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버스'에서 '희망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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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7월 11일 11: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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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희망자전거를 타고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을 향해 출발하기로 약속돼 있던 나는 지난 7월 9일 새벽 울산으로 내려갔다. 정확히 12시. 현대차 정문에서 간단한 약식 집회를 갖고 부산의 한진중공업으로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출발했다.

나는 “정리해고 철폐 투쟁과 비정규직 철폐 투쟁은 똑 같기 때문에 이 출발이 희망의 자전거이기도 하지만 비정규직 정규직화 싸움의 출발이라는 것을 선언하자.”고 제안했다. 자전거 21대, 출발 인원 30명이 산뜻하게 출발했다. 시원하고 기분 좋게 현대차 정문을 떠나 부산으로 향한다.

   
  ▲희망의 자전거. 

행진 내내 나는 선두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선두에서 멀어지면 낙오할 것 같아서였다. 통풍을 앓고 있는 나한테는 솔직히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다. 무릎도 아프고, 힘도 들고, 엉덩이도 무지하게 아팠다.그러나 최선을 다해 페달을 밟았다.

폭우 뚫고 부산으로

김미진 대의원을 포함해 여성 노동자도 셋이 있었는데 정말 자전거를 잘 탄다. 체력도 대단하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한 번도 뒤쳐지지 않는다. 놀랐다. 달콤한 휴식 시간. 하지만 이때부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안경을 벗어 던져야 했다. 비가 오니 날은 시원했지만, 자전거를 타는 것은 몇 배가 더 힘들었다.

부산으로 가는 여섯 시간 내내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처지에 대한 서러움이 밀려들다가도, 폭우를 뚫고 나아가는 자전거를 보면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잘 될 것 같다는 기대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러다 오르막길이라도 만나면 정말 아무 생각없이 그저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나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난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다. 그렇게 80km를 달려 6시간 만에 부산 시내에 들어섰다. 멋있고 짜릿하다. 나와 우리 모두가 고맙고 대견(?)하다. 도보로 ‘폭풍질주’를 하고 있는 쌍용차 조합원들도 만났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마침내 부산역. 비록 쌍용차 노동자들의 천릿길 행군에 비하면 턱없는 거리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힘든 거리를 무사히 소화해냈다. 앞으로 비정규직 싸움에 자신감이 붙을 것이다. 부산역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도 받았다. 힘들었지만 끝까지 완주했다. 기분이 우쭐해져서 분수대에 올라가 장난도 치고 역 광장을 한 바퀴 도는 퍼포먼스도 했다.

허기에 지친 동지들과 라면 한 그릇씩 먹고 나오니 문화제가 시작됐다. 비는 계속해서 내린다. 무대 위에서 콘서트가 열리는 동안 나는 콜트, 콜텍 투쟁을 알리는 홍보를 같이 했다. 홍보용품을 잘 준비해서인지 여기저기서 많은 관심을 보인다. 5년째 고생을 하고 있는 콜트, 콜텍 동지들을 보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비는 그치기는 커녕 더욱 거세게 쏟아진다. 걱정이다. 날 밤을 새워야 하는데. 어쨌든 비는 비고, 희망의 버스는 85호 크레인으로, 한진중공업으로 행진을 시작한다. 이 빗속을 뚫고 1만여 명이 달려왔다. 대단하다, 희망의 버스.

최루액 물대포를 맞으며

경찰이 차벽을 설치하고 행진을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다. 어린 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 많은 사람들을 저들이 어찌 막는단 말인가? 백기완 선생님, 문정현 신부님 등 어르신들이 앞장을 서고 행진대열은 구호를 외치면서 점차 영도조선소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깔딱 고개 하나를 넘으면 될 것 같은데, 경찰이 완벽한 차벽으로 막아선다. 2008년 광화문에 등장한 ‘명박산성’이다. 2010년 현대차 울산공장에 등장한 ‘몽구산성’이다.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의 탐욕을 지키는 ‘남호산성’을 넘기 위해 벽돌과 소금가마니로 사다리를 만든다. 경찰은 살수차에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쏘아댄다. 파란색 최루액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눈이 따갑고 온 몸이 불에 덴 듯 아프다.

급기야 무차별 폭력을 쓰며 참가자들을 연행해 갔다. 50여 명이 연행이 되었는데 심지어는 엄마와 아이가 같이 연행이 되었다. 연행자 중에는 심상정 전 국회의원도 있었다.

기가 찰 노릇이다. 이 나라 경찰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경찰은 자본에게 고용된 사적 군대인가? 단지 85호 크레인의 김진숙 위원에게 힘을 주려고 손짓 한 번 하겠다는데,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함께 살자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경찰이 막아서는가 말이다.

용역들의 폭력은 수수방관하고,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곤봉과 방패를 들이대며 무차별 폭력을 가하는 경찰은 이 곳 부산땅에서나 충청도 아산땅에서나 그 모습이 어쩌면 그리도 똑같은가?

밤새 이어진 놀이

길이 막힌 희망의 버스는 그러나 절망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연좌를 하고 놀이에 들어간다. 밤새 지칠 줄 모르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며 즐거워한다. 너무 재밌다. 나오는 팀마다 가사도 그렇고 저마다 스타일들이 완전 독특하다.

기발한 공연자들의 공연에 웃고 즐기는 사이 날이 밝아 온다. 날이 밝아 다음 날이 되었다. 김진숙 위원 크레인 농성 186일차가 되는 날이다. 힙합 풍 랩도 나오고, 포크송도 나오고, 전라도 판소리에 만담, 로큰롤까지 등장한다.

거기다 배꼽을 쥐게 하는 춤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쉼 없이 이어진다. 각 공연마다 이 정권과 자본을 비꼬는 재기발랄한 풍자가 들어 있다.

아침 7시가 되었다. 희망의 버스가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이른 시간에 진행되는 기자회견도 처음이다. 평화적인 행진을 폭력적으로 방해한 경찰을 규탄하고 희망 버스의 요구, 그리고 이후 행보에 대한 기자회견이었다.

희망의 버스는 두 가지 결정을 했다. 첫째, 연행자를 즉각 성방하라는 것이고, 둘째, 김진숙을 반드시 만나고 간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195대의 희망버스는 단 한 대도 출발하지 않는다는 결정이었다.

   
  ▲판화에 색칠하기. 

경찰에게 이에 대한 답변 시간을 오후 2시까지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다시 놀이가 시작된다. 터울림의 신나는 풍물놀이에 주민들도 구경을 나왔다. 한 쪽에서는 이윤엽 작가의 판화에 색칠하기가 진행된다. 밑그림은 작가의 작품이지만 전체적으로는 공동작품이 탄생한다. 풍물놀이는 갈수록 신나게 이어진다.

흥이 난 사람들이 가세하고 절정을 이룬다. 땀이 흥건하게 흐르면서도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풍물놀이가 끝나는 동시에 춤꾼이 나와서 한풀이 춤을 추어 제낀다. 끝없는 공연, 공연… 사실 다 언급하기가 힘들다. 이 밖에도 자유발언과 공연이 무박 2일 동안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 그야말로 노동문화의 바다였다.

한진중공업 가족들이 일일이 접어서 만든 배를 붙인 엽서를 나눠준다. 모든 참여자들에게 직접 하나하나를 전해준다. ‘당신을 통해 희망을 봅니다’ 우리는 이 엽서를 받아 각자 글을 썼다. 받는 주소는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김진숙 지도위원 앞이다.

다시 시작된 놀이와 공연

이번에는 장애인 차별철폐 연대에서 율동 공연이 있다. 휠체어를 타고 하는 율동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장애인 차별철폐 연대에서는 노래공연도 했다. 율동, 노래 둘 다 수준급 공연이다. 성소수자들 모임의 공연도 깜찍하고 재밌다. 정말 다양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인 희망버스였다.

비록 경찰의 벽에 막혀 85호 크레인 앞으로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참여자들이 희망을 느끼고 보기에는 충분했다. 한 숨도 자지 못했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감동의 무대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약속한 시간이 되어 경찰의 제의가 있었다.

연행자는 일부는 우선 석방하고 나머지는 검찰로 넘겨졌기에 어쩔 수 없으나 최대한 건의(?)를 하겠다는 것과, 대표자 30명을 크레인으로 보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희망의 버스는 단호하게 경찰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리고 오후 2시 50분, 마지막 집회를 했다. 1차 희망의 버스 때 울분을 토했던 분이 “절대 두렵지 않다. 나는 희망의 버스가 다시 거대하게 조직해서 몰려올 것으로 기대한다. 굽히지 않고 투쟁하겠다.”며 결의를 밝혔다.

마무리 발언에 나선 문정현 신부님은 “감사하다. 1차 때 조직하는 것을 봤는데 많이 힘들어 하더라. 그러나 2차 때는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놀랐다.”며 3차 때 다시 오자고 제안을 하셨다. 참여자 모두가 결의했다.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들이 참석해 경찰의 어떠한 방해도 뚫고 85호 크레인으로 기어이 가자고 결심한다.

억압과 부당함을 마비시키는 희망의 버스

김진숙 지도위원의 말씀대로 희망의 버스는 이미 역사가 되었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 희망의 버스였다. 뜨거운 햇볕과 최루액으로 화상도 입었다. 그러나 항상 동지들과 있으면 희망을 본다. 우리에게 연대가 있으면 절망은 없다. 연대가 생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김진숙 지도위원이 결국 승리해서 안전하게 스스로 땅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고 다시 원상회복 되어서 현장을 돌아갈 때까지, 결코 연대의 끈을 놓지 말자. 절망으로 가득찬 곳곳으로 찾아가서, 희망의 연대의 몸짓으로, 억압과 부당함을 마비시켜 버리는 희망의 버스. 이제, 희망의 버스 승객을 늘리고 늘려서 이 나라 전체를 희망의 나라로 만들어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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