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시민-노동자 연대 되살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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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7월 21일 03: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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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진중공업 사태를 보면서 느끼는 부분 하나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이 일이 국내 노동운동의 발전에 있어서 하나의 커다란 전환의 계기, 하나의 이정표를 이룰 것이라는 걸 지금 절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핵심어는 ‘노동운동의 대중성’, 그리고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연대’입니다.

노학연대의 현대적 버전

1980년대 말에 매우 불완전하게나마 최소한의 제도적 민주주의가 점차 도입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학생 등 ‘중산계급 예비 구성원’들이 노동운동의 흐름과 연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출’ 활동가들이 ‘국가기간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공장에서 파업을 주도하고, 또 학생이나 화이트 칼라의 1987년 6월 투쟁과 발을 맞추어서 곧바로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나는 등의 상황에서는, 군부세력은 더이상 버틸 수 없게 된 셈입니다. 무리하게 버텼다가 훨씬 더 큰 폭발이 올 수 있다는 계산을 한 셈이죠.

바꾸어서 말한다면 중산계급의 젊은 전위와 노동자 세력의 협공에 군사정권이 무너진 셈이죠. 이승만 정권의 몰락이 오로지 중산계급의 전위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부분에서 역사의 상당한 진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학연대’가 통치자들에게 위협적이었던 만큼, 그 연대를 해체시키기 위한 노력도 비상했습니다. 특히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에 상당수 학생운동가 출신으로 구성된 시민사회 단체 등은 국가로부터 프로젝트를 받고 국가 자문기구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상당 부분 ‘불순한’ 반체제적 성격을 잃고 말았습니다.

김대중 정권은 2001년 2월에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파업의 폭력 진압 등 노동자들에 대한 각종의 야만적인 행각을 주저없이 저질렀지만, 시민단체 활동가 다수에게 김대중은 그래도 ‘민주주의의 화신’이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주로 수세적 싸움에 밀려 있는 노동계는 점차 고립돼 갔습니다.

김대중 정권 시기, 노동과 시민의 분열

공세라기보다는 수세이었던 노동법개악 반대의 1996~97년의 총파업은 그나마 시민사회 상당 부분의 지지를 얻었지만, 김대중 정권의 집권 이후에 ‘민주주의 화신’ 김대중과 그 측근들이 열심히 유포해온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시민’ 계층, 즉 안정된 직장을 보유하는 대졸들이나 중소기업인 등의 사이에서 깊은 뿌리를 내렸습니다.

노동자의 힘든 투쟁을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하는 보수 언론의 레토릭은 상당 부분 잘 먹혀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민영화에 반대하는 2002년 봄의 발전노조 파업 같으면, 노동계 안에서의 지지를 받아도 시민사회로부터 별로 연대를 받지 못했습니다. ‘노동자’와 ‘시민’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민주주의적’ 정권이 성공적으로 쌓은 셈이죠.

그때부터 최근까지의 상황은 사실 거의 절망적이었습니다. 특히 비정규직들은 처절한 싸움들을 벌였지만 ‘바깥’으로부터의 지지를 충분히 받지 못한 이 싸움들은 쉽게 패배하거나 매우 부분적인 승리만 거두거나 장기화되곤 했습니다.

국가와 사용자측이 소모전을 통해 분쇄한 KTX 여승무원의 파업이나 6년이나 걸린 기륭전자의 파업은, ‘시민’의 연대가 미약한 상황에서 불안노동의 투쟁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줍니다. ‘시민’들이 ‘노동’에 그다지 적극적으로 연대적이지 못한 만큼, ‘노동’도 ‘시민’들의 운동에 별로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2008년의 촛불사태는 노동운동과 합쳐지지 않고 오로지 ‘시민’들만의 투쟁으로 남았다가 결국 국가와의 소모전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1980년대 말의 ‘노학연대’를 해체시킨 통치자들이 거의 쾌재를 부를 만한 상황이 된 셈이죠. 그런데 이명박 정권의 말기적 위기와 세계공황의 영향까지 가세된 지금에 와서는 상황은 바뀌기 시작한 듯합니다.

재벌국가 병리적 현상 해체시킬 수도

지난 홍대 비정규직 싸움에서도 ‘일반인’의 연대가 가시적이었지만, 특히 이번 한진중공업 사태에서는 대다수의 시민들은 확고히 영도 노동자들의 편에 섰습니다. ‘시민층’의 동향을 잘 반영하는 진보적 신부님들의 가두 미사 봉헌이나 <희망버스>, 그리고 수많은 선남선녀들의 영웅이 된 김진숙 선생님의 압도적인 카리스마 등은, 이제 상황이 과거와 매우 다르게 전개된다는 걸 잘 보여줍니다.

배당금을 늘리면서 노동자들의 생계를 파괴하고 산업기반을 해쳐가는 ‘주주자본주의’의 약탈성에, 이제 노동계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민’들까지도 눈을 떴습니다. 정리해고, 산업 이전, 주주 배당금 우선주의, 그리고 국가와 언론에 대한 자본의 철저한 통제 등을 특징으로 하는 이 사회에 아무 미래도 없다는 걸, 이제서야 눈치 챈 것입니다. 1996~97년 이후 거의 처음으로 ‘노동자’와 ‘시민’은 손을 잡았습니다.

이 연대가 지속된다면, 우리가 이 싸움을 승리로 끝낼 수 있게 된다면, 중기, 장기적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동자와 시민의 연대는 한국형 신자유주의와 결전을 버릴 만한 힘을 보유합니다.

이 결전에서 노동자-시민의 연대가 이기거나 상당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면, 자본주의 자체가 돌연히 몰락하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삼성공화국이라는 이 국가의 병리적 현 형태를 해체시킬 수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의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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