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진이 이겨야 모두 이긴다"
        2011년 07월 28일 02:35 오후

    Print Friendly

    2005년 4월13일 지엠대우 창원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813명에 대해서 노동부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지엠대우 창원공장은 1991년 만들어진 공장이다.

    35m 굴뚝에 오르다

    공장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회사는 비정규직을 사용해왔다. 2005년 기준으로 근속이 14년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다수 있었다.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813명 전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노동조합을 결성하였고, 지엠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며, 합법적인 파업을 통해 정규직화 요구를 하였다.

    하지만 지엠은 합법적인 파업을 하였음에도 업무방해로 형사고발, 생산에 차질을 받았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손배 청구를 하였다. 급기야 9월 30일자 대정이란 업체를 폐업시켜 100명이 넘는 노동자를 해고시켰다. 거기에 공장 안에 시설보호란 명목으로 용역경비 300여명을 배치시켜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야간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폭행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해고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와 고소 고발의 위협에 정규직화 요구는 포기하고 다시 숨죽인 삶을 살게 되고,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장 안에서 천막농성, 출근 선전전, 거리 선전전, 지엠 부평공장에 상경투쟁 등을 진행하였다. 회사는 해고자들의 공장 출입을 허용하지 않아 공장으로 들어가려면 정문에서 노무팀, 경비들과 싸우고 들어가기 일쑤였다.

    늘 저임금에 시달리다 보니 한 달만 수입이 없어도 살기 힘들어 해고자 일부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 다른 공장 취업 등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몇 년을 다녔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된 노동자들 일부는 복직투쟁, 일부는 생계를 하며 보낼 수밖에 없었다.

    복직 투쟁을 계속 이어오면서 겨울이 지나 봄의 초입 회사는 해고자중 20명에 대해서만 그것도 11개월에 걸쳐 순차적으로 복직을 받겠다는 안이 최종안이니 받지 않을 경우 회사 안 천막을 강제 철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고된 노동자 중 나와 두 명은 공장안 35미터 굴뚝에 올랐다. 요구 조건은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 복직, 노동탄압 중단, 비정규직 노조 인정 3가지를 요구하며 굴뚝에 올랐다. 2006년 3월 22일, 나와 2명의 동지가 굴뚝농성을 시작하였다.

    굴뚝 위에서 어머니 전화를 받다

    굴뚝농성 3일 만에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외삼촌이 돌아가셨다고. 어머니에게는 유일한 형제였다. 미안하지만 갈 수 없다고 짧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마음을 다잡아야만 했다. 어머니는 공장 안에서 농성을 하는 줄은 알았지만 당신의 아들이 굴뚝에 있을 줄은 당시에는 상상도 못하고 계셨다.

    회사는 고공농성을 시작하였지만 해결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위에 올라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에어매트를 굴뚝 밑에 설치하겠다고 하였다. 안전이 걱정되면 해고자 복직을 시키면 될 것이지 안전매트를 설치하겠다고 하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였다.

    굴뚝 밑을 사수하던 노동자들은 안전매트가 아니라 해고자 복직을 우선해야 한다고 하자 굴뚝농성 4일째 되는 토요일 오전, 용역경비 300여명과 원·하청 관리자를 동원하여 굴뚝 밑에 있던 20명도 안되는 비정규직·정규직노동자, 연대동지들을 폭력적으로 공장 밖으로 내몰았다.

    그 날의 굴뚝 위에서 보이는 아래의 모습은 몇 명의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동원한 용역과 관리자이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었고, 이 모습에 순간 자신의 몸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하였다. 굴뚝농성 아래에서 사수를 하는 소수의 노동자에게 용역경비와 관리자들이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어도 그들과 함께하는 다른 노동자들은 없었다.

    이후 회사는 굴뚝 아래 계단을 절단하였고 주위는 컨테이너를 2단으로 쌓아 막고 그도 모자라 용역경비를 시켜 24시간 주위를 감시하고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그 누구도 접근 할 수 없게 굴뚝을 에워싸고 고립시켰다.

    굴뚝 아래로 뛰어내리고 싶었던 순간들

    절망감이 엄습해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많은 동지들이 고립된 굴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까 굴뚝농성이 끝날 때까지 걱정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공장 밖으로 쫓겨난 노동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연대를 위해 온 동지들과 함께 끊임없이 정든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진입투쟁을 전개하였다. 비록 수가 많지 않았지만 그런 모습이 우리 투쟁이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마음에 안심이 되었다.

    진입투쟁을 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천으로 깃발을 만들어 흔들었다. 깃발에는 비정규직 철폐, 노동해방을 썼었다. 고립된 굴뚝에서 건전지가 없어 전화 통화도 할 수 없었지만 매일 수시로 밖에 있는 동지들에게 깃발을 흔들었다.

    회사의 탄압은 더욱 극을 떨었다. 공장 화재시 사용해야할 소방차에 락스와 세제를 섞어 진입시도를 하는 노동자들에 마구 뿌려 댔다.

    매일 아침 정문에서는 회사에서 동원한 노무팀, 관리자, 용역경비와 몸싸움이 벌어졌다. 굴뚝에 오른 세명의 노동자들은 마지막엔 단식을 하였고, 공장 밖의 노동자들 또한 포기하지 않고 투쟁한 결과 복직을 원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복직을 하였다. 나를 포함한 두 명의 간부는 복직에서 제외되었다.

    금속노조에 대한 실망감

    복직이 되지 못한 두 명의 간부는 활동을 포기하였다. 그들과 술을 마시면 투쟁 당시 금속노조의 역할에 대해 많은 실망감을 이야기한다. 복직한 조합원들도 숨죽이고 살고 있다. 굴뚝농성을 시작하고 많은 동지들이 소식을 듣고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연대를 하였고, 치열하게 투쟁하였다. 하지만 조직된 노동자대오의 조직적이고 치열한 투쟁은 극히 미미하였다.

    김진숙 동지의 투쟁이 204일째다. 내가 굴뚝농성을 30일 조금 넘게 하였다. 그렇지만 그 이후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자본은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고공농성을 하여도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는 경우도 있다.

    희망버스가 김진숙 동지와 한진 동지들의 투쟁을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알려내고 있지만 회사는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희망버스가 희망을 전하고 있다면 이젠 조직된 노동자들이 이 희망이 현실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

    김진숙 동지가 환하게 웃으며 땅을 밟는 모습을 누구나 상상할 것이다. 나 역시 김진숙 동지를 뵙고 고생하셨고 이겼다고, 한진 동지들이 이겼고, 우리 모두가 이겼다고 함께 즐거워하고 싶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