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차 희망버스 '국제 노선' 될 수 있어 승객들 '조남호 지키기' 용납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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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01일 07: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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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립된 자는 누구인가? 3차 희망버스 승객들의 레드카드.(사진=진보정치 / 정택용 기자) 

    3차 희망의 버스가 출발했다. 7월 14일, 3차를 결의하고 단 15일만이다. 휴가철인데 누가 가겠냐고 걱정들이 많았다. 다들 2000~3000명만 모여도 성공이라고, 철부지 같은 생각이라고, 의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했다. 미안하지만 수십년 운동을 해왔던 동지들의 판단이 더욱 그랬다.

    운동 오래 한 동지들의 판단

    하지만 확인해 보니 서울 탑승객들도 2차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역 희망의 버스 출발지들은 오히려 더 늘었다. 경찰 추산이나 우리 추산이나 비슷하게 1만2천여 명 선이다.

    이건 놀라운 일이다. 늘 진화하고, 기존의 관성을 넘어서는 자발적 희망의 버스답다. 3차를 통해 이제 더 이상 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이 없을 시 희망의 버스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는 셈이다. 이제 답은 정부와 한진중공업 사측의 몫이다.

    그 대답은 둘 중 하나뿐이다. 사회의 1%도 안되는 재벌들과 대주주들의 편에 편파적으로 선 정부와 한진중공업 사측이 빨리 협의해 일방적이고 명분없는 정리해고를 원천적으로 폐기하든가, 운영 능력을 상실한 기업을 사회에 환원하고, 정권을 내놓든가이다.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봐도 3차 희망의 버스를 통해 이 운동의 자가발전, 핵폭발은 이제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곳 ‘희망의 편’으로 가고 있다. 의연함의 쪽으로 가고 있고, 만인의 ‘깔깔깔’ 쪽으로 가고 있다. 미완의 87년, 퇴색된 87년을 넘어 새로운 한국사회의 구성을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정부여당, 그리고 경찰은 정신을 못 차렸다. 우리는 소풍을 가겠다는데, 휴가를 가겠다는데, 정부와 경찰은 무슨 전쟁에라도 나선 듯했다. 노사자율 교섭에 나서게 ‘외부세력’은 개입하면 안된다면서 자신들은 수해복구라는 공무마저 팽개치고, 전국의 경찰 100여개 중대를 동원해 확실히 개입했다. 부산 시내 교통을 막고, 시민 불편을 만든 것은 오히려 경찰이었다. 차벽으로도 안돼, 관변 동원된 영도의 일부 주민들과 보수단체 ‘어버이’들과 충돌을 방조하기도 했다.

       
      ▲사진=진보정치 / 정택용 기자 

    본질은 조남호 지키기

    그 본질은 의외로 간단하다. 조남호를 지켜주겠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재벌을 지켜주기 위해 15000여명의 사병들을 보내주겠다는 것이다. 1700만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운명과 관계된 정리해고, 비정규직화라는 우리 시대 핵심적 쟁점을 애써 있지도 않은 좌우대립, 희망의 버스와 부산 주민이라는 지역감정, 선거를 위한 정치적 의도 등으로 왜곡해 보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1%도 안되는 재벌과 기업가들의 편에 서서, 1700만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삶에 꽂아진 무한착취의 빨대를 지켜주겠다는 것이다. 조금은 더 열린사회로 가겠다는 범사회적 열망을 눌러앉히고, 꿇어앉히고, 결박하고, 쥐어패서 억누르겠다는 것이다.

    이런 불순한 의도들에 휘말리지 않고, 희망의 버스 탑승객들의 안전과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 출발 3일 전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 쪽 계획을 밝히고, 정부 쪽의 입장을 요구했다.

    다른 답이 없어 다시 다음 날엔 야4당과 4대 종단 대표, 그리고 사회단체 대표자들, 그리고 희망의 버스 기획단이 조연호 경찰청장 면담을 요청하고, 평화적인 행사 진행 보장을 촉구하기도 했다. 충돌로 인해 본질이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거리행진과, 85호 크레인 앞을 고집하지 않았다.

    수해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국민들과 영도 주민들을 배려해 어떤 충돌도 자제하고, 차량 통행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 인근 공원터를 중심으로 평화적으로 문화제를 진행하겠다는 구체적인 안을 경찰 측에 제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돌아 온 이야기는 모두 안된다는 것이었다. 까닭도 불분명했다.

    기적 같은 일들

    3차 희망의 버스를 준비하면서도 뜻깊은 일들이 많았다. 진은영 시인이 초안을 쓴 문화예술인 지지성명의 한 구절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의 85호 크레인 위에’ 섰다. 대한문에서는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과 2차 때 최루액을 몽땅 뒤집어쓰고 연행되기도 했던 심상정, 노회찬 전 의원의 무기한 단식이 600인 동조단식단으로 확대되었다. 서울 한진그룹 본사 앞에서는 유례가 없는 24시간 릴레이 1인 시위가 진행되었다. 나중엔 사람들이 하도 몰려 새벽 서너 시에 가도 시간표를 배정받지 못했다.

    2차 때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연대 도보행진에 화답해 3차 때는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이 서울 대한문 단식장에서 부산역 단식장까지 하루 100km를 달리는 자전거행진에 나섰다. 그간 십수 년 김진숙 선배처럼 평지에서 내몰려 하늘로 오를 수밖에 없었던 고공농성자 100명이 모여 눈물의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참고로 나는 기륭전자비정규직 투쟁 당시 고공(?)에서 떨어져 다섯 달 동안 병원과 집에서 누워 있어야 했건만, 그 높이가 5m가 채 되지 않는 ‘저공’이라 해서, ‘고공클럽’을 희화화할 수 있다는 까닭에 탈락되고, 한강대교에 매달려 한강으로 뛰어들기도 했던 이들도, 그건 고공이 아니라 ‘허공’이라는 까닭으로 끼지 못하기도 했다.

    1, 2차 희망의 버스를 탔던 이들이 카톨릭청년회관에 모여 집단 수다를 떨어보기도 했다. 크레인 농성 200일에 맞춰 사회각계 대표 200인이 85호 크레인 앞에서 200인 시국회의를 열기도 했다.

    천주교계도 천주교정의평화실천협의회와 천주교정의평화전국연합 등이 모여 시국선언을 내주었고, 조계종단에서 화쟁위원회,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등 20여개 불교단체가 모여 시국선언을 내주었다. 기독교계도 NCC와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예수살기 등 20여개 단체가 모여 입장을 내주었다. 이 모든 분들이 85호 크레인 앞에서 희망의 법회, 연대의 미사, 기도회 등을 열어주기도 했다.

    영도 주민들에게 상황의 본질을 알리기 위해 7만여 장의 호소문을 전달하기도 했다. 세계 각국의 지식인들과 노동단체들이 지지성명을 내주기도 했다. 만약 4차로 간다면 우리는 세계 각국의 참가단들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사진=진보정치 / 정택용 기자 

    상도 받고, 체포영장도 받고

    이 과정에 내게는 체포영장이 떨어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나라는 한 사람의 탑승객이 빠져도 희망의 버스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기도 했지만, 그런 나를 잡기 위해 정부와 경찰은 검거전담반을 꾸리고, 행사 전후 1000명의 경찰을 특별 배치했다고도 했다.

    허공을 붙잡으려 하는 일처럼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고 하는 일이다. 지나간 겨울을, 봄을 다시 불러오겠다는 것처럼 허망한 일이다. 우리들의 깃발은 저기 85호 크레인 위에 굳건하게 있고, 나는 다만 그 깃발의 실루엣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 한두 사람을 잡아간다고 멈출 행진이 아니다. 멈출 웃음이 아니다. 멈출 역동이 아니다. 이미 새로운 민주주의를 향한 들불은 이렇게 전국 각지로, 세계 곳곳으로 점화되고 있다. 그 불을 붙인 여러 개의 성냥개비 중 하나를 이제 와 찾는들 무얼 하겠다는 것인가. 수백만의 정리해고자들과 900만 비정규직 시대라는 이 절망적 뇌관을, 화기를 제거하지 않고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나아가 시인의 이 자유로운 상상을 어떻게 잡겠다는 것일까. 잠수함의 토끼처럼, 탄광의 카나리아처럼 고작 시대의 가장 여린 부분인 시인 한 명을 잡아서 무얼 하겠다는 것인가. 나는 다만 이 사회에는 신선한 공기가, 산소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만을 얘기했을 뿐이다. 나도 못 살겠어서 경고의 절규를 내뱉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들은 오히려 그 토끼를, 카나리아를 잡도리하겠다고 한다. 웃기는 일이다. 이렇게 예민한 시인의 촉수를 건드려 무엇을 얻겠다는 것일까? 그곳까지를 건드리고 무사한 독재자가 없었다는 역사의 교훈을 모르는 걸까?

    나의 죄

    죄도 너무 가볍다. 암울한 시대를 그냥 두지 않고 ‘희망을 기획’한 게 죄인가? 절망하지 말자고, 활력과 웃음을 기획한 게 죄인가? 지금 생명이 위태롭고 어려운 이웃을 함께 응원하자고 공동체의 미덕을 살린 게 죄인가? 왜 몇 사람만 배터지게 사냐고, 함께 일해 생산한 거면 함께 골고루 나눠먹어야 한다고 주장한 게 죄인가?

    어두운 고공농성장 아래에 가서 다같이 깔깔깔 거리며 춤을 추며 놀아주자고 한 게 혹 죄라면 죄겠다. 생사를 걸고 투쟁하는 곳으로 우리는 소풍이나 가자고, 휴가나 떠나자고 한 게 죄라면 죄겠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날도 재밌다. 오전엔 부끄럽게도 내가 제27회 신동엽창작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 올라왔다. 사실 경황이 없어 기뻐할 틈도 없었는데 오후가 되자 여기저기에서 다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가 막힌 일이다. 2년 전 천상병문학상을 받던 날도 그랬다. 오전엔 기륭전자비정규직 투쟁 관련 재판정엘 가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고, 오후엔 상금 500만원을 받으러 갔다. 미안하지만 상금이 200만원 밖에 남지 않아 주변에 술도 한잔 제대로 못 샀다.

    묘한 것은 그때도 그랬지만 상을 받는 자리는 왠지 불편하고, 심드렁하고, 재미도 없고, 남의 자리에 선 듯 민망하다. 하지만 벌을 받는 자리는 내 자리 같이 편하고, 재밌고, 신이 난다. 더 큰 상보다 더 큰 벌을 받고 싶다. 상을 받을 때는 아무래도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안절부절인데, 벌을 받을 때는 그래도 내가 조금은 제대로 사는 것 같은 안도감이 든다.

       
      ▲사진=진보정치 / 정택용 기자 

    나를 한없이 편하게 만드는 체포영장

    체포영장이 떨어진 지금이 그렇다. 어느 드넓은 초원에라도 든 듯 마음이 한없이 편하다. 긴 수고를 마치고 수확이 끝난 들을 보고 있는 농부의 마음처럼 담담하다. 밤샘 물질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부의 마음처럼 차분하다. 다시 새로운 길 떠나야 하는 방랑객의 마음처럼 숙연하다.

    오히려 더 재미있는 일들이 마구 떠오른다. 전투력이 배가된다. 85호 크레인 위에 오른 김진숙 선배가 고립되거나 위축되지 않듯 나 역시 고립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작은 김진숙이 되어 당신들만이 배부른 세계의 모순에 맞설 것이다.

    이렇게 갖은 탄압 속에서도 3차 희망의 버스는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의 힘으로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3차를 통해 이제 더 이상 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이 없을 시 희망의 버스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봐도 3차 희망의 버스를 통해 이루어진 이 운동의 자가발전, 핵폭발은 이제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희망의 편’, ‘낙관의 편’, ‘어떤 변혁의 편’으로 가고 있다. 의연함의 쪽으로 가고 있고, 만인의 행복, 만인의 깔깔깔, 껄껄껄 쪽으로 가고 있다. 미완의 87년, 거덜나버린 87년을 넘어 새로운 한국사회의 열림과 재구성을 향해 가고 있다.

    과거 쿠바 혁명 당시 그란마호를 타고 간 이들은 고작 8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대부분이 사살되고 단 12명만이 남아 숲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과 꿈과 낙관을 잃지 않았고, 3년여가 지나 쿠바 혁명을 달성할 수 있었다.

    우리 요구는 ‘함께 살자’는 것

    우리의 요구와 꿈이 큰 것도 아니다. 당장 사유재산을 폐지하자는 말도, 모든 기업과 토지를 국유화하자는 요구도 아니다. "자본 권력을 민중 권력으로"라는 요구도 아니다. 나는 그것이 더 슬프지만, 다만 안정된 일자리 하나 얻게 해달라는 소박한 꿈들이다. 너무나도 인간적이어서 슬픈 호소들이다. 다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조금은 나누자는 것이다. 너희들하고 같이 못 살겠다가 아니고, ‘함께 살자’라는 것이다.

       
      ▲"함께 살자." 칼라TV 후원회장인 정일욱 진보신당 당원의 호객 행위 모습(사진=김형탁) 

    2차와 3차를 거쳐 희망의 버스의 고정 탑승객은 1만여 명으로 불어났다. 2차에 왔다가 3차 때 피치 못하게 못 온 이, 계속 바라보며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이들까지 합치면 그 수가 얼마일지 모른다.

    우리 모두가 총의를 모아 4차를 결정하기 전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이 안전한 이 평지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다시 ‘희망의 배’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번엔 무슨 운송수단이 아니라 거대한 희망의 파도로, 희망의 산맥으로, 희망의 소용돌이로, 희망의 무지개로, 희망의 핵분열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상상은 끝이 없다. 진실이 거짓을, 양심이 불의를, 용기가 공포를, 연대가 분열을, 지혜가 무지를 이기는 세상. 나눔이 독점을 이기고, 평등이 착취를 이기고, 사랑이 미움을 이기고, 존중이 차별을 이기고, 춤이 거드름을 이기고, 노래가 호령을 이기고, 웃음이 권위를 이기는 그 세상까지 우리의 행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희망의 버스 깔깔깔 기획단 벗들과 함께 끝까지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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