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두환주의를 지향하는 오세훈
    By
        2011년 07월 04일 01:55 오후

    Print Friendly

    1980년대 후반,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것은 정치 홍보 수법 중에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뒤집는 수법이었다. 어차피 전두환은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대중의 지지 없이 체육관에서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영합할 인기 자체가 없었고, 그것이 자신의 최대 약점이었다.

    전두환과 오세훈

    그러나 전두환은 자신의 약점을 숨기거나 회피하는 데 급급해 하지 않았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거나 회피하는 것은 밀리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는 거꾸로 자신을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소신 있는’ 사람으로 포장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적극적인 홍보 전략이다. 어차피 대중의 요구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포퓰리즘은 그 때부터 숨통이 막히기 시작했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이 복지 포퓰리즘을 막기 위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하겠다며 적극 나서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부여당 내 보수파의 선별적 복지 입장을 지지하는 ‘복지 포퓰리즘 추방 국민운동본부’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에 대한 전면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주민투표를 청구하기 위해 8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서울시에 제출했다.

    오세훈 시장은 이를 두고 "전면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주민투표가 복지 포퓰리즘에 종지부를 찍을 역사적인 기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들의 노력에 힘입어 서울시는 오는 8월 20일에서 25일 사이에 사상 최초의 주민투표를 치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주지하듯이 포퓰리즘이라는 용어의 기원은 미국 인민당(People’s Party)이다. 1891년 조직된 농민세력을 기반으로 결성된 인민당의 당원들은 스스로를 포퓰리스트 (populist)라고 불렀다. 당시에는 이것이 아주 자랑스러운 용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바다와 시간을 건너 오늘날 한국 사회로 넘어오면서 매우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출간된 일부 서적에는 인민당의 포퓰리즘을 두고 “경제적 합리성을 도외시한 과격정책을 내세웠다.”라고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포퓰리즘 덕

    그러나 과연 포퓰리즘의 원조인 미국 인민당은 그렇게 허무맹랑한 소리만 떠들다가 사라졌을까? 농민세력을 배경으로 창당된 인민당은 창당 당시부터 누진소득세, 상원의원 직선제, 교통과 통신의 정부규제 등을 주장했다. 특히, 남북전쟁 때부터 상반된 이해관계를 갖고 있던 산업자본을 규제하기 위해 거대 기업 간 담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즘말로 하면 재벌 해체 또는 규제 주장이었다.

    이런 주장은 미국 남부의 농민들이 들을 때는 박수치고 환호할 소리였지만, 북부의 산업자본가들이 들을 때는 생각할 가치가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황당한 소리였다. 그래서 그들은 포퓰리즘을 두고 “경제적 합리성을 도외시한 과격정책을 내세웠다.”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인민당은 창당 1년 만에 대통령 후보를 내세워 남북전쟁 당시부터 농민 세력의 근거지였던 미국 남부를 중심으로 100만 표 이상을 획득하기도 했다. 이후 수십 명의 주지사, 상원의원, 하원의원을 배출하기도 했던 그들은 20년을 못 버틴 채, 20세기 초반 강령과 조직을 모두 미국 민주당에 흡수시키고 역사에서 사라져갔다.

    이러한 미국 포퓰리스트들의 투쟁은 인류의 역사에 큰 궤적을 남겼다. 미국 포퓰리즘이 창당 때부터 주장했던 정책 내용들은 향후 20년 동안 거의 대부분 현실의 제도로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상원의원 직선제가 관철되었고, 소득세법이 제정되었다. 철도, 석유, 철강 등 거대 기업의 담합을 금지하는 법도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포퓰리즘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소득세법’과 ‘공정거래법’의 쟁취 투쟁사에서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돈을 많이 벌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상식’을 갖고 있다. 또, 거대 독점 기업끼리 담합을 하거나 내부 거래를 하면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기관의 공적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상식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들은 과거에는 전혀 상식이 아니었다. 이것들이 상식이 되기까지 미국 포퓰리즘의 지루한 투쟁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별다른 대중투쟁 없이 해방 후에 이런 성과물들이 곧바로 수입되는 바람에 이 제도들이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뿐이다.

    포퓰리즘 반대말은 전두환주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출직 공직자가 대중의 요구를 끊임없이 챙기고 살펴보는 것은 근본적으로 매우 당연한 민주주의 체제의 철학이다. “나는 인기를 포기하겠다.”거나 “인기가 없지만 괜찮다.”는 식의 언사를 스스로 떠들고 다니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팔불출 같은 언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정치를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인데, 이것은 민주주의 시대의 정치와 배치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대중의 사랑을 받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이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직업 정치인의 본래 임무이다. 따라서 80년대식 관점에서 바라보면, ‘포퓰리즘’의 반대말은 ‘전두환주의’라고 할 수 있다. 포퓰리즘이 갖는 풍부한 의미와 그 뜻 깊은 역사를 도외시한 채, 이를 덮어놓고 비난하는 것은 전두환 정권의 홍보 전략가들이나 할 소리이다.

    오세훈 시장이 ‘복지 포퓰리즘에 종지부를 찍을 역사적 기로’라고 스스로 규정한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한 달 급식비 4만 원을 모든 학생들에게 공적으로 제공하는 보편적 무상급식, 보편주의 복지국가인 북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알량한 그 복지 포퓰리즘이라도 우리는 제대로 한 번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은 지금 우리 국민 다수가 원하는 일이다.


    페이스북 댓글