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도 못해본 사람처럼,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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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03일 01: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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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9월.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과 <조선일보> 사이에 진행됐던 소송 결과가 나왔다. 이 신문은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의 공사 중지로 인한 손실액이 2조5천억원이라고 보도했다. 실제 손실액이 145억원이었지만, 다른 언론사와 달리 이 신문사는 정정보도를 하지 않고 버텼다. 결국 천성산에서 목숨을 걸고 단식을 했던 지율스님이 이 신문사를 상대로 정정보도를 요청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의 판결문.
    “조선일보는 신문2면에 정정보도를 게재하고, 지율스님의 청구액에 따라 위자료는 10원으로 정한다.”
    그 유명한 10원 소송이다. 권력도 머리를 조아린다는 <조선일보>를 상대로, 단식으로 인해 바짝 마른 스님은 10원 소송을 진행했다. 100만원도 아니고 1,000만원도 아니고 단 10원 소송. 그는 그렇게 대한민국 최대 권력, 거대 자본에 단 10원으로 맞섰다.

    20011년 3월.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정신대문제 대책위 소속 할머니들의 수요집회가 열렸다. 19년 동안 고베지진(1995년)이 난 이후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수요집회였다. 그리고 정대협 소속의 할머니들은 일본 지진 희생자를 위해 묵념을 했다. 당시 정대협 윤미향 상임대표는 "가족과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은 수많은 희생자와 피해자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보내며 침묵으로 수요시위를 대신한다."고 말했다.

    내게 큰 울림을 준 두 가지

    국민승리21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진보정당에서 일하며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준 두 가지 사건이다. 물론 2004년 10명의 의원이 당선됐을 때의 감동도 있었고, 이랜드 비정규 투쟁도 벅차기만 한 순간들이었지만, 앞의 두 일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떨림과 물음을 내게 가져다 주었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모든 것을 버린 뼈만 남은 스님이 이 세상 가장 낮은 금액으로 <조선일보>를 찌르는 모습에서 난 무엇을 느꼈던가. 대를 이어 복수해도 시원치 않은 증오의 대상을 위해 용서의 묵념을 하는 늙은 할머니들의 모습에 어떤 울림을 받았던 것일까.

    당 대회 한 달을 앞두고 더 치열하게, 더 격렬하게 모두가 논쟁 중이다. 얼마 전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해 준 말이다. 그는 내게 암으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50대의 남성과 함께 차를 타고 하루 반나절을 보낸 얘기를 해줬다.

    “아무리 직업이지만 그 분과 같이 있으려니까 기분이 그랬어요. 그 분은 자신이 3개월 뒤에 죽은 다음 화장 처리된 유골이 담길 항아리와 납골당 위치를 보러 다녔거든요. 그러면서 여기 납골당은 주변에 음식점이 맛있는 게 없어서 나 찾아오는 사람들이 욕할 것 같아서 싫고, 여기는 이래서 싫고 하며 농담도 하더라고요.”

    내가 딱 그 꼴이다. 국민승리21 시절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진보정치라는 단어와 함께 살아왔다. 전업 활동가로 단 한순간도 이 대열에서 이탈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무기력해지는 동시에 괜히 실없는 농담만 늘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모르겠어. 그냥 통합이 안 되면, 난 끝나는 거지 뭐. 이제 어디 딴 거 할 일이나 좀 찾아봐야지. 어디 일자리나 있으면 좀 알아봐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방방곡곡에서 벌어지고 있다. 국민참여당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태도는 통합파인 내가 독자파를 설득하기에 머쓱한 분위기를 만든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도 독자파에게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조직적 성찰을 전제로 한 지난 당 대회의 결정에 난 사전 당내 토론회에서 분명하게 반대했었다. “정말 국민참여당이 조직적 성찰을 하면 같이 하는 거야? 그런 건 아니잖아. 그런데 왜 그런 문구를 넣으려고 하는 거지. 나중에 거기가 조직적 성찰해버리면 논의에 안 끼워 줄 명분이 없는 거야.”

    그리고 국민참여당은 정말 조직적 성찰을 해버렸다. “우리가 정치적으로 당 대회에서 결정한 것이 미숙했고 한방 먹었다는 걸 성찰하는 사람 어디 없어? 왜 아무도 그런 얘기 하지 않는 거지. 북한 세습문제는 당 대회 결정 사항이 움직일 수 없는 원칙이고, 국민참여당에 대한 입장은 당 대회 결정사항에 대해 쉽게 무시해 버리는 거야. 이거 정말 미치겠네.”

    게다가 유시민은 대선 불출마를 시사하는 발언까지 했다. “진보정치인 중에 누가 그렇게 대중들에게 자신을 버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아무도 없어. 그게 비록 기만일지라도 그게 연기라고 해도,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고, 명분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어. 권영길 의원이 그랬지만 여전히 판을 바꾸고 있지는 못해. 죽어야 산다면서 아무도 죽지 않으려고 해. 차라리 패권 말이야, 그거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해버리면 좋지 싶어. 지금은 그런 희생이 필요한 거 아냐, 우리? 나도 모르겠다. 진보신당이 뭐 내놓을 게 있어야 말이지. 나라도 뭐 내놓고 싶어.”

    자기희생이 필요할 때

    지금 이 국면은 누군가 철저한 자기희생을 요구한다. 통합이 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통합에서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는 민주노동당은 자신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걸 버려야 한다. 그래야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다. 그래야 나 같은 지역 위원장이 진보신당을 사수하려고 하는 당원들을 설득할 수 있다.

       
      ▲필자

    통합은 시대의 요구라고 한다. 통합을 거부하면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은 물 건너 간다고도 말한다. 통합이 안 되면 진보정치 10년의 역사가 뒤안길로 사라질 수도 있다고 얘기하고, 한국사회에 보수양당 체제가 굳어져 진보정치는 소멸할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들이 나와야 한다. 당연히 통합을 절실히 원하는 세력에게서 말이다.

    지역에서 진보정치와 함께 활동하는 한 사람으로서, 두 당의 진정성 있는 통합파들에게 요구하고 싶다. 이제부터 무엇을 버릴지 고민해달라고. 지율 스님이 10원짜리 동전으로 세상에 감동을 주었듯이 통합을 위한 자기희생, 지지층에게 묵직한 감동을 주는 행위는 언제 나오는 것일까.

    정대협 할머니들이 용서와 화해라는 울림을 세상에, 아니 적어도 진보진영에 주기 위해서라면, 적어도 유시민보다는 더 희생적인 무엇과, 유시민보다 더 서로에게 절절하게 구애하는 모습이 나와야 하는 거란 말이다.

    정말 사랑을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들처럼 미지근하게 이게 뭐야,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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