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일하다간 정말 죽을 거 같다"
    2011년 08월 11일 10: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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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찬 기운을 뚫고 전화벨이 울렸다. 지역의 금속노동조합의 한 간부의 전화였다. ‘이렇게 일찍 전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하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았다. 약간의 불안감이 졸음을 몰아냈다. 아침부터 미안하다며 인사를 건넨 그는 유성기업 영동공장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2007년 11월의 일이었다.

교대근무가 위험하다

새벽에 자다가 발견되어 병원 도착 전에 사망했다고 한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다. 순간 멍해졌다. 만 27살. 나보다도 어린 노동자였다. 이미 결혼을 해서 부인도 있고 아이도 둘이나 된다고 했다. 둘째는 이제 돌이 얼마 안 남았다고 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착한 친구라고 했다. 마음 한 구석이 찌릿했다.

멍해지는 마음과는 별개로 머리를 굴렸다. 젊은 남성의 급사(急死). 가장 흔한 원인은 급성심근경색이지만 원인 미상으로 미궁에 빠질 것 같았다. 일단 유족을 챙기라고 했다. 정신적 충격이 어마어마하게 클 그녀를 보듬고 이 사태를 잘 헤쳐 나갈 수 있게 주변 사람들이 도와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검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라고 했다. 사망 원인이 미상이 되어버리면 이 사건 역시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서였다. 일단 이것부터 챙기라고 하고 다시 통화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교대근무를 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심혈관계 질환의 발생 위험이 40% 증가, 사무직 노동자에 비해 2교대하는 생산직 노동자의 관상동맥 질환 발생 위험 1.9배, 일본에서 낮 근무 군에 비해 교대근무 군의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비가 2.3배다.

또 하루 11시간 이상 일하면 심근경색의 발생 위험비가 2.3배, 월 휴일이 2일 미만인 경우 급성심근경색 발생 위험비가 2.9배, 발생 직전 한 달간 60시간 이상 일한 경우 급성심근경색의 위험비가 1.9배. 여러 가지 연구 결과들이 머리를 스쳤다.

   
  ▲농성을 이어가는 유성기업 노조 조합원들이 함께 준비한 저녁 식사를 나누고 있다.(사진=미디어오늘)

먼저 죽은 이들에 대한 미안함

사망한 노동자는 산재 환자였다. 발목 부상으로 산재 요양을 하고 복귀했는데 발목이 부실한 상태로 일을 하다 보니 무릎이 아팠다. 근로복지공단에 재요양 신청을 했는데 거절당했고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그 부서에 또 다른 재해자가 생겨서 4명이 하던 일을 3명이 해야 했다.

연장근무, 야간근무 그리고 휴일근무까지 고된 시간이 지속되었다. 부실한 무릎으로 일을 해야 했던 노동자는 탈모증과 피곤을 호소하다 사망한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노동조합은 일주일 최대 잔업시간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하다간 정말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명이 또 죽었다. 우울증이라고도 했고, 돌연사라고도 했고, 뇌출혈이라고도 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이 더운 날씨와 폭우 속에서도 공장 앞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마도 먼저 죽은 이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잔업과 특근을 해가며 그저 중학생 아들의 학원비를 벌었던, 대학 다니는 자식의 등록금 때문에라도 계속 회사를 다녀야 한다던, 평생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이 기계 만지는 것뿐이라던, 오래된 기계가 말썽을 부려도 그 동안의 내공으로 해결할 수 있다던, 모래가 엄청나게 날리는 그 공장에서 물 한잔 마시며 웃던, 그 선한 눈빛의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앉은 이유가 말이다.

그저 기계가 아니니까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했다. 일하느라 소홀했던 가족들에게 인간 구실 좀 하면서 주변도 좀 돌아보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모래랑 쇳가루가 풀풀 날리는 작업장에서 조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집에서 자고 싶다고 했다. 그들이 폭도가 됐다. 아니, 폭도로 만들어졌다.

자동차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그런 순진한 요구는 묵살했고 용역들을 동원에 차량으로 위협했고 경찰들이 그들을 끌어냈다. 그냥 이젠 좀 인간답게 살고 싶다던 그들이 공장에서 쫓겨났다. 돌아간다고 하는데 받아주지도 않는다. 고혈압을 앓던 지회장이 단식을 했고 당뇨가 심한 한 나이든 노동자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동료를 생각하며 단식을 했다. 공장 앞에 비닐하우스를 빌려서 버티고 있다. 다들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하니 버티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 ‘이젠 좀 살자’던 노동자들의 외침은 폭우와 더위 속을 맴돌고 있다.

자동차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사람 목숨이 제일 중요하다고 배웠다. 하루에도 수천 대씩 쏟아지고 몇 달마다 디자인이 바뀌는 차보다 그걸 만드는 사람들이 더 중요한 거 아닌가? 그냥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살았으면 좋겠다. 지리산 내려가다 휴게소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집에서 기른 거라며 신문지로 싼 커다란 배를 건네던, 웃음이 환하고 눈빛이 착한 영동공장 사무장을 맡고 있는 그 노동자가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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