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건좌파 배신과 급진파 오만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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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7월 29일 08: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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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의 순간’이라는 말은 있지 않습니까? 대개는 인생이든 사회생활이든 가장 비극적인 순간들은 우리에게 가장 깊은 진실을 가장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번 ‘오슬로 학살’도 그랬습니다. 이 끔찍한 만행은,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 8만8천달러의 초(超)부국(富國), 모범적인 복지국가, 상당수의 한국인들이 ‘지상낙토’라고 생각하는 노르웨이에 대해서 어떤 아주 불편한 진실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르웨이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진보주의자들조차도 좀처럼 잘 비판하려 하지 않는, "복지국가가 있으며 똘레랑스 정신으로 충만한" 유럽에 대해서도 우리가 애써 간과하려 하는 어떤 매우 중요한 부분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학살과 연관된 여러 가지 사실들은, 우리가 익히 믿고 있는 몇 가지 신화들을 파괴해버리고 맙니다.

    1. 신화 1 : "똘레랑스와 자유주의의 유럽"

    1945년 이후의 유럽에서 좌우파 사이의 일종의 힘 균형은 어느 정도 관용의 분위기를 조장한 것까지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럽에서 관용과 자유를 존중하는 정치세력만이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학살의 현장인 노르웨이만 해도 학살 주인공이 몇년 간 몸 담은 극우정당인 ‘진보당'(진정한 진보와는 무관합니다)은 대체로 20~25%의 지지율을 과시해온 정당입니다. 참고로, 이번 공격의 목표가 된 온건좌파의 대표 주자인 노동당의 통상적 지지율은 25~30% 범위입니다.

    극우들이 거의 사민주의자만큼이나 인기를 누리는 사민주의 국가 노르웨이? 그런데 노르웨이와 어쩌면 비교도 될 수 있는 ‘관용의 조국’ 네델란드에서도, 지난 총선에서 극우적 ‘자유당’은 17%의 표를 얻고 말았습니다.

    노르웨이와 문화, 역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덴마크에서 역시 최근의 총선에서 극우적 ‘민중당’은 15%의 표를 얻음으로써 이민자들을 비상히 긴장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거의 모범으로 보이는 조용하고 질서정연한 유럽의 여러 사회들에서는 거의 5분의 1에 가까운 유권자들은 종족적 소수자에 대한 하등의 관용도 없는 극우정객들을 지지한다는 말입니다. 이상하죠? 그 이유를 따져봅시다.

    2. 신화 2 :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보장합니다"

    이것은 우리 아시아적 시각에서 봐도 순 거짓말입니다. 현재 아시아의 최대 자본주의 국가인 중국은 민주주의적 사회가 아니며, 민공(民工) 등 저임금 노동자 착취를 위해 호구제 등 매우 비민주적 제도들을 이용합니다.

    ‘자본주의 연구회’ 하면서 북한 서적 몇 개 읽었다면 당장이라도 감옥행할 수 있는, 교사 등 공무원 노동자들이 정당 가입의 권리 등 기본적 민주적 권리도 보장 받지 않는 대한민국과 같은 세계자본주의의 기린아도 충분한 의미의 민주주의 국가는 전혀 아닙니다.

    개발국가와 신자유주의를 교묘하게 접목시킨 싱가포르도 민주주의와 완전히 무관합니다. 유럽 같은 경우에는, 1910~40년대의 민주화, 즉 일체 성인들의 보편적 선거권 획득은 노동운동, 사회주의 운동의 성취였지 자본가의 시혜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1930년대 유럽의 파쇼 정권들은 자본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며, 노르웨이의 진보당 등 오늘날 유럽의 극우정당들도 대체로 부유층, 기업인들의 기부 등으로 영향력을 확충합니다. 즉, 총자본 세력의 상당부분은, 극렬한 반이민자적, 외국인 혐오주의적 수사를 이용하는 극우당이라도 지지함으로써 좌파, 그리고 총노동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합니다.

    총노동과의 일종의 세력 균형이 이루어진 상황에서는 유럽의 총자본은 민주주의적 게임 룰을 일단 당분간 받아들이지만, 다문화주의적, 관용적 현대 민주주의를 사실상 부정하는 세력들까지도 키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3. 신화 3 : "유럽 근로대중들의 계급의식 수준은 높다"

    대자본이 키운 극우파에 표를 몰아주는 이들은 비극적이게도 중소사업가나 저급 사무원이 아니면 대개 일반 노동자들입니다. 노르웨이 같으면 지난 2005년 총선에서는 제조업 노동자들 중에서는 42%는 노동당을 찍었는가 하면 무려 27%는 ‘진보당’을 찍었답니다.

    특히 저임금 저숙련 노동자의 경우에는, 노동당에 대한 지지(30%)보다 진보당에 대한 지지(37%)가 훨씬 높았습니다. 1933년의 독일에서마저도 압도적 다수의 노동자들이 나치당이 아닌 사민당과 공산당을 지지했는데, 어찌해서 편안하게 사는 노르웨이에서는 극우, 준(準)파쇼 세력들이 이렇게 노동자들의 표심을 잡았는가요? 여기에서 몇 가지 중요한 원인들은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부분적으로 수용, 실시함으로써 특히 노동당은 노동자, 그 중에서는 특히 저숙련, 저임금 노동자들을 배신했습니다. 노동당이 방관해온 제조업의 해외 이전, 지자체들의 청소 등 ‘비본질적 부문’의 외주화, 그리고 노동당이 실시한 우체국의 독립법인화와 국영 5대기업의 부분적 민영화 등은 무엇보다 해고에 가장 노출된 저숙련 노동자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이민자들을 배제함으로써 ‘토박이’들을 보호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진보당’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상당 부분 중산계급화되고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노동당으로부터의 소외 때문입니다. 노동당보다 왼쪽에 있는 좌파 정당, 즉 사회주의좌파당과 적색당(공산당)은 처음부터 고학력자 위주로 짜여져 있으며 노동자들에게 말도 제대로 건넬 줄 모릅니다.

    적색당의 기관지라고 할 일간 <계급투쟁>(www.klassekampen.no)의 기사의 상당 부분은, 석사학위 쯤 갖고 있어야 읽을 수 있는 논문투의 이야기입니다. 그러한 정당에는 혹시나 가방끈이 짧은 노동운동가가 들어와도 ‘학출’들 사이에서 늘 불편함을 느낄 것입니다.

    온건좌파인 노동당의 배신적 태도, 급진좌파의 은근한 ‘먹물’ 근성과 오만, 이와 같은 요인들은 수많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사회주의 혁명이나 변혁이 아닌 종족적 폐쇄성을 신자유주의로부터의 구출의 방법으로 인식하게끔 만들었습니다. 적색당의 당원인 저로서도 자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노조 등 계급 조직에의 가입, 선거 때의 좌파 정당 지지 등은 물론 계급의식 배양의 중요한 수단이지만, 계급의식의 확고화에 가장 기여하는 것은 무엇보다는 직접적 투쟁경험, 그리고 특히 개인적 위험 부담까지 안아야 할 탈(脫)제도적 투쟁의 경험입니다.

    한국 노동운동이 1990~2000년대의 엄청난 탄압과 포섭작전 등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전개돼온 것은 1987년 대투쟁 유경험자들의 리더십과 열성 참여 덕분이기도 했지요. 한 번 진정한 투쟁, 최루탄, 진압봉, 해고 협박 등의 맛을 본 사람이면 그 평생이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설령 파업을 해도 다 제도의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편안한 노르웨이에서는, 탈제도적 투쟁의 마지막 순간들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모택동주의적 ‘학출’들의 공장 진출 시도와 월남전쟁 반대 격렬 시위 정도이었습니다. 그걸 경험한 사람들은 오늘날 적색당의 기간 당원들이죠.

    하지만, 사민주의 체제에 나름대로 포섭된 다수의 노동자들은 이 일에 참여하지 않았고 체제에 대한 급진적 저항의 경험을 결여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좌파대오 이탈이 쉬운 것입니다.

    실업자가 돼도, 노르웨이 노동자의 소득 수준은 폴란드나 중국 노동자의 소득 수준에 비해 몇 배 높을 것입니다. 그만큼 자본주의적 세계체제 안에서는 노르웨이의 위치가 아주 높은 셈입니다. 모든 지구인들이 노르웨이인만큼 자원을 소비했다면 우리에게 3~5개의 지구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미래에 세계적 사회주의 사회가 건설된다면 ‘나머지 세계’의 소비 수준이 높아지는 등시에 노르웨이와 같은 예외적 부국들의 소비 수준은 조금 낮아져야 할 것입니다. 즉, 노르웨이에서 국제적인 혁명적 노선으로 간다면 이는 본인과 동류들의 생활수준 제고를 위한 투쟁이 아니고 반대로는 안락한 ‘부국 시민’ 생활의 (적어도 부분적) 포기입니다. 아주 어려운 일이죠.

    1940년대말 이후 사민주의 체제에 포섭돼 혁명성을 잃고 점차적인 실질 소득의 향상에 익숙해진 수많은 노동자들은, 노르웨이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생할수준을 당연시하면서 ‘사수’하려고 합니다. 누구로부터요? 사민주의적인 자본과의 타협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자본으로부터의 사수보다 이민자로부터의 사수는 훨씬 더 쉽게 이해되어질 수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1940년대 말 이후로 노르웨이 노동자들을 가난뱅이에서 중산층 시민으로 만든 노동당 등 사민주의 세력들은 동시에 노동자들을 포섭하면서 그들의 혁명성을 많이 제거했습니다. 체제에 순치된 수많은 노동자들은, 특히 고학력자 위주의 급진좌파가 그들에게 접근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노동당에 분노를 해도 더 왼쪽으로 가지 않고 차라리 오른쪽으로 가버려 종족적 폐쇄성을 통한 "우리 소득 수준의 사수" 노선을 택하는 아쉬운 일은 노르웨이에서도 벌어지고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유사하게 벌어집니다.

    극우파의 대중화는 급진적 좌파의 고학력자로서의 오만과 무능, 그리고 온건좌파의 신자유주의적 배신을 배경으로 합니다. 극우파시즘이 이렇게 보편화되는 상황에서는 거기에서 극렬분자들이 생기고 이번처럼 대형 참극이 벌어지고 말죠.

    이 상황의 해결 방법은? 무엇보다 혁명적, 계급적 좌파의 부활과 대중성 확보입니다. 적색당과 같은 급진좌파 정당 사람들은 공장 노동자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하고, 그들의 요구 – 예컨대 제조업 보호 정책이나 해고 방지 등 – 를 우선시할 줄 알아야 하고, 그들에게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급진적 변혁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브 나로드", 인민 속으로 가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유럽을 킬링필드로 만들려는 파쇼들에게 맞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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