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조운동, 왜 처참하게 몰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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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7월 17일 01: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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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조돈문 교수(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가 펴낸 『노동계급 형성과 민주노조운동의 사회학』(후마니타스, 20000원)의 머릿말 가운데 일부분으로, 저자의 허락을 맡고 게재한다. 저자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공동대표 겸 이사장,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 모임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편집자 주> 

    노동계급 형성의 기대감과 실망

       
      ▲책 표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은 한국노총 어용노조의 패권에 정면으로 도전한 일대 사건이었다. 노동자 대투쟁 과정에서 조직된 신규 노동조합들은 한국노총의 지도력을 거부하고 대안적인 민주노조 운동을 구축하며 노동조합운동의 이중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해방공간 전평의 지도력 하에서 계급 형성에 성공한 남한의 노동계급이 미 군정에 맞서 9월 총파업 투쟁을 주도했지만 인민국가 건설이라는 투쟁 목표는 쟁취하지 못하고 미 군정의 탄압으로 와해되고 말았다. 그리고 꼬박 40년이 지난 뒤 새로운 전환점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해방공간 노동계급은 계급 형성뿐만 아니라 계급헤게모니 구축에도 성공함으로써 사회주의국가 건설에 매우 근접했었다. 이러한 점에서 비록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계급이 민주노조운동의 형성과 함께 재활성화의 계기를 맞았다 하더라도 1987년의 노동조합운동은 해방공간 전평 시기와 비교하면 턱없이 미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권력과 자본계급 지배가 붕괴되었던 해방공간에 비해 1987년 국가권력과 자본계급 지배가 훨씬 더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노동자 대투쟁이 발발하여 조직화에 성공했다는 점은 노동계급 형성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게 했다.

    노동자 대투쟁 이후 사반세기가 지났다. 작금의 노동계급과 민주노조운동의 모습은 그 때 기대했던 이후의 모습과 비교하면 가히 처참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왜 민주노조운동은 기대를 저버리게 되었을까?

    처참한 수준으로 떨어진 민주노조운동

    민주노조운동은 노태우-김영삼 정권 하에서 강도 높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서 꾸준히 조직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강화했다. 1996~97년 노동법 재개정 총파업투쟁은 민주노조운동의 축적된 역량을 과시했고 노동계급 형성은 기대처럼 선형적으로 급진전되어 해방공간의 부활을 점치게 했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경제위기가 발발했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구조조정을 거치며 민주노조운동과 함께 노동계급 형성도 정체, 후퇴하게 되었다.

    경제위기와 그 극복을 위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구조조정은 비단 남한의 노동계급만 겪은 것이 아니다. 우리보다 먼저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정책을 경험한 중남미 국가들의 경우 신자유주의 10년을 경험하면서 노동계급 형성이 진전되며 좌파정권이 집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남한의 노동계급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민주노조운동과 노동계급 형성의 부침은 민주노조운동의 성과와 축적된 노동계급 역량이 얼마나 쉽게 와해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계급형성 성과란 축적하기도 어렵지만 지키는 것은 더 어렵다는 점을 잘 일깨워 준 것이다.

    노동계급 형성이란 노동계급이 하나의 집합체로서 형성, 해체, 재형성을 반복하는 과정임(Przeworski 1985)을 실감케 해 주었다. 이 책은 그 부침의 동학을 분석하여 노동계급 형성의 가능성과 제약, 그 딜레마를 규명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실천적 고민과 소회

    필자의 연구를 이끌어 온 것은 순수한 학술적 동기가 아니라 노동계급 형성에 대한 실천적 고민이었다. 노동계급 형성은 연구의 주제인 동시에 실천적 과제다. 실천적 함의 없는 순수 학술연구는 내 몫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한편, 연구자들의 학문적 중립성 담론도 신뢰하지 않는다.

    물론 나는 연구 과정과 결과의 해석에서 철저히 학문적 중립성을 견지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연구 주제의 선정은 철저히 실천적 행위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피할 수 없다. 그 점에 대해서 나는 누구에게도 사과할 의향이 없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 형성의 부침을 연구하는 것, 특히 계급 형성이 후퇴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연구한다는 것은 대단히 고통스런 일이다. 그 과정에 실천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책의 초고들을 집필하던 지난 10년 기간은 노동계급과 민주노조운동에게 힘들었던 만큼 연구자들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책을 펴내면서 소회가 없을 수 없다. 역시나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가장 힘든 순간들인데, 특히 대우자동차 해외매각 반대투쟁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러하다. 김우중 회장이 1999년 7월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나서 GM에 매각되어 새 법인이 출범하기까지 대우자동차 해외매각 반대투쟁은 3년여에 걸쳐 진행되었다.

    나는 금속연맹의 요청으로 유능하고 헌신적인 연구자들과 함께 자문단을 구성하여 투쟁에 결합했다. 우리는 한국 자동차산업과 민주노조운동의 미래를 위해 해외매각을 저지하고 자체정상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해외매각 반대투쟁을 전개했고, 국민 대다수가 대우자동차 해외매각에 반대하고 있었다.

    "당신을 죽여버리겠다"

    하지만, 대우자동차 노동자들 내에서는 해외매각 반대의 목소리가 점점 더 소수화되고 있었고, 그 결과 해외매각 반대투쟁을 주도하던 집행부는 점점 더 고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필자 같은 연구자들도 배후세력(?)으로 지목되며 갖은 모욕과 위협에 시달리게 되었다.

    물론 한밤중에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살해 협박과 함께 잠을 방해했던 전화 통화들은 대다수가 사측의 사주를 받은 노조 활동가들의 소행이었을 것이다. 공허하게 울리던 그들의 술주정 통화는 쉬이 잊혀졌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간에 가냘프게 떨리는 목소리로 "당신을 죽여버리겠다."고 한 어느 군산공장 노동자의 전화다.

    옆자리 동료나 아내에게조차 단 한 번도 화를 내본 적이 없었을 법한 착하고 여린 성품의 평범한 노동자인데 내게 살의를 토로한 것이다. 십년 전의 그 목소리는 오늘까지도 내가 실천적 개입을 고민할 때마다 진지함과 신중함을 잃지 않게 지켜주고 있는 것 같다.

    투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중요한 계기마다 선제적인 노동조합의 용단이 필요했지만 노동조합이 늘 연구자들의 제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아니었다. 의기투합한 순간도 많았지만 실망을 안겨준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부평공장에서 쫓겨나 산곡동성당 텐트에서 투쟁을 이어갔던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집행부는 연구자들의 제언을 수용하지 못할 때에도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진정성을 보여주었다.

    정리해고 되었던 노동자들과 징계해고 되었던 노조 활동가들 상당수가 생산현장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노조집행부는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산곡동성당에서 해외매각 반대투쟁을 주도했던 민주파는 단 한 번도 집행부를 장악하지 못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공세의 중심에서 대우자동차 해외매각에 저항하는 투쟁을 가열차게 전개한 것에 대한 조합원들의 평가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한 다음 업체 폐업과 계약 해지 등 사측의 탄압에 맞서 1,200일이 넘도록 투쟁을 전개하는 동안 대우자동차 정규직 노동조합은 적대적 태도로 일관했다.

    이것이 우리가 많은 희생을 치르며 사수하고자 했던 대우자동차와 그 노동조합의 실상이며, 민주노조운동의 현주소이다. 결국 민주노조들의 연대투쟁은 정규직 이기주의로 되돌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같은 연구자들은 정규직 노조운동에 부역을 했다는 말인가?

    물론, 나는 아직도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이 책을 펴내게 된 동기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관심과 애정과 실망과 안타까움으로 빚어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노동계급 형성과 민주노조운동의 거듭남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기에 내 학문적, 실천적 관심의 중심에는 여전히 노동계급과 민주노조운동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 * *

    목 차

    ○ 책머리에: 노동계급 형성의 기대감과 실망

    제1부. 노동과 계급 연구의 성과와 과제
    1. 민주노조운동의 동학과 노동문제 연구의 추세: 강화된 전문성, 약화된 실천성.
    2. 구해근의 ‘모색’과 맑스주의 계급론의 과제

    제2부. 노동계급 60년의 역사
    3. 해방 60년 계급구조 및 노동계급 구성 변화.
    4. 해방 60년 노동계급 형성과 민주노조운동의 궤적.

    제3부. 경제위기와 노동의 전략
    5. 대우자동차 처리과정과 정부의 실패.
    6. 산업민주주의 결핍과 노동자 불만
    7. 해외매각 반대 투쟁: ‘동원’의 논리 대 ‘설득’의 논리”.

    제4부. 시장경제 모델과 노동계급 계급의식 변화
    8. 자유시장경제모델로의 이행과 노무현정권의 노동정책: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와 예정된 실패
    9. 노동계급의 계급의식과 보수화.
    10. 계급과 문화: 문화자본론 가설들의 경험적 검증을 중심으로.
    11.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경험과 노동계급 의식 변화.

    ○ 책을 마치며: 다시 생각해 보는 노동계급 형성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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