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 '홀로코스크' 지금 여기 있다"
        2011년 07월 07일 05: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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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기는 어딜까?

    200여명이 조금 안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일은 하지 않는다. 이들은 정신건강과 체력증진을 위해 교육만 받는다. 무더위 땡볕에 벌겋게 얼굴 탈 일 없이 팔자 늘어지게 사무실에서 교육만 받으면 만고 땡이다. 이 얼마나 유토피아인가.

    이들이 사는 모습은 작은 것 하나 빠뜨리지 않고 자자손손 볼 수 있도록 친절하게도 영상으로 제작한다. 편집은 언감생신… 풀 영상으로 말이다. 이들은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과는 ‘격’이 다르다. 화장실 에스코트는 기본이며 식사까지 깔끔하게 풀코스로 ‘형님’들로부터 제공받는다. 여기서 그친다면 팔자 늘어진게 아니다.

    이들은 문학적 감수성 향상을 위해 매일 글을 쓴다. 책읽기는 일상이다. 아무거나 읽지 않고 ‘엄선’된 책만 읽고 매일 감상문으로 자신의 문장력을 키워간다. 질문할 것이 전혀 없다.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는 완벽한 시스템 속에서 그냥 ‘살면’되기 때문이다.

    입고 있는 옷은 천연색의 화려함을 갖고 있다. 옐로, 블루, 오렌지색 등 형형색색으로 매일 갈아입는다. 옷을 고를 필요도 없다. 개인 코디네이터가 알아서 ‘입혀’준다. 모든 것이 완벽한 이곳은 어디일까?

       
      ▲지난 해 11월 KEC 투쟁 당시 모습.

    #2 여기는 어딜까?

    일하는 곳은 모든 범죄와 예측불가능성으로부터 안전해야 한다. 이것을 신념으로 실천하는 곳이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실재 그런 곳이 있다. 넓은 작업장에 최첨단 경비시스템이 작동한다. 질 좋은 사설경비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도둑은 커녕 개미 한마리 들어 올수 없는 완벽한 진공의 공간, 꿈의 공간이다.

    이곳엔 밤낮이 없다. 언제나 환한 낮이다. 사람들은 만족해하고 만족도에 따라 감사인사를 곱게 접은 ‘편지지’에 적어 서로에게 보여준다. 시샘하지 않고 ‘평등’하다. 하향 평준이 아니라 상향 평준의 기분좋은 끌어줌이 있다. 일하기 전 이들은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살아있는 즐거운 놀이를 한다. 말뚝박기, 기차놀이, ‘터널통과놀이’… 그러나 가끔 싸우기도 하는데,,,

    이상적인 이곳이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 ‘존재’한다. 만세라도 불러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와우~~

       
      ▲유성기업 노조 투쟁사진.(사진=금속/신동준) 

    얘기를 바꿔보자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엔 주황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산다. 아니 우리에 갇혀 있다. 가끔 텔레비전 출연 때는 얼굴에 까만 복면을 하고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걸음걸이도 조신하다. 한 발 한 발 조심 조심. 발에는 커다란 발찌를 하고 있다. 오해 마시라, 발찌 색깔이 검다고 금이 아닌 것이 아니다. 검은색으로 금을 가렸을 뿐이다. 아~ 겸손도 하여라. 이 분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홀로코스트(대량학살)를 기억하는가. 히틀러의 히스테리치곤 좀 과했다. 누가 말했던가. 몇 천명 죽는 것은 고통과 아픔이 전이 되지만, 백만은 그저 숫자일 뿐이라고. 그래서 나치는 6백만명을 ‘보내셨’다. 죽은 6백만명은 ‘표식’을 달고 죽어갔다. 유태인이라는 ‘별’을 달고 말이다. 구분과 차별을 ‘각인’과 ‘낙인’으로 대대손손 물려줄 요량으로.

    첫 번째 이야기는 구미 KEC지회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사측의 만행이다. 파업참가 정도에 따라 옷 색깔을 달리 입히고, 반성문을 강요하고 정신교육과 체력단련을 시킨다. 이들에게 노동조합이 뭐길래 이토록 치떨리게 인간존엄을 짓밟는가. 도대체.

    두 번째 이야기는 유성기업이야기다. 파업참가자들에게 ‘나는 개다’를 복창하게 하는 회사다. 반성문은 기본이다. 용역깡패의 활극이 해방시기 정치깡패를 능가하는 ‘수준’으로 위험천만하다. 관리자들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게 한다는 소문은 과장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이 과연 무엇이기에 이들은 나치의 짓거리를, 관타나모수용소 흉내를 내는 걸까?

    소금꽃 찾아 천리길 7일차 아침, 여전히 명쾌하지 않은 주제다. 단서는 있다. 재벌과 자본의 착취 시스템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이윤착취의 비밀,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금속탐지기로 일일이 밥을 휘저은 후 85호 크레인 위로 올린다는 얘기를 듣고 경악한다. 그것도 용역깡패의 더러운 손으로. 노동자에게 인권은, 노동조합에 인권은 박탈당할 자유만 있는가.

    쌍용차 파업 전, 대의원 선거에서 나를 한 번도 지지하지 않고 하늘을 찌를 정도로 노동조합을 경멸하던 형이 파업대오에 슬금슬금 함께하는 것을 봤다. 미안해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얼마나 자존심 상했을까. 얼마나 화가 치밀어 올랐을까. 다른 일 찾아 보려 얼마나 노력했을까. 그러나 마지막 기댈 수 있는 곳이 노동조합이라는 결론이었다. 형을 와락 껴안았다. 지금도 함께 해고 투쟁을 하는 형이다.

    그렇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곳, 최후의 보루, 권리가 땅에 떨어져 숨이 막힐 때 절실한 산소 같은 것. 순종하는 일꾼을 원하는 사용자에겐 불편한 것, 때론 불순물이 섞여 공기정화가 필요하지만 그래도 노조는 ‘권리의 산소’다. 나처럼 해고되고, 부산에서 떠밀리고, 충청에서 밟히고, 대구에서 눌린 모두가 숨쉬게 하는 산소다. 나는 숨쉬고 싶다. 산소를 원한다. 서로 숨 쉬고 싶은 “나는 노동조합이다”

    7일차 걷고 뛴다. 짬짬이 글쓰기의 어려움을 절감한다. 아침 대구 경산 식당에서 쓴다. 글의 완성도 문제나 오타는 나의 숨겨진 게으름으로 이해해주시길.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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