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는 엘리트주의다
        2011년 07월 24일 11: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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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인물비평과 사회비평으로 숱한 의제를 이슈화로 만든 강준만 교수가 이번엔 ‘강남 좌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이미 노무현 정권 시절 강남 좌파 현상을 최초로 제기한 강 교수는 새 책 『강남 좌파-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인물과 사상사, 16000원)에서 더욱 풍성하고 정교한 논리를 동원해 강남 좌파의 실체와 논란을 집대성했다.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다

    ‘이념은 좌파적이나 생활은 강남 사람 같다’는 일반적인 정의를 뛰어 넘어 강남 좌파의 유형을 총 9가지로 분류해 총체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강남 좌파의 어원과 등장 배경은 물론 그 원조격이라 할 ‘강단 좌파’와 미국의 ‘리무진 진보주의자’에 대해서도 언급을 빼놓지 않는다.

    아울러 왜 모든 정치인은 강남 좌파일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며 2012년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조국, 손학규, 유시민, 문재인, 오세훈, 박근혜에 대해 흥미진진한 인물비평을 가한다.

    ‘강남 좌파’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건 노무현 정권 중후반인 2006년 즈음이다. ‘정치적·이념적으론 좌파지만 소득수준과 라이프 스타일은 강남 주민스럽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일부 보수진영이 ‘386’으로 대변되는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고자 사용했다.

    세간에 떠돌던 이 용어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내 논의를 점화시킨 인물이 바로 강준만 전북대 교수였다. 강 교수는 『월간 인물과 사상』2006년 5월호에 「강남 좌파 : ‘엘리트 순환’의 수호신인가?」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이는 강남 좌파 논란을 공론화한 첫 시도였다.

    강 교수는 이 글에서 “계급적으로 상류층에 속하면서 상류층의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는 사람이 진보적 가치를 역설하는 게 위선이 아니냐는 문제제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지적하며, 강남 좌파의 일장일단을 정리한다.

    강남 좌파의 명암

    강 교수가 주장한 강남 좌파의 명암은 다음과 같다.
    우선 긍정론이다. 첫째, 상류층 사람이 진보적 가치를 역설하는 건 하층계급에 큰 힘이 된다. 상류층 사람이 점하고 있는 위치의 파워 덕분이다. 둘째, 갈등의 양극화를 막는 데에 도움이 된다. 모든 상층계급은 보수, 모든 하층계급은 진보라면 갈등이 살벌해지겠지만, 상층에도 진보가 있고 하층에도 보수가 있다는 건 양쪽의 충돌 예방에 도움이 된다. 셋째, 상류층에 속하면서도 하층계급을 생각하는 마음이 고맙다. 그걸 위선으로 보겠다면, 이 세상에 위선이 아닌 건 없을 것이다.

    다음은 부정론이다. 첫째, 권력·금력까지 누리면서 양심과 정의의 수호자로 평가받는 이른바 ‘상징자본’까지 갖겠다는 건 지나치다. 빈털터리라도 세상을 향해 큰소리치면서 사는 맛이라는 게 있는 법인데, 그런 ‘도덕적 우월감’까지 상류층이 누린다는 건 부당하다.

    둘째, 진보를 더 많은 권력·금력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강남 좌파의 진보 프로그램은 하층계급의 절박함을 모르기 때문에 진정성이 결여돼 있으며, 상징적인 제스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셋째, 강남 좌파의 진보 프로그램은 말로만 강경한 속성이 있어 실천보다는 당위의 역설로 그칠 가능성이 높고, 오히려 해낼 수 있는 실천마저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강 교수는 ‘모든 정치인은 강남 좌파다’고 주장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리더십을 행사하는 정치 엘리트가 되기 위해선 학력·학벌에서부터 생활 수준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사회적 성공을 거두어야 하므로, 정치 영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좌파는 강남 좌파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무조건 강남 좌파 자체를 비판하는 건 좌파를 싸잡아 비판하겠다는 우파의 정치적 책략이라는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아니, 우파라도 서민을 상대로 포퓰리즘(populism: 민중주의) 자세를 취하는 게 ‘정치의 문법’인 바, 우파 정치인에게도 강남 좌파 요소가 농후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농후하다뿐인가. 우파는 강남 좌파를 ‘위선의 화신’인 양 비난하면서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고 하지만, 그들 역시 말로는 늘 국가와 민족이 잘되게 하겠다는 이타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사실상 강남 좌파 행세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모든 정치인은 강남 좌파다”는 논리가 가능한 것이다.

    이념의 문제 아니라 엘리트 문제

    강 교수는 강남 좌파의 문제는 ‘이념’보다는 ‘엘리트’ 문제로 접근해야 된다고 역설한다. 그는 뉴욕대 정치학 교수 버나드 마넹의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실은 ‘새로운 엘리트의 부상과 다른 엘리트의 퇴조’일 뿐”이라는 말을 언급하며, 이는 마넹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민주주의 전문가들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강남 좌파에서 ‘좌파’는 부차적인 것이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게 강 교수의 주장이다. 기존 엘리트 지배 체제를 당연시하면서 자꾸 ‘보수 대 진보’의 이념 대결 구도로 몰고 가면 이 문제는 풀리지 않으며, ‘엘리트 대 비(非)엘리트’의 구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엘리트들의 ‘승자 독식주의’가 지속되는 한 대중은 늘 그들의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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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강준만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 대학교와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한 뒤 전북 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콜로라도 대학교(University of Colorado-Denver)에서 교환교수로 머물며 ‘소통’ 문제에 대해 집중 연구하고 있다.

    왕성한 집필 활동으로 <한겨레>를 비롯한 각종 신문, 잡지, 언론 매체에 시사 평론을 기고했고, 인문·사회·정치·문화에 관한 입지전적인 책을 펴냈다. 그가 평생의 작업으로 꿈꾸는 ‘한국 생활사’는 축구, 전화, 바캉스, 도박, 선물, 성형, 목욕, 입시 등 분야를 망라한 흥미로운 40여 가지 주제에 천착해오고 있으며 계속해서 단행본으로 출간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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