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 건 노조 설립, 언론 흠집내기에 속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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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7월 21일 04: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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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걸었다.”

    박원우 삼성노조 위원장의 이 한마디에 여러 의문이 해소됐다. 수십 여 년간 ‘무노조 경영’을 해온 삼성에 왜 노조를 설립하려고 하는지, 그동안 전례처럼 해고, 징계가 예고되는 ‘가시밭길’을 왜 걸으려고 하는지, ‘찻잔 속의 태풍’라며 파장을 애써 축소하는 언론 보도처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에도 왜 나섰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이들은 수년 전부터 준비해 왔고, 분노해 왔다. 또 내부에서 이미 ‘찍혀’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그동안 언론이 이들의 상황을 보도하지 않았고, 대중이 알지 못했을 뿐 이들은 그동안 많이 ‘속앓이’를 해왔다.

    그럼에도 이들은 “내부 비판 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횡령도 벌어지고 (삼성이)독재화된 것 아닌가”라며 “이제는 땀 흘려 일하는 곳에서 내부 비판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내부의 건전한 ‘비판 세력’으로 가겠다는 다짐이다.

    삼성에버랜드는 지난 18일 인사위원회에서 조창희 부위원장에 대한 해고를 결정했다. 이날 고용노동부는 삼성노조의 설립 신고증을 교부했다. 삼성노조를 둘러싼 본격적인 ‘탄압’과 ‘저항’ 국면이 시작되는 중대 시점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5일 경기도 용인에서 박원우 위원장과 조창희 부위원장을 만났다.

    – 왜 노조 설립을 추진하게 됐나.

    박원우: “9개 계열사에 노조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노조 아닌가. 사원을 대표하는 노사협의회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진정성을 가지고 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3년 전부터 준비했다. 이제는 시대가 시대인 만큼 삼성도 바뀌어야 한다. 진정성을 가진 노동자가 노조를 만들면 깨끗하고 투명한 기업이 되지 않겠나.”

    조창희: “6년간 노사협의회 활동을 하면서 외로웠다. 2년마다 돌아오는 선거 때 부서장은 선거인단을 일일이 불러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찍으라고 하기까지 했다. 21세기에 학교 반장 선거도 이렇게 안 할 것이다. 오기가 생겼다. 평생 ‘예스’만 하고 살다가 50대에 명퇴로 나가는 게 맞을까. 뜻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노조 설립은 소통이 안 되는 답답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 삼성 계열사 중에서 왜 에버랜드에서 삼성노조가 설립된 것일까.

    조창희: “뜻이 맞는 사람들이 운 좋게 모였을 뿐이다. 그동안 돌아선 사람들도 있었다.”

    – 내부 반응은?

    조창희: “격려해 주는 분, 상황 봐서 가입하겠다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우리를 만나면 긴장된 상태다. 사실 작년부터 회사는 ‘노사 관계 교육’이라며 노조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교육을 시작했다. 유성기업, 한진중공업, 대우자동차 파업에서 극단적인 장면을 보여줬고, 민노총 등 외부세력과는 연결되지 말라는 취지로 교육하기도 했다.”

    – 사측은 징계 절차에 돌입했다. 시작부터 난항 아닌가.

    박원우: “충분히 예상했고 각오했던 것이다. 두려움이나 걱정은 없다. 놀라거나 위축되지도 않는다.”
    조창희: “지난 6년간 노사협의회 활동 과정에서 저와 제 주변 동료들은 이미 회사에 찍혔다. 그래서 나는 ‘해고당할 수도 있고, 탄압이 예상되지만 즐겁게 가자’고 다짐했다.”

    – 징계 추진에 대한 입장은?

    조창희: 노조 활동에 집중해야 할 때 내 실수로 노조 전체가 싸잡아 공격당하는 것에 많이 미안한 심정이다. 실수한 부분에 대해서 법적 처벌을 받겠지만, 회사에서 밝힌 내용과 다른 사실이 있다. 회사는 임직원 신상정보, 경영 기밀을 외부로 빼돌리고, ‘대포차’를 몰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국적인 노조 활동에 대비해 직원들의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내 네이버 메일로 보낸 것이고, 회사의 비용 처리가 잘 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매출 세금 계산서를 같은 내 메일로 보낸 것이다. 이마저도 회사 보안 프로그램 때문에 결국 폐기처분 했다.

    삼성 직원이면 누구나 열람 가능한 자료였고, 다른 용도로 쓴 것도 없다. 문제 차량은 친구들과 훔친 것도, 부친 명의의 차도 아니고 집 주차장에 놔둔 친구 차를 빌려 쓴 것일 뿐이다.”

    – 문화일보 등에서는 징계를 피하기 위한 ‘방탄 노조’라는 주장도 보도됐다.

    박원우: “우리는 삼성을 상대로 인생을 건 싸움을 하는 것이다. ‘방탄 노조’라는 말은 말도 안 된다. 노조의 진정성, 헌신성을 고민하지 않고 쓰는 기사에 마음이 아팠다. 노조가 잘못된 부분은 인정할 것이다. 언론은 사실을 왜곡, 과장하거나 의도적인 흠집내기는 삼갔으면 한다.”

    – 이밖에도 사측의 감시나 압박은 없었나.

    조창희: “지난 7월7일 내부 대책회의를 했는데, 검은색 SM5가 우릴 미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일행이 다가가니 이 차는 빗길을 미친 듯이 운전하기 시작했다. 2명이 타고 있었다. 이 주변에 오래 살지 않고서는 모르는 동선으로 중앙 분리대에 부딪히면서까지 계속 달려갔다. 목숨 걸고 도망가는 것 같았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미행, 감시는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 앞으로 삼성에서 무엇을 바꿀 것인가.

    박원우: “제일 중요한 것은 내부에서 바른 말을 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 것이다. 노동자의 권익을 추구하기 위한 사업을 구상 중이다. 에버랜드는 감성 서비스를 하다 보니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다. 임금, 고용 안정을 기본으로 하면서 업무․직종별로 사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조창희: “이미 에버랜드에 정체 모를 노조가 설립돼 있다. 현행법상 향후 2년간 우리가 교섭권에서 불리할 수 있다. 회사에서도 이 노조에만 유리하게 ‘떡고물’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에버랜드의 과도한 특근, 인력 증강 배치 등 현장 노동자들이 목말라 하는 지점을 개선해나갈 것이다. 사원들이 양 노조 간에 선택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 이건희 회장 일가는 무노조 경영 방침을 수십여 년간 고수해 왔다.

    조창희: “그동안 수조 원의 매출을 낸 것은 땀 흘린 사원들 덕분이다. 그러나 내부 비판 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횡령도 벌어지고 독재화된 것 아닌가.”

    박원우: “무노조 경영이 바뀌지 않았던 것은 삼성 노동자들이 주축이 돼 비판이 제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땀 흘려 일하는 곳에서 내부 비판이 나와야 한다.”

    -삼성 조직 문화와 충돌하지 않을까.

    박원우: “얼마나 지혜롭게 대처하느냐 문제다. 원활하게 소통이 잘 되면 대립하고 갈등할 필요는 없다. 다만 사측이 노동자의 권익을 침해한다면 대항하고 대립해야 할 것이다.”

    – 현 정권에서 노조 활동하는 것에 어려움도 있지 않겠나.

    조창희: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권 아닌가. 사실 고민이 됐다. 그런데 결국 정권을 고민하면 나중에 우리가 정년 퇴임 때나 노조를 할 수도 있지 않겠나. 좋든 싫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가야 한다.”

    – ‘삼성 백혈병’ 문제, 박종태씨 해고 해결에도 연대할 것인가.

    조창희: “피해자들을 만나 뵈었다. 재발 방지를 위해 노조가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

    – 희망하는 삼성노조의 모습은?

    조창희: “노동자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노조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 향후 활동은?

    박원우: “노조 설립 필증을 받으면 조합원 모집에 나설 것이다. 버티고 우리의 진정성을 알려가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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