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 지키자는 게 언제부터 혁명이 됐나?87체제 좌파, 사람-정파 아닌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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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01일 12: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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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광우 선배, 안녕하십니까? <레디앙>에 올라온 글을 보았습니다.

    저는 본래 ‘녹색신좌파 활동가 네트워크’의 제안문(진보신당 당원게시판에 발표된 <진보신당, ‘녹색신좌파당’으로 도약하자>, 이하 <제안문>)을 부연하는 글을 조만간 발표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황광우 선배가 제게 보내는 서신 형태로 글을 올렸으니 그 답신 성격의 글을 써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참에 애초에 쓰려던 논지도 이 답신 형식의 글에 담아 함께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답신이라고는 하지만 황광우 선배의 글에 즉답하는 모양새를 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죄송하지만, 그럴 수가 없겠습니다. 제가 진지하게 답변할 수 있으려면 우선 황광우 선배의 글이 <제안문>에 대한 진지한 독해에 기반해야 할 터인데 전혀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워서 침 뱉기는 하지 말자

    처음에 <레디앙>으로부터 황광우 선배가 <제안문> 관련해 글을 보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상당히 기대가 됐었습니다. 황광우 선배가 진보신당 안에서 누구보다 ‘녹색’ 실천에 앞장서고 있는 것을 잘 아는 만큼 <제안문>의 부족하고 빈 부분을 예리하게 지적하며 앞길을 밝혀주는 글을 주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제가 접한 글은 그런 기대와는 정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제안문>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했대서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비판입니다. 내용과 품격을 갖춘 비판입니다. 한데 황광우 선배의 글은 도대체가 <제안문>을 과연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보고 쓴 것인지 의문시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로서도 이런 글에 굳이 꼼꼼한 답변을 쓸 기분이 내키지 않습니다.

    우선 <제안문>을 한갓 ‘키보드 좌파’의 작품으로 규정해버린 것부터가 그렇습니다. 사실 상대방을 ‘먹물 좌파’니 ‘키보드 좌파’니 얕잡아보는 것은 글쟁이들의 오랜 악습입니다. 자기도 글쟁이이면서 “글이나 쓰는 놈” 하고 달려드는 것이지요. 한 마디로, 누워서 침 뱉기입니다. 자제해야 할 나쁜 버릇입니다.

    하지만 사실 제가 ‘키보드 좌파’라고 불리는 거야 그렇게 억울해 할 일은 아니지요. 저는 ‘키보드 좌파’가 맞을 것입니다. 문제는 <제안문>이 ‘키보드 좌파’인 제가 혼자 쓴 글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당원게시판에서 그 글을 본 분이라면 그렇게 오해할 수는 없습니다. 글을 ‘올린 이’는 저이지만 글을 ‘쓴 이’는 여럿입니다. 그래서 토론에 참여한 분들 이름까지 일부 병기해놓았던 것입니다.

    함께 글을 쓴 이들 중에는 진보신당 안에서 ‘녹색’ 실천에 관한 한 가장 많은 시간을 길바닥에서 보낸 분이 있고, 함께 글을 토론하며 손본 이들 중에는 구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지역 정치 활동의 한 우물을 파온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황광우 선배의 글은 이 분들까지 모두 졸지에 ‘키보드 좌파’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저는 이분들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키보드 좌파’뿐만이 아닙니다. 황광우 선배는 <제안문>의 저자들에게 또 다른 낙인을 찍었습니다. ‘혁명주의자!’ 도대체 언제부터 합법정당 진보신당을 지키자는 것 정도의 주장이나 실천이 ‘혁명’이라는 딱지까지 붙여야 할 일이 되었는지요? 진보신당 독자파 입장에 섰다고 ‘혁명주의자’라는 말을 듣는다니, 사노위나 노동자혁명당 동지들 보기 민망한 일입니다.

    하도 놀라워서 혹시 <제안문> 안에 ‘혁명’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제가 모르는 것인가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래 한글’ 찾아보기 기능으로 검색까지 해보았습니다. ‘혁명’이라는 단어는 단 한 차례도 안 나오더군요.

    난독증으로 일관한 <제안문> 독해

    하지만 이런 낙인찍기는 <제안문>에 대한 황광우 선배의 난독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통합당’은 곧 민주당 중심 연립정부 참여 혹은 민주당과의 통합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일 수밖에 없다”는 문장, 그리고 그 바로 다음에 나오는 “‘87년 체제’의 중요한 한 특징인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진보 ‧ 민중운동 진영의 종속을 극복하는 게 아니라 정반대로 그 종속을 최종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인용하고서는 조승수 대표를 어찌 이렇게 기회주의자로 몰 수가 있느냐고 노발대발하셨더군요.

    황광우 선배, 위의 첫 문장의 ‘통합당’이라는 단어 앞에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습니다. 황광우 선배는 위 문장들을 인용하면서 애써 그것을 뺐더군요. 그것은 “국민참여당을 포함한”이라는 문구입니다. 즉,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통합당’”이 위 첫 인용문과 두 번째 인용문 모두의 주어입니다. 그리고 이 문장들이 나오는 구절에서 조승수 대표는 한 번도 출연하지 않습니다. 난데없이 조승수 대표를 출연시킨 것은 오히려 황광우 선배입니다.

    혹시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통합당’”이 “민주당 중심 연립정부 참여 혹은 민주당과의 통합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라는 것을 부정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그래서 “‘87년 체제’의 중요한 한 특징인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 종속”을 “최종 완성”하는 일임을 부인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다름 아니라 조승수 대표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최근 민주노동당에게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다그치는 것 아닙니까? 과연 요즘 조승수 대표와 대화가 부족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정도는 약과입니다. “진보신당의 당 강령이 후져서” ‘녹색신좌파당’으로 나아가자고 하는 것이냐는 언급은 아예 <제안문>이 주장하는 바의 정반대를 <제안문>에 돌리고 있습니다. <제안문>은 그 첫 머리에서부터 ‘녹색신좌파당’으로 나아가야 할 근거를 진보신당 대의원대회의 결정 사항들(강령, 당헌 전문, <진보정당 10년 평가>, 당 발전 전략 등등)에서 찾고 있습니다. 다소 중언부언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당 강령을 거듭 인용하기도 합니다. 말로는 부족하다 싶어서 그림으로까지 이 점을 강조합니다.

    그런데도 황광우 선배는 <제안문>이 마치 “진보신당의 당 강령이 후져서” ‘녹색신좌파당’을 주장하는 것인 양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한국말로 쓰인 글을 이토록 정반대로 독해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상식적으로만 따져 보아도 “진보신당의 당 강령이 후지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진보신당을 사수하겠다고 1년 가까이 이렇게 장기 항전을 벌이고 있겠습니까? 오히려 “진보신당의 당 강령이 후지다”고 생각하는 쪽은 당 강령을 포함한 이 당의 모든 결정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민주노동당 복당을 추진하는 분들이 아닙니까?

    ‘87년 체제의 좌파’에 대한 이해도 그렇습니다. <제안문>은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구절에서 친절하게 이것이 하나의 ‘패러다임’이라고 규정해놓고 있습니다. 사람도 아니고 정파도 아닙니다. 패러다임입니다. 진보 민중운동이 어떠한 실천을 벌이든 항상 자유주의 세력에게 정치적으로 종속되는 것으로 귀결되고 마는 하나의 패러다임입니다.

    물론 1987년 바로 그 해부터 이런 패러다임에 균열을 내려는 노력들이 없지 않았습니다. 지금에 와서 ‘좌파’라고도 불리고 ‘PD’라고도 불리는 사회주의자들의 노력이 이미 그때부터 있었습니다. 민주노동당 창당도 애초에 그런 시도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노회찬 고문도 있었고, 심상정 고문도 있었고, 황광우 선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87년의 그 패러다임이 이제 ‘진보대통합’-‘민주대연합’의 2단계 시나리오를 통해 그 질긴 운명을 이어가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름 아닌 우리의 역전 노장들까지 그 부속품으로 삼을 태세입니다.

    이 운명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한, 황광우가 아무리 ‘주3일 노동’을 말하고, 장석준이 아무리 ‘녹색신좌파’를 떠들어도 그것은 별다른 정치적 의미를 지닐 수 없습니다. 이 모든 노력은 결국 어김없이 ‘보수주의 대 자유주의’라는 양강 구도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갈 뿐입니다.

    이런 맥락 속에서 <제안문>은 ‘21세기 신좌파’를 제창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우리의 정치를 보다 "선명히" 하자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현실 정치의 무게에 견주어 헐값으로 취급되고 있는 우리의 출발점을 새롭게 되살리자는 것입니다. 과거에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흐름으로 면면히 이어왔고 진보신당과 함께 ‘진보의 재구성’으로 굽이친 역사의 물줄기에 우리 스스로 더욱 충실해지자는 것입니다.

    이 과제 앞에서 누가 ‘구좌파’이고 누가 ‘신좌파’인지 가르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따지고 보면, 진보신당 당원인 우리 모두가 ‘구좌파’입니다. 그 관성 속에서 지금의 ‘통합/독자’ 논란도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또한 우리 모두가 ‘21세기 신좌파’로 거듭날 자격과 가능성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우리 <진보신당>이 ‘21세기 신좌파당’으로 도약하자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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