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계올림픽, 한진중 폭력진압, 그리고 국격
    By
        2011년 07월 11일 09:31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10일 새벽 경찰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찾은 시민들을 강제해산 시키면서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날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2차 희망의 버스’ 행사에 참가한 1만여명(경찰추산 7000여명)의 시민들은 한진중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85호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나려고 거리행진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진압에 막혀 강제해산됐다.

    이 과정에서 50여명이 연행되고 100여명이 다쳤다. 경찰은 시민들을 향해 최루액과 물대포를 조준해 발포했고, 장애인과 미성년자까지 포함된 행사참가자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해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11일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평화적 시위에 경찰이 강경하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진압한 것을 비판했다. 경찰이 사용한 최루액에 발암물질이 포함됐다는 의혹도 전했다. 반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한국일보는 ‘외부세력 개입’을 강하게 비판했다.

       
      ▲경향신문 7월11일자 만평

    다음은 7월11일자 전국단위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들이다.

    경향신문 <희망버스 1만명 최루액·곤봉 진압>
    국민일보 <취약계층 지원 줄이고, 직원 인건비 늘리고 / ‘거꾸로 정책’ 복지부 맞나>
    동아일보 <‘공천=당선’ 지역 기득권 깬다>
    서울신문 <중기 잡는 MRO 전관예우>
    세계일보 <외부강연료는 합법적 용돈 / 중앙부처 공무원 ‘현관예우’>
    조선일보 <한국 전투기, 이달말 첫 공중급유 훈련>
    중앙일보 <존스홉킨스 "한국과 끝났다">
    한겨레 <희망버스는 불안한 현실 ‘저항 아이콘’>
    한국일보 <잔업·특근해야 월 120만원 고졸 취업자 절반이 그만둬>

    조선·동아, 한진중 찾은 시민에 "노사합의 흔드는 외부세력" 비난

    "정리해고 문제로 6개월여간 노사갈등을 빚어온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사태가 노사 간 극적 타결로 정상화되는가 싶더니 정치·노동계 외부세력의 대거 개입으로 다시 미궁에 빠져들고 있다."

    조선일보가 한진중공업에서 벌어진 경찰의 강경진압 사태를 다룬 기사의 첫 도입부다. 조선일보는 12면 <노사합의 됐는데…외부세력 7000명 몰려 시위> 기사에서 "경찰은 한진중공업 파업사태를 계기로 노동 문제를 정치 이슈화하려는 노동계와, 내년총선·대선에서 부산을 공략하려는 야당 정치인들이 함께 부산의 대표적 기업 앞에서 주기적으로 폭력행위를 벌이고 있다고 보고 있다"며 "한진중공업 노사 양측이 지난달 27일 협상을 타결한 데다 지역사회도 ‘노사합의를 존중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하고 있는데도 외부 정치·노동세력이 총집결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7월11일자 12면

    조선일보는 이어 "지역에선 신공항 무산, 부산저축은행 사태 등으로 ‘반 한나라당 정서’가 비등하고 있는 부산 민심을 한진중공업 사태를 계기로 야당 쪽으로 확실히 돌려 내년 총선·대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야권의 암묵적 합의가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아일보도 제3자 개입을 강하게 비난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한진중 노사합의 흔드는 외부세력의 얼굴들>에서 "그제와 어제 부산은 서울 등 전국에서 몰려온 사람들의 불법시위로 몸살을 앓았다"고 썼다. 동아일보는 "외지에서 시위 참여자들을 태우고 부산으로 온 버스는 150여대나 된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와 노회찬 심상정 상임고문,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 민주당 정동영 천정배 문학진 의원 등 야당 정치인 수십 명과 배우 문성근 씨 등도 집회에 참가했다"며 "한진중공업 노사합의를 흔드는 외부세력의 면면들"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한국일보도 사설 <유감스러운 ‘희망버스’ 도심 시위>에서 "국가 주요시설인 대형 조선소에 시위대가 불법 진입하는 일은 허용돼선 안 된다"며 "일부 정치인들이 합세해 정치 쟁점화하려 들었다니 더욱 유감"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신문 사설에는 이날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방식에 대한 비판은 없었는데, ‘희망 버스’ 자체를 정치적 목적을 가진 불순한 행사로 봤기 때문이다.

    경향·한겨레 "해고 남 일 같지 않은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

    그러나 경향신문은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평가를 내렸다. 경향신문은 2면 <유례없는 희망버스 / 자발적 참여 ‘국민적 문제’로…세계도 주목> 기사에서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문제는 이제 한진중공업이라는 개별사업장의 문제를 넘어섰다"며 "평범한 시민들이 부산의 한 조선소에서 벌어지는 일에 주목하고 연대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 7월11일자 1면 

    경향신문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참가비(3만원)을 내가며, 주말과 휴일에 부산을 찾는 이가 1만명에 이르렀다는 것은 하나의 ‘현상’"이라며 시민들의 노동자들을 위한 자발적 연대는 ‘못 믿을 경이로운 이야기’라는 세계적 석학 노엄 촘스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의 말을 전했다.

    경향신문은 또 "지상파 방송과 보수언론이 침목하고 있음에도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연대가 가능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한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희망 버스’에 오른 것일까. 경향신문은 "’희망 버스’ 안에서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다보니 10명 중 2명이 해직자와 정리해고자였다"고 전했다. "크레인 위의 김진숙 위원을 ‘위로’하기 위해 갔다기보다, 자신이 처한 절망적 현실 역시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이면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보고 싶어 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기 쉽지 않다면 ‘목격자’라도 되고 싶다며 버스에 몸을 실은 시민들도 많았다(2면 "힘을 보태면 세상 달라질까…목격자라도 되고 싶었다">

    한겨레는 ‘희망 버스’를 불안한 현실의 ‘저항 아이콘’이라고 분석했다. 한겨레는 1면 머리기사 <시민 5천여명, 그들은 왜 희망버스를 탔나 / 희망버스는 불안한 현실 ‘저항 아이콘’>에서 "1차 희망버스엔 700여명이 탔지만 2차 희망버스엔 5000여명이 전국 각지에서 몸을 실었다"며 "일반 시민이나 정당인, 노조활동가, 대학생, 의료인, 종교인뿐만 아니라 장애인, 성적소수자, 철거민, 이주노동자,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들도 대거 합류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 7월11일자 1면

    사람들은 한진중 조합원들이 겪은 일(해고)이 ‘더 이상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했다. 희망 버스를 제안한 송경동 시인도 참가자 수가 늘어난 이유를 여기에서 찾았다. 송 시인은 "우리는 비정규직, 정리해고 확산으로 인해 불안한 사회에 살고 있다"며 "사람들은 말은 하지 않지만 이에 대한 분노가 내재돼 있는데,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연대가 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2차 희망버스에 참가한 문애린(31)씨는 "표면적으로 한진중과 장애인 문제는 연관이 없어보이지만, 장애인 노동환경은 더 열악한 게 현실"이라며 "그들의 일이 곧 나의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일부 신문들은 ‘희망 버스’를 내년 총선과 대선에 영향을 주기 위한 정치적 세력이 개입한 불온한 목적의 행사라고 몰아세우지만, 실상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확산으로 생존권을 위협당하고 있는 서민들의 불안이 확산되면서 사회적 연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희망 버스, 한진중 넘어 진화 중

    경향신문은 사설 <촘스키, 강경진압, 그리고 ‘희망의 연대’>에서 "경찰은 밀려 넘어진 시민들을 방패로 계속 내려찍는 등 무자비한 과잉행동도 서슴지 않았으며, 최루액을 맞은 이드은 화학적 화상 증세까지 보였다고 한다"며 "평화적인 집회를 가지려는 시민들을 향해 이처럼 군사작전 수행하듯 강경진압을 일삼은 경찰의 구시대적 행태에 분노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이어 "참가자 중에는 저명한 야당 정치인과 시민운동 지도자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평범한 생활인들이었다. 세상의 속살을 보여주기 위해 고교생 딸의 손을 잡고 버스에 탄 아버지, 제자들이 조만간 겪게 될 비정규직·정리해고를 멀리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는 교사, 한진중 사태를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바라본다는 장애인 등이 바로 그들"이라며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이들이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를 ‘불쌍하다고 동정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문제’로 여기고 해고노동자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썼다.

    촘스키의 표현대로 "경찰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보여준 따뜻하고 꿋꿋한 연대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희망을 느낀다"는 것이다.

    한겨레도 사설 <고통받는 이들과의 연대와 나눔, 희망버스>에서 "희망버스는 연대와 나눔, 희망의 생생한 증거"라며 "이들의 마음은 이제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해고자를 넘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불평등과 불공정을 함께 해결해가는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겨레는 "공권력은 이들과 김진숙을 격리시켰다고 안도할지 모르나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라며 "희망버스는 더욱 거대한 태풍으로 진화할 것이고, 경찰의 물리력은 그 앞에서 조그만 등불의 신세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겨레는 또, 희망버스 사태가 평창동계올림픽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한겨레는 "온 나라가 겨울올림픽 유치의 흥분 속에서 국격상승을 외치는 동안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길에선 최루액과 방패가 난무했다. 이것이 한국사회의 냉엄한 현주소"라며 "조양호(한진그룹 회장)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형제라는 사실은 그저 우연이 아니"라고 밝혔다. 한겨레는 "우리의 국격은 겨울올림픽 개최와 노동자의 인간적인 삶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높아질 수 있다"며 "그러려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