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파, 지역 주목-현실적 집권전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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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08일 09: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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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 민중의 집 제안에 대한 지적과 관련해 두 번째 글을 씁니다. 사실 저의 구상에 대한 가장 큰 지적은 ‘민중의 집’이라는 개별 사업을 지나치게 확대해서 의미 부여를 과도하게 한 측면이 있고, 구상 자체도 좀 황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지적은 일리가 있습니다. ‘민중의 집’이 무엇인지 잘 알려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강조를 많이 했다 싶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제안문을 잘 보시면 제가 강조한 것은 ‘민중의 집’이라기보다는 지역 중소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생활의 거점이 필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름을 어떻게 붙이든 상관은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인 민중들의 일상적인 ‘만남의 장소’를 광범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민중의 집’이 단순히 무슨 무슨 문화센터처럼 개별 장소를 말한다거나 전국적으로 이미 여러 개 있는 노동복지센터처럼 ‘상담 역할’ 등에 집중하는, 이미 다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별로 새로울 것 없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름다운 가게’는 가게에 불과하지만 분명히 하나의 운동이자 경향입니다. 동네에 있는 생협 매장은 역시 단순한 가게이지만 나름의 지향을 담은 커다란 운동입니다. 저는 ‘민중의 집’을 통해서 지역노동정치혁신운동을 제안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지역에서 새롭게 만나고 지금껏 손도 대보지 못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커다란 운동에 제대로 매달려 보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구상 자체도 좀 황당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꿈꿔왔던 새로운 세상은 늘 ‘황당한 구상’에 속하는 것이었습니다. ‘불가능한 것을 사고’하지 않으면 세상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런데 제 구상은 사실 그렇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황당 축에도 끼지 못합니다.지금부터는 그 황당한 구상을 좀 더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집권전략이 필요합니다

    제가 관심이 있는 것은 ‘집권 전략’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 토대 없이 집권해서 하고 싶은 일 못하거나 쫓겨나거나 혹은 무능이 탄로나는 그런 식의 집권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실 정치 지형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면서 집권의 가능성을 높이자는 주장은 경청해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이런 주장은 아마도 진보운동 ‘상층의 능력과 적응력’을 극대화시키고 이를 통해 대중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자는 주장일 텐데요. 저는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보다는 대중 자신이 새로운 사회의 주체로서 탈바꿈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는 집권을 하고 싶습니다. 이 두 가지가 다른 게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 이 두 가지 방식은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최근에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민주노총 서울본부 일반노조와 함께 학교급식조리 노동자 조직사업을 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많은 당 활동가들은 이 과정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노동자들을 만나고, 요구 사항을 가지고 집회를 했습니다. 노동자들은 활동가들이 집회 나오라고 하니까 집회 나오고, 구호 외치라고 하니까 구호 외쳤습니다. 저는 기회 있을 때 마다 “여러분들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조리 노동자 분들은 집회나 모임이 끝날 때 마다 이렇게 얘기하셨습니다. “잘 좀 해결해주세요.” 저는 이 얘기가 가장 듣기 싫었습니다. 우리가 무슨 민원 처리해주는 사람들이 아니었지만 급식조리 노동자들은 마치 관공서에 방문한 순박한 주민처럼 늘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모든 상황은 그들이 아니라 활동가들이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열심히 일해주니 참 고맙다.”고 했습니다.

    단언하건데 운동 이런 식으로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활동가가 주도하고, 활동가가 계획하고, 활동가가 해결하는 그런 식으로는 새로운 주체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일이 꼬여서 구로지역 학교급식 노동자들과 긴급회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지역 교장들은 모두 노동조합에서 요구하고 서울시 교육청에서 지시한 대로 따랐는데 구로 지역은 안 그랬습니다. 학교 급식 노동자들이 화가 났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우리 으쌰으쌰 한 번 해요.”

    그렇게 해서 쫓아간 남부 교육청에서 급식조리 노동자들은 함께 소리 지르고 몸싸움하면서 그 동안과는 다른 표정의 사람들이 됐습니다. “싸우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부터는 싸움의 주인은 기존 활동가들이 아니라 노동자들입니다.

    저는 작은 노동조합 활동부터 집권을 향한 전략까지 그 모든 과정에서 민중들이 스스로 주체로 서는 것이 활동의 원칙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리 답을 알고 있고 먼저 고민했다고 해서, 대중이 결정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싸움을 대신해주는 것은 상층의 능력은 키울 수 있을지 몰라도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는 애초부터 불가능해집니다.

    아래가 없는 상태에서 진행하는 집권전략, 비정규 노동자 등을 ‘보호해야 하는 대상’ 정도로 생각하고 대중운동을 대리해서 혹은 대신해서 정치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방식의 집권전략은 장기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런 방식은 잘못하면 당은 살고 대중운동은 약해지는 방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대중운동이 발전하고 당도 발전해야 합니다. 대중운동의 성장이 당의 성장을 가져와야 합니다. 반대로 당의 성장의 과정에서 대중운동의 성장도 함께 도모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운동이란 ‘새로운 사람들을 운동의 주체로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게 아니라 이들이 스스로 싸우고 쟁취하며 자신들도 크고 작은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을 도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들을 보조할 뿐입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대중들이 스스로 단결할 수 있도록, 그리고 계급적 힘을 경험할 수 있도록 옆에 함께 있어 주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집권 전략은 사회를 획기적으로 바꿈으로서 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전략입니다. 진보적인 사람들이 새롭게 대거 출현하고 그 사람들의 압도적인 힘으로 집권을 하는 전략이 저는 훨씬 현명하며 동시에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확실한 집권전략은 지역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확실한 집권 전략은 ‘지역을 바꾸는 것’입니다. 중앙은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전체 그 자체는 아닙니다. 오히려 지역이 곧 전체입니다. 지역을 바꾸자는 것은 국가 전체를 그 뿌리부터 촘촘히 통째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지역은 누구나 아는 것처럼 풀뿌리 우익 조직들의 망으로 장악되어 있습니다. 진보정당의 지역 조직은 분명히 지역에 존재하기는 하는데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물 위에 떠 있는 기름처럼 주민들 위에 그냥 떠 있습니다.

    진보정당 지역조직의 행동패턴은 대개 몇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 활동가들이 동네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당원들도 이웃들과 친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 지역 당 조직은 대부분 ‘선전전’ 같은 걸 합니다. 중앙당이나 시당의 지침을 동네에서 그대로 실행하는 정도의 역할을 합니다. 혹시 근처에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사업장이 있거나 아니면 한진중공업 같이 큰 일이 터지면 열심히 찾아다닙니다.

    두 번째, 지역에 파고들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지역 우익 조직이 장악하고 있는 각종 모임에 들어갑니다. 조기 축구회에 나가고, 교회나 성당에 다니고, 심지어 이름만 들으면 금방 우익 조직임을 알 수 있는 조직에 나가서 ‘기회’를 엿봅니다.

    세 번째, 주민들이 한 번에 많이 모일 수 있는 프로그램 같은 걸 기획하고 여기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을 잘 관리하면서 선거운동 조직 관리하듯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명 인사들 불러서 강연시키고 그걸 매개로 주민들을 만나는 방식이 이런 경우입니다. 위원장은 동네 주민모임이나 행사는 가리지 않고 인사 다니면서 자기 얼굴 알리기에 바쁩니다.

    네 번째, 지역 주민들의 생활 속에 보다 깊숙하게 들어가기 위해서 지역 조직 자체를 스스로 만듭니다. 진보적 주민 모임을 직접 구성하기도 하고 참여하기도 합니다. 어린이집도 만들고, 생활협동조합 마을 모임 같은 데 나가기도 합니다. 지역의 진보적 시민단체 및 노조를 네트워크로 묶으려 노력합니다.

    저는 집권을 꿈꾸는 정당이라면 네 번째 경우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봅니다. 비정규직 조직화 같이 우리의 고민이 제대로 관철되는 그런 지역모임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지역모임은 주민들을 새로운 운동의 주체로 만드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사실 한나라당, 민주당 같은 보수 정당들은 이미 이런 일을 오랫동안 해 왔습니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가치로 무장된 주민들이 보수정당이 따로 뭘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자기 논리를 옆 사람에게 알리고,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적극적으로 싸우고, 다른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논리를 스스로 생산해서 퍼뜨려 왔습니다.

    그 동안 우리라고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의 가치로 무장된 사람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싸워왔던 곳은 대체로 공장이나 회사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이제 지역으로 넓혀야 합니다.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계획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며 때로는 황당하고 약간 미친 것 같은 기획이 필요합니다. 제 계획대로 하면 전국에 5년 안에 1,000개의 민중의 집을 만들 수 있습니다. 기초지자체별로 따지면 약 5개 정도의 민중의 집이 생깁니다. 이 거점들을 중심으로 5년이든 10년이든 활동을 해서 한 곳당 주민 3,000명 정도를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가 구로의 한 동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의 회원수를 봤더니 3,000명이 넘었습니다. ‘장난감 나라’라고 장난감을 대여해주는 곳이 있습니다. 여기는 회원이 1만 명을 훌쩍 넘겨 2만 명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구로에는 구로시민센터라고 구로 3, 4동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있습니다. 여기 회원이 역시 3,000명이 넘습니다. 동네 교회나 성당의 회원 역시 기천명이 넘는 곳이 부지기수입니다. 우리도 이 정도는 해야 합니다.

    한 곳당 3,000명이면 5곳이면 15,000명입니다. 우리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15,000명이면 이를 통해서 지역사회의 진보적 재편을 모색하는 게 무조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통해 지역을 바꾸고 그 성과로 국회의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진보정당 국회의원은 87년 이후 노동운동의 성과가 집중된 몇 군데 지역을 제외하면 모두 비례대표 의원이었습니다.

    소선거구제하에서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을 돌파하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선거법을 바꿔서 또 하나는 야권연대를 통해 그리고 마지막은 지역을 근본적으로 바꿔서 가능합니다.

    야권연대는 늘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선거법 바꾸는 노력은 당연히 계속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역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제가 보기에는 시간은 걸리지만 더 확실하고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저는 진보운동이 여기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상층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지역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층’의 활동 역시 여러 모로 중요합니다. 지역에만 몰두하다보면 국민들이 지역 활동은 인정하지만 중앙정치 무대에서 활약하기에는 미흡하다고 인식하는 정당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외국에 이런 정당들이 있습니다.

    중앙의 역할로는 우선 제도를 바꾸는 게 있을 수 있습니다. 통합진보정당이 되고 선거에서 승리하면 1차적으로 비정규직법 같은 악법을 바꾸겠다는 주장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민주당이 몇 년 사이에 비정규직을 상당수 줄이겠다고 주장하고 나선 마당에 애초부터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외쳤던 진보정당이 그 가능성을 보고 민주당과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 혹은 보다 커진 힘으로 민주당이 약속을 지키도록 강제하기 위해서 통합진보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 또한 나름대로 논리적 일관성이 있습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이라는 제도의 변화로 가능했던 것을 보면 제도를 바꾸는 것은 확실히 유의미합니다.

    그러나 중앙에서 제도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만약에 대중운동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라거나 진보정당이 지역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중앙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라는 식의 이유라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제도 정치권이 중앙정치 활동을 통해서 해결하는 문제도 있지만 또 어떤 문제는 대중의 움직임이 정치권을 압박해서 해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값 등록금 문제는 제도 정치권의 움직임이라기보다는 대중의 압박이 최근 상황을 주도했다는 데에는 의견이 같으실 겁니다. 2008년 촛불집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요한 국면마다 등장하는 다양한 ‘항쟁’들은 모두 대중투쟁이었습니다. 그 항쟁의 결과는 대한민국의 10년, 20년을 결정적으로 좌우합니다.

    핵심은 우리가 어디에 중심을 둘 것인가에 있습니다. 진보정치의 토대가 되는 조직된 대중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면 중앙정치 무대에서의 활동은 얼마든지 우리 마음먹은 대로 다양하게 가능합니다. 하지만 대중의 존재 없이 중앙정치 무대에서만 움직이는 것은 그것 말고는 할 것이 없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는 폭도 좁아지고 대중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기도 쉽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늘 정치적 이벤트, 이미지 정치, 그리고 선거가 가까운 시기에는 각종 정계 개편에 매몰될 수밖에 없습니다. 진보정당의 운명을 이런 것에 맡길 수는 없습니다.

    물론 제가 정치적 이벤트, 이미지 정치 등에 전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정치는 늘 이미지이며 다양한 이벤트가 연속되면서 만들어지는 어떤 생각의 틀을 중심으로 대중들을 지속적으로 우리 편으로 만드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치밀한 정치적 기획을 통해 시기마다 여론을 주도하는 틀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대단히 훌륭한 능력이자 진보정당에게 특히 필요한 능력입니다. 다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토대가 없으면 이런 능력 역시 제대로 갖추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만의 민중적 토대가 없으면 우리는 결국 신문 꽤나 읽고, ‘여론’에 늘 관심 갖는 사람들, 모이면 정치 이야기, 세상 이야기 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치적 기획을 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오마이뉴스 보고, 경향신문 읽는 사람들, 희망 버스가 뭔지 아는 사람들, 어버이연합의 횡포에 분노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사람들 등이 대상이라는 겁니다. 뭔가 문제냐고요? 문제될 것 없습니다. 이 분들을 상대로 정치행위를 하는 게 뭐가 문제겠습니까.

    다만 문제가 되는 건 오마이뉴스가 뭔지도 모르고, 경향신문이나 조선일보나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희망버스가 어디 관광회사 이름인 줄 아는 노동자들, 어버이연합이 효도 캠페인 하는 시민단체인 줄 아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우리로부터 점점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정치적 이미지, 우리가 하는 정치적 이벤트, 우리가 제시하는 여론형성의 틀은 ‘정치’로부터 언제나 멀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맞춰져야 합니다. 민주주의 얘기만 나오면 항상 지식인들 사이에서 잊지 않고 거론되지만 현실에서는 언제나 잊혀지는 사람들, 노동운동조차 챙기지 못하는 그 사람들에게 맞춰져야 합니다.

    저는 우리 운동이 만약 이런 ‘토대’의 구축 없이 진행된다면 나중에는 우리만의 생각의 틀을 제시하기도 힘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보정당만이 할 수 있는 정책 대안도, 정치적 이벤트도 그 어떤 것도 생산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보수정당들이 하나 같이 좌클릭하는 최근 상황에서 진보신당이 별로 할 말도 없고 불안해지는 것은 우리가 보다 급진적인 정책을 미리 연구해 놓은 게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제대로 대중에 뿌리박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한국정치의 초중앙집권적 구조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외국 사례 얘기하는 건 잘 알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한 가지만 얘기를 하겠습니다. 스웨덴은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민중의 집이 예전부터 많이 건설되었던 곳입니다.

    그런데 민중의 집을 지은 것은 ‘노동자 코뮌’입니다. 그냥 ‘노동자 공동체’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노동자코뮌은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지부, 노동조합 지역조직 그리고 다양한 사회운동단체들이 모여 있는 조직이었습니다.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은 원래 자기 지역조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동자 코뮌이 점점 의미 있는 역할을 하자 아예 자기 지역조직을 없애고 노동자 코뮌을 당의 지역 단위 역할도 겸하는 것으로 당헌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같은 걸 도입하면 진보신당 같은 작은 진보정당이 국회에 더 많이 진출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정치가 보수정당 일색으로 되어 있는 구조를 많이 바꿀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한국 정치의 초중앙집권적 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한국 정치의 초중앙집권적 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이 보수정당 일색의 국회 구조를 바꾸는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래로부터 대중의 진보적 요구가 제대로 수렴되는 민주적인 구조가 갖춰지면 그 힘은 보수정당 독점 구조를 이대로 놔두지 않을 겁니다.

    결국 진보정당 뿐입니다

    우리가 만약 스웨덴처럼 한다면 지역 노동조합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지역 노동자 공동체 혹은 지역 주민 공동체 같은 걸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 공동체는 민중의 집을 만들어서 활동을 하고 그리고 진보신당은 당협을 없애고 당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민중의 집에서 일하도록 해야겠죠.

    저는 한국정치의 중앙집권적 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이런 식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게 당장 2012년에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뒤에 가서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진보신당 동지들, 특히 통합파에게 제안합니다.

    저는 진보신당 독자파가 보다 현실적인 영민함을 가지고 최근 상황을 주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선명한 노선은 깃발을 든다고 더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전략과 계획, 이를 끈질기게 실천하는 활동가들의 노력이 있어야 선명해집니다.

    동시에 저는 독자파보다는 통합파가 제 제안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로서 진보신당이 9월 4일 당 대회에서 통합안을 가결시킬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특히 최근처럼 민주노동당이 당권파, 비당권파 할 것 없이 국민참여당의 참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진보신당 통합파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단호한 입장으로 국민참여당 문제를 조기에 정리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국민참여당 문제가 확실히 정리될 수 있다면 그 다음 제 제안을 면밀하게 검토해주시길 바랍니다.

    진보신당 독자파들과의 대화는 ‘국민의 요구’가 아니라 ‘계급적 요구’에 주목할 때 가능해집니다. ‘현실 정치 상황’이 아니라 ‘진보운동의 독자적 성장’에 집중할 때 의견의 접점도 찾아질 겁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진보의 재구성’의 문제의식이 통합 과정에서 얼마나 더 충실히 반영되는가 하는 점, 통합이 되면 진보의 재구성의 가능성이 더욱 크게 열릴 것이라는 사실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보여주느냐 하는 점입니다.

    이렇게 해서 통합론을 다시 재정비하지 않으면 진보정당 통합은 전혀 가능하지 않습니다. 단지 진보신당이 나눠지는 일만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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