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략문제 놓고 표결게임? 이해 안돼녹색-노동사회 전환, 진보의 상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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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01일 02: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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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 중심’을 지키자

    하지만 황광우 선배의 글이 시종일관 실망스럽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글의 말미에서 저는 아주 반가운 한 문장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 한 문장 때문에 저는 “그래도 황광우는 역시 황광우다”라고 감탄했습니다. 그것은 “진보신당이 민중운동진영의 사령탑을 자처하고 나선다.”는 문장이었습니다.

    황광우 선배는 이 문장과 함께 다른 몇 가지 가능성을 진보신당의 선택지로 제시한 뒤 우리가 단호히 이 길을, 즉 “민중운동진영의 사령탑”이 되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황당하고 난감한 문장들의 수풀을 헤치고 난 뒤에 그래도 이러한 한 줄기 햇살과 마주하게 되니 그나마 다행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보신당은 민중운동진영의 사령탑이 되고자 노력해야 하고, 그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자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저와 제 주위의 동지들은 그것이 진보신당이라는 우리의 <조직 중심>을 견결히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진보대통합’의 주된 쟁점은 얼마 전부터 국민참여당 문제로 바뀌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국민참여당과 함께 하는 것을 점점 더 기정사실화하고 있고, 진보신당은 조승수 대표가 직접 나서서 이에 단호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제안문>이 이미 주장한 바대로, 이 쟁점은 단지 진보정당 안에 국민참여당이라는 불순 요소를 받아들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민참여당이 세 불리기에 나서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민주당과의 협상에서 협상력을 키우기 위함입니다.

    국민참여당 세불리기 나서는 이유

    그 협상의 종국적 목표는 민주당과 차기 집권연합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즉, 국민참여당과 함께 모종의 새 정당을 건설한다는 것은 민주당 중심 연립정부로 나아가는 과정의 첫 수순일 뿐입니다.

    이 사태의 엄중함을 알기에 최근에는 그간 진보신당 안에서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에 앞장섰던 분들이 새삼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반대’, ‘민주연립정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레디앙>에 이러한 취지의 글을 발표한 유의선 서울시당 위원장이 그러하고, 당원 게시판에 몇 차례 글을 올린 정종권 전 부대표가 그러합니다. 과거에 비해 진보신당 통합파 일부와 독자파 사이에 건설적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분위기가 무르익는 것도 같습니다.

    한데 ‘녹색신좌파 활동가 네트워크’에 함께 하는 동지들과 이 분들 사이에는 여전히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입장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 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석회의의 통합 논의를 계속 밀어붙이자는 입장입니다.

    통합 과정에서 국민참여당 문제, 민주연립정부 문제를 제기하여 광범한 반대 진영을 형성하자고 주장하기도 하고, 통합당 안에서 이러한 우경화 양상을 제어하자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현재의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이들 문제에 대한 입장이 단일하지 않다는 점을 낙관의 근거로 제시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판단은 다릅니다. 우선, 민주노동당 내부에 국민참여당 문제, 민주연립정부 문제에 대해 ‘전략적’ 차원의 입장 차가 있다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다함께’ 같은 소수파는 일단 논외로 합시다). 이것은 이미 국민참여당 문제에 대한 민주노동당 수임기구의 결정을 통해서 확인되었습니다. 민주노동당 결정의 요지는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은 긍정적이지만", "진보신당과의 통합을 먼저 일단락 짓고 나서" 통합을 추진한다는 것입니다.

    민주노동당 내부 이견 방법론 차이 불과

    이러한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당내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종국적 목표에 대한 이견이 아니라 방법론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국민참여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의 동시 통합을 추진하는 ‘1단계’ 방식과 진보신당-민주노동당 선통합 후에 국민참여당과 통합하는 ‘2단계’ 방식 사이의 논쟁이었을 뿐입니다.

    즉, 민주노동당의 주요 정파들 사이에는 2012년 대선까지의 ‘전략적’ 원칙을 둘러싼 균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전술적’ 경로를 그리든 이들의 종착지는 민주당 중심 집권연합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내다보기 위해 무슨 ‘예언’ 능력까지 동원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의 이른바 ‘당권파’든 ‘비당권파’든 모두 공유하고 있는 오랜 사상 전통에서 논리적으로 연역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황광우 선배 같은 분들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이후 행로가 빤히 예상되는데도 이들과 당을 함께 하겠다는 것은 결국 국민참여당 문제나 민주연립정부 문제 같은 ‘전략적’ 차원의 쟁점을 통합당 내 정파들 사이의 수 대결로써 해결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의원 대회 결정이 됐든 당원 총투표가 됐든, 1/2 정족수로 처리하든 2/3 정족수로 처리하든, 수 대결이라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전략적’ 차원의 중요성을 가지는 결정들을 왜 이러한 수 대결 게임에 맡기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진보 좌파가 ‘전략적’ 쟁점들을 수 대결로 결정하는 것은 전체 유권자들의 투표(즉, 선거) 하나로 족합니다. ‘전략적’ 입장 차이가 있다면, 당을 달리 해야지요. 왜 이러한 문제를 당 안의 수 대결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전략적 입장 치이 쉽게 포기 안돼

    지면 승복하겠다는 것입니까? ‘전략적’ 입장 차이가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재분당도 각오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그럴 거면, 무리하고 무의미한 통합 추진 이전에 아예 다른 선택을 결단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왜 생각지 않는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주장합니다. 국민참여당 문제는 지금 시기 진보대통합 논의의 가장 중대한 쟁점인 게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닥친 선택지는 결코 “’국민참여당’과 함께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국민참여당과 함께 하려는 세력’과 함께 할 것인가, 말 것인가”입니다.

    이 물음 앞에서 진보신당은 단호해야 합니다. 8월 말 진보신당 임시당대회는 한국 사회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야 합니다. 국민참여당과 함께 하며 민주연립정부로 달려가는 세력과는 전혀 다른 ‘전략적’ 입장을 지닌 진보정당을 만들어가겠다고 선포해야 합니다(현재의 통합안 부결).

    이러한 당대회 결단 이후 진보신당은 한국 진보 민중운동에서 민주당 중심 연립정부 참여 노선에 반대하는 세력들, 흐름들, 개인들의 버팀목이자 플랫폼(승강장)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조직 중심’을 굳건히 지켜야 합니다. 지금 같은 때에 우리에게 진보신당이라는 ‘조직 중심’이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참으로 소중하고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진보신당이 이런 전망을 분명히 의식하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지방선거 이후 이러한 역할이 진보신당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다만 진보신당의 지도자들이 통합 논의로 당을 몰아가며 이 ‘운명’을 어떻게든 회피해 보려 애썼을 뿐입니다.

    이 길이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1987년이나 1992년보다 더 어려운 길이 될지도 모릅니다. 당장 진보신당 임시당대회 이후 닥칠 역풍은 누구나 예상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 순간입니다. 진보신당 바깥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선택의 귀결이 점점 분명해질수록 우리의 ‘조직 중심’은 점차 빛을 발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반격의 전망 속에만 진보신당이 “민중운동진영의 사령탑”이 될 가능성도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노선 중심’을 새롭게 하자

    그러나 ‘조직 중심’을 견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와 함께 우리는 우리의 <노선 중심>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제안문>이 나온 이유도 바로 이 과제 때문이고,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결국 이 과제입니다.

    지금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은 정체성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적어도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본격 시작된 한 시대의 진보정당운동은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그 원인은 명쾌합니다. 자유주의 세력이 야당이 되고 ‘좌클릭’한 것이 위기의 직접적 원인입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진보정당은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방어적 의제로 주로 ‘복지 확대’를 외쳤습니다. 이것은 사회민주주의자도, 좀 더 급진적인 사회주의자도,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자도 일정하게 공감할 수 있는 정책 요구였고, 그래서 진보정당의 상표처럼 되었습니다. 한편 몇 년 전까지 여당으로서 신자유주의의 집행자 역할을 하던 자유주의 세력은 이러한 진보정당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2008년부터 이 상황이 바뀐 것입니다. 그리고 2012년을 앞두고 이러한 변화가 점점 더 피부 깊숙이 와 닿고 있습니다. 복지 정책에 관한 한, 민주당은 이미 과거 진보정당이 점하던 정책 스펙트럼을 자기 것으로 거의 흡수했습니다. 민주당 정책과 진보정당 정책 사이에 여전히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선거 때 부각되기 무척 힘든 미묘한 차이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 확대’를 주로 외치던 기존의 진보정당운동으로선 정체성 위기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복지국가 단일정당’ 노선은 이런 상황에 대한 나름대로 논리적인 대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지국가 단일정당론 주장은 진보 청산론

    하지만 그것이 독자적인 좌파정당을 발전시키려던 오랜 노력을 청산하는 것임은 분명하지요. 좌파정당은 ‘무슨 주의’를 내걸든지 간에 본질적으로 기존 사회 세력 관계를 뒤바꾸려는 정당입니다. 민주당이 아무리 복지 정책을 진지하게 추진한다 하더라도 이 당이 사회 세력 관계 자체에 손을 댈 일은 없을 것입니다. 민주당이 못할 바로 그 일을 꿈꾸며 도모해가는 정당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복지국가 단일정당’ 류의 회군을 거부하고 진보정당운동의 불씨를 이어가야만 하는 근본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겠지요.

    하지만 ‘복지 확대’ 중심의 지난 시기 진보정당운동 방식을 아무 일 없었던 듯 그대로 이어갈 수는 없습니다. 진보신당 안에서는 김상봉 상상연구소 이사장이 일찍부터 이 문제를 직시하고 고민했습니다. 김상봉 이사장이 주목한 것은 진보신당 강령이 우리 시대 진보의 핵심을 ‘자본주의의 극복’으로 바라본다는 점이었습니다. 김상봉 이사장은 우리가 오랫동안 강령 한 귀퉁이에 신주단지마냥 모셔두기만 했던 이 근본 정체성을 이제는 현실 정치에 곧바로 접목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제안문>이 진보신당이 발전시켜야 할 근본 지향을 ‘반자본주의 정당’이라 정식화한 것도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우리가 민주당 중심 연립정부 참여 노선을 거부하며 독자적인 ‘조직 중심’을 견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입니다. 우리가 2012년 대선에 범좌파 독자 후보를 내고 민주연립정부 아래서도 전투적인 야당이어야 하는 것 역시 바로 이러한 지향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자본주의 극복’이라는 얼핏 추상적인 구호 그대로 외치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복지 확대’라고만 이야기하지 않고 ‘무상급식’을 말하고 ‘무상의료’를 말하듯이, ‘자본주의 극복’ 역시 좀 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내용들로 선전되어야 합니다. 김상봉 이사장이 강조하는 ‘삼성과의 투쟁’이나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도 그 한 사례일 테고, 2012년 대선 공약의 주 내용이 되어야 할 금융 사회화 방안도 그런 사례일 것입니다.

    <제안문>은 이러한 ‘반자본주의 정당’ 성격과 함께 ‘녹색 정당’, ‘불안정 노동자 정당’의 성격을 발전시켜 가자고 제안합니다. 이러한 제안은 과거 ‘복지 확대’와 같은 차원에서 우리의 일상 실천의 무기가 될 지향들이 필요하다는 고민에서 나온 것입니다.

    복지와 진보정당운동의 공로

    어찌 보면 민주당까지도 ‘복지’를 이야기하게 된 데는 지난 시기 진보정당운동의 공로도 적지만은 않았습니다. 2000년대에 민주노동당이 뿌려놓은 씨앗들(‘부유세’, ‘무상급식’, ‘무상의료’ 등등)을 민주당이 거두고 있는 꼴입니다. 아무튼 진보정당의 10년간의 노력이 ‘복지’가 한국 사회에서 현실화될 가능성을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녹색 정당’, ‘불안정 노동자 정당’이 되자는 것은 이제 ‘녹색 전환’과 ‘노동사회 전환’을 과거 ‘복지 확대’ 요구처럼 진보정당운동의 상표가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앞으로 최소한 10년간 좌파정당이 대중과 일상적으로 접촉하고 소통하는 얼굴이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범민주당 세력이 저들이 공약한 대로 ‘복지’를 추진하도록 압박하는 것 역시 여전히 좌파정당의 중요한 임무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복지’의 파수꾼 역할과 동시에, ‘녹색 전환’, ‘노동사회 전환’ 없이는 ‘복지국가’도 불가능하다는 주장으로 자신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진보신당’ 하면 누구나 ‘한국의 녹색당’ 혹은 ‘젊고 활기찬 노동자들의 정당’, ‘박정희식 근대화의 궤도에서 벗어나자는 정당’ 혹은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공유,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정당’이라고 떠올리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실 ‘녹색 전환’, ‘노동사회 전환’과 관련해서는 더 연구하고 토론할 거리들이 많습니다. <제안문> 자체는 첫 발제문 정도에 불과합니다. 당원들 사이에서 또 다른 발제문들이 나와야 하고, 토론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야 합니다.

    ‘민중운동진영의 사령탑’이 되기 위해

    하지만 이 글은 아무래도 첫 단추를 잘못 꿴 것 같습니다. 이 정도 이야기만으로 이미 분량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좀 더 진지하고 건설적인 비판으로부터 출발했다면, 저 자신 ‘녹색 전환’과 ‘노동사회 전환’에 대해 더 흥미로운 지적 자극을 받고 사고를 더 진전시킬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필자

    허나 진보신당이 맞부딪혀야 할 것이 단순한 ‘통합/독자’ 논란 따위가 아니라 “민중운동진영의 사령탑”이 되는 일이며 이것은 ‘조직 중심’을 견지하고 ‘노선 중심’을 새롭게 하는 데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없지 않았습니다.

    이 두 개의 ‘중심’을 버리거나 내버려 두고 한 발자국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꾸로, 이 두 개의 ‘중심’만 확실히 거머쥔다면, 현실에 대한 유연한 대응의 폭은 오히려 더 넓어질 수 있습니다.

    피곤하다고, 힘들다고, 옛 동지들이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이 진실을 외면하지는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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