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10만원으로 동록금 없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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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7월 07일 08: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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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예산이 문제라고 한다. 돈이 없단다. 여러 가지 복지나, ‘무상-’시리즈(무상 급식, 무상 의료, 무상 교육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특히 그렇다. 지난 글에서부터 언급하는 반값 등록금도 그러하다. 증세가 필연적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 주장이 있고, 지금 있는 예산 안에서는 전혀 극복되지 않는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이건 꼭 정부나 여당의 목소리만은 아니다. 나름 ‘합리적’인 시민 논객들도 종종 동원하는 논리이다. “정부 예산이 그렇게 만만하냐?” “그건 증세를 해야 하는 거잖아?”

급진적 대안,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하지만 예산이 정말 문제일까? 아니, 정말 그런 것들을 도입한다고 하면 얼마가 증세되기에 저러나? 이러한 논리에 대해서 그냥 ‘부자 감세’ 철회하고, ‘4대강 삽질’을 철회하라는 주장. 즉 ‘- 철회’ 시리즈의 주장이 있다.

다른 한편, ‘압박’ 시리즈. 즉 ‘대학에 대한 감사’를 강화하고, 적립금을 대학이 기부하면 된다고 하는 방식의 반박이 더 많은 편이다. 실제로 ‘반값 등록금’ 집회 장소에서도 그러한 이야기들이 나올 때가 많다. 집회에서 참여자들의 ‘분노’와 ‘열정(파토스)’을 끌어내기 위한 수사로 그러한 방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일견 타당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반값등록금을 위한 대학생들의 시위. 

실제 협상장에서 중요한 것은 말 그대로 재원 확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싸움을 더 전개하려면 당장이라도 증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쟁점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고, 또한 모든 반값 등록금 혹은 무상 등록금에 대해서 외치는 사람들이 똑똑히 현황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모든 대학생의 등록금을 없애는 데 얼마가 들까? 1년에 15조 원(1년 등록금 총액)이 든다. 그럼 이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좀 무식한 산술식으로 풀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업은 고등학생도 할 수 있고, 필요한 준비는 시간 조금과 예산에 대한 기사의 스크랩 작업, 그리고 정부 예산안을 포탈에서 검색해서 확인하는 것,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인구가 4900만 명인 것 정도를 기억하는 게 전부이다. 이러한 산술식은 반드시 등록금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지난 번 글에서 주장했던 병사들의 최저임금제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한 달 10만 원의 문제

완전히 새로 세금을 신설하여 증세를 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1인 당 얼마씩을 부담하면 될까? 무상 등록금은 ‘한 달 10만 원’의 문제이다. 가구당 한 달 평균 10만 원이면 학비를 걱정하지 않고 그냥 대학을 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다(물론 계층별로 징세의 차등이 있어야 한다).

달리 말해 1년에 대략 1인당 평균 30만 원을 지불하면 된다. 한 달에 2만 5천 원 꼴로 내면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보통 개인 단위로 세금을 생각하지 않고 가족 단위로 생각하니, 가족 단위로 금액을 따져보는 게 더 유리할 것이다.

평균 4인 가구에서 모든 식구가 세금을 내야 한다고 치면, 한 달에 10만 원 꼴로 세금을 내야 할 것이다. 1년이면 120만 원이다. 그런데 1년의 등록금은 얼마일까? 대략 1천만 원이다. 대학생 1명이 있는 집에서 등록금을 안 내고 세금을 내면 880만 원이 싸다. 그리고 4년 동안 등록금 대신 세금을 내고, 학교를 다니면 3520만 원의 이익이다.

물론 이 지점에서 대학을 안 보내는 집에서는 계속 120만 원의 세금을 왜 내야 하냐고 질문할 수 있다. 이건 좀 꼼꼼히 따져볼 문제다. 다시 계산을 해 보자. 현재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85%에 육박한다. 달리 이야기하면 일단 15%를 제외한 나머지의 85%는 15조 원의 무상 등록금에 필요한 예산에 대한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한 합의가 만들어질 수 있는 집단이다.

한 가구가 자녀를 4년제 대학을 다니는 두 명을 키운다고 가정할 경우 학교를 다니는 기간에는 7040만 원의 이익이 발생한다. 그리고 대학을 보내지 않는 기간에는 매해 120만 원이 당장 자신들에게 돌아오지 않는 비용 때문에 세금을 내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세금으로 내는 게 더 이익이다

그런데 7040만 원의 이익이 발생했기 때문에 58년간 120만 원씩 지불하더라도 이익이다. 그런데 어림잡아 자녀를 낳아서 길게 잡아도 30년이면 자녀가 임금 노동을 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고, 그 때의 부모 세대는 점차 세금을 납부하는 대상이 아니라 복지의 대상이 된다. 어떻게 봐도 세금 내고 등록금 없이 학교를 보내는 것이 이익이다.

이러한 계산이 엉터리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120만 원이라는 금액이 물가가 상승하고, 그와 비례해서 납부해야 하는 직접세의 상승 때문에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주장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명목상은 없어진) 등록금의 인상률을 물가 상승률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게 묶으면 어차피 같은 상황이 된다.

동일 비율로 무상 등록금에 대한 세금을 납부하게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실질적으로 무상 등록금 때문에 발생하게 되는 비용은 지금보다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학 교육 운용에 필요한 돈을 정부가 감사를 통해서 파악하면, 학생과 가계가 부담해야 하는 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문제는 외려 15%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15%의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인구에게는 필요한 직업 관련 기술 교육을 이수할 수 있게끔 하면 되고, 차후에라도 대학 교육을 요구하면 그들에게 방송통신대학 등이나 국공립대에서 학위 과정을 이수할 수 있게 하면 된다.

게다가 김대중 정부 이후로 계속 진행되어온 직접세의 차등 징수, 즉 누진세의 무력화라는 변수가 있다. 특히나 이명박 정부에서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낙수 효과’(trickle down)를 명목으로 종부세(종합부동산세), 법인세 등 3조5000억 원이 감세되었던 효과들만 다시 이전 수준으로만 돌려놓으면 각 서민 가계에서 120만 원씩을 1년에 전부 내게 되는 일은 없다.

오히려 교육비를 면제받을 수 있는 계층도 생겨나게 된다. 가난한 자가 더 교육에서 배제당하면 안 된다는 점에서도, 조세 정의상 합당한 일이다. 한국의 GDP 대비 국민부담률(조세부담률+사회보장부담률)은 26.6%로 OECD 국가 30개 중 27위이고, GDP 대비 정부지출 비중은 30%로 OECD 국가 중 꼴찌이다. 달리 말하자면, 세금을 별로 걷지도 않고, 세제 감면도 너무 많다는 이야기다. 누진세를 강화하여 더 걷을 여지는 충분히 있다.

기존 예산 활용하면 10만 원 밑으로 떨어져

마지막으로 반드시 15조 원의 예산을 추가로 증설해야만 하냐는 점도 따져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예산의 ‘우선순위’ 문제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예산은 309조 원이다. 15조 원이면 전체 예산의 4.9%에 달한다. 현재 고등교육 예산은 전체 예산의 1.6%인 4조9720억 원 정도이고, 교육 예산 총규모는 전체 예산의 13%인 41조 6천억 원이다.

그런데 15조원을 완전히 신설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일단 현재도 3조원 가량이 장학금으로 지급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신설해야 하는 돈은 12조 원이다. 거기에 4대 강 사업 등 SOC 관련 예산으로 들어가는 돈이나, 경기침체 시 추경예산으로 뿌려대는 돈을 생각해 보자. 12조를 만들지는 못 해도 그 돈의 상당 부문은 상쇄가 가능하다. 그러면 한 가구에서 한 달에 대학 다니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돈은 평균 10만 원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쯤에서 드러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개별 가구에 ‘치명적인’ 문제를 발생시킬 만큼 세금을 많이 낼 필요는 없다. ‘한 달 가구당 10만 원에 대학 공짜’는 해볼 만한 이야기다.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방식의 ‘증세’에 대한 논의가 되지 않는 건 아마도, 세금이 도무지 어디로 들어갔는지를 파악할 수가 없다는 점에 기인하는 바가 더 커 보인다.

즉, 국고가 어떠한 방식으로 집행되는지에 대한 불신이다. 비민주적 예산 운영에 대한 불신이다. 노무현 정부 시기까지는 지금처럼 감세를 표가 나게 많이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때 역시도 교육의 수월성은 강조되었지만, 공공성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고, 예산은 경기 부양과 토건 경제, 국방개혁 2020으로 대표되는 군비경제(군의 현대화)를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집행되었다.

또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세금의 흐름과 상관없이 가장 많은 등록금 인상이 단행되었던 시기 역시 ‘민주 정부’ 시절이다. 오히려 등록금 인상이 억제되거나 최소한으로 진행된 것은 이명박 정부 시기이다. 지금은 비정규직의 양산, 청년실업 문제의 미해결, 4대강 사업의 폭력적 진행, 정부에 대한 불신 등이 쌓여서 어쩌면 ‘민주 정부’ 시절 제대로 싹트지 못했던 교육의 공공성, 무상 복지, 무상 교육 등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절호의 국면이 되었다.

구체적 언어를 잡아채지 못하는 광장의 열기

그런데 논의는 점차 축소되고, 광장의 열기는 구체적인 제안의 언어를 잡지 못하고 표류한다. 2008년 촛불 시위 시기의 쟁점이 분노였다면, 지금의 쟁점은 분노를 정치화하는 것인데 ‘현실 정치’의 영역은 다시 노회한 정치인들의 협상으로 끝날 수 있는 위기에 달하고 있다. 이미 살인적 등록금이 몸으로 와닿아 분노는 나오지만, 그에 대해 ‘요구’는 아직 정교하지 않게 던져지고 있다.

반값 등록금에 대한 의제나, ‘무상-’시리즈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문제 제기하고 있는 지금, 증세에 대한 이야기를 피해갈 수는 없다. 오히려 사회단체와 진보정당들이 던져야 할 쟁점은 이러한 예산을 신설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그 사용 항목, 즉 등록금 탕감으로만 활용할 수 있도록 예산의 용도를 못 박는 방법이다.

좀 더 급진적인 내용의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보기에 급진적인 것들이 일상 감각에서 수용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무상 등록금이 듣는 이에게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고, ‘한 달 10만 원’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의 이슈가 되고, 반값 등록금이 ‘기술적 옵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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