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간 반핵 투쟁 중인 사람들
By
    2011년 08월 09일 03:36 오후

Print Friendly

지난 8월 2일부터 6일간 잠시 일본을 다녀왔다. ‘반핵아시아포럼(No Nukes Asia Forum, NNAF) 2011’에 참석하고 뭔가 배워오기 위해서다. 1992년에 반핵운동의 한일연대와 아시아연대의 성과를 계승하고자 김원식 선생이 제안하여 만들어진 것이 이 포럼인데, 일본과 한국을 포함하여 아시아 10여개국 활동가들이 매년 1회 모여서 각국의 반핵운동 성과를 공유하고 쟁점과 운동과제를 논의하는 자리다.

올해는 일본의 동경, 후쿠시마, 히로시마 등을 이동하면서 열렸다. 1945년 히로시마 원폭일을 기리는 원수폭금지 세계대회 일정과 결합하여 포럼을 진행한 것이다. 66주년 원수폭금지 세계대회는 7월 31일 후쿠시마부터 동경, 히로시마, 나가사키, 그리고 8월 11일 오키나와까지 행사가 계속된다.

한국에서도 매년 여러 활동가들이 참여하며, 이번에도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에너지정의행동, 참여연대, 사회진보연대 등에서 낯익은 분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필자는 한국의 일들로 인해 히로시마 행사에만 참여한 것이 아쉬웠지만 닷새의 일정만해도 제법 빡빡한 것이었다.

일본행은 공항에서부터 약간의 긴장을 불러왔다. 여행자보험을 가입하려 하니 일본 어디로 가느냐고 확인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동경 쪽 여정은 여행자보험이 안된다는 것이다. 며칠 전 후쿠시마 현민 집회와 동경 행사에 참석했던 이들은 사소하게 먹고 입는 것들까지 방사능 피폭의 위험을 감내해야하는 동일본 주민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전해주었다.

그러나 히로시마 근처는 일단 ‘안전지대’다. 그리고 일기예보와는 달리 날씨도 맑고 거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이 곳에서도 치열하게 투쟁하는 이들이 있었다. 핵발전소 건설 반대 투쟁을 무려 29년간 벌여온 이와이시마 어민들의 이야기다.

   
  ▲이와이시마 섬. 

히로시마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다시 배를 타고 40여 분 걸려 도착한 곳은 야마구치현 카미노세키의 이와이시마(祝島)라는 작은 섬이다. 현재 인구는 570명, 65세 이상 인구가 70%이고 초등학생은 딱 세 명이다. 둘레가 12.7km에 불과하지만 투명한 바닷물에 해산물이 풍성하고 비파귤 산지로도 유명하여, 이름 그대로 ‘축복받은 섬’이다.

그런데 이 섬에 한국의 안면도, 굴업도, 위도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것은 1982년이다. 일본 정부와 주고쿠(中國) 전력이 이와이시마에서 4km 앞에 있는 나가시마의 타노우라에 137만kW급의 가미노세키 원자력발전소 1, 2호기를 짓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천혜의 자연과 삶이 위험에 처하게 되자 나이든 어민들의 싸움이 곧 시작되었다. 날씨가 어떻든 매주 월요일 정기 반대집회를 1천 번이 넘게 진행했고, 건설사 젊은 직원들 앞에 몸을 던지고 공사를 하러 온 선박 앞으로 작은 어선들이 돌진하는 투쟁도 불사했다.

   
  ▲핵발전소 건설 반대 투쟁. 

주민 대표는 이 ‘징한’ 투쟁 경과를 담담히 설명했지만, 이 곳에서도 보상금을 미끼로 한 회유는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인근의 8개 어협 중 나머지 7개 어협은 모두 보상금을 받아들였지만 이와이시마 주민들은 주고쿠전력이 제안한 10억 엔(150억 원)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잠시 만질 수 있는 돈보다는 수천 년을 이어온 그리고 미래까지 이어져야 할 삶과 자연이 훨씬 중요하다는 ‘착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익숙한 주민간 대립과 분열공작이 먹히지 않았던 것은, 섬의 가구들이 유일한 항구 주변으로 무척이나 밀집되어 있고 가구들끼리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높은 공동체성 탓도 있을 터다.

주고쿠전력은 관내에서 핵발전소 증설이 가능한 마지막 부지로 가미노세키를 꼽았고, 2009년 매립공사까지 어찌어찌 시작했지만 주민들의 강력한 저지로 제대로 진척될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가미노세키도 후쿠시마 사고의 영향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주민들이 배를 태워 우리를 안내한 핵발전소 예정부지에는 기반공사를 하다 만 시설물과 컨테이너 건물 몇 개만이 덩그라니 놓여있었다. 하지만 주고쿠전력이 공사 포기를 공식 선언한 것은 아니다. 주민들은 앞으로 몇 년간은 움직임이 없겠지만, 후쿠시마 사고가 잊혀지고 정권이 바뀌면 다시 공사가 추진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반핵운동의 기억과 경험을 가진 자신들이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공사 계획의 완전 취소를 받아내야 한다고 결의를 다진다.

   
  ▲공사 현장.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이와이시마 100%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다. 목숨을 걸고 핵발전소 반대를 외쳤지만 자신들도 다른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를 사용하는 게 아니냐는 문제의식에서다. 태양광패널, 풍력터빈, 태양열온수기, 바이오매스 등을 활용하여 10년 후엔 에너지 자급률 100%를 달성하겠다며 “이와이시마를 위한 1%” 기부 캠페인을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한국의 부안에서도 2004년 방폐장 저지투쟁에 나선 사람들이 가장 아프게 들었던 말이, “그래서 너희들은 전기 안 쓰고 사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활동가들이 시작한 것이 부안 지역의 에너지 자립마을 만들기와 유채혁명의 실험이었다. 반핵의 절실함과 대안의 귀결점은 두 나라의 두 지역이 너무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8월 6일 오전, 히로시마 평화 기념대회에 모인 포럼 참가자들은 “노 모어 히로시마, 노 모어 후쿠시마”를 외치며 평화기념공원을 나서서 시위에 나섰다. 행진의 종착점은 인근에 있는 주고쿠전력 본사. 건물 셔터는 굳게 내려져 있었지만 항의 표시는 확실히 하고 가야 한다.

   
  ▲발언 중인 필자. 

각 국에서 한 명씩 발언하라는 주문에 마이크가 내게로 왔다. “전력기업이 이윤을 좇아 생명과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세계 어디나 똑같다. 그러나 후쿠시마 이후 우리는 안전한 핵도, 경제적인 핵도, 좋은 핵도 없다는 것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그러면서 이와이시마의 29년 투쟁이 내게 준 인상은 자연스럽게 “스고이데스네(굉장해요)!”라며, 몇 개 안되는 아는 일본말을 연발케했다.

그러나 내가 후쿠시마 주민들과 이와이시마 어민들에게 격려할 말이 뭐가 있겠는가. 나는 오히려, 그리고 당연하게도 신규 핵발전소 부지 반대투쟁을 힘겹게 모아가고 있는 삼척, 울진, 영덕의 주민들을 떠올렸다.

“지금 한국에도 외롭게 반핵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이 있다. 한국에 가면 이와이시마의 이야기를 전하겠다, 그리고 삼척, 울진, 영덕의 투쟁이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짧은 어학 실력 덕분에 발언은 짧게 끝났다. 신규 핵발전소 저지 투쟁도 짧게 끝나면 좋으련만, 우리도 한 29년은 싸울 각오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여튼 징하게 싸워야 하고, 단합하여 싸워야 이긴다. 세계 어디나 그럴 것이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