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 중 열사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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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7월 08일 06: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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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써야 하겠다고 생각한 건 벌써 3개월여 전이지만 난 글을 쓸 수 없었다. 함부로 쓰기엔 너무나 비극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십여 일 전 부터는 매일 자리에 앉아 보았지만 단 한 자도 쓸 수 없었다…"

    온 몸을 던져 어디서나 민중 형제자매의 아픔의 현장에 직접 함께 해오고 있는 송경동 시인마저 그러할진대, 저 같은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2011년 1월 6일 님의 결행 이래 빚진 죄인의 심정으로 몇 번이고 편지 드릴까 하였다가 감히 엄두를 못 내고 그만 속절없이 세월만 흐르고 말았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용기를 내어 이렇게 가난하고 부족한 글을 쓰는 건 님을 위해 계속 기도해오던 중 열사님들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저 자신 돌이켜 박창수 열사님을 생각해봅니다. 1991년 봄은 처절하게 뜨거웠습니다. 당시 전민련 공동의장과 국민연합 소집책으로 1년여 수배생활을 하던 중, 강경대 열사 사건과 함께 대책위 상임공동대표 및 소집책임자로 11인 열사항쟁의 과정에 불가피하게 처해졌습니다. 백기완 선생님의 절규와 그 심정이 거듭거듭 사무쳐옵니다.

    “창수야 야 창수야!
    모든 풀나무들이 다 꽃을 피우는 게 아니구나.
    그러나 너는 떡잎도 제대로 못냈으되 벌써 꽃이 피고
    나래(해방)의 열매를 맺은 이놈아, 창수야!
    이참은 찬바람에 묻히지만 언젠가는
    날래의 씨앗으로 살아나거라. 창수야
    ….그러면서 땅에 묻고 말았으니
    ~ 이 새끼야. 너도 사람이가
    창수가 아니라 노태우를 땅에 묻을
    그 어기찬 불쌈(혁명)의 때활(기회)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도리어 우리 박창수를
    땅에 묻었으니 야, 이 새끼
    임마 너도 사람의 새끼냐고…"

    민족민중의 대원로 백기완 선생님께서 스스로에게 하신 이 말씀이 바로 저를 향한 비수처럼, 가슴 찢어지는 심정이었습니다. “야, 이 새끼 상렬의 새끼, 너도 사람이가?”

    이제 그만, 더 이상 죽지 말고 살아서 투쟁하자고 간절히 호소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내가 분신하여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아야 하지 않을까?” 속으로 이럴까 저럴까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뒤 구속되어 옥중에서 저는 처절하게 절망하며 몸부림쳤습니다. 명색이 총책임자인 자가 어리석고 어리석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열패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역사 운운하며 열사이름 팔아 자기를 내세우는 이중 삼중 인격자가 바로 저였습니다.

    다시 세월은 흘러 2003년 10월 17일, 김주익 열사님 소식을 듣고서 부산으로 달려갔지요. 85호 크레인, 35m 오르며 아찔아찔하더군요. 열사님 현장에 이르러 그만 무릎을 꿇고 바닥을 치며 대성통곡했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르는군요.

    이 때 이 날의 기억을 저는 일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항상 늦깎기인 저로서 김주익 열사님으로 인해 비로소 민중의 아픔이 체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뒤 이어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분’ 곽재규열사님께서 또 그렇게 가셨고, 결국 열사님들 덕분에 새 역사가 일어났었지요. ‘준엽, 혜민, 준하 엄마를 다시 한 번이라도 찾아보아야지.’했건만, 그러하지 못하고 또 다시 무심하게 세월만 흘러왔습니다.

    이곳에서 작년 전태일열사 40년을 맞이하며, 아직도 분신하는 노동자가 계시는 등 노동현실과 민중의 아픔을 안고 11월 11일부터 5일간 조용히 단식기도를 드리면서 또한 특히 님의 소식 들으면서 뼈저리게 거듭 깨달아지는 바는 통일의 주체 문제입니다.

    우리 민족통일의 주체는 물론 민족 구성원 전체이려니와 진정한 통일은 민중에 의한 통일, 민중을 위한 통일, 민중의 평등평화통일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희망의 버스,’ 움직임 속에서 드디어 보이는 바가 있습니다.
    가슴이 설레입니다.
    ‘희망의 버스’가 세상을 바꾸는 민의 힘입니다.
    ‘희망의 버스’야말로 남녀노소 평범한 사람들의
    광범위한 대중연대의 새 갈마(역사)입니다.
    ‘희망의 버스’가 희망입니다.

    그러기에 님이여!
    "… 그래서 이 85호 크레인이 더 이상 죽음이 아니라
    더 이상 눈물이 아니라 더 이상 한과 애끊는 슬픔이 아니라
    승리와 부활의 자리가 되도록 아직도 85크레인 주위를
    맴돌고 있는 주익씨의 영혼을 안고
    반드시 살아서 내려가겠다"는 님의 말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 살아서 내려가겠다”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끝끝내 생명을 지켜주십시오.
    끝끝내 우리 살아서 제국주의 없는 세상
    자본의 횡포가 없는 노동해방세상
    사랑 자유 정의 평화 통일 자주민주 민중평등 세상의
    소중한 진보를 함께 이루어가길 희원합니다.

    이미 님은 박창수 열사의 화신입니다.
    이미 님은 곽재규 열사의 분신입니다.
    이미 님은 김주익 열사의 영혼입니다.

    제가 기도 중에 받은 바, 열사님들이 님에게 전하는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처럼 죽어서 살지말고
    살아서 살아라, 생명을 꼭 지켜라!“

    사랑합니다. 님이여, 김진숙님이여

    2011년 7월 4일
    때속(감옥)에서 어느 한사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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