스’가 유행했을 때도 이번과 비슷한 사회위기 관리 능력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중국 정부는 그 때도 당시 드러났던 문제점들을 계기로 삼아 정보공개화와 위기관리 시스템의 정비, 공공의료 체계정비 등에 있어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던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 성과가 2008년 사천성 대지진 때의 신속한 대처와 복구 능력으로 나타났다. 아마 이번 고속철도 사고도 중국은 마찬가지로 자신의 선진사회로 가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그것은 지난 개혁개방의 30여 년의 역사 자체가 수많은 도전과 이에 대한 응전의 과정으로 얼룩져왔다는 점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한국의 독자들이 명심해야 할 점은 바로 이 점이다. 중국은 고속철도 외에도 전기차, 풍력과 태양열 등 신 녹색 재생에너지의 이용, 해저탐험,우주 및 항공산업, 슈퍼컴퓨터 등 이미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한국을 저만치 제치고 앞서 가고 있으며, 인재육성 면에서도 매년 수백만 명의 이공계 국내 졸업생들 외에 미국과 서유럽의 8만 명의 해외박사급 실험실 연구원들이 중국을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한국의 언론들은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자신을 되돌아보기보다는, 사건의 지엽적인 문제에만 매달리며 스스로 점점 낙후되고 있는 처지를 안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새겨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진보진영의 인사들은 중국이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결합하면서 조만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으로 나아가고 있는 국제정세의 추이를 잘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추세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진보진영은 이번 7ㆍ23고속열차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평소의 전략적 안목을 보완해 나가는 것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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