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한다고? 그럼 돈을 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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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7월 11일 08: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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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예술가. 나는 솔직히 그런 말을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실은 지금도 약간은 그런 마인드가 있다. 굶어죽어도 글 쓰고 그림 그릴 거라고(노래는 배고프면 못 하니까 패스), 누구한테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건 정해진 운명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불쌍하지만 불행하지 않는 삶

    그래서 나는 얼마 전 시나리오 작가가 죽을 때조차도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감히 그녀가 불쌍하기는 하지만 결코 그녀 자신이 불행하지만은 안았을 거라고 추측했다.

    억지로 알바를 하면서 돈을 벌어서 살 수 없었을 거라고. 단지 그녀 자신이 글을 쓰는 것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 그랬을 거라고. 그녀의 삶은 배고픈 불행과 글 쓰는 행복을 동시에 움켜쥐고 있었을 거라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행복했을 거라고 말이다. 주변에서는 이런 내 말을 듣고는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너가 당해봐."라고 했지만 이미 나도 배고프고 있다.

    몇 개월 전 공동으로 책을 쓸 기회가 주어져 인터뷰어가 된 나는 동갑의 연극배우 지망생 박다정(가명, 27세) 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녀를 인터뷰하면서 자꾸만 나의 낙천적인 가난한 예술가의 마인드를 보게 되었는데 그녀도 나와 비슷하게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었다.

    “난 연극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해. 보수는 0원이지만 난 정말 좋아.”라며 지금은 부모님한테 얹혀살고 있지만 지금 연극을 해서 너무 좋고 계속 열심히 해 볼 거라고.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그때 낮에는 번역 일을, 밤에는 그림을 그렸는데 정말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고 싶어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밤을 새우는 고된 작업이었지만 낮에 하는 번역 일과는 만족도를 비교할 수가 없는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누가 내게 매달 60만원만 준다면

    한 달에 육십만 원 정도만, 누군가 나를 꾸준히 지원해준다고 하면, 하루 밥 한 끼만 먹더라도 나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지하방에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나설 생각이었다. 작업 환경? 그런 조건은 꿈도 꾸지 않았다. 단지 나를 흥분시키는 그 하얀 종이와 붓, 물감만 있으면 세상 어떤 것도 부럽지 않았다.

    그때 나를 보고 같이 살던 친동생이 한 마디 했다. “폐인.” 맞다. 원래 예술에 빠진 사람들은 미쳤다. 그 먹는 거 좋아하던 내가 식음을 전폐할 만큼. 예술은 어떤 점에서 중독이고, 예술가는 어떤 점에서 폐인이다. 박다정 씨도 나도 우리는 ‘다 필요 없다’는 정신으로 ‘예술한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몇 개월 뒤, 나는 내가 요가 강사로 일하고 있던 요가원의 원장에게서 "벽화를 그려 보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분명 내가 맡은 업무 외의 새로운 업무에 대한 제안이었지만, 그것도 보수로 ‘오만 원’이라는 무려 아크릴 물감 12색 한 세트와 제일 싼 아크릴 붓 4종 세트를 겨우 살 수 있는 ‘거금’을 줄 거라고 했지만,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수락했다. 그것도 “정말요?”라며 화색이 도는 말투로.

    평소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알고 있던 원장이 아마도 싼 값에 그럭저럭 괜찮은 그림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제안한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원장은 원장대로 싼 값에 그림을 얻는 이익을 보며 서로 윈-윈이라고 생각했다.

    연속 6시간을 내리 서서 그림을 그리다보니 다 그리고 나서 다리가 후들거리고 진이 빠져 정신이 혼미한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정말 황홀한 경험이었다며 스스로 만족해했다.

    열정의 바보들을 어떻게 구하지?

    내가 인터뷰한 연극 지망생 역시 무대 위에 오르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래서 그녀와 나는 돈도 한 푼 주지 않는 일에 이렇게 종일 ‘자발적으로’ 고생을 해가며 달려드는 걸까. 우리가 만든 가치는 정말 그렇게 하잘 것 없는 것일까. 누가 보기만 해도 우리가 감사해야 할 만큼? 우리 자신 하나만 겨우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인 걸까. 아니, 우리 같은 예술가는 아예 돈에는 관심 없다고, 그저 발 빼고 깨끗하고 순수한 예술 놀이에만 집중하면 그만인 걸까?

    문득 이렇게 살다가 어느 볕 좋은 날 조용히 지하 방에서 굶어죽는 그녀와 내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건 정말 우리가 바라던 아름다운 예술가의 삶이었을까?

    “아니!”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에서 한윤형은 그녀와 나 같은, 열정을 가진 문화 예술가들, 즉 ‘열정 노동자’들에게서 열정을 빌미로 노동 가치를 착취하는 세태에 대해 비판한다. 너무도 많은 열정 노동 착취가 자행되고 있다고. 그리고 정작 그녀와 나 같은 당사자들은 이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뿐더러 그렇게라도 우리에게 기회가 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이 바보들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지.

    인터넷에서 만난 또 한 명의 열정 노동가가 있다. 인터넷을 켜면 검색 창에 내가 좋아하는 화가의 이름을 쳐보고 검색 결과가 몇 건이라도 나오면 감격하고 흥분하는 변태스러운 취미를 가진 나는 어느 날 검색창에 ‘장 미셸 바스키아’라는 화가를 검색했다. 운명처럼 나온 딱 한 블로그, 거기서 나는 장 미셸 바스키아 만큼이나 열정적으로 자기 작품을 만들고 있는 미술가 ‘최재훈(가명, 29세)’씨를 알게 된 거다.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 

    그의 작품은 어스름한 새벽에 듣는 에디트 삐아프, 그 깨알 같은 감성이 살아있는 노래만큼이나 나를 전율케 했다. 그녀가 살아 있었다면 반드시 그녀의 콘서트를, 그게 얼마든 꼭 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의 작품 옆에 작은 클릭 버튼이, 그러니까 기부하기 버튼 같은 게 있었다면 나는 당장에 꾹 찍어 눌렀을 거다.

    그리고 당시 내가 밤을 새워가며 번역을 해서 벌었던 돈의 1/5 정도를 그의 통장으로 당장 계좌이체 시켰을 거다. 거짓말이 아니다. 돈을 쓰고도 아깝지 않은 것, 오히려 돈 이까짓 거 더 많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그런 순간이 바로 이럴 때가 아닐까 싶었다.

    어느 가난한 시인의 서포터즈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좋아하던 랭보를 따라 불온한 나라 프랑스로 날아 가버린 시인 강성주(가명, 28) 씨는 학창시절 블로그에 자작시를 꾸준히 올리다가 정말 운 좋게도 그에게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주는 서포터들을 만났다. 총 다섯 명의 시 애호가들이 매달 후원금조로 정기적으로 10만 원씩 강성주씨에게 돈을 보내준 것이다.

    강성주씨가 나에게 그 사실을 자랑하며 자기 시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나보다, 그래서 정말 돈을 보내주고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자기는 적어도 굶어죽지는 않을 거다, 자기 인생에서 정말 굶어죽을까봐 자존심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아 다행이라며, 생전처음 남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얘기를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때 나는 이런 일도 있구나, 저런 시를 좋아하다니 참 해괴한 사람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그 일을 떠올리며 ‘아차!’ 싶다. 이과 출신이라서인지 시인 치고는 드물게 계산이 빠르던 이 강성주씨가 당시 자기 블로그에다 후원계좌번호와 연락처를 적어 놓았던 게 떠오른 거다. 와우, 아주 잘한 거다. 그냥 혼자 작품을 만들다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탄하며 쓸쓸히 굶어 죽으면 안 된다. 배우 박다정, 화가 최재훈, 화가 아사희. 우리 셋도 강성주처럼 우리 활동을 남기고 알리고 또 후원을 받았으면 좋겠다.

    내 글을 사랑하는가? 사랑한다면 신한 110-250-742551. 여기로 입금하기를 바란다. 감동은 돈을 초월한 게 아니라, 돈을 ‘포월’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배가 고프고 계속 좋은 글을 쓰고 싶다. 내가 글을 못 쓰고 돈을 버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못하도록, 내가 글만 쓰다가 굶어죽지 않도록, 돈을 보내라. 아니면 음식을 보내도 괜찮겠다. 그런 의미에서 주소도 가르쳐주겠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366-8번지 301호다.

    내친 김에 이런 생각도 해 본다.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에게 주기에도 모자란 돈을, 좋아하지도 않는 엉뚱한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단도리’를 잘 할 필요도 있다는 생각.

    예술가 지망생들에게 최저생계비용 지원을

       
      ▲필자

    문득 얼마 전에 내가 낸 피 같은 세금을 김문수 같은 사람이 썼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니 분노가 치밀어서 그렇다. 김문수가 내가 좋아하는 회전 초밥집을 데려간다고 해도 계속 싫어할 정도로 그 인간이 싫은데 내가 김문수 입으로 들어갈 초밥을 사는데 돈을 보태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

    국회의원들 월급을 최저임금으로 고정하고 대신 예술가들, 예술가 지망생들에게 최저생계비용을 지원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어떤 놀고먹는 게으른 예술가가 있다고 해도, 저기 양복 빼입고 사실은 놀고먹으면서도 안 그런 척 하는, 입만 번드르르한 저 인간들한테 주는 것보다는 그래도 훨씬 덜 아까울 거 같다.

                                                        * * *

    * 이번 주부터 새로운 필자 아사희(필명)가 [진보, 야!] 필진에 합류합니다. 그는 현재 요가 강사이며, ‘자칭 소설가, 작사가, 일러스트레이터 & 래퍼’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과 사물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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