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린 왜 자유주의 세력과 손 잡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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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7월 31일 01: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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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기고하며

    7월 31일은 죽산 조봉암 선생이 사법살인을 당한 52주기가 되는 날이다. 죽산 조봉암 선생은 올해 1월 20일 대법원 재판부의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게 되었다. 그간 진보진영에게 죽산 조봉암 선생은 이승만에 의해 정치적 탄압을 받은 ‘희생자’ 이미지가 강한 편이었다.

    그러나 조국 교수가 잘 지적했듯이 조봉암 선생은 한국 진보정치의 ‘오래된 미래’이기도 하다. 조봉암 선생은 일찍이 박헌영-김일성 노선과 결별하고, 당시 우파 민족주의 세력도 거부했던 48년 제헌의회 선거에 참여하여 헌법제정위원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이후 이승만에 의한 초대 농림부 장관을 수용하며 토지개혁의 기틀을 놓는다. 이후 1955년 신익희가 주도한 민주당이 창당될 때 합류를 강하게 노력했지만, 민주당의 보수파였던 조병옥, 장면 등의 반대로 인해 불가피하게 1956년 진보당을 독자적으로 결성하게 되었다.

    조봉암 선생의 이러한 정치적 행보는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의 시각에서 보아도 매우 과감한 것들이다. 또한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에 대한 지향, 정치 중심주의에 대한 안목, 정치적 현실주의의 면모를 풍부하게 보여주는 것들이기도 하다.

    ‘복지국가 단일정당’ 노선은 진보주의자(사회민주주의자)와 진보적 자유주의자의 연립정당 모델을 지향한다. 그런 점에서 조봉암 선생의 정치노선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미래’ 죽산 조봉암 선생님의 52주년을 기리며 한국 진보정치에 대한 생각을 적어본다.

    “이 박사는 소수가 잘 살기 위한 정치를 하였고 나와 내 동지들은 국민 대다수를 고루 잘 살리기 위한 민주주의 투쟁을 했소.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밖에는 없는 것이오.

    그런데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가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오. 다만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그 희생물로는 내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랄 뿐이오.”

    1959년 7월 31일 오전 11시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의 사형대 앞에서 죽산 조봉암선생이 남긴 마지막 유언이다. 금년 1월 20일 대법원 재판부는 "조봉암 선생이 만든 진보당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평화통일론을 앞세워 북한에 동조했다는 공소 사실은 인정할 수 없다"며 헌정사상 첫 ‘사법살인’으로 부르는 조봉암 사건에 대해 52년 만에 무죄판결을 내렸다.

    계급독재와 자본독재를 거부하며 복지국가를 지향

    죽산은 일제 시대엔 반제반식민지운동을 위해 볼세비즘을 무기로 조선공산당 창당의 주역으로 활동하다가 상해에서 7년간 손가락 일곱 마디가 잘리는 옥살이 끝에 감옥에서 해방을 맞은 후, 프로레타리아 계급독재와 자본독재를 거부하는 전향을 하고, 비미비소(非美非蘇)의 자주적 평화통일운동으로 한국 최초의 사민주의 진보정당인 진보당을 창당했다.

    그는 해방 후 인천에서 제헌의회를 비롯한 두 번의 무소속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헌법제정위원으로 대한민국의 주춧돌을 놓았고 두 번의 국회부의장 역임, 이승만 정부의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농지개혁의 토대를 마련했다.

    두 번의 대통령 도전으로 이승만의 정적이 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파란만장한 혁명가이자 정치가인 조봉암선생의 52주기를 몇 일 앞두고 한국 민주주의 굴곡의 역사와 진보정치의 현실에 가슴이 무겁기만 하다.

    “인류의 새 이상이라고 하는 것을 말하자면 …중략… 인류 유사이래의 경험과 성과, 그것을 다시 종합 정리해서 그 시대에 맞고, 그 사회에 맞고, 그 인정에 맞도록 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고침으로써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는 일을 없애고, 또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을 없애고, 모든 사람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모든 사람이 착취당하는 것이 없이 응분의 노력과 사회적 보장에 의해서 다 같이 평화롭고 행복스럽게 살 수 있는 세상, 말하자면 우리들의 이상인 복지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진보당 창당대회에서 죽산이 개회사에서 말한 진보당의 이념, 그것은 바로 평화 통일된 민족이 누리는 복지국가이다. 21세기 역사적 과제는 과연 무엇인가? 반세기 전 한국의 최초 진보적 대중정당이 제시한 비전과 달라질 상황이 되었는가?

    남북의 분단은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고착화되어 있고 이를 주체적으로 극복해야 할 민족의 당사자들은 평화체제로의 진전보다는 기득권과 정권의 유지에 더 혈안이 되어있다.

    복지국가 단일정당 노선은 조봉암 노선의 21세기형 실천

    한편 한국정치는 복지국가의 사회적 생산력과 물적 토대가 갖추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민중들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한 채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찍이 조봉암 선생은 “5%밖에 지지층을 가지지 못한 공산당이나 극우세력이 정권을 독점하고자 하는 것은 잘못이며, 나는 나머지 95%의 중간층을 중핵으로 한 정당을 조직하고자 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진보적 대중정당을 향한 현실주의자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복지국가 진보정치연대는 죽산 조봉암의 정신을 이어받아 21세기형 진보당인 복지국가 단일정당을 만들고자 한다.

    해방 이후 우리는 반세기만에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아시아의 몇 안 되는 나라가 되었다. 정치적 민주화는 동시에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요구를 분출시켜 IMF 구제금융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사회양극화와 불평등 정도가 OECD평균수준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금융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해체시키고 있다.

    한국경제의 재정능력과 경제활력, 즉 사회적 생산력은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실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은 국민들도 기존의 사회경제체제가 강요한 무한경쟁의 원리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허구적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한국의 사회적 생산력과 국민들의 열망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혁신적인 경제와 역동적이고 보편적인 복지를 두 축으로 국가사회의 운영원리를 근본적으로 재편할 새로운 정치세력의 존재이다.

    노동과 평화를 ‘복지국가’ 가치와 대립시키는 접근은 잘못

    평화, 인권, 생태, 노동 등 한국사회는 갈등의 축이 무수히 많은, 근대와 탈근대적 과제가 중첩된 사회이다. 진보정치세력이 현 시기 한국사회의 갈등을 정의하고 보수진영과 대립 축을 세워야하는 갈등의 축은 바로 보편적 복지의 문제이다. 우리는 국민 다수와 사회 제 계급, 계층이 복지동맹의 한 울타리로 정렬될 수 있도록 보편적 복지의 축을 과감히 그어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진보세력은 국민과 역사의 준엄한 책임 앞에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길에 그동안 함께 같은 길을 걸어왔던 진보진영과 시민사회의 동지들이 함께 뜻과 힘을 모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차이를 무시한 묻지마 통합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향후에 통합을 위해서라도 서로의 선 자리가 분명해야 한다. 나는 통합진보정당에서 서로의 차이가 존중되고 민주주의가 더 실현되리라는 확신을 할 수 없다. 리더십 형성이 부정적으로 각인되고 당 운영의 민주주의가 다수에 의한 지배로 인식되는 현실이 단기간 내에 극복될 수 있을까?

    또한, 노동과 평화의 문제를 복지와 대립시키는 진보진영의 상황 인식은 지극히 편협하다. 조직된 노동자와 노동운동만 의존하는 활동가 정치를 극복하지 않는 한 진보적 대중정당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진보적인 것, 정치적인 것, 인간적인 영역이 갖는 상호 긴장과 모순을 현재의 진보영역은 감당하기가 버거워 보인다.

    보편적 복지국가 시대정신 공유한다면, 자유주의 세력과도 손 잡아야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시대정신을 공유하고 국민들을 위한 책임정치를 하겠다는 어떤 세력과도 연대를 하고자 한다. 우리 자체의 힘에 의한 신당 창당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일 터이나 독자적인 힘만으론 부족하므로 다양한 정치세력에게 이를 제안한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 인식 속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 대응에 한계를 보인 자유주의 정치세력에게도 과감히 복지국가 건설의 대의를 위해 연대를 제안한다. 시민사회진영에도, 민주노조운동에 소외돼 있는 노동자들, 비정규직, 영세상인, 여성, 청년들에게도 함께하자는 손을 내밀고 있다.

    시대적 대의에 동의한다면 새로운 미래를 여는 길에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과거를 그리도 잘 용서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그 의도보다도 결과로 판단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당연한 인지상정이지만 새로운 대중정치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면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그것이 국민들을 책임지는 진보정치를 실현하고 확장하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통합진보정당을 위해 노력하는 동지들, 새로운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 독자노선을 견지하는 동지들의 생각도 매우 소중하다.

    통합진보정당 건설을 위해 노력하는 있는 동지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평화통일과 민주적 사회주의를 실현할 진보적 대중정당을 만들어 달라고. 국민들의 인식과 유리된 낡은 이념 속에 있는 분파를 당내 투쟁을 통해 제거해 달라고. 그러한 통합진보정당을 만들겠다는 강고한 의지와 경로가 있다면 기꺼이 힘을 함께 하겠다고.

    또한, 새로운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 독자노선을 견지하는 동지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국민 속에서, 국민의 힘과 현실에 기반한 진보를 만들어 달라고. 혼자서 열 걸음 나아가기 보다는 열 사람과 한 걸음 내딛는 정치를 해달라고. 옳은 방향을 이해 못하는 국민들을 원망하기보다 국민들의 이해와 의식 속으로부터 나오는 비전에서 올바름을 찾아달라고. 그렇게 새롭게 구성된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는 견결함이 있다면 기꺼이 함께 하겠노라고.

    결국은 큰 길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을 믿으며

    평화통일과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길, 그러한 길이 한국사회에서의 진보정치라고 우리 모두 생각하고 있다. 그러한 큰 길에 이르는 다양한 길에 우리는 서 있다. 자, 이제 바로 시작이다. 큰 길에 이르는 과정에서 각자의 작은 올레길이 서로 만나게 될 때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수신호를 주고 받으며 사민주의 정당의 종착역에서 함께 하길 열망한다.

    그것만이 52년 전 모든 국민이 골고루 잘사는 평화통일국가를 위해 목숨을 민족의 제단에 바친 죽산 선생에 대한 우리 후예들의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죽산이 사형당하는 날 입회목사에게 읽어 달라 부탁했던 누가복음 23장 22절의 무리처럼 그의 죽음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지속시키게 될 것이다.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 대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 * *

    * 이 글의 필자는 진보신당 인천시당 정책위원장이며, 당내 사민주의 모임인 진보정치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또한 인천지역에서 의료생협 운동을 해왔으며, 평화의원 원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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