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노한 다음에 알바 가야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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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7월 07일 11: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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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2일(토) 1시, 전태일재단과 청년유니온이 공동으로 기획한 청년문제 심포지엄과 청년창안대회가 3호선 혜화역 부근의 ‘책읽는 사회 문화재단’에서 열렸습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청년문제만을 중심에 두고 무려 여섯 시간 동안 발제와 토론을 나누었던 이번 행사는, ‘청년 전태일, 우리 시대의 청년들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1부 청년문제 심포지엄이,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 공모전’이란 모토로 2부 청년 창안대회가 각각 진행되었습니다.

    푸른 아이디어와 새빨간 욕망

    1부에서는 『88만원 세대』 공동저자인 박권일 씨를 비롯해, 이상동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 조성주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등이 청년들이 처한 악순환 구조의 실태와 대안 등을 발제했고, 2부에서는 청년들 스스로 이처럼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 한 번 바꿔보겠다고 각자의 푸른 아이디어와 새빨간 욕망(?) 등을 모두 끌어내어 발표하고 논쟁했습니다.

    이곳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우리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과 분석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기발한 대안과 상상력이 몹시 알고 싶으시다면, 저를 따라와 보시겠어요? 청춘처럼 청신한 웃음과 7월의 한낮 같이 뜨거운 열정이 차고 넘치던 현장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청년문제 심포지엄 청중석의 모습. 맨 앞줄은 이날 기조발언을 해준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사진=김세환 청년유니온 조합원)

    1시. 예정된 시작시간이 되었지만, 좌석이 다 차지는 않았습니다. 글쎄, 무더운 날씨 탓도 있겠지만 제 생각엔 청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시간이어서가 아닐까 싶더군요.

    사실, 평소 “내 스케줄이 청년유니온 스케줄”이라며 비명처럼 외치고 다니던 청년유니온 노동상담팀장 김민수 씨도 이날만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역시 아르바이트 때문이었죠. 라면도 먹고 월세도 내야 하는 우리들이, 토요일 오후라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거니까요.

    민태원과 자우림의 청춘예찬

    1시 20분. 되도록이면 뒷자리에 자신의 몸뚱이를 숨겨두려는 청중들을 청년유니온 김영경 위원장이 반강제로(?) 앞좌석에 이주시킨 후(작은 저항과 소란이 있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심포지엄이 시작되었습니다. 기조 발언은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해주셨는데요.

    장 원장님은 수필가 민태원의 <청춘예찬>의 한 구절과 우리 시대의 청춘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록밴드 자우림의 <청춘예찬>의 가사를 대비시키며,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우리 시대의 전태일이다. 전태일 정신으로 민태원이 예찬한 ‘청춘’을 되찾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첫 번째 발표를 맡은 박권일 씨는 『88만원 세대』 출간 이후 88만원 세대 담론이 조선일보와 변희재에 의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20대에 대한 혐오론과 희망론에 386세대의 욕망과 환상이 어떤 방식으로 투영되었는지, 그리고 오늘날 청년들이 처한 취약한 현실에 대해 발제해주셨습니다.

    박권일 선생님의 발제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불안정노동에 종사하는 신(新) 무산계급을 지칭하는 ‘프리캐리어트'(precariat, ‘불안정한’이란 뜻의 precarious와 ‘무산계급’을 뜻하는 proletariat의 합성어)란 용어에 대한 언급이었는데요.

    인턴과 아르바이트가 부차적인 일자리가 아니라 보편적 일자리로 자리 잡은 요즘, 실직과 취직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 청년들은 패스트푸드와 고시원으로 대변되는 참담한 물적 토대(proletariat)뿐만 아니라 실존 자체가 불안(precarious) 상태에 놓인 채, “일월의 태양처럼 무기력한 내 청춘이여 (..) 젊은 나는 내 젊음을 절망하네”(자우림의 <청춘예찬> 중)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밥과 김치가 없어 병사(病死)인지 아사(餓死)인지 아무튼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반값 통신비, 세금 한푼 안 들여도 가능하다

    두 번째 발제를 맡아주신 이상동 연구원님은 청년실업의 현황과 과제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요. 특히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세 가지 측면에서 배제(외주화 등으로 인한 고용계약관계에서의 배제, 조직의 단결로부터의 배제, 4대 보험 등 사회적 보호로부터의 배제)되고 있다고 말씀하신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세 번째 발제를 해주신 참여연대 안진걸 팀장님은 무려 50여 분 동안이나 많은 말씀들을 토해내셨는데요. 그래서 네 번째 발제자인 조성주님에게 “여기서도 세대간 착취가 발생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아마 그만큼 이번 학술대회에, 아니 우리사회에 열정과 애정이 대단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 많은 이야기를 여기에 다 옮겨 적을 순 없겠지만, “명지대 강경대 열사가 백골단의 폭력 진압에 숨을 거둘 때 했던 투쟁이 등록금 투쟁이었다. 80년대에는 이렇게 분노하면 투쟁했는데 요즘은 분노한 다음에 알바 가야 한다.”는 웃기도록 슬픈 말과 “보통 복지비용은 국민들의 세금 부담이 문제가 되지만, ‘반값 통신비’ 실현에는 세금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통신비는 OECD 가입국들 기준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반값 통신비도 관철시키자.”는 이색 제안을 여러분들과 꼭 함께하고 싶네요.

    마지막 발제자였던 조성주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님은 공식적인 노동조합이 아니었던 전태일 열사의 ‘바보회’를 예로 들며, “40년이 지나도 여전히 피폐한 삶을 반복하고 있는 청년들이 청년유니온을 만들었지만 네 번에 걸쳐 노조설립 신고가 반려되고 있다. 우리가 21세기 판 바보회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는 착잡한 말씀으로 발제를 시작하셨습니다.

    이어 언론에 의해 유포되고 있는 ‘골방에 갇혀 컴퓨터만 하는 백수’의 이미지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지적하며 “우리 청년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도서관에 가서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하고 시간을 쪼개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해결하고 있다. 청년유니온의 절대다수는 게으르거나 한심한 백수가 아니다. 다만 그 일이 불안정 노동이고 실직과 취업을 반복하고 있을 뿐, 청년들은 현재 노동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청년유니온 조합원인 저 역시 이때 정말 울컥했지요. 마음속으로 ‘조성주님 파이팅!’ 하면서.

    연애, 결혼, 출산 포기

    하지만 조성주님은 현실을 더욱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인지, 저와 유니온 조합원들이 앉은 자리 쪽을 대뜸 가리키며 “제가 장담하는데, 저기 있는 청년들은 자기 집을 가지지 못하고, 결혼을 하지 못할 것이며, 아이를 가지지도 못할 것”이라고 했는데요. 이때 저를 포함해 행사에 모인 청중들 모두가 크게 웃었지만, 저는 속으로 또 울컥했습니다. ‘조성주님 그만!’을 외치면서.

    하지만 조성주님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등록금 집회에서 30대들이 피자와 닭을 쏜다는 기사가 많이 나오는데, 우리 30대 조합원들은 피자와 닭을 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 같은 발제자의 말에 돌아온 사회자의 말은 우리를 더욱 절망케 했으니 그 말인즉 “피자와 닭을 나르겠죠.”였습니다. 여기에 다시 이어진 발제자의 말은? “아니요. 옆에서 피자와 닭을 같이 먹습니다. 다들 배고프니까요.”

       
      ▲조성주 발제자가 “절대로 집을 사거나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던 청년유니온의 조합원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애매한 표정들을 짓고 있다.(사진=김세환 청년유니온 조합원)
     

    참으로 피자와 닭이 고픈 3시간 가량의 시간이 흐르고 네 분의 발제도 모두 끝이 났습니다. 요즘 흔히 ‘삼포세대’란 신조어가 유행처럼 쓰이고 있는데요. 여기서 ‘삼포’란 연애, 결혼, 출산의 포기를 말합니다. 현실성 없는 것을 내 쪽에서 먼저 포기해버리겠다는 자조적 선언일 테지요.

    저 역시 출산은 확실하게 포기했고 결혼은 사실상 포기했으며, 연애 역시 하고는 있지만 얇은 주머니 사정 때문에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여자 친구한테는 그저 미안할 뿐이지요.

    이렇게 지금 어떤 청년들은 주거도 식사도, 심지어 사랑까지도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보호받거나 누릴 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물론 다들 몸으로 느껴 잘 알고 있을 테고요. 2부에서는 이 같은 저간의 사정을 우리 힘으로 극복해보자는 취지로 열렸습니다. 한번, 이 친구들의 신묘한 지략을 들어나 볼까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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