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쟁의 진화, 또는 연대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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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7월 15일 09: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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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쇄하고, 저항하고.(사진=권용진, 이안) 

    희망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7월 7일자 <뉴데일리>는 “’희망버스’란 이름을 앞세운 좌파 외부세력에 의해 영도조선소를 점거당하는 곤욕을 치렀던 한진중공업에 다시 비상이 걸렸다. 9일 ‘2차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좌파 외부세력이 또 다시 부산에 집결해 영도조선소를 ‘공격’할 예정이기 때문”이라며, “부산시민들이 동계올림픽 유치 소식에 모처럼 기뻐하는 것도 잠시, 급진 좌파 외부세력이 또 다시 부산을 쑥대밭으로 만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설레발을 쳤다. 무슨 근거로?

    한 인터넷 매체의 ‘설레발’

    같은 버스를 타게 된 사람들 가운데 가벼운 산행 차림으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일행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희망버스를 타게 됐냐고. 자신들은 원래 주말이면 함께 산에 오르는 친구 사이인데 이번 산행은 ‘부산’으로 정한 거란다. 그렇지, 부산(釜山)도 산이지.

    산에 간 김에 크레인에도 오르면 좋고. 그래서 김진숙 씨와 함께 내려올 수 있으면 더 좋고. 이들 일행 다섯 가운데 셋의 고향이 부산, 나고 자란 고장에서 험한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가는 길인데 무슨 외부세력이며 무슨 쑥대밭?

    차에 오른 이들은 노조나 정당, 단체를 통해 온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삼삼오오 친구들끼리, 가족끼리 또는 동아리끼리 스스로 3만 원을 내고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당신은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빈말로가 아니라 직접 찾아가 알려주고픈 사람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잠시 쉬게 될 휴게소나 다시 되돌아오는 길에 차를 놓치거나 혹시라도 경찰에 연행되거나 해도 사정을 알 수 없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서로 낯선 사람들끼리 타고 있다. 그래서 각 차마다 성격 밝은 사람이 나서서 ‘깔깔깔’이라는 차장이 되어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일행이 된 사람들의 연락처를 챙겼다.

    그런 사람들만으로 부산역 광장이 꽉 찬 것이 아니다. 그 너른 광장이 사람으로 가득 차게 된 것은 바로 부산 시민들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문화 콘서트를 마치고 한진중공업 조선소를 향해 행진을 시작할 때 경찰이 영도로 통하는 다리를 죄다 봉쇄했다는 말이 돌았다.

       
      ▲경찰 차단벽 뒤에 조선소 크레인이 보인다.(사진=권용진 http://blog.naver.com/jean63

    부산의 명박산성

    막상 4km 길을 걸어 가보니 영도다리 옆으로 줄줄이 경찰버스가 늘어서 있는 것 말고 봉래사거리까지 가는 길은 뚫려 있었다. 막상 막아 놓은 곳은 봉래사거리에서 한진중공업 조선소를 향해 나있는 길이었다. 촛불집회에 등장한 이래 사람들을 막기 위해 경찰 특수 차량을 이용해 만드는 ‘차벽’, 소위 ‘명박산성’이 사람들의 앞길을 막았다.

    김진숙을 만나서 희망을 나누러 온 사람들이 쉬이 돌아설 리 없고, 길은 경찰이 철통같이 막고 있으니 그 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 멈춰 서게 된 건 당연하다. 그러니 경찰이 만든 차벽이 철야 거리 집회를 유도한 셈이다. 길을 내고 계속 나가려는 사람들과 한사코 막으려는 경찰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몇 차례 경고방송 뒤에 최루액과 색소액이 물대포로 쏟아진 것은 느닷없는 일이었다. 그 와중에 맨 앞에 있던 사람들 열 명이 연행되고 많은 사람이 다쳤는데 워낙 사람이 많다보니 뒤에서는 상황을 잘 알지 못할 정도로 분위기는 차분했고 여유로웠는데.

    경찰은 앞에 있던 전현직 국회의원 가운데서도 어쩌면 그렇게 콕 집어 여성의원만 공략했는지,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최루액에 맞아 실신하고,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는 연행되었다.

    최루가스라면 이골이 날만도 한 이정희 의원이 실신할 정도로 독한 최루액성분 PAVA는 보건의료단체연합 발표에 따르면 심하게는 ‘돌연사’를 초래할 수도, 암을 유발할 수도 있는 위험물질이란다. 어쩔 수없이 그 많은 사람들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길 위에서 날밤을 새우게 되었다.

    어묵탕은 ‘집회 위험 물품’

    새벽 1시 40분 경 크레인에 가까이 가고픈 사람들에게 김진숙 지도위원은 전화를 통해 목소리로나마 인사를 전했다. 직접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연행된 사람들 걱정에 서로 다독이는 사람들을 경찰이 오밤중에 들이닥쳐 폭력적으로 연행해 간 것은 치졸했다.

    게다가 밤이 깊어 가면서 속도 허하고 젖은 몸들이 꿉꿉한 사람들 뭐라도 먹이겠다고 해고 노동자 가족들이 끓이던 5천 명 분의 어묵탕을 경찰이 ‘집회 위험 물품’으로 압수해 간 것 역시 치졸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다.

    그런 경찰의 무리수를 겪으며 부산이라는 인심 좋고 후덕한 지명이 새삼스럽게 새겨졌다. 부산의 釜자가 바로 가마솥 ‘부’, 가마솥처럼 큼지막한 지역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희망으로 끓어오르고, 그 사람들에게 커다란 솥 가득 부산의 명물인 어묵 좀 끓여 먹이려는 것이 뭐 그리 위험하다는 건지. 그 많은 어묵은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경찰들이라도 나누어 먹었을까? 그랬다면 대단한 위험물품일 리 없다는 거고, 그냥 버려졌다면 멀쩡한 음식을 함부로 버린 것이니 죄스런 일이다.

       
      ▲왼쪽 맨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래퍼 ‘한낱’ 공연, 새벽 풍경, 게이코러스 ‘G보이스’, 바닥의 분리수거함, 스스로 잘 노는 젊은 참석자들, ‘더 작가’ 천막.(사진=이안) 

    그렇게 밤을 보내느라 지칠 만도 한 사람들을 새로 기운 북돋는 젊은 문화행사가 동이 트면서 바로 펼쳐졌다. 물벼락처럼 쏟아지던 비도, 아스팔트를 뜨겁게 달구는 땡볕도, 여전히 흉물스럽게 버티고 선 차벽과 경찰 방패도 희망버스 사람들의 기를 죽일 수 없었다.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일한다는 여성 래퍼 <한낱>의 팔팔한 거리 공연을 시작으로 기타 하나 둘러메고 평화를 노래하는 포크 가수, 김진숙 씨에게 들려주려고 연습한 노래를 함께 온 친구 하나가 연행되어 셋이 왔다가 둘이서 부르는 대학생, 이런 상황을 해학 넘치는 민요로 풀어내는 젊은 소리꾼들, 산뜻한 몸짓으로 여럿이 춤을 맞추며 반값 등록금 문제를 호소하는 ‘대학생 사람연대’ 학생들, 성적소수자의 마음을 모아 정리해고 철회에 대한 연대의 공연을 펼친 게이 코러스 <G보이스>.

    아침 일찍 경찰 쪽에 희망버스 사람들의 뜻을 전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50여명의 연행자를 석방하고, 모인 사람들이 평화행진을 통해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날 수 있도록 차벽을 치울 것을 요구했다. 두 시까지 이에 대한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맥없이 늘어져 있지도, 언제 다시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작전을 벌일 지 두려워 하지도 않았다. 대신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지키고, 키우는 즐거움을 나누었다.

    작가들과 아이들

    앞에서는 문화마당이 흥을 돋우는 동안 한쪽 천막에서는 아이들에게 책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동화작가, 화가, 만화가 등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 책 작가들의 모임인 ‘더 작가’가 준비한 책들이었다. 이 모임은 일제고사 부활에 반대하다 해직된 교사들의 활동에 자극받아 용산 참사 때부터 시작됐다. ‘더 작가’는 한진 해고자 가족 대책위, 쌍용자동차 해고자 모임 등 부당한 권력과 싸우면서 아이들도 돌보는 것이 힘겨울 사람들에게 책을 나누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활동을 계속해왔다.

    마침 쌍용자동차 해고자 가족들이 ‘더 작가’ 천막을 찾아왔다. 작가들은 그냥 책을 한보따리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따로 표시를 해둔 책 꾸러미를 준비했다가 건네주었다. 무슨 특별한 책이냐고 물어보니 미리 희망버스 중앙기획단을 통해 책을 받을 아이들의 이름, 성별, 나이까지 챙겨보고서 책마다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써넣은 귀한 선물이었다. 이런 작가들의 정성이 아이들에게 당장의 어려움을 이겨낼 희망이 될 것이다.

    예기치 않게 그 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1박 2일을 보내는 동안 이래저래 쌓이게 되는 쓰레기는 분리수거함이 따로 마련되지 않은 대신 아스팔트 위에 누군가 그려놓은 그림에 따라 차곡차곡 모아졌다. 1박 2일 동안 편치 않은 몸으로 누구보다 의연하게 자리를 지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합 회원들은 큼지막한 주먹밥을 빚어 오가는 사람들 누구나 맘 편히 먹으라고 내주었다.

    누가 누구를 돕고 베푸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누고 감사하는 자리가 된 봉래사거리에는 부산 시민들도 한데 어울리는 연대와 화합의 자리였다.

    선박 관련 안전 검사 일을 한다는 한 부산 시민은 한국이 조선 강국이 된 것은 남다르게 앞선 기술 개발 때문이기도 하지만 쇳덩어리를 자르고 붙이는 일이다보니 톱날, 그라인더, 용접기, 각종 중장비를 움직여야하고, 그만큼 위험한 산업현장에서 일해 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조선소 노동현장은 치명적인 안전사고가 잦은 ‘전쟁같은 일터’라는 것이다. 그런 위험한 일을 기꺼이 해오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세계적인 조선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3차 희망버스 승객이 되자고 ‘호객’하는 문정현 신부(위), 땡볕 위의 사람들(아래 왼쪽), 그 위에서 놀다. 

    부산 시민이 희망버스를 반기는 이유

    부산 출신으로 서울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온 공대 출신 40대 중산층 남성은 전쟁에서 아무리 최첨단 무기로 적을 초토화시켜도 육군이 직접 적진에 들어가 깃발을 꽂아야 승리가 확인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 장비며 기술이 아무리 발전했다 해도 어떤 거대하고 특수한 선박이든 그걸 만드는 일 하나하나의 마무리는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고 조선소 작업은 특히 안전과 직결된 만큼 숙련된 노동자를 필요로 한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그런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정리해고하고, 이제 아예 노동비용을 줄이겠다며 조선소를 필리핀으로 옮기려는 것이 부산 시민들에게도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영도는 한진중공업을 중심으로 경제가 꾸려져 온 지역인데 조선소를 폐쇄하고 필리핀 수빅으로 이전하기 위해 회사측에서 일부러 선박 수주를 하지 않아 놓고는 경영악화라는 핑계로 정리해고의 철퇴를 내리치는 것은 경우 없는 짓이기도 하거니와 가뜩이나 어려운 부산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 뻔하기에 이를 걱정하는 많은 부산 시민들도 희망버스를 반기고 있단다.

    이미 한진중공업이 필리핀에 세운 수빅 조선소에서도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조선소에서 5000건이 넘는 산업재해가 발생했고 28명의 노동자가 숨지면서 필리핀 현지에서도 ‘여기가 조선소인가, 묘지인가’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나가서도 샌다고, 한진은 정리해고, 안전사고, 노조탄압, 하청을 통한 비정규직 고용 등 한국에서 하던 온갖 부당노동행위를 고스란히 되풀이하면서 국제적으로 자본의 추한 망나니짓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김진숙의 고공농성은 단지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산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한국과 필리핀에 걸쳐 고통 받는 노동자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하며, 인간의 존엄과 정의를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위대한 일을 지금껏 홀로 짊어지고 버텨 온 김진숙에게서 사람들은 희망을 보았고, 그 희망에서 힘을 얻었고, 이제 희망이 현실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7월 30일, 3차 희망버스로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가족들이 집회를 마칠 즈음 종이배를 곱게 접어 엽서와 함께 하나하나 담아 나누어 주었다. 엽서에는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격려의 마음을 담아 보내기를, 그리고 지금 만들 수 있는 것은 종이배지만 어서 진짜 배를 만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희망을 함께 퍼뜨리기를 바라면서.

    7월 30일, 3차 희망버스가 다시 부산을 향한다. 그래서 2차 희망버스 사람들은 이번에는 김진숙을 만나지 못했지만 실망하지 않고 다같이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부르며 되돌아 설 수 있었다.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고,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다음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마침내 하나 되리라고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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