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창의 꿈 혹은 우리들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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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7월 15일 08: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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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1년 7월 8일, "평창이 됐다."는 소식을 저는 택시에서 라디오 방송을 통해 들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나서 거의 파김치 된 몸으로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송국 소식 해설자의 떨리는, 우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평창 개최가 결정되던 순간. 

    해설자의 어투로 봐서는, 피로로 거의 비몽사몽간에 있었던 저는 이게 평창 이야기가 아니고 평양방송인가 싶었습니다. 거기에서도 최고지도자 등 신성시되는 인물이나 그들과 관련된 행사 등에 대해서 그 어떤 거역도 불허하는, 절대적이다 싶은, 감정에 충만한 어투로 보통 소식을 전합니다.

    반대하면 국적이라도 박탈당할 것처럼

    "평창이 됐다."는 이야기의 어조도 마찬가지로 그 어떤 반대도 원천적으로 불허했습니다. 우리들의 힘찬 도약! 일류선진국가의 꿈이 현실로! 세계 4대 스포츠 이벤트 개최국! 강해진 우리 국력! 국민의 힘으로! 이러한 구호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 국적(國籍)을 박탈당해야 할 국적(國敵), 히코쿠민(非國民) 정도 되는 듯한 분위기이었습니다.

    참,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꼭 경찰의 진압봉과 용역깡패들의 각목, 쇠파이프만으로는 그 반대자들을 때려잡는 것만은 아닙니다. 집단 히스테리 분위기 조장의 차원에서는, 정말이지 괴벨스(1897-1945) 박사에게 몇 수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한국 관변, 친자본 언론들입니다.

    이 분위기가 얼마나 압도적이길래, 평소에 그나마 제 정신을 좀 보존하고 있는 <경향신문>마저도 갑자기 "평창의 꿈, 꿈의 축제"와 같은, 그 신문답지도 못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겠습니까? <경향신문>마저도 부분적으로 무너질 정도라면, 이제 전 천하가 취(醉)해 정신을 잃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옛 현자의 이야기대로는, 천하 전체가 취했다면 거기에서 취하지 않는 사람만큼 위태로운 존재가 없다는 것입니다.

    ‘평창의 꿈’을 들먹이는 이들은, 서울 88올림픽을 자주 떠올립니다. ’88의 꿈’이 한국을 한 순간에서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만들었다면, 평창이 ‘선진화 도약’의 이정표가 되겠다는 식의 이야기입니다. 글쎄, ’88의 꿈’은 자기 자리에서 쫓겨난 수만 명의 노점상들에게 악몽 중의 악몽이었지만, 무엇보다는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야 했던 철거민들에게는 말그대로 최악의 악몽이었습니다.

    올림픽 관련 재개발로 내쫓기게 된 약 3만 명의 뚝방촌 거주자들이 1983년부터 치열하고 많은 희생을 요구한 싸움을 벌였던 목동, <상계동올림픽>이라는 독립영화로 국제적으로까지 유명해지게 된 상계동 철거민들의 싸움, 올림픽을 앞두고 상계동의 철거현장에서 압사를 당한 오동근 어린이와 그의 시신을 훔쳐 몰래 화장시킨 살인마적 독재권력의 ‘사건 처리 방법’, 신당동 철거민 투쟁의 수많은 사망자, 부상자들 – 우리가 벌써 이걸 다 잊었습니까?

       
      ▲’상계동올림픽’의 장면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올림픽 잔혹사’는 꼭 노점상이나 철거민들에게만 국한되는 것도 아닙니다. 평창의 7조원 짜리 그 화려한 경기장 등 여러 시설들을 직접 지을 사람들은, 건설 하청 업체들이 (상당 부분은 구두 계약, 일당 등으로) 고용할 비정규직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등일 것입니다.

    이럴 때에 안전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다반사고 사망사고를 포함한 안전사고들이 빈번합니다. 지금 현재 4대강을 죽이는 과정에서 노동자 20명도 ‘동반 사망’되고 말았습니다. 이들의 비명횡사에 대해서 평창 유치의 꿈을 이루어냈다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해당 장관은 "사고다운 사고가 몇 건 없었고, 대부분은 자기 실수로…"라고 했지만 말입니다.

    ‘평창의 꿈’이 펼쳐지는 과정에서 과연 몇 명의 노동자들이 "자기 실수로" 압사, 추락사, 감전사, 충돌사 등을 당하겠습니까? ‘평창의 꿈’을 말씀하시는 분들은, 과연 압사를 당하면서 뼈 하나 하나가 차례로 부러지는 사람이 그 죽어가는 순간에서 뭘 느끼는지 좀 짐작하십니까? 국가와 자본만큼 살인을 많이 벌이는 주체가 없는데도, 그 끄나풀들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평창의 꿈과 살판 난 사람들

    "서울 88올림픽이 한국을 세계적으로 알렸다"고? 맞습니다.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서민들에게 한국을 ‘선진적인 부자 나라’로 알린 결과, 절망적 빈곤을 탈출하려는 이들의 행렬은 1989~0년부터 한국을 향하게 됐습니다.

    이들을 기다린 것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빨리빨리 개새끼"와 같은 우리 아름다운 국어의 진수, 임금체불, 그리고 단속, 단속, 단속… ‘꿈’이 악몽이라는 그 실체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물론 가난뱅이의 악몽이란 부자들의 길몽인 법. 피해를 보는 쪽이 있다면 이득을 보는 쪽도 분명히 있는 법입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같은 경우에는, 그 개최 기간에 ‘비싼 손님’들을 만족시켜주어야 할 성 산업이 거의 국가적 후원을 받는 결과, 성 산업 대국으로서의 위대한 대한민국은 가까운 일본뿐만 아니라 머나먼 구미에서까지도 그 명성을 떨쳐 많은 국위선양을 하게 됐습니다.

    이제서야 일류 선진국가답게 그 성 산업도 수만 명의 필리핀, 러시아, 중국, 북조선 출신들을 다양하게 고용해(혹은 준노예로 부려) ‘모범 성산업국가’인 일본을 내일이라도 압도할 듯한 기세입니다. 극일(克日)의 쾌거? ‘평창의 꿈’은 수많은 포주님들에게도 길몽이겠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혈세로 빼앗길 7조원을 공사비로 날리고 그 상당 부분을 폭리로 챙길 건설업자에게도 복음과 같은 소식입니다.

    부동산 거품이 이제 곧 꺼질까 말까 하는 요즘 침체 상황에서는 참 대단한 소식이죠. 땅값이나 오르게 말이죠. 이외에도 공식 후원업체들도 살판이 나겠습니다. 삼성과 한진이 후원하는 올림픽 잔치에서는, 누가 백혈병으로 죽은 이들이나 영도에서 최근 비명에 돌아가신 3명의 노동 열사나, 수빅조선소에서 몇년간 사고사를 당한 30여 명의 필리핀 노동자들을 기억하겠습니까? 올림픽의 ‘꿈’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맙니다. 변칙 상속부터 살인적 노동탄압까지 말입니다.

    내가 억울한 이유

    말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사실, 굳이 지금의 저처럼 말을 많이 남용하지 않아도 올림픽이라는 것이 토건업과 방송업, 소매업, 성산업 등을 위한 국가의 특단의 ‘부양책’이라는 점도, 동시에 우민화, 즉 민중에 대한 국가, 자본의 포섭의 기제로 활용된다는 점도 그저 자명할 뿐입니다.

    저로서는 한 가지만 자명하지 않아요. 도대체 자본 독재의 포로인 우리들은, 왜 우리 혈세로 백해무익의 낭비를 벌일 지배자들을 상대로 제대로 된 투쟁도 벌이지 못하고 있는가요? 4대강 죽이기나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이 있다면, 평창에서의 토건업자들의 큰 잔치를 반대할 투쟁 하나쯤 좀 조직돼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그 정도라도 국가, 자본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단 말인가요? 억울합니다. 참 억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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