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 파시즘 드러내고 성찰 계기로
[기고] 통합진보당 사태…진보적 성찰성과 정치력 상상을②
    2012년 05월 18일 09: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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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성찰성을 능가하는 진보의 성찰성

이런저런 요인들이 작용하여, 이미 이 사태는 국민적 사태가 되어있다. ‘우회’할 수 없는 사안이 되어 있다. 이러한 중차대한 사건에 해결해 가는데 있어서 나는 두 가지 ‘방법론’적 무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첫째는 진보적 성찰성이라는 것이다. 이는 진보개혁적 정치세력과 운동집단의 급진적 열정과 전투적 행위가 대중의 열정과 저항 행위의 흐름과 괴리되지 않게 배치하는 것이다. 이 점은 사실 ‘민주화 이후’ 혹은 포스트민주화 국면에서는 특히 중요하다. 독재와 독재세력의 반개혁적 기득권이라는 ‘적(敵)’이 사라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진보정당이 거듭나는 과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진보세력이 더욱 대중적 세력이 되어 가면 갈수록 ‘진보적 성찰성’이 더욱 강하게 요구된다고 하는 점이다.

진보적 성찰성이란, 진보가 스스로를 성찰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나 태도인데, 우리가 통상 ‘적’에게 들이대는 비판의 잣대를 진보와 좌파가 스스로에게 적용해보는 감수성을 갖자는 취지이다. ‘보수의 성찰성’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보의 성찰성’도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진보개혁세력이 스스로를 ‘내부의 시선’만이 아니라 ‘외부의 시선’으로 보는 능력이라고도 표현하고 싶다.

이 치열한 격전의 시기에 이런 한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가 이번 사태를 ‘진보적 성찰성’의 관점에서 진보를 대대적으로 혁신하는 계기, 진보운동과 진보정당 내의 적폐(積弊)들을 혁신하고 대안적인 실험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러려면 냉정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차피 국민들로부터 매를 맞고 있으므로, 이른바 ‘우리안의 파시즘’적 현상들을 드러내고 개인이건 집단이건 다양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혁신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이번 사건이 나타나기까지, 혹은 이번 사건에서 드러나지 않았지만 우리 내부에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한편에서는 ‘단기적’으로 해결점을 찾으면서도, 다른 한편에서 진보진영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혁신의 과정을 지속시켜 가면 좋겠다. 나는 현재 이루어진 ‘확증된 경선 부정’만으로도, 항변 이전에 석고대죄하고 우리 스스로를 혁신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당내 계파 갈등이나 권력 갈등, 음모론 등으로 이 문제를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당권파가 ‘내부의 시각’에서만이 아니라 ‘외부의 시각’에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노력을 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사실 지구당 위원장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주민등록지’를 이전한다거나 이번 사태에서 나타난 것처럼 쉽게 획득 가능한 주민등록 번호를 활용하여 집단 대리 투표를 하는 것이 진보정당, 특히 당권파 측에 많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아주 주변적인, ‘주류적 질서에 전혀 위해(危害)가 되지 않는’ 주변적 정당에게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위치를 갖는 그래서 ‘대세에 영향을 주는’ 정당에게는 결코 관용될 수 없다.

시민운동이건 민중운동이건 ‘주류의 중요한 보수정당’의 그런 행태에 대해서 가차 없이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비판에 의해 어떤 의미에서 한국정치의 ‘도덕적 기준’ 또한 높아져 왔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자주파를 포함한 민중운동의 진보적 투쟁의 성과이기도 하다.

진보적 성찰성은 비당권파에게도 요구된다. 중앙위원회 이후, 이른바 ‘진보시즌 2’ 운동을 통해 비당권파를 지지하는 당원이 많아지게 되면서, 그리고 이번 사태로 인해-다소 성급하다고 하겠지만-비당권파가 ‘다수파’가 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어떻게 자신들이 당권파의 ‘패권주의’에 의해 억울해하면서 소망했던 ‘소수파도 존중받는 진보정당의 당내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서두에서 언급한 박영래 씨의 자살에 대해서, 나는 그의 분신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분신으로까지 항의하는 바, 진상보고서 자체에 혹시 한 명이라도 억울한 점은 없었는지 성찰해야 한다.

나는 당권파에 대해 비판적이고 진상보고서의 전체적 흐름에 동의하지만, 진상보고서에 대해 항변할 수 있는 내용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런 점들이 강기갑 혁신비대위 체제에서, 그리고 조사특위에서 충분히 신원(伸寃)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당권파를 종북세력, 친북세력, 지하당세력으로 매도하는 보수언론과의 선을 명확히 그으면서 개혁 작업을 해가야 한다. 당권파의 몰락과 배제가 곧 진보의 발전이라고 하는 ‘극단주의’적 시각으로까지 가서는 안 된다.

강기갑 비대위원장이 중앙당 당직자와 정책연구위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진보정치 정택용 기자)

3번의 기회와 진보적 정치력

다음으로, 진보가 대중의 열정과 괴리되지 않고 이 난국을 해결해가기 위해서는 ‘진보적 정치력’이라고 하는 무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사건이 걷잡을 수 없는 ‘폭력’ 사태로까지 확대된 것은, 진보정당의 ‘정치력의 부재’에 의해서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번 진보당 사태에서 또 하나 주목하게 되는 것은 내부의 정파 간의 갈등이 ‘비적대적 갈등’이 아니라 ‘적대적 갈등’으로 쉽게 치환될 수 있고, 그것을 방지해주는 ‘정치력’이 극히 취약하다고 하는 점이다.

성공회대 학생 하나가 연구실로 찾아와서, 집에서 부모님들은 모두 새누리당 지지하고 자기는 NL계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부모님들하고 가끔 언쟁도 하고 하는데, 부모님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 놈아, 정신 차려라. 네가 따라다니는 사람들의 실체가 저렇다.”라고 자신을 책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갈등과 위기는 모든 사회조직과 정당조직에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갈등과 위기를 해결하는 것도 능력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진보적 정치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다.

‘선과 악’의 범주와 ‘동지와 적’의 범주는 완전히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Schmidt는 정치의 본질을 ‘적과 동지의 구분’에서 찾았다). 거기에 정치가 있다. 갈등이 존재하지만 또한 ‘합의적인 갈등 종료’의 길도 존재해야 한다. 당내 갈등에서 쌍방이 ‘십자군 전쟁’처럼 이 문제를 접근할 필요는 없다.

첫째의 정치력 발휘의 기회는 진상조사와 진상조사위원회의 발표의 시점이었다. 진상조사에서 부실이 밝혀졌다고 하면 각 정파가 이를 검토하고, 국민의 눈으로 접근해내면서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심정으로 ‘합의된 수준’에서 해결책도 동시에 발표하는 식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당권파는 진상조사 자체의 신뢰성을 부정하고 이를 ‘비당권파에 의한 당권파의 공격’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비당권파는 이를 국민적 공론의 광장으로 가지고 갔다. 여기에 사실 각 정파들 간에 뿌리 깊은 불신이 또한 문제가 된다. 비당권파는 당권파가 또다시 다수의 힘으로 이러한 명백한 부정을 덮으려고 한다고 하는 인식이 존재했으며, 당권파는 이를 비당권파의 권력투쟁으로 해석했다.

사실 당권파는 처음 이를 반성하고 공동대표단이 같이 사퇴하는 식의 대응전략도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진상조사보고서를 접하고 충분히 항변할만하다고 생각하고 전면적인 항변 전략으로 갔고, 이는 결국 ‘피박’을 쓰는 상황, 즉 스스로가 경선 부정의 주범이 되는 악순환 구조에 빠져들게 되었다. 첫 번째 계기를 놓치면서, 이번 사태는 또 다른 문제로 변화하였다.

둘째의 정치력 발휘의 기회는 전국운영위원회의 전자투표가 이루어지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기로 하고 위원장 후보로 강기갑 전 의원이 거론되면서 그가 당권파의 ‘당원 총투표’ 대신 ‘당원 50%, 국민 50%’라는 타협안을 제기했을 때였다.

이때 이석기, 김재연 등 당권파 측 비례대표들은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당원 총투표’를 고수했다. 비당권파는 당원 투표가 50%라도 들어갈 경우 당권파에 의한 ‘지연전략’의 공간이 주어지고 결국 국민적 지탄을 받는 이 사안이 또 미봉적으로 처리될 것이라고 하는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당권파는 비례 대표 총사퇴에 대한 ‘당원 총투표’를 요구하며 중앙위원회를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진보정당으로서 2번째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도 상실하게 되었다.

셋째, 중앙위원회에서 전자투표로 ‘비대위 구성-조사특위 구성-문제된 비례대표 후보 전원 사퇴권고’ 안이 의결된 지금의 시점이다. 나는 어떤 점에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암울하다.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지금부터도 싸우려면 한정 없이 무한대로 싸울 수 있다. 비대위 대표와 당권파가 주도하는 원내대표가 싸울 수도 있을 것이며, 분신 사태에 같은 친(親)당권파적 항의가 지속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대중조직 내의 갈등으로 확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잘못하면 진보정당이 ‘식물정당’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지금도 중앙위 권고안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갈등이 ‘막장 드라마’처럼 가지 않기 위해서, 그리하여 진보세력과 대중의 괴리가 더욱 확대되는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비대위 위원장을 중심으로 하건, 사퇴한 공동대표들이 머리를 맞대건, 그래도 갈등과 위기의 잠정적인 종결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는 비당권파는 당권파에게도 ‘퇴로’를 열어주려는 섬세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권파의 전략적 사고 전환’이다. 당권파는 현재의 국가보안법 체제에서 최대로 탄압받는 집단이라고 하는 인식을 가질 수 있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원내 3당의 ‘다수파’이다. 당권파가 이 문제를 대응하는데 새로운 전략적 사고를 해야, 비당권파 및 국민과의 거리도 좁힐 수 있으며 이번 사건의 조속한 마무리를 위한 국면전환도 가능하다.(관련기사)

사진=진보정치 정택용 기자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의 비대위

나는 진보적 정치력을 발휘해서, 현 상태에서 중앙위원회 결정의 기본을 존중하면서도 일정한 변용을 도입해서라도 파국적 갈등의 ‘합의적 종료’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와 함께, 나는 비대위가 ‘미래 지향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된 ‘과거’의 ‘경선 부정’을 부분적으로 재조사하고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진보정당의 새로운 ‘미래’적 모습을 대중에게 드러내주는 비대위가 되어야 한다. 안타깝지만 보수에게도 우리가 배워야 할지 모르겠다.

올해 초 한나라당의 위기 상황에서, 박근혜는 어떤 의미에서 ‘꼬리 자르기’ 식으로 비대위 체제에서, 당명을 변경하면서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면서까지 국면 전환을 했다. 그리고 총선에서 진보의 전통적인 색깔인 ‘레드’까지도 차용했다.

그리고 진보의 의제인 민생, 복지, 경제민주화의 의제들을 ‘전유’했다. 이를 진보-개혁세력은 ‘진정성’이 없다거나 ‘성형수술’을 했다고 비판할지 모르지만, 박근혜가 이끄는 새누리당의 ‘변신’은 성공적이었고, 그것이 총선의 승리로 나타났다.

이제 한나라당을 위기로 내몬 ‘디도스 사건’과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의 국민에게 ‘과거’로 기억되고 있다. 이 점을 이제 통합진보당의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배우면서 자신을 혁신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비대위와 조사특위의 향후의 진행 과정은, 책임소재를 다투는 식의 과거지향적인 방식이 아니라 조속히 새롭게 진보정당을 미래지향적인 진보정당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에 대면하여

독재라는 적, 반독재세력의 기득권이라는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 하에서 진보개혁세력이 어떻게 자신의 급진적 열정과 전투적 행위를 대중의 열정과 행위의 흐름과 일치시킬 것인가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시대, 그리고 87년 체제 이후의 시대(이를 나는 ‘포스트민주화’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독재시대와 민주화 시대에 일치되었던 ‘대중의 열정과 운동집단의 열정의 흐름의 일체화’를 해체시키고 있다. 이러한 해체를 극복하고 새로운 ‘동조화(synchronization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이렇게도 쓸 수 있겠다)’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진보적 성찰성과 진보적 정치력이라는 ‘무기’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끝)

관련기사 : [기고①]  급진적 열정 & 폭력과 투쟁 사이

필자소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민교협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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