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애들 병정놀이가 아니다"
By
    2011년 07월 29일 07:08 오전

Print Friendly

내가 장석준 동지에게 이런 편지를 써야 하다니 참으로 흘러간 세월이 야속하다. 어찌하여 그 명석하던 장동지가 이렇게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고 좌익소아병의 온갖 증상을 드러내고 있는지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나는 이 편지에서 장석준 동지께 다섯가지 질문을 드릴 것이다. 먼저 장동지의 진심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질문을 드리는 바이다. 원컨대 동지적 애정이 담긴 성의 있는 답장을 받았으면 한다. 아울러 각 질문에 대해 먼저 나 자신의 ‘사심 없는 마음’을 밝힐 것이다.

1. 누굴 만나고 있는가?

진보신당의 강령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므로 삶의 진리는 만남이요, 자유는 본질에서 사회적이다.” 장석준 동지와 나는 만나야 한다. 만남은 소통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장동지의 글을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이번에 제기한 ‘녹색신좌파’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장동지가 운운하는 생태주의,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 하지만 사회주의에 대해서만큼 누구에게 양보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대한민국 땅에서 황광우가 이해하기 힘든 사회주의 문건이 있다면, 그 문건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하여 묻는다. 장동지가 만나는 분들은 누구인가? 생태주의자를 만난다면 누구인가? 사회주의자를 만난다면 누구인가? 지식인인가, 대학생인가, 노동자인가? 장동지가 말하는 불안정 노동자는 어떤 직종의, 어떤 종류의 근무형태에 종사하는 사람인가? 그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당 가입을 권유한 적이 있는가? 그 불안정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의 보수성을 탓하면서 녹색신좌파의 깃발을 높이 들 것을 요구하던가?

먼저 밝힌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주로 학생들이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매주 고전을 읽기 위해 만난다. 그런데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나의 사랑하는 진보정당을 단 한 번도 자랑해 본 적이 없다. “진보신당을 가지고 집권할 터이니, 너희들도 진보신당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한 적이 없다.

왜일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분당 이후 우리들의 정치적 행보를 아이들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또 전남대 철학과 학생들과 대학원생들 만나고 있다. 매주 철학과 학생들과 고전을 함께 읽고 있으며, 지난 6월 대학원생들의 자치모임인 학생회를 결성하였다. 대학원생 동학들에게 희망버스는 권유해도 진보정당 가입은 권유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진보정당의 강령이 보수적이어서인가? 구좌파의 유물이어서인가?

올 들어선 교사들의 고전 읽기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가끔 교사들 내에서 통합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교사들 간에 오고가는 대화를 들으며, 우리의 길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이제 교사들도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종북’ 편향을 알게 되었고, 통합 논의 속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하지만 교사들은 진보정당들의 통합을 당연한 선택으로 간주하고 있다. 대중의 이 평범한 판단, 이 상식적인 판단을 기회주의라고 매도할 것인가? 그러고도 대중적인 녹색신좌파당을 건설하겠다고 할 것인가?
사람은 누굴 만나는가에 의해 의식의 내용물이 형성된다. 나는 장동지의 정치의식이 대한민국 국민들 중 어떤 분들을 대변하고 있는지, 누굴 만나 대화를 나누며 살고 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싶다.

2. 조승수 대표가 기회주의자라고?

나는 장동지를 신뢰한다. 장동지의 이상주의와 때묻지 않은 순결함을 믿는다. 그런데 최근 장동지의 이름으로 나온 문건에는 이해하기 힘든 표현들이 출현한다. “‘87년 체제’의 중요한 한 특징인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진보 ‧ 민중운동 진영의 종속을 극복하는 게 아니라 정반대로 그 종속을 최종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진보신당, ‘녹색신좌파당’으로 도약하자>중에서)

참으로 무례한 발언이다. 장석준 동지, 진보 민중운동 진영이 자유주의 세력에 대해 종속되었던 게 87년 체제의 특징이었다고 정말 생각하는가? 혹시 약을 잘못 먹은 것 아닌가? 이 모욕적인 발언을 백기완 선생 앞에 제기할 수 있는가?

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백기완 민중후보진영의 투쟁을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종속이라고 규정하는 이 오만한 무례는 어디에 근거하는가? 87년과 88년 7~8월 대파업을 경유하여 탄생한 전노협과 그 전투적 노동조합투쟁을 근거로 등장한 민주노총 역시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종속의 표현이었던가? 역시 마찬가지로 2000년에 창건된 민주노동당 역시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종속이었던가?

내가 알기로 창립 당시 민주노동당의 노선은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여 장석준 동지도 소주잔만 기울면, “민중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외치지 않았던가? 나의 기억력이 치매에 빠진 것인가?

“‘통합당’은 곧 민주당 중심 연립정부 참여 혹은 민주당과의 통합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일 수밖에 없다.”(<진보신당, ‘녹색신좌파당’으로 도약하자>중에서) 장동지의 이 거침없는 예언 앞에 나는 한동안 내 눈을 의심했다.

지금 장석준 동지가 늘어놓고 있는 예언은 조승수를 비롯한 당지도부가 모두 기회주의자라는 예단 위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나는 장석준 동지만큼 조승수 대표를 믿는다. 이 믿음은 역사적 실천을 공유한 자들끼리 오고가는 당당한 믿음이다.

나와 조승수는 87년 대통령 선거에서, “광주학살 원흉을 심판하라!”, “8시간 노동제를 실시하라!”, “평화협정 체결하라!”는 혁명적인 플래카드를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 그 넓은 대로 한 복판에 내건 젊은이들이었다. 새벽 2시 12월의 밤 공기는 차다 못해 살을 벤다. 전봇대 하나 오르면 손이 꽁꽁 언다. 그렇게 새벽 4시까지 모두 곤한 잠을 자는 사이 우리는 전봇대를 탔다.

거슬러 올라가면 조승수와 나는 인천의 공장에서 만났고, 사회주의 학습을 하다가 국가보안법으로 징역을 살았다. 나의 기억이 옳다면 조승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조직의 결정을 위반하지 않았다. 장석준 동지, 지금 누가 누구에게 기회주의자라는 더러운 말을 함부로 쓰는가?

내가 아끼는 장석준 동지의 판단력이 왜 이렇게 망가졌나, 알아보기 위해 글을 뒤졌다. 뒤져보니 2011년 2월 14일에 발표한 한 글에서 장동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문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최근 심상정 고문은 미국 교민단체들과의 간담회에서 ‘민노당, 진보신당이 통합하고 나면 이 통합 정당이 민주당 등과 함께 대선에 공동 후보를 내서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 고문의 이 발언은 통합론이 자리한 전반적인 맥락을 더 없이 솔직히 드러내 보여준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나랴?’는 속담 그대로 진보신당의 지도부가 기회주의자로 매도된 데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문제는 심이었다. 노심조가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당을 파탄의 길로 이끌고 있다는 마타도어의 진원지는 이것이었다.

만일 장동지의 예단 그대로 노심조가 자신의 사욕에 눈이 어두워 민주연립정부노선을 제창하였고, 그런 속셈으로 지금의 통합을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면, 나는 장동지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왜 노회찬은 지난 지방 선거에서 온갖 비난을 다 들어가며 끝까지 후보 사퇴를 거부하였던가? 장동지의 그 놀라운 분석력으로 노회찬의 어리석은 ‘독자의 길’을 풀이해달라.

남의 눈에 든 티를 지적하기 전에 자신의 눈에 든 대들보를 뽑으라는 말이 생각난다. 심지어 노심조가 진보신당을 파탄내지 못해 안달을 하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인심의 무상을 느꼈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노와 조를 기회주의자라고 규정하는가? 노와 조가 민주연립정부노선을 주창한 적이 있던가?

장석준 동지는 진보정당의 정책을 담당하는 책임 일꾼이다. 그렇다면 대표의 정치적 발언을 잘 보좌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과연 조승수 대표의 발언이 기회주의인가 아닌가 분석해 보자. 나는 유시민 관련 인터뷰에 조승수의 진심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고 본다. 조승수는 유시민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조승수에 의하면 유시민은 진보정치의 ‘기역, 니은’도 모른 사람이다. 국민참여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라는 게 조대표의 입장이다. 이처럼 유시민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도 기회주의자인가?

유시민 관련 인터뷰에서 밝힌 조대표의 고민은 다음 세가지이다. “첫째는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새 진보정당이 진보의 독자적 성장과 발전이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인가. 둘째는 진보의 혁신과 재구성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가. 셋째는 … 진보정치에게 요구되는 당면 과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가.”

조금이라도 진보정당운동의 현황과 고민을 아는 사람이라면 조대표의 사고가 얼마나 유연하면서 견실한 것인지, 참으로 진보정당의 정신을 충실하게 실현하고 있는 실천가임을 금방 느낄 것이다.

장석준 동지, 지금도 심상정의 민주연립정부론, 이것 때문에 지금 조대표를 기회주의로 규정하는가? 심이 기회주의의 수원지이기 때문에 심상정과 함께 단식투쟁하는 노회찬도, 이 기회주의 저수지에서 흘러나온 냇물이며, 조승수 역시 보나 안 보나 기회주의의 강물인가?

그렇다면 대표를 보좌하는 윤난실, 지난 30년 단 한 번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길을 이탈한 적이 없고, 자신의 아들 이름 그대로, 한길로 살아온 그녀도 기회주의자인가? 그렇다면 다시 광주에서 윤난실을 보좌하는 김상호도, 광주항쟁 당시 대가리에 총을 맞고 죽었다 살아난 김상호도 기회주의자란 말인가? 장석준 동지, 혹시 이런 사고야말로 ‘조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닌가?

3. 장동지가 신좌파라면 황광우는 구좌파인가?

나는 사회주의자이지 좌파는 아니다. 장동지, 마르크스가 스스로 좌파라고 규정한 적이 있던가? 좌파와 우파는 특정 사안에 대한 편향된 정치적 태도를 표명하는 말이지, 한 사람의 사상을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말이다.

내가 가는 길은 정도이다. 하여 나는 좌파를 사양한다. 내가 보기에 한국에서 통용되는 좌파는 자신의 사상적 정체성의 혼돈을 은폐하기 위해 쓰는 포장지에 불과하다. 그렇잖은가? 그래도 나와 함께, 공산당 선언의 해설작업에 동참한 장동지가 고작 자신의 사상을 신좌파라고 규정하고 있는 데에서 나는 불만이다.

장동지 답해 달라. 도대체 나의 사상의 무엇이 낡은 것인가? 나는 마르크스의 가르침 그대로 자본주의와 인간의 소외를 폭로한 죄밖에 없다. 이것을 폭로한 것이 낡은 것인가?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소외가 마르크스의 예견과 달리 나타나고 있는가? 그것은 무엇인가?

나는 마르크스의 가르침 그대로 자본과 노동의 적대적 관계를 지적해왔다. 이것이 낡은 사상인가? 21세기 자본주의는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비적대적으로 전환하고 있는가? 나는 마르크스의 가르침 그대로 역사 발전의 기관차는 계급투쟁이라고 가르쳐왔다.

이러한 나의 생각이 낡은 것인가? 그렇다면 21세기의 자본주의는 계급투쟁이 아닌 다중투쟁으로 전환하였다는 말인가? 나는 마르크스의 가르침 그대로 계급의 철폐가 인류가 나아갈 길이라고 믿고 있다. 이러한 계급 철폐의 꿈이 환상이란 말인가? 도대체 나의 사상이 어디가 낡았길래 새로운 이념으로 재무장해야 하는 것인지, 장동지의 고견을 꼭 듣고자 한다.

진보신당의 강령 19조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생태주의의 문제의식을 환경이라는 특정 부문에 제한하지 않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생태주의적 가치와 관점을 구현한다.” 그렇다. 나는 생태주의적 가치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구현하는 데 부족한 사람이다. 혹시 생태주의를 받아들이면 신좌파이고 생태주의를 거부하면 구좌파라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정말 그런 것인가?

미안하다. 나는 생태주의자가 되기엔 부족한 사람이다. 당 강령 21조는 이렇게 말한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화석 및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 과소비 체제를 재생가능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저소비 체제로 전환한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이 조항을 실천하기 위해 근검 절약하였고, 그 과실로 지금 3키로와트짜리 태양광 발전을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영혼은 사회주의이지, 생태주의는 되지 못함을 고백한다. 나는 절제야말로 21세기 인류 문명이 가야할 길임을 확신하고 있지만, 전희식 동지와 같은 일관된 생태주의자가 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당 강령 22조는 이렇게 말한다. “핵발전소의 추가 건설을 중단하고 단계적으로 폐지하며, 전 지구적인 핵 무장 철폐의 출발점으로서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추진한다.” 지금 진보신당의 강령이 안 좋아 핵발전소를 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연석회의의 합의문에 핵발전소 폐지 조항이 누락되어 통합을 반대하는 것인가?

합의문 제13조에 기록된 “4대강 사업 및 운하 건설 저지와 생태 복원 등 친환경정책, 핵발전의 단계적 폐기, ‘정의로운 전환’ 방식을 통한 친환경 재생가능에너지 체제 수립”은 정녕 공문구에 지나지 않은 것인가?

장석준 동지에게 나는 듣고 싶다. 진보신당의 지도적 일꾼으로서 당 강령 22조를 실천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가? 참고로, 광주의 당원들은 지난 6월 그 뜨거운 날, 광주에서 영광까지 핵발전소 폐지 가운을 입고 도보 투쟁을 하였다.

내가 보기에 진보신당의 당 강령이 후진적이어서 새로운 녹색신좌파당을 만들자는 장동지의 제안은 혁명운동을 애들 병정놀이로 착각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여기 보세요. 젊은이, 당 강령 한 조항을 실천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거예요!”

건듯하면 Again ‘민주노총 의존 정당’, Again ‘운동권 정파 연합 정당’이라며 우리의 과거를 비웃는 장석준 동지, 노동조합 하나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동지들이 목숨을 바쳤는지 알고 있나요?

“한국의 진보 좌파는 박정희 산업화 이래의 ‘성장’ 신화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장동지는 쓰고 있다. 지금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고 있는가? 성장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나는 할 수 있는 한 연구했고, 고민했다. 그리고 ‘주3일 노동제’를 제안했다. 주3일 노동제 사회야말로 우리가 쟁취해야 할 사회주의사회라고 외친 것이 2002년 어느 시점일 것이다.

게으른 것은 장동지와 같은 젊은 일꾼들 아니었나?. 도대체 성장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민주노동당 시절, 혹은 진보신당 시절, 당신은 무엇을 했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남에게 떠넘기고, 남이 한 일은 콩 놔라 팥 놔라 신경질나게 간섭하는 이런 분을 보노라면 “컴퓨터 자판 위에서 가상 혁명(virtual revolution)을 추진하는 키보드 좌파”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4. 민주노총 의존이 문제인가, 아니면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가?

“우리가 지금 추진되고 있는 방식의 이른바 ‘진보대통합당’ 건설에 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은 다시 한 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집단적 지지에 대한 환상에 기반한 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며(Again ‘민주노총 의존 정당’), 80년대 이래의 운동권 정파들을 한 번 더 총결집하겠다는 것이다(Again ‘운동권 정파 연합 정당’).”(<진보신당, ‘녹색신좌파당’으로 도약하자>중에서)

참으로 배부른 소리이다. 노동조합 하나 만드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모르는 자칭 혁명가의 개 풀뜯는 소리이다. 여보시오, 장동지. 누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집단적 지지에 대한 환상에 기반한 당’을 꿈꾸더이까?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집단적 지지에 대한 환상’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집단적 지지를 조직하지 않는 당’이 문제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어떤가요? 진보신당의 결정적 문제는 이것이지 않는가요?

세상에 ‘민중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사람들이 민주노총 하나 조직하지 못하고서 무슨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건가? 장석준은 녹색신좌파당을 만들어 단번에 5%의 지지를 이끌어내겠다고 호언하는데, 역시 키보드 혁명가의 말은 거침없고 번지르르하다. 민주노총조차 조직하지 못하고, 글쎄, 이것이 가능할까?

나는 최근 민중의 집을 건설하자는 강상구 동지의 진정어린 호소를 접했다. 역사는 이런 실천가들이 흘린 땀의 집적 위에서 아주 더딘(!) 속도로, 왔다 갔다, 지그재그로 진전된다는 것을 장동지가 알아야 한다. 나는 강상구의 제안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그의 제안을 다같이 실천에 옮기자.

“민주노총이 진정으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의지가 있다면 앞의 제안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김영훈 위원장께서는 10만 당원, 100억 세액 공제를 여러 차례 공언하셨습니다. 10만 당원이 입당하면 당비가 연 100억이 됩니다. 이 돈이면… 민중의 집 1,000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제가 구로 위원장이니까 구로의 예를 들어 보면,… 구로지역에 있는 보건의료노조 고대구로병원 노동자, 사회보험 노조 소속의 건강보험공단 노동자, 지하철 노동자, 철도 노동자 등이 진보정당과 함께 ‘민중의 집 건설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재정도 운영도 함께 하는 것입니다.“(<민중의 집으로 패권주의 제압하자>에서)

장석준 동지, 민주노총에 의존하여 민중의 집을 짓자는 강상구의 구상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집단적 지지에 대한 환상’에 토대한 기회주의적 구상 아닌가? 민주노총의 귀족주의에 편승한, 혁명을 연장시키는, 삶의 휴게소를 만들 뿐 혁명의 진지는 되지 못하는, 도로 민주노동당스런, 기회주의의 썩은 냄새를 불쾌하게 풍기는 개뼉다귀같은 제안인가?

5. 대규모 대학생 정치강연회를 조직할 의사는 없는가?

나는 진보신당엔 대단한 인적 파워가 있다고 본다. 쉽게 말하여 홍세화를 비롯하여 우석훈, 김상봉, 김용철, 박노자 등 진보신당의 우군 역할을 해 줄 대한민국의 지성이 다수 포진되어있다. 나는 겨울 방학과 여름 방학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정치강연회를 조직할 것을 제안한다.

서울과 광주와 부산 세 곳에 캠프를 차리고 3박 4일의 집중적인 정치강연회를 조직하자. 정치 강연회를 통해 만난 대학생들을 이후 소규모 학습 모임으로 전환할 수는 없는 것인가? 이 정치 강연회를 10년 내내 펼쳐 보자. 1천명이건 1만명이건 젊은이들을 조직해야 당의 미래가 있는 것 아닌가?

민주노동당 시절엔 정치 강연회를 실행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당 이후엔 실행할 수 있었다. 이런 독자적 활동을 하려고 분당한 것 아닌가? 그런데 장석준 동지, 지난 3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진보신당 내의 어느 분파가 그대의 혁명주의적 실천을 방해하던가? 혁명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실천해야 할 사회주의의 선전을 왜 실행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할 일이 많았는가?

정작 자신이 할 일은 하지 않고서, 지난 우리들의 실천을 비웃는 일에 열중하는 장동지를 보면 정말이지 구역질이 난다. Again ‘운동권 정파 연합 정당’이라니? 이게 뭐냐? 장동지는 운동권 출신이 아니고, 촛불 출신인가? 사회당은 운동권 정당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는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진보의 재구성 과제와 내용에 대하여 우리와 입장이 대부분 일치해 온 사회당이 있다.”고 말하는 장석준 동지의 스탈린같은 어법을 보노라면,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상스런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왜 이렇게 편파적인가?

진보신당의 강령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의 자유는 그 만남의 공동체가 확장되는 만큼 넓어지고, 그 만남의 온전함만큼만 온전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만남의 전제는 믿음이요, 열린 태도이다. 만남 강령을 보좌한 장석준 동지가 황광우와 만나길 회피하고, 조승수와 소통하길 거부한다면, 이것은 당 강령의 배반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올린다. 진보신당의 소멸을 부채질하는 우리의 적대자들이 어떤 선택을 바랄 것인가 생각해 보라.

(1) 진보신당이 둘로 쪼개져 다투다 지리멸렬 사라지거나, 소수파 전략을 고집하다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한 세력으로 전락한다.
(2) 진보신당이 민중운동진영의 사령탑을 자처하고 나선다.
(3) 진보신당이 민주당의 2중대로 편입된다.

   
  ▲필자.

장석준 동지가 우려하는 통합노선의 미래는 (3)의 길이다. 우익 기회주의에 대한 장동지의 염려, 이해는 간다. 하지만 지나친 걱정은 기우이다. 나와 나의 동지들은 지난 30년 오로지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헌신해왔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2)의 길이다. “다함께 죽을 수 없다”고 동지는 말하는데, (1)이 죽는 길이다. 그것이 좌익 기회주의이다. 문제는 사느냐, 죽느냐, 이기느냐, 지느냐, 노선의 실용적 결과가 아니다.

민중의 해방을 위해 어느 길이 올바른 길인가? 그 길이 올바른 길이라면 우리는 죽을 수 있다. 함께 죽을 수도 있다. 해방을 위해 함께 죽을 수 있는 동지가 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