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엔 잠 좀 자겠다는데 왜 짜르나?"
    2011년 08월 08일 09:41 오전

Print Friendly

“우리는 올빼미가 아니랍니다. 밤에는 자고 싶어요.”

밤에는 자고 싶다? 이 인간의 지당한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마치 파렴치범이 된 듯합니다. 자신의 일터에서 쫓겨나고, 용역경비에게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가고, 곡기를 끊어야 하고. 여러분은 기계를 닮은 세상을 원하시나요? 아니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바라시나요? 혹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찾고 싶다면 잠시 귀를 기울여야 할 사람들의 외침이 있습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테러리스트’가 되어버린 유성기업 노동자의 목소리입니다.

다시 외치는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기계는 하루 스물네 시간 삼백예순 날을 쉬지 않고 돌아갈 수 있는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떠들던 ‘인간’이 어찌 기계만도 못하게 밤에 자려고 하느냐! 이 말이 옳다면 여기서 글을 멈추겠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잖아요. 무쇠로 만들어진 로봇이 아니랍니다.

   
  ▲유성기업 노조 투쟁 모습(사진=금속노조 신동준) 

사람은 자연을 닮았습니다. 해가 뜨면 기지개를 펴고 해가 지면 잠에 듭니다. 노동하는 인간을 밝혀주려고 낮에 해가 뜨는 겁니다. 밤에는 지친 노동의 어깨를 달래주려고 별빛이 내려앉고, 잠든 인간을 보듬어 주려고 달이 뜹니다.

낮에는 인간이 자신의 몸 밖의 사물과 소통합니다. 밤에는 밖으로 향했던 인간의 몸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나는 일기를 밤에 씁니다. 세상으로 나가 소통했던 ‘나’를 몸 안으로 들어오게 합니다. 나를 돌아보고 내일을 새롭게 그립니다. 연애편지도 밤에 써야 절절합니다. 이성에 지배받아야 했던 낮의 공간에서 떠오르지 않았던, 몸 안에 충만했던 감성이 비로소 몸 밖으로 분출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밤에 쓴 연애편지를 해가 뜬 아침에 읽는다면, 이성의 지배가 강해져, 우체통에 넣지 못하지요. 부치지 못한 편지 몇 통 쯤 가슴에 품고 평생 애태우고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노동을 할 때는 감성이 앞서서는 안 됩니다. 특히 이성도 감성도, 피도 눈물도 없는 기계와 함께 하는 노동이라면 더더욱 인간의 이성이 집중되어야 합니다. 낮의 노동과 달리 밤의 노동은 부치지 못하는 연애편지처럼 불량품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의 자그마한 소망

주야로 도는 노동은 낮의 노동에 집중할 때보다 생산량도 떨어집니다. 낮의 노동과 같이 밤의 노동에 인간의 이성을 소모하면 몸의 균형이 무너집니다. 야간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여러 질환에 시달리고 돌연사로 생명을 잃는 경우가 많은 까닭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자그마합니다. 밤에는 가족과 함께 잠들고 낮에는 일하자는 지극히 평범한 요구였습니다. 야간노동 일주일을 마치고 퇴근버스를 탔던 동료가 차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유성기업에서 십오년 동안 일한 노동자였습니다. 일어나라고 깨웠는데, 집 앞이니 내려야 한다고 깨웠는데, 일어나지를 않습니다.(말을 잊지 못하고 시간을 거슬러가 굵은 눈물을 흘린다.)

이미 심장이 멎어 있었습니다. 스물여덟 살인 직장 동생도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가서 잠자다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다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심야근무를 없애자, 주간 연속 2교대제로 바꾸자 요구했던 겁니다.”

한여름 햇볕에 새까맣게 탄 한 유성기업 노동자의 말입니다. 요즘처럼 해를 많이 본 적이 없다며 씁쓸하게 웃습니다.

유성기업 노동자의 요구는 ‘밤에는 잠 좀 자자!’ 이전에 ‘죽지 말고 일하자!’가 아닐까요. 기계가 되어버린 노동자의 ‘인간선언’이 아닐까요. 이 당연한 요구가 두들겨 맞아 머리가 함몰되고, 감옥에 가고, 일터에서 쫓겨날 이유가 될까요?

파업 철회 한달, 직장폐쇄는 계속

낮에 일하자는 요구도, 살고 싶다는 절규도 잠시 접었습니다. 일단은 내 한 몸 부서지더라도 가족의 생계가 달린 일터에 돌아가고 싶다고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요구합니다. 회사의 직장폐쇄(2시간 부분파업에 회사는 곧바로 직장폐쇄를 하여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내몰았다)로 뜻하지 않게 길어진 파업을 철회하겠으니 내 사랑스런 아들딸이 끼니 거르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공장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기업의 방어권으로 만들어진 ‘직장폐쇄’가 노동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공격권’이 되었습니다. 파업을 철회한 지가 한 달이 넘었건만 여전히 ‘직장폐쇄’는 계속 됩니다. 부품생산 차질 운운하며 얼토당토 않는 ‘연봉 칠천만원’ 운운하며 노동자를 비난하던 회사가 생산을 하겠다는 노동자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원청기업인 현대자동차가 개입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주장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구매담당 이사의 차량에서 ‘유성기업 불법파업 대응방안’이라는 문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주간 연속 2교대제는 현대, 기아 자동차 노동자의 주된 요구기도 하다.)

유성기업 노동자의 ‘밤에는 자고 싶다’는 요구가 잘못되었다면 그 잘못에 대해 정당한 절차를 거쳐 징계를 하거나 형사처분을 하면 될 겁니다. 이제껏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심야노동을 10년 넘게 했던 이들의 일터를 빼앗아 이제 가족의 생계까지 위협해서야 되겠습니까?

유성기업 대표님께 바랍니다.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는 심정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제발 직장폐쇄를 풀고 거리에서 풍찬노숙 하는 노동자에게 일터를 돌려주십시오. 그건 기업가의 윤리에 앞서 ‘인간, 그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회사는 노동자의 진정성이 의심되어 공장 문을 열지 않는다고 했는데, 진정성은 진정성을 가진 사람만이 볼 수 있습니다.)

노동자를 일터로 돌아가게 하라

시민 여러분께도 바랍니다. 유성기업 노동자의 문제는 노사관계나 노사갈등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의 요구는 ‘인간, 그 최소한의 바람’입니다. 이 요구에 귀를 기울여주시고, 작은 힘을 보태어 주십시오.

기계를 닮은 세상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밤낮을 잃은 닭들의 달걀은 유정란일 수 없습니다. 부화할 수 없는, 생명을 피울 수 없는 기계가 찍어 낸 생산품과 다름없습니다. 밤낮을 잃은 노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성기업 노동자의 요구는 사람이고 싶은, 껍질을 깨고 부화하여 생명이 되고자 하는 지극히 당연한 본능입니다. 일하고 사랑하고 웃고 울 수 있는, 생명으로 충만한 세상을 꿈꾸는 모든 인간의 바람일 뿐입니다.

밤을 빼앗긴 이들에게 밤을 되돌려 주고, 기계에 갇힌 사람, 아니 기계에 갇힌 세상을 구하는데 나약한 글쟁이의 마음을 보탭니다.

                                                       * * *

* "밤엔 잠 좀 자자." 주간 연속 2교대제 등을 요구하며 교섭을 하던 유성기업 노조는 사용자는 물론 자본가 단체와 정부의 탄압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한진중공업에 사회적 눈길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이들의 힘든 투쟁은 계속 되고 있다. 유성기업 투쟁에 대한 관심과 연대를 호소하는 연속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주>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