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 주러? 아니 희망 찾으러 온 이들
    By
        2011년 07월 12일 04:41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부산역 광장 집회 모습.(사진=권용진 http://blog.naver.com/jean63

    사람은 땅을 딛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반 년 넘도록 땅을 디뎌보지 못하고 35m 높이의 아찔한 허공에서 지내는 이가 있다. 그저 땅에 발붙일 수 있는 것만으로 사람이 사람다운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정당하게 함께 일하고, 일하며 흘린 땀에 대한 대가로 삶을 꾸려 나가고, 그렇게 흘린 땀으로 온몸에 하얗게 소금꽃이 피어나는 것을 힘들어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 제대로 땅의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위해.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이 그 사람이다.

    삶이 힘들어지면서 그가 우리의 희망임을 알아채다

    85호 크레인은 2003년에 김주익 한진중공업 노조 지회장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29일간 고공농성을 벌이다 목을 매고 숨진 자리다. 그 자리에 국내 최초의 여성 용접공이자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인 김진숙이 오르는 마음은 얼마나 절박했을까.

    자신의 목소리가 땅에 닿지 않고 허공에 흩어질지도 모르고, 자신이 온전히 땅을 딛는 날이 언제가 될지 알 수도 없는데 그이는 그곳에 올랐다. 그리고 세상은, 우리는 김주익이 희망을 놓은 날수보다 더 오랜 나날 동안 그이의 목소리에 귀를 닫았다. 겨울 칼바람에도, 봄철 황사바람에도, 여름 초입 불어 닥친 태풍 메아리에도 눈을 들어 그이가 떠있는 허공을 보려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치판이 난장판이 되고, 온 나라 산하가 4대강 공사로 절단이 나고, 제대로 된 일자리에서 삶을 꾸리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도록 경제가 엉망이 될 만큼 세상살이가 팍팍해지고서야 사람들은 그이가 바로 우리 모두의 희망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이를 만나러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여 희망버스를 탄 사람은 1차에서 700명, 2차에서는 그 열 곱이 넘는 7,000명이 195대의 차량에 올라 부산을 찾았다. 걸어온 사람, 퀴어 버스, 평화버스, 희망 자전거, 소금꽃 찾아 천리길 걸어 자신들이 활동하던 이름으로 온 사람까지 더해 7월 9일 부산역 광장에서 펼쳐진 부산지역 시민과 함께 하는 문화 콘서트 자리는 장대비가 퍼붓는 날씨에도 얼추 1만을 헤아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버스가 부산을 향해 달리는 내내 차창 밖 풍경은 예사롭지 않았다. 금강이고 금호강이고 낙동강이고 할 것 없이 불도저가 파헤치다 만 강기슭은 장마비로 엄청나게 불어나 금방이라도 넘칠 듯한 흙탕물이 넘실대고 있었다. 그 강물이 끝닿아 바다로 나가는 길목 부산, 그 부산 육지와 다리로 이어진 섬 영도, 영도에서도 바다쪽 한진중공업 조선소에 가야 85호 크레인 위의 희망을 만날 수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3호선  버터플라이’ 공연, 시 낭송, 노찾사 공연 그리고 연대에 함께 해 행진을 하고 있는 장애인 단체 회원들.(사진=권용진, 이안)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을 나설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콘서트는 먼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인디 밴드 <웨이크업>의 연주로 시작되었다. <웨이크업>은 이제껏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소규모 집회에서 공연을 계속해왔더랬다.

    지역 클럽에서 공연을 하면 관객이 많아야 스물 남짓, 남들이 관심 두지 않는 한진중공업 집회에서 공연을 해도 고만고만하게 모인 사람들이 다였는데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제 <웨이크업>의 청중이 되었다. 그들이 그토록 오래 연주하고 부르던 음악이 지역의 한계를 넘고, 퍼붓는 빗줄기를 뚫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인디 활동이 곧 현실 참여

    이어서 무대에 오른 이들은 <3호선 버터플라이>. 2000년부터 활동해 왔던 인디 음악계에서 이름난 밴드다. 멤버들 각각의 내력을 헤아려보면 1990년대부터 꾸준히 음악을 해왔지만 도대체 언제부터 이들이 광장에 서게 된 걸까?

    무대에서 막 내려온 리더이자 시인이기도 한 성기완은 <3호선 버터플라이>의 노래 자체가 현실 참여적이라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주류 대중음악계에 휩쓸리지 않고 지금껏 연주해 온 음악이 불러들인 자리라고 했다.

    인디 활동이 곧 현실 참여 활동이기도 한 후배 인디 뮤지션들과 교감할 수 있었기에 두리반 작은 음악회나 서울대 법인화 반대 콘서트 ‘본부스탁’, 그리고 이번 희망버스 연대 콘서트까지 함께 하겠느냐고 내미는 손에 <3호선 버터플라이>는 음악으로 화답하는 것이다.

    인디 뮤지션이란 이념적 활동을 하는 이들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일상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이들이라면서. 동료 시인 심보선이 시인으로서의 성기완을 희망 콘서트 자리에 불렀을 때, 성기완 개인이 아니라 죽 함께 해온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 모두가 다함께 뮤지션으로 이 자리에 나선 것, 그것이 바로 인디 정신이요, 활동이다.

       
      ▲눈길을 끈 버스와 빗속의 백기완 선생.(사진=권용진 http://blog.naver.com/jean63

    다음으로 처음 희망버스의 시동을 걸고, 1차에 이어 2차까지 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그 버스에 오르게 한 시인 송경동과 심보선, 김선우의 시낭송 <크레인 위에서 태어난 인간>이 울려 퍼졌다. 시인들은 김진숙을 이렇게 그려낸다. “당신은 높은 곳에서/ 새처럼 재잘거리고/ 영웅처럼 외치고/ 전사처럼 절규하고/ 아이처럼 웃습니다.”

    새처럼 재잘대고, 영웅처럼 외치고

    배를 만들던 김진숙이 배를 만들지 못하도록 내몬 사람들에 맞서 크레인에 오른 속내를 시인들은 짚어낸다. “당신은 생각합니다. 언젠가 그 배가 지나갈 바닷길은/ 붉은 색으로 물들고 조금 더 짠 맛이 나겠지/ 그 배에는 우리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속속들이 배어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할 때, 당신은 더 멀리 칠흑 같은 어둠 위로/ 별빛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을 우연히 발견합니다/ 당신은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슬프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당신은 강인하니까요/ 당신은 세계 최초로 크레인 위에서 태어난 인간이니까요.”

    사람들이 부산으로 달려온 까닭은 시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분명해진다. “이제 우리는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당신과 최대한 가까이 있기 위해 당신에게로 갑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우리의 얼굴을 보여줄 것입니다/ 저 위에서 보면 우리의 얼굴은/ 작업복 위에 피어난 수많은 소금꽃처럼 환하게 보일 것입니다/ 당신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그렇게 입증할 것입니다.” 시를 낭송하는 시인들의 목이 메고, 그 목메임을 듣는 사람들의 가슴도 메어들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이들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 언제고, 어디서고 자신들의 노래로 힘을 보탤 자리가 있으면 서른 해 가까이 한결같이 달려가 ‘나는 가수’라고 힘주지 않고도 든든하게 힘이 되어 주는 가수들이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광야에서’를 부르기 시작하자 광장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백발이 성성한 백기완 선생이 굵은 비를 맞으며 무대 앞으로 나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마주보고 섰다.

    그 뒤로 유시민, 문성근, 천정배, 조승수, 심상정, 노회찬, 이정희 등등 앞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들도 함께 일어섰다. 노동의 고단함을 경쾌한 선율에 실은 ‘사계’와 희망버스에 모인 사람들이 바라는 세상 ‘행복의 나라로’에 이어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까지 사람들 모두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목청껏 같이 부르는 노래들.

    그렇게 소리를 모으고, 마음을 모아 사람들은 영도다리를 건너 85호 크레인까지 행진을 시작했다. 이들은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희망을 주러 온 것이 아니다. 그이로부터 희망을 찾으러 온 사람들이다. 그 길을 경찰이 막아선다 해도 마음까지 막을 수는 없다.(계속)

       
      ▲빗속 행진. 색색의 우산 속 사람들의 길은 막아도 연대의 마음은 막을 수 없다.(사진=권용진 http://blog.naver.com/jean63)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