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성욕(♂)의 노예=압구정 프리덤그들은 몸값 제시하며 계약을 원했다
        2011년 08월 08일 02: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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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각또각. 첫 출근길. 강남역에 내리는 순간 시선을 사로잡는 건 석고상처럼 도도하고 창백한 강남 미녀들. 강남 부자들은 불룩한 주머니를 자랑스럽게 밖으로 내밀며 석고상 경매에 나선다.

    “얼마, 넌 얼마면 돼?” 타닥타닥, 어디선가 여자들의 몸값을 계산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러면 또 어디선가 ‘똑’하며 꽃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고급 양복의 가슴 속으로 추락하는 꽃, 꽃뱀, 蛇, 죽음. 쉿! ‘똑’ 소리 나는 강남 여자라면 마땅히 강남 부자의 품에서 자신을 죽여라.

    강남 여자들 사이에 불멸하는 명언이 있다. ‘똑똑한 여자보단 예쁜 여자, 예쁜 여자보단 남편 잘 만나는(부자 남편 만나는) 여자가 최고’라는. 그와 비슷하게 남자들에겐 이런 명언이 있고. ‘한 등급 올라갈 때마다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라는.

      ▲강남역 부근 모습. 

    지난번에 필자가 ‘진보, 야!’에 올렸던, ‘사랑의 증거를 돈으로 보여라’라는 글에서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나야말로 여느 강남 여자 못지않게 돈 좋아한다. 뻔뻔하게 계좌번호를 들이밀었을 만큼, 나는 돈이, 그것이 정말 필요하다. 그런 내 속내를 강남 부자들이 알아챘는지, 지난 몇 달 간 나를 노리는 사냥꾼들이 내게 들러붙었었다.

    하마터면 성공한 강남 여자의 케이스가 될 뻔했던 그 충격 실화들을 여기에 고백한다. 분명, 나에겐 영광스럽지 못한 상처들이지만, 우습게도 누군가에게는 자랑처럼 들릴 거라는 사실이 내 가슴을 쑤신다. 이 글을 읽는 내내 당신이 남자라면, 혹시 이 글 속에 나오는 사내들이 부럽지는 않으신지, 당신이 여자라면, 혹시 이 이야기들 속의 내가 부럽지는 않으신지 마음에 손을 얹고 체크해 보시길. 부러우면 지는 거다. 뭐에? 저기 위에 쓴 불멸의 명언들에게.

    #사례 1.

    내 첫 회사(토플학원)는 강남이었다. 강남역 부근의 E**** 토플학원. E학원은 이미 토플시험에서 고득점을 맞았으면서도 ‘향상일로’해서 만점까지 올리려는 영어 귀신 같은 고등학생들이 다니는 학원이었다. 나는 토플 만점이 그렇게 흔한 줄, E학원의 강사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자랑스럽게 만점 성적표를 내던지며 화려한 스펙을 술술 읊어대는 강사들을 볼 때마다 내가 왜 이 학원에 있는 건가, 싶었다. SKY, 잘하면 아이비리그에 어학연수는 기본, 토플에 GRE까지. 그들 사이에서 나는 내놓을 만한 스펙이 단 하.나.도 없었다.

    내가 가진 자랑이라곤 SKY 높은 줄 모르고 덤비는 배짱, 배짱… 으로 무한 소급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학원 원장 정모 씨는 SKY출신의 실력파 강사들을 제치고 나를 강사로 채용했고, 그러고 나서도 계속 추켜세워주면서 나를 띄워주곤 했다. 내 눈빛(째려보는 듯한)과 목소리 톤(화내는 듯한)이 영어 실력보다 훨씬 더 중요한 토플강사의 자질이라면서.

    정 원장 덕분에 나는 여자 강사들 사이에서 거의 왕따였다. 정 원장은 그 학원에서 능력(말발90%)과 재력(!) 그리고 외모(응?)를 갖춘 킹카로 통했는데, 특히 여자 강사들 사이에서는 욘사마(헉!)로 불리며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욘사마 덕분에 왕따가 되었다는 생각에 나는 정 원장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강의실에서 가방을 챙기고 있는 내게 욘사마가 느끼한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시시콜콜한 잡담을 늘어놓더니 갑자기 자기 아이폰을 내밀며 “이 차, 어때?”하고 물었다. 어느 때보다도 욘사마의 어깨에 힘이 실려 있는 게 느껴졌다.

    아마 그 차가 뭔가 대단한 거라도 되는 모양이었는데, 그건 내게는 아무 효력이 없었다. 면허도 아이폰도 없던 내게 아이폰 액정 속에 달리고 있는 느끼하게 생긴 차는 별 흥밋거리가 아니었다. 내게 세상 모든 차는 단 한 가지의 기준으로 평가될 뿐이었다. ‘예쁜 차 vs 안 예쁜 차.’

    사진 속 그 차는 느끼한 은색에 지루한 모양, 한 마디로 딱 욘사마처럼 지루했다. “별로인데요.” 욘사마의 표정은 급 굳어졌고 나를 철없는 어린 애 대하듯 설득하기 시작했다. “차 볼 줄 모르네… 이런 차 한 대쯤, 내가 뽑아줄 수 있어… 오늘 저녁에 우리 집에 가서 영화나 보지 않을래?”

    차? 집? 영화? 평소와 달리 논리도 유머감각도 잃은 욘사마의 설득을 듣고 있자니 짜증이 올라왔다. “아, 별로라고요.” 그날부터 그는 말이 안 통하는 나에게 몸으로 덤비기 시작했다. 아직도 그때 내 어깨나 등 뒤로 그가 감싸오며 풍기던 느끼한 향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몸이 부르르, 떨린다. 이게 내가 강남에서 겪은 최초의 더러운 사건 1이었고, 또각또각, 나는 강남을 떠났다.

    #사례 2.

    그 후 어쩌다 요가 강사가 되어 다시 강남, 압구정 요가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벌써 이번이, 내가 강남에서 겪은 더러운 일 네 번째다. 압구정에서는 아예 대놓고 내 몸 값을 노골적으로 제시하며 계약을 하자고 덤비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는데 그게 벌써 그 이후로 세 번이나 있었던 거다.

    그 몇 달 새에 내 몸값이 많이 올라서, 처음엔 200~300을 부르더니 요즘엔 400~500을 부른다. 그새 오른 나의 몸값에 기쁜 마음을 갖고 이제라도 성형외과를 찾아가 견적을 내고 내 몸 값을 더 올리기 위해 경쟁해야 할까.

    마치 E학원에서 토플 만점을 받기 위해 애쓰는 그 학생들처럼? 잘생긴 강남 재벌 2세와의 로맨스 드라마 대신, 이제는 중년의 강남 부자와의 스폰이라는 현실적인 꿈을 꾸는 강남 여자가 되면 되는 걸까. 아니, 나는 결코 이 구정물빛 드라마의 주연이 되고 싶지 않다. 강남은 기분 나쁜 곳이다.

    내가 걸어갈 때마다 내 나이, 내 얼굴, 내 몸, 내 신발과 가방에 옷까지 그 모든 것에 숫자가 붙고 값이 매겨지는. 거리를 걸을 때마다 나를 보는 남자들의 머릿속에서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내 몸의 경매가를 최고로 쳐준 한 남자가 있었다. 바로 유부남(가명, 33세, 남)씨.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위치한 성형외과 D를 운영 중인 성형외과의 유부남 씨는 평소 사는 게 재미가 없었단다. 그래서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내게 케이크를 선물하는 ‘너무 너무 재미있어서 웃음밖에 안 나는’ 방식으로 접근했나보다.

    젊고 예쁜 부인도 있지만, 인생 한 번 뿐인데, 정말 마음에 드는 여자를 한 번 만나고 싶었단다. 그렇게 정말 마음에 드는 여자는 1년에 몇 명씩 바뀌나 보다(한 여자와 일 년씩 계약하는 걸 보면). 그는 평소 성형외과에 상담 온 여자에게 그랬을 법한 눈길로 빠르게 내 몸과 얼굴을 훑고 견적을 냈다. 그가 차분하게 의사 소견 내듯이 했던 그 말이 쉽게 잊혀 지지 않는다. 그건 흡사 면접 보러 온 예비사원에게 회사가 내거는 조건 같았다.

    “계약 기간은 1년쯤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월급은 생각하시는 것보다 많이, 500 정도 드릴게요. 가로수 길 쪽에 오피스텔이 하나 있으니까 열쇠 받으시고 마음대로 쓰시면 되고요. 전 1주일에 한 번씩만 올 거니까 걱정 말고 편하게 지내세요.

    혹시 해외여행 많이 다니시면 그것도 제가 지원해드릴게요. 가끔 가까운 동남아는 같이 가실 수도 있고요. 원하시면 가게나 그런 거 차리도록 지원도 해드릴 수 있어요. 생각하시는 계획 같은 거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아, 근데 무슨 일 하세요? 혹시, 연예인 지망생이면 성형도 도와드릴 수 있어요. 요즘 보톡스 정도는 누구나 하잖아요.”

    감정 기복이 알루미늄 비열을 능가하는 나는 금방 분이 끓어올라 소리를 질렀다. “저 그런 여자 아니거든요?! 사람 잘못 보셨어요!”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려서 일하는 요가원에 와서 화의 잔여물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평소 언니 동생하며 친하게 지내는 한 회원(구정숙, 가명, 25세)은 이 사건을 듣더니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언니! 좋겠다.” 그녀의 첫 마디는 그랬다. “대박이에요, 대박! 언니가 그만큼 매력 있고 예쁘니까 그런 제안을 받는 거예요. 언니, 몸 값 더 키워서 꼭 대박 잡아요!” 나는 차마 황당해서 아무 말도 못했다.

    나도 돈에 껌뻑 죽지만 구 씨나 유부남 씨에 비한다면 내 증상은 경미한 수준이었다. 이들에게 진짜, 돈과 성욕을 뺀 인생은 뭘까, 그런 게 있을까, 궁금했다.

    #사례 3.

    그로부터 1주일 뒤, 우연찮게 또 다른 요가 회원인 성형인 씨(가명, 23세)로부터 그녀가 이미 ‘스폰’을 받고 있다는 놀라운 고백을 들었다. 그녀는 의외로 담담하게 이 사실을 얘기해주었다. 성 씨는 스폰이 정확하고 흔적도 남지 않는 일종의 계약 연애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후원회일 뿐이라는 참으로 ‘쿨’한 생각을 갖고 계셨다.

    쿨 하지 못한 나는 성 씨의 만족도와 스폰남이 제시한 조건들에 대해 꼬치꼬치 조사했다. 성 씨 역시 다달이 300의 ‘월급’을 받으며 서초동에 원룸도 하나 받았다. 올해 스폰남의 후원으로 태국으로 여행도 다녀왔고 장학금(?) 조로 용돈도 간간이 챙겨 받는다고 했다.

    이런 상황들을 나열하면서 성 씨의 표정은 자랑스러움, 딱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뭐가 그리 자랑스러울까? 그녀는 말했다. 자기가 젊고 예쁘니까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자’하는 거라고. 자기는 더 큰 ‘꿈’을 갖고 있는데 그건 바로 얼굴을 더 고쳐서 더 부자를 만나는 거라고. 맞다. 성 씨는 성형중독이다.

    자기 외모를 좀 더 고쳐서 이 부자보다 좀 더 돈이 많은 더 부자를 만나고 싶단다. 이미 지방흡입 다섯 차례, 눈과 코에 안면 윤곽, 보톡스까지 도합 5000만원이 넘는 돈을 성형외과에 갖다 바쳤지만, 더 뼈를 깎아야 한다고. 과연 CD보다 작은 그녀의 얼굴에 더 깎을 뼈가 남아있는지 궁금했다. 또, ‘뼈를 깎는’ 성 씨의 노력으로 ‘뼛속까지 부자’, 즉 모태 강남 재벌을 만나 성 씨의 인생이 행복해질지도 정말 궁금했다.

    또각또각. 다시 출근길, 압구정역에서 내린다. 높은 여자들의 콧날, 높은 여자들의 하이힐, 높고 화려한 빌딩들이 보인다. 압구정에는 왜 저렇게 높은 것들뿐일까. 실상은 너무 낮은 욕망일 뿐인 자신들의 모습을 높고 고귀하게 포장하고 싶은 강남 부자들의 자기 최면을 위한 융비술(隆鼻術)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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